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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1, 2025

[심층 분석] 2025년 특허법 개정, ‘수출’의 모든 것 (미국 법제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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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특허권의 국경을 다시 그리다

혹시 이런 상상 해보셨나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부품을 중국으로 보내 조립한 뒤, 미국 시장에 팔면 국내 특허를 피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특허는 그 나라에서만 힘을 쓴다’는 속지주의 원칙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맞춰 계속 진화하고 있거든요.

특히 요즘처럼 부품을 전 세계에서 조달하고, 또 다른 나라에서 조립해 제3국에 파는 일이 흔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죠. 이런 ‘특허 회피’ 전략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나라가 바로 미국과 한국입니다. 두 나라는 국경을 넘나드는 ‘수출’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법을 발전시켜 왔는데요. 오늘은 바로 그 흥미진진한 법의 진화 과정을 샅샅이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제1부: 미국 법제의 진화 - ‘사법이 만든 공백, 입법으로 메우다’

미국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모든 것의 발단은 1972년 ‘Deepsouth’라는 유명한 판결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법원은 미국 내에서 특허 발명의 ‘모든’ 구성요소를 결합하지 않고, 부품 형태로 수출해서 해외에서 조립하는 행위는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특허법이 ‘제조(make)’ 행위만을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건 뭐, 대놓고 ‘이렇게 하면 특허 피해 갈 수 있어요’라고 알려준 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특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법적 허점, 이른바 ‘Deepsouth Loophole’이 탄생하게 됩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겠죠? 특허권자들은 재앙과도 같은 이 판결에 반발했고, 결국 미국 의회가 직접 나섰습니다. 12년이 지난 1984년, 의회는 대법원의 ‘초대’에 응답하듯 특허법 제271조 (f)항을 신설해서 이 법적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버립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침해의 초점을 해외의 ‘조립’이 아닌, 미국 내의 ‘부품 공급’ 행위로 돌린 것이었죠. 속지주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국경 너머에까지 효력을 미치는 기가 막힌 해법이었습니다.

💡 알아두세요! 미국 특허법 § 271(f)의 두 가지 칼날 이 조항은 두 가지 경우를 나누어 규제합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예요.
  • (f)(1) 양으로 승부: 특허품의 ‘모든 또는 실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부품들을 수출해서 해외 조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실질적인 부분’은 부품의 개수, 즉 양을 의미해요.
  • (f)(2) 질로 승부: 다른 용도로는 쓰기 힘든 ‘핵심 부품(staple article이 아닌)’ 단 하나라도, 그게 특허품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임을 알면서 해외 조립을 의도하고 수출하는 경우입니다.

결국 미국은 사법부가 엄격한 법 해석으로 만들어낸 명백한 허점을, 의회가 새로운 침해 유형을 정의하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전형적인 ‘문제 제기(사법부)와 해결(입법부)’의 길을 걸었습니다. 권력 분립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한 셈이죠.

제2부: 한국 법제의 진화 - ‘사법의 진화, 입법으로 완성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한국의 접근 방식은 미국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법률의 ‘해석’을 통해 점진적으로 규제 범위를 넓혀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판례에만 의존하는 것의 한계가 드러나자, 마침내 입법부가 나서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을 택했죠.

과거 한국 법원은 부품이나 반제품 수출에 대해 특허 침해를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봉합사 판결’(2019다222782) 등에서 미완성품이라도 국내 생산 부분이 특허의 실질적 가치를 구현하고 해외에서 간단한 가공만 거치면 완성되는 등 특정 요건을 만족하면, 국내 ‘생산’ 행위를 직접침해로 볼 수 있다는 예외적인 법리를 제시하며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 해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내 2025년 7월 2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허법은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2025년 개정 특허법의 핵심: ‘수출’의 명문화

이번 개정의 핵심은 특허법 제2조(정의)와 제127조(침해로 보는 행위)에 ‘수출’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것입니다. 이제 특허권자는 침해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행위 자체를 ‘직접침해’로 규정하고 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1. 법적 공백 해소: ‘노키아 판결’ 등에서 확인된, 국내 제조 침해품의 해외 유출을 막지 못했던 입법상 허점을 보완했습니다.
  2. 법 체계 정비: 이미 ‘수출’을 침해로 보던 디자인보호법, 상표법과 체계를 맞추고, 일본·독일 등 주요국과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3. 권리자 보호 강화: 기존에는 복잡하게 국내 ‘생산’ 행위를 입증해야 했지만, 이제 ‘수출’ 사실만으로도 침해를 주장할 수 있어 입증 책임이 크게 줄었습니다.

제3부: 개정법과 판례, 어떻게 함께 작동할까?

“그럼 이제 미완성품을 수출하는 것도 무조건 특허 침해가 되나요?”라고 물으실 수 있겠네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개정법과 기존 판례(봉합사 판결)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상황을 규율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특허 침해의 대원칙은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s Rule)’입니다. 즉, 특허의 모든 구성요소를 포함해야 침해가 성립하죠. 개정법은 ‘수출 행위’를 규제할 뿐, ‘무엇을’ 수출했는지를 바꾸진 않습니다. 따라서 개정법으로 침해가 되려면, 수출되는 물건이 이미 ‘완성품’이거나, 그 자체로 간접침해에 해당하는 ‘전용품’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봉합사 판결’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이 판례는 구성요소가 일부 빠진 ‘미완성품’이라도, 아주 엄격한 4가지 요건을 만족하면 예외적으로 국내 ‘생산’ 행위 자체를 완성품 생산과 동일하게 보아 직접침해로 인정하는 법리입니다. 전용품이 아니더라도 그 양이 상당하다면 적용될 수 있겠죠?

한-미 법리의 흥미로운 평행 이론

여기서 두 나라의 법리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비슷한 목적지에 도달한 것 같거든요.

  • 한국 특허법 제127조(간접침해)는 침해에만 사용되는 ‘전용품’의 생산·양도 행위를 규제합니다. 이는 미국 특허법 § 271(f)(2)가 침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핵심 부품’의 수출을 규제하는 것과 기능적으로 유사합니다. (핵심 부품의 질적 사용 규제)
  • 한국 대법원의 ‘봉합사 판결’은 미완성품이라도 ‘실질적인 모든 구성요소’가 포함된 경우 예외적으로 직접침해를 인정합니다. 이는 미국 특허법 § 271(f)(1)이 ‘모든 또는 실질적인 부분’의 부품을 수출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과 상응하는 역할을 합니다. (상당한 양적 사용 규제)

제4부: 종합 비교 분석 - 미국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

‘수출을 통한 특허 회피’라는 같은 문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정말 다른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즉 ‘법제 발전 경로’는 각국 사법부와 입법부의 역할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구분 미국 (‘사법 → 입법’ 분업 모델) 한국 (‘사법 → 사법 → 입법’ 동적 상호작용 모델)
법제 발전 경로 연방대법원이 ‘Deepsouth 판결’로 법적 공백을 명확히 제시하고 입법을 촉구하자, 의회가 § 271(f)를 신설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권력 분립 원칙에 기반한 전형적인 ‘문제 제기(사법부)와 해결(입법부)’의 분업 모델입니다. 대법원이 ‘노키아 판결’로 엄격한 원칙을 세운 뒤, ‘봉합사 판결’에서 스스로 예외 법리를 창설하며 법 형성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입법부가 이를 수용해 ‘수출’을 명문화하며 법제를 완성했습니다. 점진적인 ‘동적 상호작용’ 모델에 가깝습니다.
침해 규율 방식 간접침해 모델 (해외 조립을 유도/기여) 직접침해 모델 (수출 행위 자체)
입증 책임의 핵심 피고의 ‘주관적 의도’ (유도, 인식) 입증이 중요 ‘객관적 사실’ (침해품, 수출 행위) 입증으로 충분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침해 규율 방식’입니다. 미국은 부품 수출을 해외에서 일어날 침해를 돕는 ‘간접침해’로 보는 반면, 한국은 ‘수출’이라는 행위 자체를 완결된 ‘직접침해’로 봅니다. 이 때문에 특허권자가 소송에서 입증해야 할 내용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피고가 나쁜 의도를 가졌어요”를 입증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피고가 이 물건을 수출했어요”라는 객관적 사실만 입증하면 되는 셈이죠.

제5부: 우리 기업을 위한 전략적 시사점

이러한 복잡한 법제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중요한 과제를 던져줍니다. 단순히 국내 특허만 피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제 정말 통하지 않습니다.

  1. 공급망 전체의 특허 리스크 분석: 제품 기획 단계부터 부품 조달(한국, 미국), 생산, 조립(제3국), 최종 판매 시장에 이르는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허 침해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부품을 조달해 제3국에서 조립하는 경우 ‘봉합사 판결’ 요건에 해당하는지, 미국에서 부품을 조달한다면 § 271(f)에 해당하는지 반드시 검토해야 합니다.
  2. 국제 계약서의 정교화: 해외 파트너와 부품 공급 계약, 위탁 생산 계약 등을 체결할 때, 특허 침해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조항은 이제 필수입니다. 특히 최종 제품의 판매 지역, 용도 등을 명확히 하여 예기치 않은 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3. 분쟁 관할권 및 법리 적용 문제 대비: 미국 본사가 한국 자회사에 침해품 생산/수출을 지시하는 경우, 분쟁이 어느 나라 법원에서 어떤 법리로 다뤄질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국제사법적 쟁점이 훨씬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 주의하세요!
본 내용은 복잡한 법률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구체적인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이나 전략 수립은 반드시 특허 전문 변호사 또는 변리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미국의 ‘Deepsouth Loophole’이 정확히 무엇이었나요?
A: 미국 내에서 특허품의 모든 부품을 다 만들어 놓고, 딱 최종 조립만 미국 밖에서 하는 꼼수입니다. 1972년 대법원이 최종 조립이 미국 땅에서 이뤄지지 않았으니 ‘생산’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합법적인 특허 회피 수단이 되어버렸죠. 이후 1984년 의회가 법을 개정해서 이 허점을 막았습니다.
Q: 한국의 ‘봉합사 판결’은 미완성품 수출에 항상 적용되나요?
A: 아닙니다. 매우 엄격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① 국내에서 생산된 부분이 특허의 실질적 가치를 거의 모두 포함하고, ② 나머지 극히 일부만 부가/대체/제거하면 완성되고, ③ 구매자가 그런 완제품을 만들 것이 명백히 예상되며, ④ 국내에서 완성품을 생산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하게 볼 수 있는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합니다.
Q: 2025년 한국 개정법이 시행되면, 이제 아무 부품이나 수출해도 특허 침해가 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개정법은 ‘수출 행위’를 침해로 추가한 것이지, 침해 ‘물건’의 범위를 바꾼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수출되는 물건이 그 자체로 특허의 모든 구성요소를 갖춘 ‘완성품’이거나, 다른 용도로는 거의 쓸 수 없는 ‘전용품’에 해당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범용 부품을 수출하는 것은 여전히 직접침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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