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CAFC.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CAFC. Show all posts

Saturday, August 15, 2026

'산악 가이드'와 '틀린 그림 찾기'의 갈림길: Rolflex 판결이 남긴 미국 디자인 특허법의 대분열

시론 · 심층 법률 칼럼

디자인 특허 침해를 누가, 어떤 관점에서 판단할 것인가. 판사의 사전적 범위 설정과 배심원의 전체적 시각 인상 판단이 정면으로 충돌한 Range of Motion Products v. Armaid 사건을 살펴본다.

🎬 영상 해설 | 디자인특허 침해 판단, 전체를 볼 것인가 기능을 걷어낼 것인가?

Range of Motion Products v. Armaid 사건을 소재로, 디자인특허 침해 판단에서 기능적 요소를 어디까지 분리해 보아야 하는지를 영상으로 살펴봅니다.

이 영상은 Range of Motion Products v. Armaid 사건을 소재로, 디자인특허 침해 판단에서 기능적 요소를 어디까지 분리해 보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대립을 통해 제품의 전체적 시각적 인상과 세부 기능의 관계, 통상의 관찰자 기준, 법원과 배심원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디자인특허가 단순한 ‘틀린 그림 찾기’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니다. (단 본 영상은 재심리기각 결정이전에 만들어진 점 양해바랍니다)

2026년 8월 11일, 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은 Range of Motion Products, LLC v. Armaid Company Inc. 사건의 전원합의체(En Banc) 재심리 청구를 6대 4로 기각했습니다. 자가 마사지기 디자인 특허를 둘러싼 재심리 자체는 무산됐지만,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드러낸 충돌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디자인 특허 침해를 누가, 어떤 관점에서 판단할 것인지에 관해 CAFC 내부의 법리적 균열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쟁점은 디자인의 유사성을 둘러싼 판단의 성격입니다. 이를 헌법상 배심원에게 맡겨야 할 사실 문제(Fact)로 볼 것인지, 아니면 특허 범위와 소송 효율을 관리하기 위해 판사가 초기 단계에서 처리할 법률 문제(Law)로 볼 것인지가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 글은 전통적인 침해 기준에서 출발해 양측의 사법 철학, 학계가 제안한 대안과 향후 소송에 미칠 영향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전장(戰場)의 지도: 디자인 특허 침해의 전통적 테스트와 심리 기준

미국 디자인특허 침해판단의 기본 기준은 연방대법원이 Gorham Co. v. White, 81 U.S. 511 (1872)에서 제시한 일반 관찰자 테스트(Ordinary Observer Test)입니다. 구매자가 통상 기울이는 주의를 가진 일반 관찰자의 눈에 등록디자인과 피고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동일하고(Substantially the same), 그 유사성이 피고 제품을 등록디자인 제품으로 알고 구매하게 할 정도라면 침해가 성립합니다.

CAFC는 Egyptian Goddess, Inc. v. Swisa, Inc., 543 F.3d 665 (Fed. Cir. 2008) (en banc)에서 일반 관찰자 테스트가 디자인특허 침해의 유일한 판단 기준임을 확인하고, 별도의 신규 특징을 찾아 대조하던 point-of-novelty test를 폐기했습니다. 이에 따른 실제 심리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청구범위와 기능적 요소의 처리: 디자인특허는 물품의 장식적(Ornamental) 외관을 보호합니다. 따라서 법원은 등록디자인의 도면을 기준으로 보호범위를 파악하고, 실용적 목적에 의해 좌우되는 기능적(Functional) 요소와 장식적으로 구현된 외관을 구분합니다. 다만 이는 기능과 관련된 형상을 기계적으로 삭제하는 작업이 아니라, 일반 관찰자가 비교할 전체적 시각인상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선행 작업입니다.
  2. 전체적 시각인상의 직접 비교와 ‘명백한 상이성’: 법원은 먼저 등록디자인과 피고 디자인이 주는 전체적 시각인상을 비교합니다. 두 디자인이 명백히 상이하여(Plainly Dissimilar) 합리적 배심원이라면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은 비침해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을 할 수 있습니다.
  3. 선행기술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 동일성 판단: 두 디자인이 명백히 상이하지 않고 관련 선행디자인이 존재한다면, 일반 관찰자가 그 선행기술에 친숙하다는 전제에서 선행기술의 맥락을 고려하여 실질적 동일성을 판단합니다. 이때 선행기술은 폐기된 point-of-novelty test처럼 독립된 별도 요건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관찰자의 주의가 어느 공통점과 차이점에 집중되는지를 알려주는 비교의 맥락으로 기능합니다.

2. Rolflex 사건의 사실관계와 다수의견의 ‘산악 가이드(Trail Guide)’ 모델

Rolflex 마사지기 사건은 이 다단계 판단 구조가 실제 소송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사건의 발단: 원고 Range of Motion(RoM)은 안쪽으로 휜 조개껍데기형(clamshell) 곡선 암(arm)을 특징으로 하는 자가 마사지기 ‘Rolflex’의 디자인 특허 D802,155호를 보유했습니다. 피고 Armaid가 유사한 실루엣의 ‘Armaid2’를 출시하자 RoM은 디자인 특허 침해를 주장했습니다.
  • 다수의견의 판단: Cunningham 판사와 Hughes 판사가 참여한 다수의견은 피고에게 유리한 약식판결을 내린 1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 기능성의 분리: 다수의견은 RoM의 실용 특허와 마케팅 자료를 근거로 조개껍데기형 곡선 암이 마사지 과정에서 지렛대 힘(leverage)을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보호 범위의 중심은 전체 곡선 실루엣이 아니라 이랑진 테두리 윤곽(thick ridged outline) 등 세부 장식으로 좁아졌습니다.
    • 세부 차이에 따른 약식판결: 법원은 좁아진 장식적 범위를 기준으로 피소 제품을 비교했습니다. 반직사각형 힌지의 비율, 격벽이 드러나 생기는 분절된 인상(segmented appearance), 큰 크기 조절 홈과 각진 하단 마감 등을 이유로 두 디자인이 명백히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Rolflex 디자인 특허 도면, Armaid2 마사지기와 선행기술 제품의 형태를 나란히 비교한 개념도
[개념도] 기능성 배제(Factor out)를 거치며 보호 범위에서 밀려난 조개껍데기형 곡선 암(clamshell)의 전체 실루엣과, 이후 비교의 중심이 된 힌지 비율·조절 슬롯 등 세부 장식의 차이

🔎 세 디자인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D’155 디자인, Armaid2, Armaid1을 나란히 놓으면, Armaid1의 큰 베이스와 목 구조는 D’155 및 Armaid2와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특히 D’155는 선행디자인인 Armaid1의 묵직하고 닫힌 ‘항아리형’ 프레임과 달리,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날렵한 유선형 곡선(Shell-like/Tapered curve) 프레임을 취하고 있어 전체적인 시각적 인상(Overall visual impression)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반면 D’155와 Armaid2를 비교하면, 세부적인 힌지·홈·테두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팔의 구성, 곡선의 흐름과 비례에서는 서로 유사하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부적 차이를 먼저 볼 것인지 아니면 선행디자인과 구별되는 전체적 시각 인상의 공통성을 먼저 볼 것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적인 관점 차이로 떠오릅니다.

🗺️ 다수의견의 법리적 요체: “판사는 ‘산악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다수의견을 쓴 Cunningham 판사는 판사의 사전 개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며 ‘산악 가이드(Trail Guide)’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기능과 장식이 디자인 도면에서 뒤섞여 있을 때 판사는 산악 가이드처럼 법적 표지(flags)와 이정표(signposts)를 세워 배심원이 판단할 경로를 안내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기능적 요소를 미리 구분하지 않으면 배심원이 보호 대상이 아닌 실용적 유사성에 끌려 특허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바탕에 있습니다. 다수의견은 Markman v. WestviewTeva v. Sandoz를 들어 청구항의 의미를 확정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판사에게 맡겨진 법률 문제(Question of law)라고 보았습니다.

3. 킴벌리 무어(Kimberly Moore) 수석판사의 반격: “틀린 그림 찾기”의 사법적 왜곡

“우리는 디자인 특허 침해 법리를 망가뜨렸고, 본질적인 배심원의 사실 판단 권한을 완전히 말살해 버렸다.”

킴벌리 무어 수석 판사(Chief Judge Moore)는 전원합의체 재심리 기각에 반대하며 다수의견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다수의견의 접근이 디자인 특허의 전체적 시각 인상을 해체하고, 모방자가 세부 차이만으로 조기 승소할 통로를 넓힌다는 것이었습니다.

Markman 교리의 본질적 오용과 배심원 권한 침해

무어 판사는 먼저 Markman을 디자인 특허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Markman이 청구해석을 판사에게 맡긴 근거는 법관이 법률 문서(written instruments)의 언어를 해석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 특허의 청구범위는 일련의 그림(a series of pictures)으로 구성됩니다. 시각적 인상을 평가하는 능력에서 판사가 배심원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고, 판사가 덧붙이는 언어적 설명(Verbal descriptions)이 오히려 도면의 전체적 미감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입니다.

② 대법원 Hana Financial (2015) 선례의 직격타

무어 수석 판사는 Teva 다음 날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선고한 상표 사건 Hana Financial을 제시했습니다. 대법원은 상표의 시각적 연속성(Tacking)이 소비자에게 동일한 인상을 주는지에 관한 사실 판단이므로 원칙적으로 배심원이 판단한다고 보았습니다. 무어 판사는 디자인 침해도 일반 관찰자의 시각적 인상에 기초한 사실 문제(Fact question)이므로, 판사가 초기에 약식판결로 종결하기보다 헌법 제7조가 보장하는 배심원 심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③ “틀린 그림 찾기(Find the Differences)” 인지 심리학적 프레임 편향

무어 판사는 어린이 잡지 Highlights의 ‘틀린 그림 찾기’ 퍼즐을 예로 들어 질문 방식이 판단을 바꾸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s)를 지적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유사한가’라고 물으면 전체적 공통점에 주목하지만, ‘명백히 상이한가(Plainly Dissimilar)’라고 물으면 세부 차이를 찾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힌지 비율이나 홈의 크기를 하나씩 떼어 비교하는 방식은 디자인이 주는 전체적인 조화와 인상(Resultant effect)을 훼손하고, 모방자가 작은 차이를 만들어 책임을 피하기 쉽게 한다는 비판입니다.

4. Amici 그룹들의 대안 프레임워크와 과학적 고발

이 논쟁에는 법정조언자(Amici Curiae)들도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판사의 직관에 의존하는 방식이 일으킬 수 있는 인지 편향을 지적하고, 보다 객관적인 대안을 제안했습니다.

① IDSPP(디자인과학공공연구소) 찰스 마우로의 ‘실증적 일반 관찰자 테스트(EOOT)’

인지과학과 인간공학 분야의 찰스 마우로(Charles Mauro) 연구팀은 소비자 실험을 통해 질문 프레임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 실증 연구의 설계: 연구팀은 Gorham의 숟가락 디자인과 Apple v. Samsung의 스마트폰 디자인을 일반 소비자 900명(n=900)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두 사례 모두 법원이 침해 또는 유사성을 인정했던 디자인입니다. 연구팀은 참가자에게 조기 약식판결에서 쓰이는 질문과 유사하게 ‘두 디자인이 명백히 다른가’라고 물었습니다.
  • 연구 결과: 숟가락 디자인에서는 72~74%, 아이폰 디자인에서는 62%가 ‘명백히 상이하다’고 응답했습니다. IDSPP는 이 결과를 ‘명백히 상이함’이라는 질문이 침해 판단을 차이점 중심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대안으로 판사의 직관 대신 대규모 소비자 조사와 다변량 분석을 활용하는 실증적 일반 관찰자 테스트(EOOT)를 제안했습니다.

② Robert Oake 변호사의 ‘객관적 다요소 프레임워크’와 Perry Saidman의 회복론

Egyptian Goddess 사건에 관여했던 로버트 오크(Robert Oake) 변호사는 판사 개인의 즉흥적 인상을 줄이기 위해 객관적인 다요소 체크리스트를 제시했습니다.

  • 첫째, 피소 제품이 선행기술보다 특허 디자인에 시각적으로 가까워졌는지를 확인하는 3자 비교(Three-Way Test)를 의무적으로 실시합니다.
  • 둘째, 시장에서 확인된 실제 혼동 증거(Evidence of actual confusion)를 판단에 반영합니다.
  • 셋째, 개별 요소를 떼어 보기보다 결합된 전체 형태가 만드는 독창적 조합을 우선 평가합니다.

디자인 특허 분야의 페리 세이드먼(Perry Saidman) 변호사는 다수의견이 Egyptian Goddess의 핵심 취지인 선행기술 비교를 뒤로 미룬 채, 판결문의 ‘충분히 구별됨’이라는 표현을 소송 초기의 상시적 방어수단(De Rigueur Defense)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비판했습니다.

5. 에필로그: 결론이 미칠 파장과 전망

Range of Motion Products v. Armaid의 전원합의체 재심리 기각은 미국 디자인 특허 소송에서 약식판결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을 더욱 키울 전망입니다.

앞으로 피고는 소송 초기부터 기능적 요소를 보호 범위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남은 장식적 차이를 근거로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을 신청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원고는 전체적 시각 인상이 사실 문제임을 강조하며 배심원 심리를 요구할 것입니다. Rolflex 판결은 이 두 전략의 대립을 한층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대의견이 제기한 헌법적 문제와 마우로 연구팀의 소비자 인지 자료는 향후 연방대법원(SCOTUS) 상고(Certiorari)에서 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상고 제기와 심리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현재로서는 CAFC 내부의 균열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디자인 특허권자에게 필요한 대응도 달라집니다. 단순히 외관의 아름다움이나 전체적 유사성만 주장해서는 부족합니다. 소송 초기부터 선행기술과의 3자 비교, 기능과 장식의 구분, 실제 혼동 자료와 실증적 소비자 조사(EOOT)를 함께 준비해야 약식판결 단계에서 침해 쟁점을 유지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Saturday, October 18, 2025

효율성 vs 실질적 정의: 미국/한국 특허법원이 추구하는 상반된 철학 분석

 

특허 전쟁의 승패는 ‘절차’에 달려있다! 미국과 한국의 특허 소송은 ‘청구항 해석’ 기준은 같지만, 심판 단계 주장 포기 시 항소심에서 기각되는 미국 법리법원에서 새로운 주장/증거 제출이 폭넓게 허용되는 한국 법리라는 근본적인 절차적 차이를 보입니다. 양국이 추구하는 법철학(효율성 vs. 실질적 정의)을 심도 있게 비교 분석합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법률 시스템은 종종 비슷해 보입니다. 특히 특허법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무에서 경험해 보니, 겉모습 아래에는 각 나라의 역사와 법철학이 담긴 근본적인 차이가 숨어 있더라고요. 마치 같은 재료로 요리하지만, 레시피와 조리 방식이 전혀 다른 두 명의 셰프와 같습니다.

특히,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특허 분쟁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당신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가, 발명가, 또는 법률 전문가라면 이 차이를 아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비즈니스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미국과 한국 특허 소송의 핵심에 숨겨진, 양국 법리의 놀라운 차이점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같은 답, 다른 풀이: 해석 기준은 같지만 주장 시점은 정반대

가장 놀라운 역설부터 시작해 볼까요? 특허의 권리 범위를 정하는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의 핵심 기준에서 미국과 한국은 사실상 같은 답에 도달했습니다. 양국 모두 특허 용어의 의미를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POSITA)’가 이해하는 객관적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실체적 질문에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셈입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그 해석에 관한 주장을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절차적 질문입니다. 이 절차적 차이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속도와 완결성을 추구하는 법률 세계와 유연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법률 세계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갈림길입니다.

 

2.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미국의 엄격한 ‘실권 원칙’

미국 특허 소송은 ‘전방 집중형(Front-Loaded)’ 구조를 가집니다. 모든 화력을 초반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 중심에는 ‘실권(Forfeiture) 원칙’이라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규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특허심판원(PTAB) 절차에서 제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은, 상급심인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서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법원이 이 엄격한 원칙을 고수하는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정책적 이유가 있습니다:

  • 전문 기관 존중: 기술 전문성을 갖춘 PTAB이 1차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기록을 형성하는 기관임을 보장합니다.
  • 사법 효율성: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금지하여 불필요한 재판 지연을 막고 분쟁을 신속하게 종결합니다.
  • ‘샌드배깅(Sandbagging)’ 방지: 당사자가 유리한 주장을 숨겨두었다가 항소심에서 기습적으로 제기하는 비겁한 전략을 차단합니다.

1.3 최근 판례 동향(2020-2025): 실무상 원칙의 적용

CAFC는 최근 5년간의 판례를 통해 실권 원칙을 단순히 선언적인 원칙이 아닌, 실제 사건에서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율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5년의 Case1Tech, LLC v. Squires 판결입니다. 이 사건에서 특허권자인 Case1Tech는 PTAB에서는 청구항의 ‘분석(analysis)’이라는 용어가 ‘소음 노출량의 계산(calculation of noise dosage)’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PTAB에서 패소하자, CAFC 항소심에서는 ‘분석’‘소음 노출량 계산을 포함하는(includes the calculation of noise dosage)’ 더 넓은 의미라고 주장을 변경했습니다.

주의하세요! (Case1Tech 판결)
CAFC는 이러한 주장 변경을 ‘실권’을 이유로 일축했습니다. PTAB에서 ‘분석은(~is) 계산이다’라고 주장했던 당사자가 항소심에서 ‘분석은 계산을 포함한다(~includes)’라고 말을 바꾸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는 주장의 미묘한 뉘앙스 변경조차도 새로운 주장으로 간주되어 실권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입니다.

또한, 2020년의 In re: Google Technology Holdings LLC 판결은 실권 원칙의 정책적 근거를 재확인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구글은 심사관의 거절결정에 불복하여 PTAB에 항소했으나, 청구항 해석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은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CAFC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특정 용어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CAFC는 구글이 PTAB에 관련 주장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전문 기관이 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지적하며, 해당 주장은 실권되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러한 판례들은 CAFC가 절차적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실권 원칙을 적극적으로 집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설령 그 결과가 항소인에게 가혹하게 작용하더라도, 절차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법원의 확고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AI나 바이오와 같이 기술 용어의 의미가 유동적이고 다의적인 첨단 기술 분야에서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분야의 특허 소송 당사자들은 초기 단계에서 모든 가능한 해석의 갈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첨단 기술 분야의 딜레마

최선의 법률적 주장이 절차적 미비로 인해 아예 심리조차 받지 못하고 기각될 위험이 상존하는 것입니다. 이는 절차적 순수성을 실체적 정확성보다 우선시하는 미국 시스템이 첨단 기술 분야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미국 시스템에서 PTAB 단계는 단순한 예선전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결승전인 셈입니다.

 

3. 정의를 위해서라면 괜찮아: 한국의 유연한 ‘실질적 정의’ 추구

미국의 엄격함과 정반대편에 한국의 유연한 ‘후방 집중형(Back-Loaded)’ 시스템이 있습니다. 한국 특허법원에서 진행되는 심결취소소송에서는 심판 단계에서 주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 제출을 매우 폭넓게 허용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특허법원의 심결취소소송이 행정소송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주된 임무는 특허청의 심판원 심결이라는 행정처분의 ‘위법성 전반’을 심사하는 것이며, 절차적 흠결을 넘어 ‘그 결론’이 실체적으로 올바른지를 다시 판단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실질적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둡니다.

💡 통계로 본 한국 법원의 역할
한국 특허법원이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하는 비율은 약 25%에 달합니다. 이는 네 건 중 한 건은 법원에 가서 결과가 뒤집힌다는 의미로, 법원이 행정기관의 결정을 얼마나 철저하게 사법적으로 통제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한국 시스템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분쟁 해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당사자들이 특허심판원 단계를 ‘예선전’처럼 가볍게 여기고 핵심 카드를 법원을 위해 아껴두는 샌드배깅과 유사한 전략을 취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4. 효율성 vs. 정확성: 법 시스템에 담긴 두 나라의 다른 철학

지금까지 살펴본 법리적 차이는 단순한 법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각국 사법 시스템이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철학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이 두 나라의 시스템을 표로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특징 미국 (US) 대한민국 (KR)
핵심 법리 실권 원칙: PTAB에서 놓친 주장은 항소심에서 제기 불가. 한번 기회는 끝. 심리 범위 확대: 법원에서 새로운 주장/증거 제출 가능. 실체적 진실을 우선.
소송 전략 전방 집중형 (Front-Loaded): 모든 카드를 PTAB에 쏟아부어야 함. ‘샌드배깅’ 불가능. 후방 집중형 (Back-Loaded): 심판원은 예선전, 법원에서 본게임을 치르는 전략 가능.
정책 목표 법적 안정성 & 효율성: 신속한 분쟁 종결과 예측 가능성 중시. 실질적 정의 & 정확성: 행정기관의 오류를 바로잡고 올바른 결론 도출을 중시.

 

5. 조화롭고 견고한 제도를 위한 정책 제언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의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양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정책적 제언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미국 실권 원칙에 대한 ‘정당한 사유(Good Cause)’ 예외 도입: 현재 엄격한 ‘예외적 상황’ 기준을 완화하여, 항소인이 PTAB에서 해당 주장을 제기하지 못한 데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입증하는 경우 CAFC가 예외적으로 새로운 청구항 해석 주장을 심리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2. CAFC의 적극적인 환송(Remand) 권한 활용: CAFC가 심리 중 잠재적으로 결정적이지만 당사자들이 주장하지 않은 청구항 해석 쟁점을 발견한 경우, 해당 쟁점에 대한 심리를 위해 사건을 PTAB으로 환송할 수 있는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3. 대한민국 특허법원의 변론 준비 절차 강화: 한국 모델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법원이 변론 준비 절차를 강화하여 당사자들이 소송 초기에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를 모두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4. 첨단 기술 분야 청구항 해석에 대한 양국 특허청의 공동 가이드라인 마련: AI, 바이오 등 신기술 분야에서 청구항 해석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USPTO와 KIPO가 협력하여 공동 가이드라인을 개발 및 발표해야 합니다.
  5. PTAB/특허심판원 절차 초기에 ‘쟁점 정리서’ 제출 의무화: 양국 모두 행정 심판 절차 초기에 당사자들이 합의 및 다툼이 있는 청구항 해석을 명시한 공동 ‘쟁점 정리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여 심리 효율을 높여야 합니다.

핵심 요약: 시스템이 추구하는 가치

미국과 한국의 특허 소송 시스템이 추구하는 상반된 가치들을 한눈에 요약합니다.

⚖️

법철학 관점의 특허 소송 비교

미국 시스템: 법적 안정성 & 효율성 중시. 전방 집중형(Front-Loaded).
한국 시스템: 실질적 정의 & 정확성 중시. 후방 집중형(Back-Loaded).
미국 절차 특징: PTAB에서 놓친 주장은 CAFC에서 실권 처리. 예측 가능하지만 가혹함.
한국 절차 특징: 특허법원에서 새로운 주장/증거 제출 가능. 유연하지만 불확실성이 김.

자주 묻는 질문 (FAQ)

Q: 미국에서 ‘실권 원칙’이 적용되는 주장은 무엇입니까?
A: PTAB(특허심판원) 절차에서 제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 특히 청구항 해석에 관한 새로운 주장은 상급심인 CAFC에서 실권 원칙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Q: 한국 특허법원이 심판원 심결을 취소하는 비율은 왜 높습니까?
A: 한국 특허법원은 심결취소소송이 행정처분의 위법성 전반을 심사하는 것이므로, 실질적 정의 실현을 위해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은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도 폭넓게 검토하기 때문입니다.
Q: 첨단 기술 특허 분쟁에서 이 법리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AI, 바이오 등 첨단 기술 용어는 의미가 유동적이어서, 미국처럼 초기에 주장이 고정되면 이후 기술 변화를 반영할 수 없는 절차적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특허 소송 시스템은 결국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결과물입니다. 예측 가능하고 신속하지만 때로는 가혹한 미국과, 정확한 결론을 위해 시간과 유연성을 허락하지만 불확실성이 긴 한국.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비즈니스에는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 법적 고지 (Legal Notice) ※
본 블로그 포스트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개별적인 법률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This blog post is for general informational purposes only and cannot substitute for legal advice on specific matters. Please be sure to consult with a professional regarding individual legal issues.

 

Wednesday, July 3, 2024

How does Rule 36 affect the development of patent law jurisprudence?

The article provides an interesting discussion on how US Inventor, Inc. (USI) has filed an amicus brief urging the U.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 (CAFC) to reconsider its use of Rule 36. USI argues that Rule 36, which allows for one-word affirmances without opinion, hinders the development of patent law, biases cases toward affirmance, and burdens future litigants by not resolving issues thoroughly.

Rule 36 permits the CAFC to affirm lower court decisions without an opinion if the decision has no precedential value and meets specific conditions, potentially impacting the fairness of judicial outcomes.

How does Rule 36 affect the development of patent law jurisprudence?

https://ipwatchdog.com/2024/07/02/us-inventor-urges-cafc-review-implementation-rule-36

[제10편] 불법행위를 변호사에게 상담하면 Privilege가 생기는가? — Crime-Fraud Exception과 보호의 한계

Attorney-Client Privilege는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불법행위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회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