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심사의 입증책임 전쟁: 미국 Prima Facie 법리 vs 한국 합리적 의심 기준
특허 심사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기술 자체의 우열이 아니라, 누가 먼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라는 절차적 문제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특허청(USPTO)의 Prima Facie 법리와 한국 특허청(KIPO)의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 기준은 바로 이 입증책임 배분 문제의 핵심에 자리한다.
이 글은 세 편의 전문 분석 자료를 통합하여, 신규성(Novelty)과 진보성(Inventive Step) 심사에서 미국과 한국이 각각 어떤 법리로 입증책임을 운용하는지를 가상 사례와 함께 해설한다. 나아가 양국 제도의 차이, 최근 발전 동향, 실무적 시사점, 그리고 입법적 제언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Ⅰ. 미국: Prima Facie 법리의 구조와 작동
1. Prima Facie란 무엇인가
Prima facie(일응의)란 라틴어로 '첫눈에 보기에(at first sight)'를 의미한다. 특허 심사 맥락에서 prima facie case of unpatentability(일응의 특허 등록요건 불만족 사건)란, 심사관이 선행기술을 근거로 출원 발명이 특허를 받을 수 없음을 일응 보여주는 논리적·증거적 구성체를 말한다. 이는 특허성 유무를 최종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관과 출원인 사이에서 증거 제출 책임(Burden of Production)을 동태적으로 주고받게 하는 절차적 도구(Procedural Tool)다.
흐름은 단순하다. ① 심사관이 prima facie case를 수립하면 → ② 입증책임이 출원인에게 전환되고 → ③ 출원인이 반박하면 → ④ 심사관이 모든 증거를 우월한 증거의 비중(Preponderance of Evidence)으로 재평가한다. 이때 증거의 우위가 완전히 팽팽한 대등 상태(Equipoise)에 이르면, 최종 설득책임을 가진 특허청이 입증에 실패한 것이므로 출원인이 특허를 받는다.
2. 신규성 거절(35 U.S.C. § 102): 단일 문헌의 완벽한 개시
신규성 거절을 위해 심사관은 단 하나의 선행기술 문헌이 청구항의 모든 구성요소(Each and Every Limitation)를 명시적(Express) 또는 내재적(Inherent)으로 개시함을 입증해야 한다. 복수 문헌의 결합은 신규성 거절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내재성(Inherency) 적용 시 단순한 개연성(Probability)이나 가능성(Possibility)으로는 부족하며, 선행기술을 재현할 때 해당 특성이 필연적으로 발생(Inevitably/Necessarily Occur)해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 A사는 특수 세라믹 코팅 기술을 미국에 출원했다. 코팅 표면의 '수접촉각 150° 이상'이라는 수치 한정이 핵심이었다. 심사관은 10년 전 공개된 단일 논문을 인용하며 "아마도 그 범위를 충족할 것(probably satisfied)"이라고 거절했다.
그러나 In re Rijckaert 판례에 따르면, 이런 추측성 거절은 적법한 prima facie case가 아니다. A사 대리인은 의견서에서 심사관이 Graham Trilogy 사실인정을 누락하고 단정적 진술(Conclusory Statement)만 했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심사관이 prima facie case를 제대로 성립시키지 못했으므로, A사는 추가적인 실험 데이터를 제출할 의무 없이 거절이유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3. 진보성 거절(35 U.S.C. § 103): 두 가지 필수 관문
자명성 거절을 구성할 때 심사관은 연방대법원 Graham v. John Deere Co.(1966) 판결이 요구하는 세 가지 사실인정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① 선행기술의 범위·내용, ② 청구항 발명과의 차이점, ③ 당해 분야 통상의 기술자(PHOSITA)의 기술 수준. 여기에 더해 복수 문헌 결합 시에는 반드시 두 가지 필수 요건(Dual-Prong)을 충족해야 한다.
- 결합의 동기(Motivation to Combine, TSM): 발명 당시 선행기술들을 청구항처럼 결합하도록 가르치거나 암시하는 구체적 이유가 존재했어야 한다. KSR 판결(2007) 이후 TSM은 유일한 기준이 아닌 7대 Rationale 중 하나로 유연화되었으나, 심사관의 명확한 추론(Explicit Reasoning) 의무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 합리적인 성공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Success, RES): '시도해볼 만하다(Obvious to Try)'는 막연한 낙관을 넘어, 결합 시도가 실제로 성공할 것이라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기대가 선행기술에 기반해야 한다.
4. Prima Facie 실패 시의 법적 효과
심사관이 단정적 진술(Conclusory Statement), 사후고찰(Hindsight Bias), 청구항 구성요소 누락, 근거 없는 상식 원용 등으로 prima facie case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면, 출원인은 반박 증거를 제출할 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의 거절결정은 PTAB(특허심판원)이나 CAFC(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위법 행정처분으로 번복된다.
B사는 AI 기반 제조 공정 제어 시스템을 출원했다. 심사관은 선행 논문 X와 특허 Y를 결합하면 "당업자에게 당연히 자명하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거절이유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심사관은 B사의 명세서를 먼저 읽은 뒤 거기서 핵심 아이디어를 역추적하여 X와 Y를 짜깁기한 것이 명백했다.
B사 대리인은 의견서에서 ① X와 Y가 서로 다른 기술분야에 속하고, ② 발명 당시 두 문헌을 결합할 아무런 암시나 동기가 없었으며, ③ 심사관의 논리는 B사 명세서를 참조한 사후고찰임을 입증했다. 결합의 동기(TSM)가 전혀 입증되지 않은 prima facie case 실패를 지적함으로써, 추가 실험 데이터 없이 거절을 극복했다.
5. 출원인의 대응 무기: Rule 132 선서서
심사관이 prima facie case를 적법하게 성립시킨 경우, 출원인은 비자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37 CFR 1.132에 따른 선서서(Declaration/Affidavit)를 제출한다. 이는 대리인의 변론(Arguments of Counsel)과 달리 위증죄 처벌 경고를 수반하는 공식 증거이며, 다음 내용을 담을 수 있다.
-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Closest Prior Art)과의 직접 비교 실험 데이터
- 예기치 못한 현저한 효과(Unexpected Results): 질적 차이(이질적 효과) 또는 양적 차이(동질의 현저한 상승)
- 실험 데이터와 청구항 간의 연계성(Nexus): 최초 명세서에 이미 암시된 효과여야 함
Ⅱ. 한국: 신규성·진보성 심사 기준과 합리적 의심 법리
1. 신규성(특허법 제29조 제1항): 단일 문헌 대비와 실질적 동일성
한국도 신규성 판단에서 단일 인용발명과 일대일 대비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한국 심사기준은 구성요소의 미미한 외형적 차이가 있더라도 새로운 효과가 발생하지 않고 기술 사상에 실질적 영향이 없는 비본질적 차이라면 '실질적으로 동일한 발명'으로 보아 신규성을 부정한다. 이를 실질적 동일성(Substantive Identity) 법리라 한다. 미국·유럽이 구성요소 완비(All Elements Rule)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신규성 부정의 범위가 실질적으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다.
특수 청구항에서는 별도의 기준이 적용된다. 파라미터 발명의 경우, 청구항의 파라미터가 공지된 물성을 측정 방식만 달리한 것에 불과하다면 신규성이 부정된다. 제조방법 기재 물건발명(Product-by-Process, PBP)의 경우, 제조방법이 최종 물건의 구조·성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물건 자체를 기준으로 신규성을 판단한다.
C사는 냉장고용 단열 발포 소재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청구항에는 '열전도율 0.018 W/m·K 이하'라는 파라미터가 기재되어 있었다. 심사관은 10년 전 논문에 유사 발포체가 공개되어 있고, 다른 측정 단위로 환산하면 본원 발명의 파라미터 범위에 속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며 거절이유를 통지했다.
C사는 의견서와 함께 자체 재현 실험 성적서를 제출하여, 동일한 조건에서 제조한 결과 논문의 발포체는 0.021 W/m·K로 청구 범위 밖에 위치함을 수치로 반증했다. 심사관의 합리적 의심을 과학적으로 해소함으로써 거절이유를 극복했다.
2. 진보성(특허법 제29조 제2항): 4단계 판단 절차
한국 심사기준상 진보성 판단은 다음 4단계로 구조화되어 있다.
- 청구항 기재 발명의 특정
- 인용발명의 특정
- 가장 가까운 주 선행발명 선택 및 차이점 명확화
- 통상의 기술자가 그 차이점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지 종합 판단 — 기술적 구성의 곤란성(Difficulty of Composition)을 중심으로, 목적의 특이성과 효과의 현저성을 참작
진보성 부정 사유로는 단순 균등물 치환(예: 전기모터→유압모터), 설계변경, 구성요소 생략, 최적 수치범위의 실험적 선택 등이 있다. 반면 현저한 상승효과(Synergy)가 입증되거나 기술적 편견(Technical Prejudice)을 극복한 경우 진보성이 인정된다.
D사는 주서기(Juicer)용 스크류 소재로 A물질과 B첨가제를 일정 비율(A:B = 3:1)로 배합한 발명을 출원했다. 심사관은 A물질과 B첨가제가 각기 개별적으로 공지되어 있으므로 결합이 용이하다고 거절했다.
D사는 실험 성적서를 통해 A와 B를 3:1로 배합했을 때 내마모성이 단순 예측치 대비 320% 향상되는 현저한 상승효과(Synergy)가 있음을 입증했다. 구성요소의 개별 공지만으로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효과가 증명되었으므로, 특허청은 진보성을 인정했다.
3. 합리적 의심 법리: 한국형 입증책임 전환 메커니즘
한국 심사기준은 파라미터 발명과 PBP 발명에서 '합리적인 의심(Reasonable Doubt)' 법리를 명문화하고 있다. 심사관이 "동일·유사한 발명이라는 합리적인 의심" 또는 "쉽게 발명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되면 거절이유를 통지할 수 있고, 이 순간 의심을 해소할 입증책임이 즉시 출원인에게 전환된다. 출원인이 의견서와 실험성적서로 의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최종 거절결정이 내려진다.
Ⅲ. 미국과 한국의 차이: 다섯 가지 결정적 분기점
| 비교 항목 | 미국 (USPTO / MPEP) | 한국 (KIPO / 심사기준) |
|---|---|---|
| 법리 명칭 | Prima Facie Case of Unpatentability | 합리적 의심 (일반 심사: 별도 명문 규정 미비) |
| 심사관의 최초 부담 | Graham 3요소 + TSM + RES를 완벽히 논증해야 prima facie 성립 | 파라미터·PBP: 합리적 의심 근거 제시로 충분. 일반 심사: 관문이 불명확 |
| 미흡한 거절의 효과 | Prima facie case 미성립 → 출원인 반박 의무 완전 면제 → 특허 허여 권리 발생 | 일반 심사에서 심사관 논리가 미흡해도 출원인에게 사실상 소명 부담이 전가되는 경향 |
| 진보성 패러다임 | 절차적 진보성: 결합동기·RES 증거 기반 판단 | 전통적 실체적 진보성 →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 이후 구성의 곤란성 우선 심리로 전환 중 |
| 대등 상태(Equipoise) 처리 | 대등 → 설득책임 부담자(특허청) 패소 → 출원인 승리 ('공성전' 법리) | 대등 → 심사관의 심증적 종합 판단 → 불이익이 출원인에게 귀속되는 경향 ('평야전' 비판) |
| 효과의 역할 | prima facie 성립 후 출원인의 사후 반박 수단 (2차적 고려사항) | 전통적으로 진보성 인정의 준요건. 최근 구성의 곤란성 인정 시 효과 심리 생략 가능 |
| 신규성 판단 범위 | All Elements Rule: 구성요소 완비 엄격 적용, 효과 불참작 | 실질적 동일성: 비본질적 차이 있으면 신규성 부정, 효과를 신규성 단계에서도 참작 |
핵심 요약: 미국은 '공성전(Siege Battle)' 모델로 심사관이 성벽을 완파해야 입성하는 구조인 반면, 한국은 전통적으로 '평야전(Open Field Battle)' 모델로 어느 한쪽이 미세하게라도 우세하면 결론이 내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최근 한국 대법원 판례의 흐름은 미국식 공성전 모델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
E사(의약)는 신규 화합물 X의 진통 효과를 청구하는 동일한 발명을 미국과 한국에 동시 출원했다. 선행기술에는 화합물 X의 구조적 유사체 Y와 Z가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미국] 심사관은 Y와 Z를 결합하면 X가 자명하다고 거절했으나, 결합의 구체적 동기(TSM)를 제시하지 못하고 "당업자에게 자명하다"는 단정적 진술만 했다. E사는 prima facie case 미성립을 주장하며 추가 실험 데이터 없이 거절이유를 극복했다.
[한국] 심사관은 유사한 논리로 거절이유를 통지했다. 한국에서는 일반 진보성 심사에서 prima facie 성립 여부를 엄격히 가리는 절차적 관문이 불명확하여, E사는 현저한 진통 효과를 실험성적서로 입증하는 실체적 대응을 추가로 제출해야 했다.
Ⅳ. 발전동향과 개정: 두 나라의 수렴과 진화
1. 한국: 사후고찰 금지 판례의 계보
한국 대법원은 사후고찰(Hindsight Bias)을 억제하는 판결들을 축적해왔다. 대법원 2006후138 판결(2007)은 사후고찰의 부당성을 최초로 명시했고, 대법원 2007후3660 판결(세탁기 사건, 2009)은 선행기술 범위와 차이점을 "증거 등 기록에 나타난 자료에 기하여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증거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대법원 2013후2873·2880 병합 판결(2016)은 선행문헌의 일부 유리한 기재만이 아니라 문헌 전체로 통상의 기술자가 인식할 수 있는 사항을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는 '전체적 인식 원칙'을 세웠다.
2. 한국: 구성의 곤란성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아픽사반 사건)이다. 이 판결을 기점으로 한국 진보성 법리는 '효과 중심의 실체적 진보성'에서 '구성의 곤란성(Difficulty of Composition) 우선 심리'로 패러다임이 이동했다. 복수 구성요소가 각각 공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진보성을 쉽게 부정하지 않고, 통상의 기술자가 출원 당시 실제로 직면했을 기술 장벽과 사전적 선택·결합의 곤란성을 실증적으로 심리한다. 구성의 곤란성이 인정되면 효과의 현저성을 별도로 심리할 필요 없이 진보성이 인정된다.
이 흐름은 최신 판례(대법원 2021후10022, 2024후10979, 2024후10641 등)에서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3. 한국: 특허법원의 절차적 진보성 모델 정착
특허법원은 2013~2014년경부터 유럽특허청(EPO)의 과제해결접근법(Problem-and-Solution Approach)을 벤치마킹하여 절차적 진보성 심리 모델을 정착시켰다. 이는 ① 주인용 선행발명(Closest Prior Art)의 우선 확정, ② 기술적 과제(Problem) 중심의 결합 용이성 판단, ③ 결합의 구체적 동기(Motivation to Combine) 입증 요구, ④ 기술상식·주지관용기술 남용 차단(서면 증거 제출 요구)으로 구성된다.
4. 인공지능 분야 심사실무가이드의 단계적 심사 체계
KIPO의 최신 분야별 심사실무가이드(2026년 개정추록)는 AI 발명의 진보성을 3단계로 심사한다. ① 과제해결원리가 선행기술과 다른가(다르면 즉시 진보성 인정), ② 학습모델의 독창성이 있는가, ③ 학습데이터의 고유한 특성으로 예측 불가능한 현저한 효과가 나타나는가. 이는 단계적 필터링으로 통상의 창작능력 범위를 정밀 구획하는 선진적 접근이다.
5. 미국: KSR 이후 7대 Rationale의 확장 운용
미국에서는 KSR International Co. v. Teleflex Inc.(2007) 판결 이후 TSM만을 결합동기의 유일 기준으로 보던 경직성이 완화되었다. MPEP § 2143이 제시하는 7대 Rationale(A~G)은 '알려진 문제에 알려진 해법', '유한한 선택지에서의 자명한 시도', '시장·디자인 유인에 의한 변형' 등 다양한 자명성 추정 근거를 포함한다. 그러나 어떤 Rationale을 적용하더라도 심사관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술적 추론 의무는 유지된다.
F사는 음성 데이터의 운율(Prosody)과 비언어 정보(웃음, 한숨 등)를 결합한 감정 인식 AI 모델을 출원했다. 심사관은 BERT 계열 언어모델이 이미 공지되어 있으므로 학습모델 자체는 새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F사는 KIPO 가이드의 3단계 심사 흐름에 따라, ① 과제해결원리(음성의 비언어 데이터 활용)가 선행기술과 다르고, ③ 고유한 학습데이터(운율·비언어 결합 데이터)로 감정 인식률이 기존 대비 47% 향상되는 현저한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KIPO는 진보성을 인정했다.
Ⅴ. 실무적 시사점
1. 출원인·특허권자를 위한 전략
미국 출원 전략: 심사관의 거절이유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prima facie case가 적법하게 성립했는지 점검한다. Graham 3요소가 명확히 서술되어 있는가? 결합의 동기(TSM)와 RES가 구체적으로 논증되어 있는가? 단정적 진술이나 사후고찰 흔적이 없는가? 이 중 하나라도 결함이 있다면, 실험 데이터 제출 없이도 의견서만으로 거절이유를 무력화할 수 있다. Rule 132 선서서는 prima facie case가 적법하게 성립된 경우에 비로소 동원하는 최후의 무기다.
한국 출원 전략: 파라미터 발명·PBP 발명을 출원할 때는 최초 명세서에 파라미터 측정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선행기술과의 파라미터 차이를 정량적으로 뒷받침하는 실험 데이터를 명세서에 선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일반 진보성 심사에서는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 이후의 '구성의 곤란성' 논리를 전면에 내세워 결합이 사전적으로 어려웠음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2. 무효심판 청구인을 위한 전략
한국 무효심판에서는 증명책임(설득책임)이 청구인에게 있으나, 실무상 '평야전' 경향 때문에 특허권자가 현저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불리해지는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청구인은 ① 주인용 선행발명의 확정, ② 구체적 결합동기(기술분야 관련성만으로는 불충분), ③ 역교시(Teaching Away) 부재 확인의 순서로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
3. 글로벌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한 교훈
미·한 양국에 동시 출원 시, 동일 발명에 대해 서로 다른 심사 패러다임이 적용됨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prima facie case 성립 여부가 승패를 결정하는 관문인 반면, 한국에서는 출원인의 선제적 효과 입증이 여전히 중요하다. 명세서 작성 단계에서 양국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이중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G사(경쟁사)는 H사의 슬로우 주서기 핵심 특허에 대해 한국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G사는 선행기술 P, Q, R을 결합하면 H사 특허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H사는 2019후10609 판결의 구성의 곤란성 법리를 원용하여, P+Q+R의 결합이 출원 당시 통상의 기술자에게 사전적으로 어려웠음을 구체적으로 논증하고, 3:1 배합 비율에서 스크류 마모율이 종래 대비 80% 감소하는 현저한 효과를 실험성적서로 제출했다. 특허심판원은 "구성의 곤란성이 인정되는 이상 효과의 현저성을 별도로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제출된 효과 데이터가 특허의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함을 인정하며 무효 청구를 기각했다.
Ⅵ. 입법 제안
양국의 법리 분석과 최근 판례 동향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입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특허법 및 심사기준에 Prima Facie 법리의 명문화
현행 한국 심사기준은 파라미터·PBP 발명에만 '합리적 의심' 법리를 명문화하고 있어, 일반 진보성 심사에서는 심사관의 거절이유 충분성을 다투는 절차적 관문이 불분명하다. 특허법 시행령 또는 심사기준 총칙에 "심사관은 진보성 거절이유 통지 시 주인용 선행발명, 결합의 구체적 동기, 통상의 기술자의 결합 시점 예측 가능성을 명시해야 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한 거절이유는 부적법하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이는 출원인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심사의 일관성을 확보한다.
진위불명(Equipoise) 상태에서의 출원인 우선 원칙 명문화
미국의 'equipoise 법리'처럼, 한국도 진보성 유무가 대등한 상황에서 설득책임을 가진 특허청이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경우 출원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원칙을 심사기준에 명시해야 한다. 이는 '평야전' 구조를 '공성전' 구조로 전환하는 핵심 개혁으로, 특허권 보호의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한다.
효과 입증 부담의 단계적 구조화: '구성의 곤란성' 우선 심리 원칙 성문화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이 선언한 '구성의 곤란성 우선 심리' 법리를 특허법 제29조 제2항의 해석 규정 또는 심사기준에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구성의 곤란성이 인정되는 경우 효과의 현저성 입증 없이도 진보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명문화하여, 효과 입증이 무제한적으로 출원인에게 전가되는 실무 관행을 해소해야 한다.
기술상식·주지관용기술 원용 시 서면 증거 제시 의무화
심사관이 선행기술의 누락된 구성을 '업계의 주지관용기술'이나 '당업자의 상식'으로 대체할 때 구체적인 서면 증거(문헌, 교과서, 전문가 의견 등)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심사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In re Lee 판결이 보여주듯, 상식 남용은 사실상 사후고찰의 위장 형태다. 증거 없는 상식 원용을 부적법한 거절이유로 명시하면 심사 품질이 향상된다.
AI·신기술 분야 심사기준의 주기적 개정 의무화 및 국제 조화
KIPO의 AI 분야 심사실무가이드는 2020년 제정 이후 2026년 개정추록까지 발전했으나, 기술 변화 속도에 비해 여전히 지체되는 경향이 있다. 심사기준 개정 주기를 2년으로 단축하고, 미국 MPEP와 EPO 심사기준과의 국제 조화(Harmonization)를 위한 공식 협의체를 설치해야 한다. 이는 글로벌 특허 출원인의 다중 관할 심사 부담을 경감하고 한국 특허청의 국제적 신뢰도를 제고한다.
마치며: 공성전의 논리가 혁신을 보호한다
특허제도의 존재 이유는 기술 혁신을 장려하고 보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심사관이 검증되지 않은 논리로 손쉽게 특허를 거절하거나, 입증 부담이 일방적으로 출원인에게 전가되는 구조에서는 이 목적이 훼손된다.
미국의 Prima Facie 법리는 심사관에게 '성벽을 완파하라'는 엄격한 절차적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출원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공성전 구조를 확립했다. 한국은 사후고찰 금지 판례의 축적, 아픽사반 사건 이후의 구성의 곤란성 패러다임, 그리고 특허법원의 절차적 심리 모델 도입을 통해 같은 방향으로 착실히 수렴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 판례 법리를 입법으로 명문화하고, 기술상식 남용 억제와 증명책임의 공정한 배분을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공정한 심사 절차는 혁신 기업이 미래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다.
참고문헌
한국 판례
- 대법원 2016. 1. 14. 선고 2013후2873, 2013후2880 병합 판결 (전체적 인식 원칙)
-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7후3660 판결 (세탁기 사건, 증거주의 원칙)
- 대법원 2007. 8. 24. 선고 2006후138 판결 (사후고찰 최초 명시)
- 특허법원 2014. 8. 22. 선고 2014허1778 판결 (결합동기 및 진보성)
미국 판례
- Graham v. John Deere Co., 383 U.S. 1 (1966)
- KSR International Co. v. Teleflex Inc., 550 U.S. 398 (2007)
- In re Rijckaert, 9 F.3d 1531 (Fed. Cir. 1993)
- In re Kahn, 441 F.3d 977 (Fed. Cir. 2006)
- In re Fine, 837 F.2d 1071 (Fed. Cir. 1988)
- In re Lee, 277 F.3d 1338 (Fed. Cir. 2002)
- In re Oetiker, 977 F.2d 1443 (Fed. Cir. 1992)
심사기준 및 가이드
- 대한민국 특허청, 『특허·실용신안 심사기준』, 2026년 3월 최종개정
- 대한민국 특허청, 『기술분야별 심사실무가이드』 (AI 분야), 2026년 1월 개정추록
- USPTO, Manual of Patent Examining Procedure (MPEP), Chapter 2100, §§ 2141–2144
학술문헌
- 정차호, "특허발명의 진보성 결여 증명책임", 『성균관법학』, 제29권 제1호, 2017
- 설민수, "한국 특허소송에서 진보성 판단방식의 변화과정", KCI 등재지, 2016
- Christopher A. Cotropia, "Predictability and Nonobviousness in Patent Law after KSR", 20 Mich. Telecomm. & Tech. L. Rev. 391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