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법리로 읽는 미국 특허 청구항 해석
— 원칙·증거·한계의 완전 해설
미국 특허 실무에서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은 침해 판단과 무효 심리의 출발점이다. 그 해석 기준을 확립한 것이 바로 연방순회항소법원(Federal Circuit) 전원합의체의 Phillips v. AWH Corp. 판결이다. 이 글은 Phillips 법리의 핵심 원칙을 정리하고, 실무상 빈번하게 생기는 오해를 바로잡으며, 법리의 내재적 한계까지 균형 있게 살핀다.
1. Phillips 판결의 핵심 법리
가. 청구범위 해석에는 기계적인 공식이 없다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는 청구범위 해석에 적용되는 "마법의 공식이나 정형화된 문답식 절차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해석 원칙 자체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전에 정해진 기계적 검토 순서나 단일한 해석 도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허마다 기술분야, 청구항 문언, 명세서의 작성 방식, 출원경과, 그리고 실제로 다투어지는 쟁점이 다르다. 따라서 법원은 각 사건에서 이용 가능한 증거 전체를 검토하여 청구항의 의미를 판단하여야 한다.
나. 청구항의 의미는 통상의 기술자(PHOSITA) 관점에서 판단한다
청구항의 용어에는 원칙적으로 해당 발명의 유효출원일 당시 통상의 기술자(person having ordinary skill in the art, PHOSITA)가 그 용어에 부여하였을 통상적이고 관습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판단 기준은 오늘날의 일반 독자나 법관의 언어감각이 아니다.
해당 특허의 유효출원일 당시, 관련 기술분야의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문헌 전체를 읽었을 때 문제 되는 청구항 문언을 어떻게 이해하였을 것인가.
청구항의 용어는 추상적으로 또는 사전적 정의만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용어가 사용된 기술적 맥락과 발명 전체의 개시내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 청구항은 명세서와 분리하여 해석할 수 없다
청구항은 명세서에 설명된 발명을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청구항 문언의 의미는 명세서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Phillips 판결은 명세서를 청구항 의미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단일한 지침(single best guide)"으로 명시하였다.
따라서 청구항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다음 사항을 확인하여야 한다.
- 발명이 해결하려는 기술적 문제
- 명세서가 설명하는 발명의 목적과 작동원리
- 청구항 용어가 명세서에서 사용된 방식
- 실시형태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기술적 관계
- 명세서가 특정 용어를 명시적으로 정의하였는지 여부
- 특정한 해석을 명백히 배제하거나 포기하였는지 여부
라. 명세서를 보되, 실시예의 한정을 청구항에 함부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
명세서는 청구항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자료이지만, 명세서에 기재된 특정 실시예(embodiment)의 구조를 청구항에 그대로 읽어 넣어서는 안 된다. 명세서와 청구항은 서로 연관되면서도 서로 다른 법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 명세서: 발명을 설명하고 통상의 기술자가 이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 청구항: 특허권자가 주장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exclusive right)의 외연을 정한다.
따라서 Phillips 법리는 두 원칙을 동시에 요구한다. 청구항을 명세서의 맥락에서 이해하되, 명세서에 기재된 실시예나 선호된 구조를 근거 없이 청구항의 제한요소로 도입하지 말라.
실무상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바로 이 경계선이다. 명세서를 이용하여 청구항 문언의 의미를 밝히는 정당한 해석과, 명세서의 실시예를 청구항에 부당하게 도입하는 한정 해석(reading limitation from specification)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Phillips 판결 자체도 이 경계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마. 청구범위 해석은 공중이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청구범위 해석은 특허권자가 소송에서 사후적으로 주장하는 주관적 의도보다, 공중이 접근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허 청구항이 특허권의 경계를 공중에게 알리는 공시기능(public notice function)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해석에 사용되는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내재증거(intrinsic evidence)
- 청구항 자체의 문언
- 다른 독립항과 종속항의 문언
- 명세서 전체
- 도면
- 출원경과(prosecution history)
외재증거(extrinsic evidence)
- 전문가 증언 및 발명자 증언
- 기술사전 및 일반사전
- 과학·기술 논문, 전문 교과서, 기술총서
- 당시의 기술표준, 관련 과학원리,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기술문헌
이들 자료는 모두 해당 특허의 유효출원일 당시 통상의 기술자가 청구항 문언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밝히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2. Phillips 법리의 한계와 비판
가. 유연성의 장점
Phillips가 기계적인 검토 순서를 부정한 것은 현실적인 접근이다. 특허마다 기술과 문언, 명세서 구조 및 출원경과가 다르므로 모든 사건에 일률적인 순서표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건에서는 청구항의 문법과 다른 청구항과의 관계가 결정적일 수 있다. 다른 사건에서는 명세서가 특정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정의했는지가 핵심일 수 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당시 기술용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전문가 증언이나 기술문헌이 중요할 수 있다. 증거의 검토 방식에 일정한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청구항을 실제 기술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데 필요하다.
나. 유연성이 초래하는 잔존 불확실성
그러나 이러한 유연성은 동시에 불확실성을 발생시킨다. Phillips는 명세서를 가장 중요한 해석자료로 인정하면서도, 실시예의 제한을 청구항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느 해석이 명세서 문맥을 충실히 반영한 것인지, 어느 해석이 실시예의 부당한 도입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어떤 사건에서는 청구항의 통상적 의미가 강조되고, 다른 사건에서는 발명의 목적이나 명세서 전체의 기술적 설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각 자료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부여할 것인지에 관한 완전히 계량화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동일한 특허에 대해서도 당사자, 전문가, 지방법원 및 항소법원이 서로 다른 해석에 이를 가능성이 남는다.
다. 예측가능성에 대한 균형적 평가
Phillips가 공중의 예측가능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Phillips는 특허 자체와 출원경과라는 공개자료에 해석의 중심을 둠으로써 특허권의 공시기능과 법적 안정성을 강화하려 하였다. 보다 정확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Phillips는 공개된 내재증거를 해석의 중심으로 삼아 예측가능성을 높이려 하였으나, 청구항 문언·명세서의 문맥·외재증거 사이의 관계를 사건별로 조정하도록 한 결과 해석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다.
Phillips 법리의 한계는 원칙이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원칙이 구체적 사건에서 서로 긴장할 때 이를 조정하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3. Phillips 법리에 관한 오해 바로잡기
가. Phillips가 부정한 것은 증거의 가치 차이가 아니라 경직된 검토 순서이다
Phillips는 모든 증거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판시하지 않았다. 판결은 증거자료 사이의 상대적 신뢰성과 중요성의 차이를 분명히 인정하였다. 내재증거는 특허권자가 선택하여 공중에게 공개한 공식적인 권리문서이므로 청구항 해석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반면 외재증거는 특허의 일부가 아니고, 소송을 위하여 선택되거나 작성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Phillips가 부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경직된 규칙이다.
반드시 청구항을 먼저 보고, 그다음 명세서, 그다음 출원경과를 검토하며, 모든 내재증거를 검토한 뒤에도 모호성이 남을 때에만 외재증거를 보아야 한다.
반면 Phillips가 유지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외재증거를 언제 검토하였는지와 관계없이, 최종적인 청구항 해석은 내재증거에 충실해야 하며 외재증거가 내재증거와 모순되는 해석을 정당화할 수 없다.
나. 외재증거는 반드시 '마지막 수단'인 것은 아니다
외재증거는 내재증거를 모두 검토한 후에도 청구항이 모호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자료가 아니다. 법원은 필요하면 청구범위 해석의 초기 단계부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해하기 위하여 외재증거를 검토할 수 있다. 특히 판단자가 출원일 당시 통상의 기술자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외재증거의 심리가 불가피하다.
- 발명의 기술적 배경
- 관련 과학원리
- 유효출원일 당시의 기술수준
- 특정 기술용어의 당시 의미
- 통상의 기술자가 갖추었을 지식
예를 들어 법관이 "average molecular weight"라는 표현을 해석하려면 수평균 분자량, 중량평균 분자량 및 점도평균 분자량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지식은 전문가 증언, 교과서 또는 기술문헌이라는 외재증거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다. 외재증거의 사용과 외재증거의 우월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외재증거를 먼저 또는 초기에 검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Phillips 법리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외재증거를 검토한 시점이 아니라, 최종 해석에서 외재증거에 부여한 법적 비중이다.
외재증거를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 기술용어의 일반적 의미를 설명한다.
- 통상의 기술자의 배경지식을 밝힌다.
- 명세서의 기술적 설명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 유효출원일 당시의 기술수준을 확립한다.
- 복수의 가능한 의미가 존재했는지를 밝힌다.
- 명세서에 설명된 실험이나 도면의 기술적 의미를 설명한다.
반면 외재증거를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 명세서가 명확하게 부여한 의미를 변경한다.
- 출원경과에서 명백히 포기한 범위를 복원한다.
- 청구항 문언과 모순되는 제한을 새로 만든다.
- 특허문헌 전체와 배치되는 사전적 정의를 채택한다.
- 전문가의 사후적 의견만으로 공개된 특허문헌의 의미를 재작성한다.
라. 내재증거의 우선성은 '시간적 선후'가 아니라 '규범적 우위'를 뜻한다
Phillips 법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내재증거의 우선성은 외재증거를 나중에만 보아야 한다는 절차적 순서의 원칙이 아니라, 최종적인 청구범위 해석이 내재증거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규범적·증거가치상의 원칙이다.
따라서 실무자는 외재증거를 초기에 검토하여 기술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특허의 청구항, 명세서 및 출원경과와 대조하여야 하며, 내재증거와 충돌하는 외재증거의 의미를 최종적인 청구항 해석으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
4. 종합 정리
Phillips 판결의 청구범위 해석 법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청구항의 의미는 유효출원일 당시 통상의 기술자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 청구항 문언은 명세서 전체와 발명의 기술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 명세서는 청구항 의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이지만, 실시예의 제한을 근거 없이 청구항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
- 청구항, 명세서 및 출원경과라는 내재증거가 최종 해석을 통제한다.
- 외재증거는 기술적 배경과 당시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언제든 활용될 수 있다.
- 다만 외재증거는 내재증거보다 일반적으로 신뢰성과 법적 비중이 낮고, 내재증거와 모순되는 해석을 정당화할 수 없다.
- Phillips가 부정한 것은 증거의 가치 차이가 아니라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경직된 검토 순서이다.
- Phillips는 공중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는 법리이지만, 자료 간 긴장을 사건별로 조정하도록 한 결과 해석상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다.
Phillips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청구항의 의미는 유효출원일 당시 통상의 기술자가 공개된 특허문헌 전체를 읽고 이해했을 객관적 의미이며, 외재증거는 그 기술적 이해를 보조할 수 있지만 특허문헌 자체가 부여하는 의미를 대체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참고문헌 및 해설영상
참고문헌
Joshua D. Sarnoff & Edward D. Manzo, "An Introduction to, Premises of, and Problems with Patent Claim Construction," in Claim Construction in the Federal Circuit (K. Noonan, A. Kelly & E. Manzo eds.,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