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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5, 2026

특허소송은 '재판부 룰렛'이 되어서는 안 된다. — 구체적 법리,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혁신투자의 전제인 이유

구체적 법리,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혁신투자의 전제인 이유

특허소송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 법원 복도의 정의의 여신상

특허소송은 이미 발생한 침해에 관하여 사후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특허판결은 아직 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기업의 연구개발 방향, 경쟁사의 회피설계 범위, 투자자의 기업가치 평가, 라이선스 협상의 가격, 기술금융의 담보평가, 나아가 특정 산업의 기술표준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허판례가 제시하는 법리는 눈앞의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장 참여자가 미래의 행위를 설계하고 위험을 계산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특허소송은 "재판부 룰렛(panel roulette)"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허소송의 결과는 분쟁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처음 해당 발명을 적용하거나 이를 회피설계하려는 시점에 상당한 수준의 예측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계산 가능한 위험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게임에 기업의 자본과 연구개발 역량을 걸 수는 없다. 그것은 혁신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결과에 운명을 맡기는 투기에 가깝다.

여기서 "재판부 룰렛"은 특정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비난이 아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청구항과 선행기술을 놓고도 어느 재판부가 사건을 담당하는지에 따라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 균등침해(doctrine of equivalents), 진보성(inventive step) 또는 손해액 판단의 출발점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가리킨다. 그러한 위험이 커지면 특허법은 기업의 행위를 미리 안내하는 규범이 아니라, 분쟁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를 확정하는 사후적 장치로 축소된다. 법이 분쟁을 해결하기는 하지만 분쟁을 예방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1. 특허권의 경계와 '명백히 불합리한 문언해석'

특허권은 토지처럼 물리적 경계가 보이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가 일정 기간 부여한 무형의 배타권이며, 그 경계는 원칙적으로 청구범위(claims)라는 언어로 인식된다. 우리 특허법 제97조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단순한 문언해석 규칙이 아니라 특허권자가 어디까지 배타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를 제3자에게 알리는 공시원칙(notice function)이며, 같은 법 제42조는 청구범위 기재방식을 규율함으로써 이 공시기능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대법원도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힌 사항에 따라 확정되고,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을 참작하더라도 청구범위를 임의로 제한하거나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반복하여 선언하고 있다.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은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은 그 문언의 일반적인 의미를 기초로 하면서도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여 그 문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술적 의의를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의 기재에 따라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정식 법리를 정립한 선도 판례로, 이후 판결들이 반복 인용하는 기준판례다.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21다217011 판결 역시 같은 원칙을 확인하면서, 특히 무효심판 절차에서 이미 확정된 청구항 해석은 침해소송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다만 이러한 문언 중심의 해석에도 예외가 있다.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3후11357 판결은 청구범위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명세서의 다른 기재 등에 비추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는 그 권리범위를 제한하여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제한해석이 가능하다는 추상적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판결의 가치는 무엇이 어떠한 경우에 "명백히 불합리한 문언해석"이 되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이 사건에서 청구항의 '세정수단'이라는 문언만 놓고 보면, 그 안에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저장탱크를 세정하는 수단도 포함될 수 있었다. '세정수단'은 문언상 특정한 세정물질이나 생성방식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않았다.

첫째, 명세서의 발명에 관한 설명에는 여과된 물에 세정물질 또는 살균물질을 희석하여 저장탱크를 세정하는 방식만 기재되어 있었다. 반면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는 구성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개시하거나 시사하는 내용도 없었다. 전기분해 방식까지 권리범위에 포함하는 해석은 명세서의 뒷받침과 괴리되어 있었다.

둘째, 특허권자는 원출원 발명의 심사과정에서 거절이유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정수단'에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세정하는 수단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 후 원출원을 기초로 여러 단계의 분할출원을 거쳐 이 사건 특허발명이 출원되었다. 대법원은 원출원과 후속 분할출원의 출원인이 동일하고, 후속 분할출원이 원출원의 최초 명세서 또는 도면에 기재된 사항의 범위 안에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원출원의 출원경과를 후속 분할출원의 청구범위 해석에도 참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 그 결과 대법원은 특허권자가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세정하는 수단'을 이 사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서도 의식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균등론의 출원경과금반언(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을 직접 적용한 판결이라기보다는, 원출원의 심사과정에서 이루어진 의견진술을 후속 분할출원의 청구범위 해석에 반영한 사례다. 그러나 출원인이 거절이유를 극복하기 위해 배제한 기술을 후속 분할출원의 넓은 문언을 이용해 다시 권리범위로 회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출원금반언 또는 의식적 제외(conscious exclusion)의 법리가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단과정을 거쳤다.

  1. '세정수단'이라는 문언만 보면 전기분해 방식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2. 그러나 명세서에는 희석방식만 기재되어 있고 전기분해 방식은 개시되거나 시사되지 않았다.
  3. 출원인은 원출원 심사과정에서 전기분해 방식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4. 원출원과 후속 분할출원 사이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고려하면 그 출원경과는 후속 분할출원에도 참작할 수 있다.
  5. 전기분해 방식까지 포함하는 문언해석은 명세서의 뒷받침 및 출원인의 객관적으로 표시된 의사와 충돌한다.
  6. '세정수단'을 문언 그대로 넓게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불합리하므로, 명세서에 기재된 희석방식으로 제한하여 해석해야 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예외가 원칙을 삼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단순히 "제반 사정상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문언의 가능한 의미, 명세서의 뒷받침, 원출원의 출원경과, 의식적 제외, 분할출원의 연속성 및 제3자의 법적 안정성을 순차적으로 검토하였다. 제3자는 이 판단과정을 따라가면서 어떤 경우에 문언 중심의 원칙이 유지되고, 어떤 경우에 제한해석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예상할 수 있다.

종속항과의 관계에 관한 판단도 중요하다. '세정수단'을 위와 같이 제한하면 독립항의 권리범위가 세정수단을 구체적으로 한정한 종속항의 권리범위와 실질적으로 동일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종속항과 권리범위가 겹친다는 형식적 이유보다 명세서의 기재, 출원인의 객관적 의사 및 제3자의 신뢰보호를 우선하였다. 즉 종속항이 존재한다는 사정이 언제나 독립항의 넓은 해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하였다.

다만 이 판결을 모든 분할출원에 일반화하여 원출원의 의견진술이 무조건 후속 분할출원을 구속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원출원의 의견이 어떤 청구항과 거절이유를 대상으로 하였는지, 후속 분할출원과 기술적·절차적으로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는지, 그 의견이 특정 기술을 명확히 배제한 것인지가 개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과 한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예외가 원칙을 삼키지 않는다.

2. 구체적 법리는 결론이 아니라 판단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legal certainty)은 판례를 영원히 변경하지 말라는 요구가 아니다. 기술과 산업구조가 변하면 판례도 수정될 수 있다. 다만 그 변화는 이유가 설명되고, 적용 범위가 특정되며, 기존 법리를 신뢰하여 행동한 당사자의 예측을 불필요하게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관계가 다르면 판결의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사실의 차이 때문에 결론이 달라진 것인지, 판단자가 추상적인 법률개념에 서로 다른 내용을 투입해서 달라진 것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판결 이유에서는 아래 사항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 판단의 출발점이 된 법률문언과 원칙은 무엇인가.
  • 어떤 사실이 법적 결론을 좌우하는 핵심 사실인가.
  • 각 사실을 인정한 증거와 기술적 근거는 무엇인가.
  • 고려요소 사이의 우선순위와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 어느 요소가 필요조건이고 어느 요소가 보강요소인가.
  • 원칙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인정한 구체적 이유는 무엇인가.
  • 반대 방향의 사정이 존재함에도 결론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선행판례와 결론이 다르다면 구별되는 사실은 무엇인가.
  • 같은 판단방법을 다음 사건에 적용할 때 결론이 달라지는 임계점은 어디인가.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는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합판단이 필요한 사건일수록 어떠한 요소를 먼저 검토해야 하는지, 어떤 요소가 결론을 지배하는지, 어떤 반대사정이 있으면 잠정적 결론이 번복되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고려요소는 많지만 요소 사이의 관계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판단기준의 구체화가 아니라 재량의 목록화에 그친다.

구체적 법리란 이러한 추상화 수준을 통제하는 공개된 판단방법이다. 즉 누구나 따라가면서 판단해 나가면 예측 가능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여기서 '알고리즘'은 법관의 판단을 수학적 공식이나 기계적 계산으로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적 판단에는 사실인정, 증거평가, 기술적 가치판단이 불가피하다. 이 표현의 핵심은 입력해야 할 사실, 검토 순서, 요소 사이의 관계 및 잠정적 결론이 번복되는 조건이 외부에 공개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같은 사실과 증거를 입력했을 때 재판부에 따라 판단구조 자체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다.

3. 예측가능성은 위험을 계산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법적 예측가능성(legal predictability)은 소송의 승패를 100% 확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고, 새로운 기술은 기존 법률개념의 경계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전문가 의견과 증거의 신빙성도 사건마다 다르다. 완전한 확실성은 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판례는 적어도 결과의 합리적인 범위와 방향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특허문헌과 선행판례를 검토한 후 "이 설계는 문언침해 가능성이 높다", "이 변경은 균등침해 위험이 있으나 출원경과상 제외되었다고 볼 근거가 강하다", "이 선행기술 결합에는 구체적인 결합동기가 부족하다"는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가능성이란 확실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위험을 식별하고 그 위험에 확률과 가격을 부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판례가 제공하는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예측가능성이 모호하여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기업은 위험의 확률과 규모를 산정할 수 없다. 침해 가능성과 예상손실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어야 기업은 라이선스, 회피설계(design-around), 무효도전, 소송, 시장철수 중 어느 방안이 경제적으로 타당한지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유사한 사실관계에서도 담당 재판부에 따라 침해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인식되면 기대손실의 계산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기술을 선택하기보다 불확실한 특허위험을 피하기 위해 시장 진입을 포기하거나, 실제 위험을 초과하는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회피설계를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가비용은 특허법의 불확실성이 시장에 부과하는 일종의 '혁신세(innovation tax)'다.

4. 특허 거래와 수익화에서도 예측가능성은 핵심 자산이다

예측가능성은 실시기업이나 피고에게만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특허권자에게도 동일하게, 때로는 더욱 절실하다. 특허권의 권리범위, 유효성 및 침해 인정 가능성이 불투명하면 특허가 장래 창출할 현금흐름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없다. 특허의 담보가치, 라이선스 요율, 양도대금, 기술이전 가격 및 기업가치 평가도 모두 불안정해진다.

특허의 경제적 가치는 등록증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특허가 어느 제품과 기술을 포섭하는지, 경쟁자가 얼마나 쉽게 회피설계할 수 있는지, 무효도전에 견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침해가 발생했을 때 금지명령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결합하여 결정된다. 결국 특허의 가치는 미래의 법적 집행 가능성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결과다. 이때 판례의 예측가능성이 낮으면 투자자와 거래상대방은 추가적인 불확실성 할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기술적 기여를 가진 특허라도 권리범위 해석과 균등침해 기준이 안정된 분야의 특허는 예상 로열티 수입과 집행 가능성을 비교적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재판부에 따라 청구항 해석이나 진보성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분야의 특허는 잠재적 수익이 아무리 커도 그 실현 가능성을 평가하기 어렵다. 거래상대방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하여 라이선스 요율이나 양수대금을 낮추거나, 상당액을 조건부 지급으로 돌리거나, 거래 자체를 포기한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대학, 연구기관 및 개인 발명가에게 이러한 할인은 치명적이다. 대기업은 다수의 특허를 포트폴리오로 묶어 개별 특허의 불확실성을 분산할 수 있지만, 핵심특허 한두 건에 기업가치가 집중된 스타트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핵심특허의 권리범위가 예측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기술의 우수성보다 소송 결과의 불확실성을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 그 결과 강한 특허도 약한 가격에 거래되고, 특허권자는 정당한 가치보다 낮은 조건으로 기술이전이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압박받을 수 있다.

특허담보 금융에서도 사정은 같다. 금융기관이 특허권을 담보로 대출하려면 채무불이행 시 해당 특허를 매각하거나 라이선스하여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특허의 유효성과 권리범위가 법원의 사후판단 전에는 사실상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담보가치 산정이 어려워진다. 금융기관은 담보인정비율을 크게 낮추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한다. 판례의 불확실성은 기술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이선스 협상에서도 예측가능성은 협상력의 기초다. 법적 기준이 명확하면 당사자는 예상 승소 가능성, 예상 손해액, 소송비용 및 사업중단 위험을 토대로 합리적인 협상범위를 도출할 수 있다. 반대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 전에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다면, 라이선스 가격은 기술의 객관적 기여보다 당사자의 자금력, 소송 지속능력 및 위험감수 성향에 좌우된다. 그렇게 되면 특허거래는 기술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이 아니라 소송 수행능력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예측가능성은 특허권을 약화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유효하고 침해된 특허가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기반이다. 명확한 법리는 약한 특허가 과대평가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강한 특허가 단순한 불확실성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것도 방지한다. 예측가능성은 특허권자와 실시자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을 선택하는 원리가 아니라, 특허자산을 거래 가능하고 금융 가능한 자산으로 만드는 시장 인프라다.

결론

특허판례의 품질은 판결이 선고된 시점의 논리적 완결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판결이 선고되기 수년 전, 연구개발자와 기업이 특허문헌을 읽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판결이 과거의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하면서 미래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특허법은 혁신의 기반시설이 된다. 반대로 판결문을 읽고도 다음 사건의 위험을 평가할 수 없다면 특허법은 기업 활동에 부과되는 불확실성의 원천이 된다.

2023후11357 판결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대법원은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는 제한해석할 수 있다'는 추상적 명제에 머물지 않고, 명세서의 뒷받침 부족, 원출원의 의견진술, 분할출원의 연속성, 특정 기술의 의식적 제외 및 제3자의 법적 안정성을 순서대로 검토하였다. 이 판결은 제한해석이라는 예외가 자의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그 판단경로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허제도가 약속해야 하는 최소한은 특허권자의 무조건적인 승리도, 실시자의 완전한 안전도 아니다. 공개된 청구항과 축적된 판례를 성실하게 검토한 사람이 자신의 선택이 초래할 법률효과를 상당한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어야 기업은 발명을 공개하고, 경쟁자는 합법적으로 회피설계하며, 투자자는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금융기관은 특허를 담보로 인정하며, 시장은 혁신에 자본을 배분한다.

"특허소송은 재판부 룰렛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단순히 판결의 통일성을 요구하는 구호가 아니다. 이는 특허권의 공시기능, 법적 안정성, 회피설계의 자유, 특허 거래와 금융, 혁신투자의 지속 가능성을 하나로 연결하는 특허법의 핵심 원리다. 법원이 기업보다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이 스스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재현 가능한 판단의 좌표를 제공하는 것이 법의 책무라는 뜻이다.

Thursday, July 30, 2026

청구범위 해석의 일원론과 이원론 — 대한민국 특허 사법 실무의 정밀한 균형

법률 도서관 책상 위에 놓인 정밀한 강철 저울 — 한쪽 접시에는 특허 명세서, 반대쪽에는 돋보기P
청구범위 해석의 두 국면: 특허성 판단과 침해 판단의 균형

특허권의 보호범위를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 이 물음은 특허 실무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과제다. 특허법 제97조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진다"고 명시하지만, 같은 청구범위 문언이라도 등록·무효 (특허요건, Patent Requirements) 판단의 국면에 놓이느냐, 침해·권리범위확인 (침해요건, Infringement Requirements) 판단의 국면에 놓이느냐에 따라 해석의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 두 국면에서 청구범위를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일원론(一元論, Monism)을 공식 기조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법 실무는 일원론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과 제3자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참작 및 통제 법리(제한해석 금지, 균등론, 출원경과 금반언 등)를 국면별로 유연하고 정교하게 활용하여, 그 결과가 마치 실질적 이원성(實質的 二元性, Practical Dualism)을 함께 구현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 글은 최신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그 정밀한 균형 구조를 분석한다.

다만 한 가지를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청구범위 해석 법리는 아직 하나의 완결된 체계로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원칙과 원칙 사이의 경계, 참작 해석과 제한 해석의 구분선, 기능식 청구항과 용도발명에 대한 구체적 취급 기준 등 여러 쟁점에서 판례가 사안마다 달리 나타나고 있고, 학설도 수렴보다는 논쟁의 국면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법리는 추상적 선언에서 실제 분쟁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기준으로 고도화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이 글이 소개하는 판례와 법리도 그 진행 중인 여정의 한 단면이며, 독자는 이를 확정된 결론이 아니라 진화 중인 기준으로 읽어주기를 권한다.


1. 청구범위 해석의 3대 원칙

대법원이 정립한 특허 청구범위 해석의 기본 틀은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된다.

  • 제1원칙 — 청구범위 문언 우선(Claim Language Priority):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으며, 문언이 명확한 경우에는 이를 최우선적으로 적용한다.
  • 제2원칙 — 발명의 상세한 설명 참작(Reference to Detailed Description): 과거에는 청구범위 기재가 불명확한 경우에만 명세서를 참작할 수 있다는 소극적 해석 기조가 일부 존재하였다. 그러나 현대 사법 실무는 청구범위의 용어가 발명의 설명 및 도면을 유기적으로 함께 읽어야만 정확한 기술적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원칙적 상시 참작의 태도를 취한다. 참작은 다의적 표현에만 적용되는 보충적 수단이 아니라 청구범위 해석의 기본 방법론으로 자리잡았다 (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6후2240 판결).
  • 제3원칙 — 제한·확장 금지(Prohibition of Limitation/Extension): 발명의 설명 등을 참작하더라도, 청구범위에 없는 제한 요소를 덧붙이거나 권리범위를 임의로 좁히거나 넓히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후2377 판결).

여기서 핵심 구분은 '참작 해석(Interpretation)'과 '제한 해석(Limitation)'의 경계다. 참작 해석은 청구범위에 기재된 다의적·추상적 용어의 의미를 명세서 문맥에 비추어 구체화하는 정당한 해석이다. 반면 제한 해석은 청구범위에 기재되지 않은 독립적 기술 요소를 발명의 상세한 설명 중 특정 실시예에서 끌어들여 권리범위를 축소하는, 금지된 해석 방식이다.

해석의 전제 조건 — 청구항 기재불비(Definiteness, 명확성 요건)

위 3대 원칙은 청구항이 일정한 명확성을 갖추고 있는 경우를 전제로 작동한다. 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2호는 청구항이 발명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기재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위반한 불명확 청구항은 등록거절 및 무효 사유가 된다.

만약 청구항의 기재가 지나치게 모호하여, 통상의 기술자(PHOSITA)가 발명의 설명·도면· 기술상식을 아무리 참작하더라도 구체적인 구성을 특정할 수 없다면, 이는 참작의 한계를 넘어선 기재불비(記載不備) 상태에 해당한다. 법원은 명세서 참작을 통해 불명확한 청구항을 사후에 구제하려는 해석을 경계하며, 공시기능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기재불비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무효화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35 U.S.C. §112(b)가 명확성 요건(Definiteness Requirement)을 규정하며, 연방대법원은 Nautilus, Inc. v. Biosig Instruments, Inc. (134 S. Ct. 2120, 2014)에서 청구범위가 통상의 기술자에게 발명의 범위에 관해 '합리적인 확실성 (Reasonable Certainty)'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한국 특허법상 기재불비 요건의 적용 기준도 이와 유사하게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시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2. 일원론의 대원칙과 이원론의 실질적 조화

대법원은 특허 등록·무효 판단과 침해·권리범위확인 판단 시 청구범위를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일원론을 기본 입장으로 선언하고 있다.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 기재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 원칙이고… 기재만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명세서의 다른 기재에 의하여 제한 해석할 수 없다."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후2377 판결;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

그러나 실제 분쟁 해결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법 실무에서는 각 절차 국면의 제도적 목적에 따라 이원적 운용이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사법 절차 국면 핵심 가치 해석 방향 적용 법리
거절·등록 무효
(특허 요건)
부당 독점 방지
/ 실체 규명
가장 넓은 합리적 해석 상세한 설명 적극 참작
→ 진정한 신규성·진보성만 인정
침해소송·권리범위확인
(침해 요건)
법적 안정성
/ 공시기능
문언 기준 원칙 유지
+ 예외적 제한 해석
제한해석 금지 원칙
+ 균등론(DOE)으로 구제

① 거절 및 등록 무효 단계 — 실체 규명과 독점 방지

특허청과 법원은 부당하고 광범위한 독점권이 설정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공익적 책무를 진다. 이 국면에서는 청구항의 문언이 가지는 가장 넓은 합리적 의미로 해석하여 선행기술과의 저촉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한다.

특히 기능, 효과, 성질 등으로 발명을 특정하는 기재가 포함된 경우, 그러한 기능 등을 가지는 모든 발명을 포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7후4977 판결). 이를 통해 근거 없는 독점을 사전에 걸러내는 실체적 심사 기능이 발휘된다.

한편 진보성(Inventive Step / Non-obviousness) 판단 단계에서는 사후적 고찰 금지(Prohibition of Hindsight Bias) 원칙이 중요하게 기능한다. 대법원은 이동통신 비상호출 처리장치에 관한 특허(등록번호 제379946호)의 무효 심판 사건에서, 비교 대상 발명의 '무음착신' 구성으로부터 이 사건 특허의 '도청모드' 구성을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다고 한 원심 판단이 특허발명의 명세서에 개시된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 사후적 판단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하여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 2007. 8. 24. 선고 2006후138 판결). 이 원칙은 거절·무효 국면에서도 해석의 출발점이 해당 명세서를 아직 알지 못하는 통상의 기술자(PHOSITA)의 출원 당시 시각이어야 함을 재확인한 것이다.

② 침해소송 및 권리범위확인 단계 — 법적 안정성과 형평의 조화

제3자에게 이미 공개된 등록 청구범위는 시장 경쟁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특허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예측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법관이 명세서를 근거로 청구항을 임의로 좁게 다시 쓰는 행위는 제한해석 금지 원칙에 의해 강하게 통제된다.

다만 두 가지 예외적 법리가 이 원칙을 보완한다.

  • 소극적 제한 — 예외적 제한 해석: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명세서의 다른 기재에 비추어 명백히 불합리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출원경과(Prosecution History)와 제3자의 신뢰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권리범위를 좁히는 해석이 허용된다(대법원 2001. 7. 11. 선고 2001후2856 판결). 명백히 불합리한 사정의 대표적인 예로는 ① 상세한 설명에 의한 미뒷받침, ② 출원경과에서의 의식적 제외(Conscious Exclusion)가 있다.
  • 적극적 구제 —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 청구범위 문언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과제해결원리가 실질적으로 동일하고 치환이 자명한 피고의 침해 회피 행위에 대해서는 균등론을 적용하여 사법적 정의와 형평을 실현한다 (대법원 2000. 7. 28. 선고 97후2200 판결 — 균등론 명시적 정립).

3. 기능식 청구항의 해석 — 주요 판례

발명의 필수 구성요소를 구체적인 물리적 구조 대신 '기능, 효과, 성질' 등 기능적 표현으로 나타낸 기능식 청구항(Functional Claim)은 넓은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법 실무에서는 무제한적인 권리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명세서에 기재된 구체적 구조와 동등한 범위로 권리를 통제한다.

완충기 사건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7후883 판결)

휠 발전기의 '완충기'라는 기능적 용어가 쟁점이 된 사안이다. 청구범위 자체에는 구체적 구조에 관한 한정이 없었으나, 대법원은 해당 용어만으로는 구체적 구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보고 발명의 설명 및 도면을 참작하여 '탄력성이 양호한 완충날개들과 완충공간이 구비된 구조 및 그와 유사한 구조'로 권리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하였다. 그 결과 해당 구조를 갖추지 않은 피고 제품을 비침해로 판시하였다.

서오텔레콤 사건 (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8후10350 판결)

이동통신 비상호출 처리장치에 관한 특허(등록번호 제379946호)의 권리범위확인 사건에서, 대법원은 청구범위 제3항의 구성요소인 '비상연락처로부터의 비상발신'이라는 기능적 표현의 기술적 의의를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확정하였다.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의 해석은 문언의 일반적인 의미 내용을 기초로 하면서도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을 참작하여 문언에 의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기술적 의의를 고찰한 다음 객관적·합리적으로 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8후10350 판결 (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4후2788 판결 인용)

이 원칙에 따라 대법원은 '비상연락처로부터의 비상발신'을 "비상연락처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통화채널을 형성하기 위한 발신행위 또는 비상연락처가 주체로 된 새로운 호접속 요구"로 해석하고,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확인하였다. 아울러 균등론 적용 여부도 함께 검토하였는데, 확인대상발명(피고 실시제품)은 위난자(遭難者)의 단말기가 주체가 되어 비상연락처의 응답에 의해 도청모드를 실행하는 방식이어서 특허발명의 과제해결원리(비상연락처 주도의 호접속)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하여 균등침해도 부정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채택한 해석 방식을 실질적으로 살펴보면, 발명의 설명을 참작하여 기술적 의의를 고찰하라는 원칙이 사실상 발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세서에서 추적한 뒤 청구범위를 그에 맞추어 한정하는 방향성을 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논쟁은 미국에서도 전개된 바 있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CAFC,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은 발명의 본질 (Essence of the Invention)이나 명세서 내 특정 실시예를 기준으로 청구범위를 좁히는 해석 방식이 결국 청구범위 문언에 충실한 해석에서 벗어나, 시장 참여자들이 권리범위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청구범위의 공시기능(Public Notice Function)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Phillips v. AWH Corp., 415 F.3d 1303, Fed. Cir. 2005 en banc). 청구범위 문언이 가지는 객관적 경계가 해석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하면 제3자가 자신의 기술 개발이 특허 침해인지 여부를 미리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한·미 양국 공통의 과제다.

세정수단 사건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3후11340 판결)

정수기 자가 세정을 위한 '세정수단'이 쟁점이 된 최신 판결이다. 대법원은 기능적 표현의 침해 국면 해석 원칙을 명시하는 한편, 출원경과에서의 의식적 제외를 핵심 제한 요소로 정면에서 도입하였다.

"청구범위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불합리할 때에는 출원된 기술사상의 내용, 명세서의 다른 기재, 출원인의 의사, 제3자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두루 참작하여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제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3후11340 판결

법원은 출원인이 심사 단계에서 '전기분해 방식'을 세정수단에서 명시적·의식적으로 배제하는 주장을 한 사실을 근거로, 전기분해로 살균물질을 생성하는 피고 제품은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4. 특수 유형 발명의 청구범위 해석

제조방법 기재 물건발명(PBP 청구항, Product-by-Process Claim) — 일원론 아래의 실질적 예외

물건의 청구범위에 제조방법을 결합하여 청구하는 PBP 청구항 (Product-by-Process Claim)의 해석을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대법원은 2015. 1. 22. 선고 2011후927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특허 등록·유무효 판단 단계에서는 제조방법의 기재에 얽매이지 않고 최종 생산된 '물건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물건자체설(物件自體說)을 선언하고, 진정·부진정 PBP 구분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이 기조는 침해소송 단계(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3후1726 판결)에도 일원론적 원칙으로 유지되었다. 다만 동 판결은 '명백히 불합리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 경우에 한하여 제조방법 범위 내로 권리를 좁히는 제법한정설 (Product-by-Process Limitation)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일원론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충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후11059 판결에서는 제법한정설의 단서 법리를 별도로 설시하지 않아, 일원설 유지 여부에 관한 실무적 논의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용도발명(Purpose-Bound Claim, 용도 한정 물건 발명)의 청구범위 해석

이미 알려진 물건이나 물질에서 새로운 성질이나 용도를 발견하여 권리화하는 용도발명(用途發明)은 특수한 청구 형태를 갖는다. 예컨대 'A 성분을 포함하는 피부 미백용 화장품 조성물'과 같이, 물건 자체는 공지일 수 있더라도 특정 '용도'를 한정한 기재가 신규성(Novelty) 및 진보성(Inventive Step)의 핵심 판단 요소가 된다. 이때 청구범위의 용도 한정은 단순한 의도 표시가 아니라 발명을 특정하는 구성요소로서의 법적 의미를 가진다.

침해 판단 단계에서는 용도를 인식하지 않은 채 물건만을 생산·판매하는 경우 직접침해 (Direct Infringement) 성립 여부가 문제된다. 용도발명의 대상이 전용물(專用物)이 아닌 경우 직접침해 성립이 어렵고, 간접침해(Indirect Infringement, 특허법 제127조) 규정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간접침해 성립 요건이 엄격하여 보호에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계·실무계에서는 주관적 인식요건을 부가한 유도침해 (Induced Infringement) 유형의 명문화, 또는 비전용물에 대한 간접침해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의 특허법 제127조 개정이 입법적 과제로 제언된다. 또한 용도발명의 방법적 성격에 주목하여 물건 발명에서 방법 발명으로의 카테고리 변경을 보다 탄력적으로 허용하자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5. 출원인의 의사 참작 — 내심의 의사와 객관적으로 표출된 의사

출원인의 주관적 의사를 청구범위 해석에 반영할지를 두고, 참작해야 한다는 긍정설(중심한정주의, Central Claiming)과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와 무관하게 청구범위 문언의 객관적 의미에 따라야 한다는 부정설(주변한정주의, Peripheral Claiming)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법원의 입장은 분명하다 — 출원인의 내밀한 '내심의 의사'는 철저히 배제하되, 특허청 심사 과정에서 서류를 통해 객관적으로 표출된 의사, 즉 출원경과(Prosecution History)는 특허권 남용 방지와 형평의 원칙상 적극적으로 참작한다.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특허청구범위에 기재된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파악하여 확정하는 것이지 특허출원인의 내심의 의사를 탐구하여 확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0다75839 판결 등

의식적 제외(출원경과 금반언)의 적용 기준

보정서나 의견서 등 공적 기록에 명시적으로 나타난 출원인의 의사는 '의식적 제외(Conscious Exclusion / Prosecution History Estoppel)'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특허발명의 출원과정에서 어떤 구성이 청구범위에서 의식적으로 제외된 것인지는 명세서뿐만 아니라 출원에서부터 특허될 때까지 특허청 심사관이 제시한 견해 및 특허출원인이 제출한 보정서와 의견서 등에 나타난 특허출원인의 의도, 보정이유 등을 참작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4다51771 판결

다파글리플로진 사건 — 출원인의 진정한 의사를 추적한 기념비적 판례

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후10210 판결(다파글리플로진 사건)은 출원인의 진정한 의사를 추적하여 금반언 적용을 배제한 주목할 만한 사례다.

이 사건에서 특허권자는 심사 과정에서 청구범위 끝부분의 '프로드러그 에스테르'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보정을 하였고, 피고는 침해소송에서 이를 권리 포기 — 즉 의식적 제외 — 라고 항변하였다. 대법원은 감축 보정의 외형적 사실만으로 권리 포기를 단정 짓지 않고, 거절이유통지와 의견서 등 출원경과 전체를 종합하여 출원인의 보정 의도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출원인은 선행기술을 회피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특허청의 기재불비 거절이유를 해소하기 위해 삭제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권리를 영구히 포기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 의식적 제외를 인정하지 않고 균등침해를 인정하였다.

의견서만으로도 금반언 효력이 발생한다

대법원 2017. 4. 26. 선고 2014후638 판결은, 청구범위의 감축 보정이 없었더라도 출원인이 의견제출통지에 대응하여 제출한 의견서상의 의견진술만으로도 금반언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시하였다. 공적 기록에 남은 의사 표명을 기속력 있는 요소로 취급한 것이다.


6. 입법적 과제와 전망

기능식 청구항 해석 기준의 명문화

현행 특허법 제42조 제6항은 기능적 표현의 사용을 허용하나, 그 구체적인 해석 범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법률에서 제공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해석이 개별 사건에서의 법관 재량이나 사후적 결과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미국 특허법 제112조(f)는 기능적 기재에 대응하는 명세서상의 '구체적 구조와 그 균등물(Equivalents)'로 권리범위를 법제화하여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다.

법적 안정성과 청구범위의 공시기능 강화를 위해, 한국 특허법에도 기능식 표현의 객관적 범위를 명세서의 구체적 실시예 및 그 균등 범위로 제한하는 명문의 해석 조항 신설이 입법적 과제로 제언된다.

용도발명 보호 강화를 위한 간접침해 규정 정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도발명의 간접침해(특허법 제127조) 적용에는 현행 법제상 공백이 존재한다. 비전용물에 대한 간접침해 성립 요건의 완화, 또는 미국·독일 등 주요국에서 인정되는 유도침해(Induced Infringement) 유형을 명문화하는 방향의 입법 정비가 용도발명의 실질적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이 입법적 과제로 제언된다.

맥락 중심의 균형 잡힌 해석 정착

특허제도는 발명에 대한 독점권 부여와 기술 공개의 공익적 조화를 목적으로 한다. 명세서의 상세한 설명을 '참작'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실시예로 청구범위를 좁히는 '제한 해석'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사법적 기준이 꾸준히 다듬어져야 한다.

용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발명이 해결하고자 하는 본질적 과제와 통상의 기술자가 인식하는 기술상식을 합리적으로 접목하는 맥락 중심의 균형 잡힌 심리가 정착되는 것, 이것이 지식재산 강국 대한민국 특허 사법이 나아갈 방향이다.


정리 — 대한민국 사법 실무가 찾아낸 균형점

일원론과 이원론의 조화는 단순한 이론적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해석 기준은 일원론적으로 통일하되,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과 제3자의 법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참작 및 통제 법리(제한해석 금지, 균등론, 출원경과 금반언 등)를 각 절차 국면에 맞게 유연하고 정교하게 활용"하는 높은 수준의 사법적 지혜다.

대법원이 참작하는 출원인의 의사는 결국 "제3자가 공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심사 기록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표출된 문서상 의사"에 한정된다. 이는 내심의 의도를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 기록에 나타난 객관적 사정에 기초하여 공시기능과 권리자 보호의 균형을 맞추는 규범적 해석 도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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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18, 2026

「발명의 본질」 한정해석론: Federal Circuit 법리와 한국 특허법에의 시사점

IP Law · Claim Construction

“발명의 본질”은 청구항을 좁힐 수 있는가
— Phillips 이후 미국 청구범위 해석과 한국법의 비교

명세서 문맥에 따른 정당한 의미 확정과, 청구항에 없는 한정의 부당한 도입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청구범위 해석 Federal Circuit Phillips 비교특허법
미국 Federal Circuit의 청구범위 해석과 발명의 본질 논쟁을 상징하는 이미지
청구항 문언과 명세서 문맥 사이의 경계가 권리범위를 결정한다.

핵심 결론: 미국법에서 “발명의 본질(essence of the invention)”, “발명의 핵심(heart)” 또는 “근본적 특징(fundamental characteristic)”은 청구항을 좁히는 독립된 법적 테스트가 아니다. 이 표현들은 청구항 구조와 명세서·심사경과를 해석한 결과를 설명하는 보조적 언어일 뿐이며, 구체적인 내재적 증거 없이 그 자체로 청구항에 새로운 한정을 추가할 수 없다.

Ⅰ. 문제의 소재: 문맥을 읽는 것과 한정을 보태는 것

특허청구범위 해석의 핵심 긴장은 명세서(specification)를 청구항 용어의 기술적 문맥으로 사용하는 행위와, 명세서의 실시예·목적·장점을 청구항에 없는 한정으로 도입하는 행위 사이에 있다. 법원은 특허 전체를 읽지 않고는 청구항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명세서에 자세히 적힌 특정 실시형태가 곧 청구범위의 전부라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미국 판례에서 “essence”, “heart”, “fundamental characteristic” 같은 표현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전제부(preamble)가 한정적인지, 기능적 문구가 청구항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는지, 또는 명세서 전체가 특정 의미를 일관되게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수사적·보조적 표현이다. Federal Circuit이 별도의 “발명의 본질 한정해석론”이나 공식적인 “essence test”를 확립한 것은 아니다.

구별해야 할 두 질문 첫째,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 전체의 문맥에서 쟁점 용어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가. 둘째, 법원이 명세서에만 있는 구성을 청구항에 새로 보태고 있지는 않은가. 전자는 정당한 의미 확정일 수 있지만, 후자는 부당한 한정도입이 될 수 있다.

Ⅱ. 미국 법리의 전개

1. Markman: 법관에 의한 해석과 그 양면성

미국 대법원은 Markman v. Westview Instruments, Inc., 517 U.S. 370 (1996)에서 특허청구범위 해석을 배심이 아니라 법관이 판단할 사항으로 정리하였다. 이는 특허문서 해석의 통일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는 제도적 선택이었다.

다만 다음 평가는 판결의 직접 판시가 아니라 그 후 실무에 관한 관찰이다. 법관이 명세서의 기술적 서사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청구항 문언보다 “발명자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재구성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 이후 판례의 과제는 법관이 특허 전체의 문맥을 충분히 읽되, 청구항에 없는 제한을 사후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도록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2. Texas Digital에서 Phillips로

Texas Digital Systems, Inc. v. Telegenix, Inc., 308 F.3d 1193 (Fed. Cir. 2002)는 일반 사전의 정의를 출발점으로 삼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용어가 실제 특허에서 사용된 기술적 문맥보다 추상적인 사전적 가능성을 우선할 위험이 있었다.

전원합의체 판결인 Phillips v. AWH Corp., 415 F.3d 1303 (Fed. Cir. 2005) (en banc)은 청구항 용어를 출원 당시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재정리하였다. 청구항 문언, 다른 청구항, 명세서와 심사경과로 이루어진 내재적 증거(intrinsic evidence)가 해석의 중심이다. 사전과 전문가 의견 같은 외부증거(extrinsic evidence)는 기술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특허 자체의 공개내용과 모순되는 의미를 만들기 위한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

이를 경직된 “증거의 서열표”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특허권자가 작성하고 심사과정에서 형성된 내재적 기록이 공중에게 권리범위를 알리는 중심자료이며, 외부증거는 그 기록을 이해하는 보조자료라는 점이다.

3. 명시적 정의·권리포기와 문맥적 의미 확정

Phillips 이후 lexicography와 clear disavowal은 특별한 의미 또는 명백한 범위포기를 인정하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출원인은 용어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고, 특정 대안을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제한적 해석이 이 두 범주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청구항 내부의 사용 방식, 다른 청구항과의 관계, 명세서 전체의 일관된 용어 사용과 심사경과를 종합하면, 쟁점 용어의 통상적 의미 자체가 비교적 좁게 확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 두 상황을 분리해야 한다.

  • 문맥에 따른 의미 확정: 특허 전체를 읽은 통상의 기술자가 청구항 용어를 실제로 이해할 의미를 정하는 것
  • 부당한 한정도입: 청구항 문언이 포괄하는 범위를 실시예·목적·장점만을 이유로 별도의 제한 없이 잘라내는 것

“본 발명의 필수요소”, “본 발명의 핵심” 같은 표현도 문구 하나만으로 자동적인 disavowal을 만들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독자가 특허 전체에서 특정 범위를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포기했다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Ⅲ. 핵심 선례 분석

1. SciMed: 명확한 배제와 공중 통지가 결합된 사례

SciMed Life Systems, Inc. v. Advanced Cardiovascular Systems, Inc., 242 F.3d 1337 (Fed. Cir. 2001)는 혈관성형술용 카테터의 유체 통로 구조를 다룬 사건이다. 명세서는 coaxial 구조를 발명에 공통되는 기본구조로 일관되게 설명했고, 대안적인 dual-lumen 구조를 종래기술의 문제 있는 방식으로 구별하였다.

법원은 특허 전체의 서술을 고려해 청구범위를 coaxial 구조에 맞게 해석하였다. 판결의 취지는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명세서가 특정 대안이 발명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린 경우, 청구항 문언만을 고립해 그 대안까지 포함시키는 해석은 허용되기 어렵다.

판단요소 SciMed에서의 의미
발명에 관한 일관된 규정 명세서가 coaxial 구조를 발명의 기본구조로 반복하여 설명했다.
대안구조의 명확한 배제 dual-lumen 구조를 단순한 비선호 실시예가 아니라 발명과 구별되는 종래구조로 취급했다.
실시예의 일관성 모든 실시예가 제한해석을 보강했지만, 이 사실만으로 제한이 성립한 것은 아니다.
공중 통지 특허 전체를 읽은 경쟁자가 포기된 대안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SciMed는 “법원이 발명의 본질을 발견했기 때문에” 청구항을 좁힌 사건이 아니다. 출원인 자신의 일관된 규정과 대안의 명확한 배제가 공중에게 범위포기를 통지한 사건이다. 모든 실시예가 하나의 형태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은 보강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청구항을 실시예에 한정할 수는 없다.

2. Retractable Technologies: 패널 내부와 재심 거부 단계의 충돌

Retractable Technologies, Inc. v. Becton, Dickinson & Co., 653 F.3d 1296 (Fed. Cir. 2011)의 패널 다수의견은 주사기 특허의 “body”를 one-piece body로 해석하였다. 다수의견은 명세서가 body를 일관되게 단일 구조로 묘사하고, Summary와 실시예가 그러한 구조를 반영하며, 다부품 body를 발명의 구조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단순히 추상적인 “발명의 실질”만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특허 전체에서 통상의 기술자가 용어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패널의 Moore 판사 반대의견은 청구항 문언에 one-piece라는 제한이 없고, 명세서도 다부품 body를 명확히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 관점에서는 다수의견의 문맥적 해석이 사실상 선호 실시예와 발명의 서사를 청구항에 옮겨 넣은 것이었다.

그 후 전원합의체 재심(en banc rehearing)이 거부되었고, 재심 거부 단계에서도 청구범위 해석규칙의 예측가능성을 둘러싼 별도의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패널 판결의 다수·반대의견과 재심 거부 단계의 의견은 절차적으로 구별해야 한다. 이 사건의 지속적 가치는 어느 한쪽이 “발명의 본질”이라는 독립법리를 채택했다는 데 있지 않고, 동일한 내재적 기록을 두고도 문맥적 의미 확정과 실시예 한정의 도입 사이의 경계를 달리 그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쟁점의 정확한 형태 다수의견은 특허 전체에서 통상의 기술자가 “body”를 one-piece로 이해한다고 보았고, 반대의견은 그러한 해석이 청구항에 없는 구조를 명세서로부터 도입한 것이라고 보았다. 양자의 차이는 “명세서를 볼 것인가”가 아니라, 명세서가 제공하는 문맥의 법적 효과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있었다.

3. In re Jasinski: “essence”보다 기능적 판단기준이 핵심

In re Jasinski, 508 F. App’x 950 (Fed. Cir. 2013)은 비선례(nonprecedential) 판결이다. 청구항에는 논리적 설계와 물리적 설계를 비교해 매핑 소프트웨어의 정확성을 검증한다는 기능적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법원은 “to verify/verifying the accuracy of logical-to-physical mapping software”라는 문구가 단순한 목적이나 의도된 용도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구항의 비교단계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판단기준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판결이 “essence of the inven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표현 자체가 한정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기능적 문구가 청구항의 다른 단계에 생명과 의미를 부여한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일반적인 명세서 한정론의 대표 선례로 확대하기보다, preamble 또는 기능적 문구가 청구항 본문에 실질적인 구조·성능·판단기준을 제공하는지 살피는 사례로 제한하여 이해하는 것이 안전하다.

4. Teva: 해석내용이 아니라 항소심 심사기준에 관한 보충 판례

Teva Pharmaceuticals USA, Inc. v. Sandoz, Inc., 574 U.S. 318 (2015)는 “발명의 본질” 개념을 직접 다룬 판결이 아니다. 대법원은 청구범위 해석 과정에서 외부증거에 기초한 하급심의 보조적 사실인정(subsidiary factual findings)이 존재하면, 항소심은 그 사실인정을 명백한 오류(clear error) 기준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반면 내재적 증거만으로 이루어진 최종적인 청구범위 해석은 법률문제로서 de novo 심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Teva는 “essence”의 허용범위를 정한 핵심 선례가 아니라, 기술용어 이해를 위해 외부증거와 사실인정이 개입할 때 적용되는 항소심 심사기준을 설명하는 보충 판례로 배치하는 것이 적절하다.

Ⅳ. 실무 분석 프레임: 공식 테스트가 아닌 점검 순서

아래 3단계는 Federal Circuit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독립 테스트가 아니다. Phillips와 관련 판례를 실제 사건에서 검토하기 위해 이 글이 제안하는 실무 분석틀이다.

Practical Three-Step Review
Step 1 — 청구항 문언과 구조
  • 쟁점 용어의 문법적·기술적 의미는 무엇인가.
  • 다른 청구항과 종속항은 어떤 범위 차이를 전제하는가.
  • 전제부와 본문이 서로 의존하는가.
  • claim differentiation이 특정 해석을 지지하거나 약화하는가.
Step 2 — 내재적 증거가 제공하는 문맥
  • 명세서에서 쟁점 용어가 일관되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
  • 출원인이 특별한 정의를 명확히 제시했는가.
  • 특정 대안이나 범위를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포기했는가.
  • 심사과정에서 제한된 의미에 의존해 선행기술을 구별했는가.
  • 기능적 문구가 다른 청구요소에 실질적인 판단기준을 제공하는가.
Step 3 — 의미 확정과 한정도입의 경계 통제
  • 실시예만을 이유로 청구범위를 좁히고 있지는 않은가.
  • 모든 실시예가 동일하다는 사실만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아닌가.
  • 발명의 목적이나 장점을 별도의 청구요소로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 반대 해석이 명세서의 명시적 가르침과 실제로 충돌하는가.
  • 공중이 포기된 범위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는가.

이 프레임의 목적은 법관이 직관적으로 “이것이 발명의 핵심”이라고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직관을 청구항 문언과 내재적 증거의 구체적인 표지로 분해하고, 문맥적 의미 확정인지 청구항 외 한정의 도입인지 검증하는 데 있다.

Ⅴ. 한국법과의 비교

1. 한국 대법원의 정형문구

한국 대법원은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을 발명 확정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그 기술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발명의 설명과 도면을 참작한다.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과 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다222782, 222799(병합) 판결 등에서 확인되는 취지는 다음과 같다.

청구범위에 적힌 사항은 문언의 일반적인 의미를 기초로 하되,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여 그 문언이 표현하려는 기술적 의의를 고찰한 다음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러나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 다른 기재에 따라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 문장은 판례의 취지를 읽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2011후3230 판결은 신규성·진보성 판단의 대상인 발명을 확정하는 맥락에서 이 원칙을 제시했고, 2019다222782, 222799 판결은 침해 판단에서 같은 해석원칙을 원용하였다. 사건의 절차와 쟁점은 다르지만, 청구항 문언을 출발점으로 명세서·도면을 참작하되 그 자료로 청구범위를 새로 제한하거나 확장할 수 없다는 공통 원칙을 보여 준다.

2. 공식 “3단계 테스트”가 아니라 분석상 세 요소

한국 대법원이 공식적인 3단계 청구범위 해석 테스트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형문구는 분석상 다음 세 요소로 나눌 수 있다.

  1. 청구범위 문언의 일반적 의미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2. 발명의 설명과 도면을 참작하여 기술적 의의를 객관적·합리적으로 파악한다.
  3. 그 참작을 이유로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지 않는다.

이는 Phillips의 문제의식과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판단표지와 사건별 운용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3. 차이는 일반적 “넓고 좁음”보다 유형화 방식에 있다

한국이 미국보다 청구항을 일반적으로 더 좁게 해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결론에는 충분한 판례표본과 사건유형을 통제한 실증분석이 필요하다. 비교 가능한 차이는 오히려 판단기준의 명명과 판례 축적 방식에 있다.

미국은 lexicography, clear disavowal, prosecution disclaimer, claim differentiation, limiting preamble 등 세부 유형에 관한 판례가 다수 축적되어 있다. 한국 판례는 “기술적 의의의 객관적·합리적 해석”과 “명세서에 의한 제한·확장 금지”라는 포괄적인 정형문구 아래 사건별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어느 법제가 항상 더 넓거나 좁다고 일반화하기보다, 구체적인 판단표지가 얼마나 명시적으로 유형화되어 있는지를 비교하는 편이 정확하다.

비교항목 미국 Federal Circuit 한국 대법원·특허법원
기본원칙 청구항을 출원 당시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 전체의 문맥에서 이해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문언의 일반적 의미를 기초로 명세서·도면을 참작해 기술적 의의를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한다.
특별한 의미·범위포기 lexicography와 clear disavowal 등이 명명된 기준으로 발전했으며 심사경과도 고려한다. 동일 명칭의 독립법리는 없지만 출원인의 정의, 발명의 설명과 심사경과 등을 해석자료로 고려할 수 있다.
실시예 제한 하나 또는 모든 실시예가 동일하다는 사실만으로 제한하는 것을 경계한다. 발명의 설명·도면만으로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적용상 특징 세부 유형과 상반된 사례가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으나 경계사례의 예측곤란은 남아 있다. 포괄적인 정형문구 아래 구체적 문언과 명세서의 관계를 사건별로 판단한다.
일반화 가능성 어느 법제가 항상 더 넓거나 좁게 해석한다고 일반화하기 어렵고, 청구항·명세서·심사경과를 사건별로 비교해야 한다.

4. 명세서 작성관행과 법리의 관계

한국 출원실무에서는 배경기술, 해결과제, 해결수단과 효과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형식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미국 명세서는 제목과 서술방식이 상대적으로 다양하지만, Summary나 Detailed Description에서 목적과 장점을 상세히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PCT 출원과 글로벌 포트폴리오 관리가 보편화되면서 양국의 명세서 형식은 상당 부분 수렴하고 있다.

따라서 명세서 형식의 차이가 곧바로 법원의 제한해석 성향을 만든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작성관행은 해석자료의 모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배경요소일 뿐이며, 실제 결론은 청구항 문언, 명세서 전체와 심사경과의 구체적인 관계에서 나온다.

5. 청구범위 해석과 §112 쟁점의 구별

미국법에서는 다음 법리를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

  • Claim construction: 청구항 용어와 범위의 의미를 확정하는 문제
  • Written description: 출원인이 청구된 발명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명세서가 보여 주는지의 문제
  • Enablement: 청구범위에 상응하는 발명을 통상의 기술자가 과도한 실험 없이 실시할 수 있는지의 문제
  • 35 U.S.C. §112(f): means-plus-function 문언의 기능과 대응 구조를 특정하는 별도의 해석규칙

이 쟁점들은 같은 사건에서 함께 제기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법적 질문이다. §112의 유효성 문제를 피하기 위해 청구항을 인위적으로 좁게 해석하는 것과, 특허 전체의 문맥에 따라 용어의 실제 의미를 확정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Ⅵ. 실무상 시사점

  1. 청구항 문언과 구조부터 분석한다. 명세서의 발명 서사보다 먼저 쟁점 용어의 문법, 다른 청구항과 종속항, 전제부와 본문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2. “참작”과 “한정도입”의 근거를 분리한다. 명시적 정의, 명확한 범위포기, 심사과정의 구별 또는 일관된 용어사용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3. 모든 실시예의 일치만으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단일 실시형태만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보강자료일 수 있지만 독립적인 제한근거는 아니다.
  4. “발명의 핵심”이라는 인상을 증거로 환원한다. 어느 청구항 문언과 명세서 문장이 그 결론을 지지하는지, 반대 해석과 실제로 충돌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5. 출원서의 절대적 표현을 관리한다. “본 발명은 반드시”, “모든 경우에”, “본 발명의 핵심은” 같은 문구가 자동으로 권리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좁은 문맥적 해석이나 범위포기를 주장하는 불리한 자료가 될 위험이 있다.
  6. 비교법을 기계적으로 이식하지 않는다. 미국의 명명된 기준은 유용한 체크리스트지만, 한국법에서는 대법원의 청구범위 해석 원칙과 해당 사건의 청구항·명세서·심사경과에 맞추어 논증해야 한다.

Ⅶ. 결론

Phillips 이후 미국법은 명세서를 청구항 의미의 핵심 문맥으로 보면서도, 실시예·목적·장점을 청구항에 그대로 옮겨 넣는 것을 경계한다. 명시적 정의와 명백한 권리포기는 특별한 의미 또는 범위포기를 인정하는 대표적 기준이지만, 모든 제한적 해석의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청구항 문언의 통상적 의미는 청구항 구조, 명세서 전체와 심사경과를 종합해 확정된다.

“발명의 본질”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분석의 결론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독립적인 제한해석 기준은 아니다. 법원이 그 표현을 사용하려면 청구항의 어느 문언과 내재적 증거가 제한된 의미를 지지하는지 먼저 제시해야 한다. 모든 실시예가 같거나 어떤 구성이 발명의 장점으로 강조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법도 청구항 문언을 출발점으로 발명의 설명과 도면을 참작하되, 다른 기재로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취한다. 미국과의 차이는 법리의 기본방향보다 제한해석의 구체적 유형과 판단표지가 어느 정도 명시적으로 축적되어 있는지에 있다. 한국 실무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면 미국법을 그대로 이식하기보다, 문맥에 따른 의미 확정과 청구항 외 한정의 도입을 구별하는 판단요소를 판례와 심사기준에 지속적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해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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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판례

  • Markman v. Westview Instruments, Inc., 517 U.S. 370 (1996).
  • SciMed Life Systems, Inc. v. Advanced Cardiovascular Systems, Inc., 242 F.3d 1337 (Fed. Cir. 2001).
  • Phillips v. AWH Corp., 415 F.3d 1303 (Fed. Cir. 2005) (en banc).
  • Retractable Technologies, Inc. v. Becton, Dickinson & Co., 653 F.3d 1296 (Fed. Cir. 2011).
  • In re Jasinski, 508 F. App’x 950 (Fed. Cir. 2013) (nonprecedential).
  • Teva Pharmaceuticals USA, Inc. v. Sandoz, Inc., 574 U.S. 318 (2015).
  •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
  • 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다222782, 222799(병합) 판결.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개별 사건에 관한 법률자문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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