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투자 전략
바이오 AI의 기술적 변화와 엔비디아의 플랫폼 전략에서 찾는 국가 AI 산업·투자정책의 방향
기술 동향 / 산업정책 / 벤처투자 / 지식재산
최근 유튜브 SOD 채널의 「“이런 적을 본 적이 없다” 젠슨 황도 경악한 결과, 인류 역사상 최대 혁명이 시작됐다」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바이오 AI, 특히 가상세포(Virtual Cell) 연구와 엔비디아의 움직임을 다룬 영상이었습니다. 기술 발전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영상을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그 기술이 어떤 기업을 성장시키고, 산업의 주도권을 누구에게 가져다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컴퓨팅 자원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연구조직이 딥러닝과 통계기법을 결합해 우수한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엔비디아가 그런 연구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업 생태계를 넓히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AI 산업정책과 공공투자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빅테크가 주도하는 범용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 경쟁을 계속 추격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산업 현장의 문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까요. 영상에서 출발한 이러한 의문을 확인하려고 대회 주최 측 발표와 관련 논문, 엔비디아의 공식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기술과 산업정책, 벤처투자, 지식재산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범용 LLM 추격전과 독자 운영체제의 교훈
AI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의 확보입니다. 모델의 규모, GPU 확보량, 글로벌 벤치마크 순위가 국가와 기업의 기술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제시됩니다. 우리 정부도 외국 모델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AI는 산업과 공공서비스는 물론 국가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범용기술입니다. 핵심 기능을 해외 공급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데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다만 국가가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할 기술과 민간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해 승부를 걸어야 할 시장은 같지 않습니다.
과거 운영체제(OS) 시장이 떠오릅니다.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한 기업과 국가가 적지 않았고, 일부는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Windows, Android, iOS 등 소수의 생태계가 강력한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그 차이는 운영체제의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많아야 개발자가 모이고, 개발자가 응용프로그램을 공급해야 사용자가 늘어나는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범용 LLM 시장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는 모델 성능뿐 아니라 개발도구, 클라우드, 응용서비스, 기업 고객과의 관계를 함께 쌓고 있습니다. 후발주자가 비슷한 성능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미 형성된 유통망과 개발자 생태계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물론 운영체제와 AI 모델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픈소스 모델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모델을 병행하거나 교체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기술 효율화가 후발기업에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독자 모델을 확보해야 할 국가적 이유 역시 유효합니다. 따라서 제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독자 모델 개발 자체가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배분할 것인가입니다.
기술주권을 위한 기반기술 투자와 수익성 있는 혁신기업을 육성하는 벤처투자는 구분해야 합니다. 전자는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성까지 고려해야 하지만, 후자는 고객이 돈을 지불할 가치와 경쟁우위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국가가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동안 민간의 기술혁신과 공공 벤처투자는 산업별 전문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하도록 길을 열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범용 모델을 하나 더 개발하는 일과 그 모델을 활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을 키우는 일은 다른 과제입니다.
2. 가상세포 챌린지가 보여준 뜻밖의 결과
2025년 미국 아크연구소(Arc Institute)가 개최한 가상세포 챌린지(Virtual Cell Challenge)는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좋은 사례입니다. 엔비디아, 10x Genomics, Ultima Genomics 등이 후원했고, 114개국에서 5,000명 이상이 등록했습니다. 300개가 넘는 팀이 최종 결과물을 제출했습니다.[1]
과제는 특정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했을 때 세포 안의 다른 유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최 측은 약 30만 개의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얻은 단일세포 RNA 시퀀싱 데이터와 300개 유전자에 대한 CRISPR 간섭 실험 데이터를 마련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예측 문제이지만, 실제 생물학은 텍스트의 통계적 규칙을 배우는 문제와 성격이 다릅니다.
세포 안에서는 유전자, 단백질, 신호전달 경로와 대사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면 영향이 다른 경로로 퍼지고, 세포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 반응도 달라집니다. 실험 데이터에는 생물학적 변동성과 측정 과정의 잡음도 섞여 있습니다. 관찰된 상관관계를 잘 학습했다고 해서 새로운 유전자 조작의 결과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25년 12월 발표된 대회에서 1위는 바이오맵 리서치(BioMap Research)의 BM_xTVC 팀이 차지했습니다. 모델 이름은 xTrimoSCPerturb였습니다. 이 팀은 scFoundation의 구조를 개선하고, 단백질 모델에서 얻은 임베딩 정보와 공개 유전자 교란 데이터를 결합했습니다. 여기에 유전자별 평균 발현 수준과 차등발현 유전자의 빈도처럼 고전적인 통계 특성을 명시적으로 반영했습니다.[1]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순수한 신경망의 규모만 키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딥러닝이 단순한 통계적 기준모델을 항상 능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오히려 그 기준모델이 잘 포착하는 정보를 학습 구조에 받아들였습니다. 하이브리드 접근의 성과였습니다. 3위 팀의 모델인 TransPert 역시 통계적 방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딥러닝이나 스케일링 법칙의 실패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2025년 8월 Nature Methods의 비교연구는 여러 딥러닝 기반 유전자 교란 예측모델이 단순한 기준모델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3] 반면 2026년 10월 Nature Biotechnology의 후속 연구는 14개 데이터셋과 18개 평가 지표를 살펴본 뒤, 일부 지표가 모델의 실제 예측 능력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절히 보정된 지표에서는 딥러닝 모델이 단순 기준모델을 앞설 수 있었습니다.[4]
평가 방법의 중요성은 대회 운영에서도 확인됐습니다. 2025년에는 특정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실제 생물학적 반응을 충실히 예측하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주최 측은 2026년 대회에서 평가 범위를 넓히고, 학습할 때 교란 반응을 관찰하지 않은 세포 유형에 대한 예측을 요구하는 제로샷(Zero-Shot) 과제를 도입했습니다.[2]
제가 이 사례에서 읽은 교훈은 어느 모델이 우월하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닙니다. 모델의 크기보다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데이터를 믿고, 어떻게 성능을 검증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역에서는 깊은 산업 지식과 정교한 실험설계가 막대한 컴퓨팅 자원만큼 중요한 경쟁요소가 됩니다.
3. 예측모델보다 더 중요한 실험과 검증의 연결
바이오 AI가 산업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예측이 실제 연구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가령 항암제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스타트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기업은 암세포의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천 개 후보물질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높은 점수를 준 물질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실험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연구진은 예측 결과를 토대로 후보를 선별하고, 실제 세포에 물질을 투여한 뒤 반응을 측정합니다. 예측과 결과가 다르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검증 데이터를 다시 모델 개선에 사용합니다. 이러한 순환을 폐쇄루프(Closed-Loop), 또는 Lab-in-the-Loop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능동학습(Active Learning)을 적용하면 다음에 어떤 실험을 해야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지까지 모델이 제안할 수 있습니다. 효과가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이는 후보뿐 아니라 현재 모델의 불확실성을 줄일 후보도 실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험을 거듭할수록 공개 데이터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정보와 노하우가 쌓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기업의 경쟁력은 알고리즘 하나에 머물지 않습니다. 데이터 접근권, 실험설계 기술, 검증 프로토콜, 고객의 연구 과정과 연동된 소프트웨어가 함께 자산이 됩니다. 후발기업은 코드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도 그동안 축적한 실험 경험과 고객의 업무 체계를 단기간에 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드시 자체 실험실을 소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 병원, 시험분석기관, 위탁연구기관과 협업해도 폐쇄루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의 소유권보다 안정적인 데이터 접근과 검증 과정에 대한 통제력입니다.
이 원리는 로봇과 제조, 소재 산업에도 적용됩니다. 로봇은 시뮬레이션에서 배운 행동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해야 합니다. 제조 AI는 생산조건을 예측한 뒤 현장에서 품질과 불량률을 확인해야 합니다. 소재 AI 역시 계산된 물성과 실험으로 측정한 물성을 반복해서 대조해야 합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정밀기계, 바이오 등 여러 산업에서 오랜 경험과 생산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자산은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일반 데이터와 다릅니다. 물론 데이터를 보유한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품질과 이용권을 확보하고 이를 실제 문제 해결에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 기업이 범용 모델 경쟁과 다른 방식으로 승부할 수 있는 출발점임은 분명합니다.
4. 엔비디아가 GPU 너머에서 구축하는 사업
가상세포 챌린지를 보면서 또 하나 눈여겨본 것은 엔비디아입니다. 이 회사의 경쟁력을 GPU 성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CUDA를 중심으로 개발도구와 라이브러리,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오랫동안 구축해 왔기 때문입니다. 개발자와 기업이 CUDA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할수록 경쟁 제품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커질 수 있습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유사한 방향이 나타납니다. 엔비디아는 BioNeMo를 통해 생물학적 데이터 처리, 모델 학습·최적화, 추론 및 배포를 지원합니다. 2026년 1월에는 일라이 릴리(Eli Lilly)와 AI 신약개발 공동혁신 연구소를 추진하고,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과 지능형 실험실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협력을 발표했습니다.[5]
GPU를 공급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실험실에서 데이터가 생성되고, 모델이 학습하며, 예측 결과가 다시 검증되는 연구 과정 전반에 자사의 기술을 연결하려는 움직임입니다.
2025년 가상세포 챌린지의 상금에도 현금과 엔비디아 DGX Cloud 사용 크레딧이 포함됐습니다. 연구자에게는 고성능 연산 자원을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고, 엔비디아에는 자사 환경을 경험할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1] 크레딧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연구자의 종속이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전환비용은 소프트웨어 호환성, 데이터 이전 가능성, 장기 운영비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사업 전략은 읽을 수 있습니다. 연구자가 한 플랫폼에서 코드와 모델,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면 이후에도 같은 환경을 유지할 유인이 생깁니다. 연구 규모가 커지면 연산과 소프트웨어 사용 수요도 늘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은 LLM의 토큰 사용료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GPU 연산시간, 클라우드 사용료,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와 추론 서비스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제가 더 흥미롭게 보는 것은 엔비디아가 특정 바이오 AI 모델 하나의 성공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연구팀이 우수한 모델을 개발하든 엔비디아의 인프라를 사용한다면 엔비디아는 그 산업의 성장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별 제품의 승패를 넘어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시장에서 핵심적인 기반 공급자가 되는 전략입니다.
물론 오픈소스, 경쟁 반도체,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와 표준 인터페이스가 존재하므로 엔비디아의 지배력이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뛰어난 기술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다른 기업이 그 기술을 계속 사용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5. 모태펀드는 어떤 AI 기업을 찾아야 할까요
이 문제를 우리나라의 공공 벤처투자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한국모태펀드는 정부 등의 자금을 바탕으로 자펀드에 출자하고, 전문 운용사가 기업에 투자하는 간접투자 구조입니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설정하되 투자대상 선별에는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6]
따라서 정부가 모든 스타트업에 동일한 기술개발 방향을 요구해서는 곤란합니다.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산업별 AI 스타트업에 대한 성장투자는 목적과 평가 기준을 달리해야 합니다.
저라면 투자심사에서 모델의 파라미터 수나 특정 벤치마크 순위보다 세 가지를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먼저 남들이 쉽게 확보할 수 없는 데이터와 그것을 활용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공개 데이터와 오픈소스 모델만 결합한 서비스는 경쟁사가 빠르게 대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실험·공정 데이터에 안정적으로 접근하고 그 품질을 검증할 수 있다면 경쟁우위가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데이터가 독자적이라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성능 개선에 기여하는지, 계속 수집할 수 있는지, 법적으로 이용 가능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은 문제 해결 능력과 검증의 신뢰성입니다. 복잡한 신경망을 썼는지는 부차적입니다. 기존 통계모델이나 물리모델과 비교해 얼마나 정확한지, 새로운 환경에서 성능이 유지되는지, 같은 성과를 얻는 데 필요한 연산비용이 얼마나 되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성능을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구현했다면 상업적으로는 그 편이 더 뛰어난 기술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고객이 계속 사용할 경제적 이유입니다. 단발성 분석 용역을 제공하는 기업과 고객의 일상적인 연구개발 과정에 통합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의 수익구조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가상세포 서비스가 초기 예측에서 출발해 실험결과 관리, 후보물질 비교, 다음 실험 설계까지 지원한다면 고객은 해당 플랫폼에 더 많은 업무를 맡기게 됩니다. 축적된 검증 이력과 고객별 모델,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는 전환비용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를 플랫폼 락인(Platform Lock-in)이라고 부르지만, 고객을 기술적으로 가두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데이터 이전을 어렵게 만들거나 과도한 종속을 강요하는 구조는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해칠 수 있습니다. 고객이 떠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떠날 이유가 없어서 머무르는 플랫폼이 더 좋은 사업입니다.
물론 모든 AI 기업이 거대한 플랫폼을 운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기능에 특화된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투자심사의 핵심은 사업모델의 이름이 아니라, 경쟁사가 대체하기 어려운 가치가 실제로 존재하느냐입니다.
6. 공공자금은 기술개발 이후의 검증까지 살펴야 합니다
바이오 AI가 세포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해서 곧바로 신약의 임상적 효능이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로봇이 시뮬레이션에서 잘 움직였다는 이유로 실제 공장에서도 같은 안정성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개발과 산업적 활용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있습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과정에는 시간과 자금이 필요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정부와 공공 연구기관은 이 단계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산업별 데이터 품질과 평가 방법을 표준화하고, 기업이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실증시설과 검증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바이오 분야라면 독립적인 실험과 재현성 평가가 중요합니다. 로봇 분야에서는 서로 다른 실제 환경에서 작업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해야 합니다. 소재와 제조 분야에서도 공통 시험·평가 인프라는 기업의 초기 부담을 줄입니다. 이때 영업비밀과 개인정보, 고객 데이터의 보호는 전제조건입니다.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정책은 아닙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은 장기적인 기술적 위험을 부담하고, 공공기관은 공통 인프라와 객관적인 검증 환경을 마련하며, 정책금융과 민간 벤처투자는 시장성이 확인되는 기업에 성장자금을 공급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적절합니다. 투자 단계에 따라 독립 검증 데이터에서의 성능, 실험 재현성, 고객의 실제 비용절감, 유료 고객과 반복매출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공공자금이 모델 개발 성과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기업을 육성하는 데 쓰였는지 평가할 수 있습니다.
7. AI 기업의 지식재산 전략은 무엇을 보호해야 할까요
바이오·피지컬 AI 플랫폼의 경쟁력을 생각하다 보면 지식재산의 역할도 달리 보입니다. 독창적인 모델 구조와 학습 방법, 데이터 처리기술, 특정 장치나 공정에 결합된 AI 기술은 여전히 중요한 특허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 특허만으로 플랫폼의 경쟁력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실험 데이터에 대한 이용권, 모델 학습과 개선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 고객과의 계약, 실험·검증 프로토콜,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기술이 함께 사업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바이오 AI 스타트업이 제약회사와 공동연구를 하는 경우를 보겠습니다. 연구 성과에 대한 특허권의 귀속만 정해서는 부족합니다. 실험 데이터는 누가 활용할 수 있는지, 다른 고객을 위한 모델 학습에 이용해도 되는지, 공동연구로 개선된 모델의 권리는 어떻게 정할지, 계약 종료 후 데이터와 모델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사전에 협의해야 합니다.
고객의 연구 데이터와 생산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이라면 개인정보 보호와 영업비밀 관리, 정보보안과 데이터 이용계약도 중요합니다. 특히 데이터는 종류와 수집 방식, 계약관계에 따라 보호 근거가 달라지므로 추상적인 ‘데이터 소유권’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기술과 권리의 관계도 따져봐야 합니다. 특허를 많이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특허가 실제 사업의 핵심 기능을 보호하는지, 경쟁사가 우회하기 쉬운지, 제3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Freedom to Operate)를 검토해야 합니다.
모델을 잘 만드는 능력과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권리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특허, 영업비밀, 저작권, 데이터 이용계약을 사업구조에 맞게 결합하는 지식재산 전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8. 한국의 AI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한국이 독자적인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계속할 가치가 있습니다. 국가의 기술주권과 공급망 안정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 경쟁력을 범용 모델의 성능이나 GPU 숫자로만 평가한다면 산업의 다른 가능성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로봇, 바이오, 정밀기계와 소재 분야에서 오랜 시간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왔습니다. 이들 산업에는 인터넷에서 쉽게 확보할 수 없는 공정 데이터와 실험 경험, 현장 전문가의 지식이 남아 있습니다. 글로벌 AI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그 위에 이러한 자산을 결합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은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경계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구축된 글로벌 기술 인프라를 활용하되 핵심 데이터와 검증 능력, 고객과의 관계를 자신이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다만 특정 공급자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호환성과 데이터 이전 가능성, 장기 비용을 살펴야 합니다.
도메인 특화 AI를 무조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좋은 데이터는 비싸고 구하기 어렵습니다. 실험과 검증에는 시간이 들고 고객의 도입 결정도 느릴 수 있습니다. 기존 산업기업이 자체 AI 역량을 강화하면 스타트업이 예상한 시장이 좁아질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고객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며, 그 성과를 지속적인 매출과 경쟁우위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상세포 챌린지는 막대한 연산 자원만으로 풀기 어려운 과학적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엔비디아의 움직임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많은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두 사례를 함께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AI 산업정책도 기술개발의 성과와 산업적 성과를 좀 더 분명히 구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속적인 산업 경쟁력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 모델을 실험과 생산, 연구개발 현장에 적용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고객이 계속 사용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들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공공투자 역시 이러한 기업들의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AI 모델을 만들 것인가에 못지않게, 그 모델을 활용해 어떤 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AI를 개발하는 국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AI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앞으로의 AI 산업정책과 투자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 SOD, 「“이런 적을 본 적이 없다” 젠슨 황도 경악한 결과, 인류 역사상 최대 혁명이 시작됐다」, YouTube — 집필의 계기가 된 영상.
- Arc Institute, Virtual Cell Challenge 2025 Wrap-Up: Winners and Reflections (2025.12.6) — 2025년 대회와 BM_xTVC의 성과.
- Arc Institute, The 2026 Virtual Cell Challenge (2026.8.20) — 제로샷 평가 도입.
- Ahlmann-Eltze, Huber & Anders, Nature Methods (2025) — 딥러닝 기반 유전자 교란 모델과 단순 기준모델 비교.
- Miller et al., Nature Biotechnology (2026.10.1) — 보정된 평가 지표에서의 모델 성능.
- NVIDIA, BioNeMo Platform Adopted by Life Sciences Leaders (2026.1.12) — 바이오 AI 생태계와 협력 전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단계 평가 결과」 (2026.1.15) — 국내 파운데이션 모델 정책.
- 한국벤처투자, 「한국모태펀드 사업개요」 — 모태펀드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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