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설계의 본질은 '다른 발명'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특허의 법적 경계를 기술적 설계공간으로 바꾸는 기업의 Design-Around 실무
기업이 경쟁사의 특허를 발견했을 때 가장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우리 제품은 저 제품과 모양이 완전히 다릅니다."
조금 더 기술적인 조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발명은 상대방 발명과 전체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두 표현 모두 회피설계의 출발점으로는 위험하다. 특히 두 번째 표현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제품의 외형이 다르다는 판단이 시각적인 오해라면, "발명이 전체적으로 다르다"는 판단은 기술적 우월성이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 때문에 정작 특허침해 판단에서 필요한 분석을 생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허침해에서 중요한 것은 두 제품이나 두 발명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관련 청구항(claim)이 요구하는 개별 한정요소(limitation)와 그 결합관계가 대상 제품에 존재하는가이다. 제품의 외관이 완전히 달라져도 청구항의 필수 한정이 모두 구현되어 있다면 침해 문제는 남는다. 반대로 제품의 핵심 기능이나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해 보이더라도 청구항의 특정 한정요소가 빠져 있거나, 구성요소 사이의 관계와 작동원리가 실질적으로 변경되어 있다면 훨씬 강한 비침해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기존 특허가 A+B+C라는 결합을 보호하고 있는데 당사가 그보다 훨씬 뛰어난 A+B+C+D+E라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자. 당사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기능도 개선되었고 새로운 부품도 추가되었으니 "전혀 다른 발명"이라고 느낄 수 있다. D와 E 때문에 별도의 특허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B+C를 실시하고 있다는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허받을 수 있다는 것(patentability)과 타인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freedom to operate)은 다른 질문이다. 새로운 설계가 독자적인 특허성을 갖더라도 선행특허의 넓은 청구항을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회피설계 회의에서 "우리 발명은 전체적으로 다르다"는 말이 나오면 특허팀은 바로 다음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각 독립항(independent claim)에서 어느 한정요소가 우리 제품에 존재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직 회피설계 분석은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회피설계는 제품을 조금 바꾸는 일이 아니라 기업의 위험관리 프로세스다
회피설계(design-around)는 경쟁자의 특허발명을 그대로 실시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이 요구하는 기능과 가치를 달성하도록 제품의 구조, 결합관계, 작동방식 또는 공정을 변경하는 활동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경쟁제품과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는 특허가 법적으로 보호하는 기술적 관계를 파악하고, 그 관계의 외부에서 사업성이 있는 다른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기업의 회피설계에서는 법률문제와 기술문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관련 독립항은 무엇인지, 어느 한정을 제거할 수 있는지, 문언침해(literal infringement)를 피하더라도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의 위험이 남는지, 심사과정에서 특허권자가 출원경과 금반언(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의 관점에서 어떤 범위를 포기하거나 좁혔는지, 선행기술이 어떤 대체방향을 보여주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동시에 그 대체구조가 실제로 양산 가능한지, 제조원가를 감당할 수 있는지,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능을 유지하는지, 출시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살펴야 한다.
결국 좋은 회피설계는 법률위험이 가장 낮은 설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법률위험이 매우 낮더라도 새로운 금형과 공정 때문에 사업성이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일정한 잔존 특허위험이 있더라도 기존 설비를 활용할 수 있고 고객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면 경영진이 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회피설계의 최적해는 법률위험, 기능, 가격, 제조성, 시장성의 균형점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팀의 결과물도 단순한 "침해/비침해" 의견이어서는 부족하다. 서로 다른 복수의 설계대안을 만들어 각각의 법률위험, 균등론 위험, 기술적 실행가능성, 제조비용, 시장성, 출시일정과 잔존위험을 비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허팀의 역할은 사업을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하는지를 이해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위험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외형을 바꾸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체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피설계를 처음 접하는 조직에서는 색상, 크기, 형상, 부품의 위치를 바꾸는 데 많은 관심을 둔다. 하지만 청구항이 그러한 외관적 특징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면 그 차이는 침해 판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명칭 변경도 마찬가지다. 특허청구항에 "고정나사"라고 쓰여 있는데 당사 도면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고정볼트" 또는 "잠금핀"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법적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허에서 중요한 것은 부품에 붙인 이름이 아니라 실제 구조, 기능 및 다른 구성과의 관계다. 단순한 명칭 변경은 회피설계가 아니다.
더 주의해야 할 것은 기술자 스스로 "전체적으로 다른 발명"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새로운 기능이 많이 추가되고 시스템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전체적인 기술적 차이는 커진다. 하지만 특허침해 판단에서는 그 많은 차이가 아니라 상대방 청구항에 포함된 특정 구성관계가 여전히 남아 있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래서 회피설계에서는 "얼마나 많이 바꿀 것인가"보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무적으로는 단순한 명칭변경이나 외형변경보다 위치와 결합관계의 변경이 중요할 수 있고, 그보다 더 강한 차이는 힘·신호·물질이 전달되는 경로 또는 작동원리를 변경하는 데서 만들어질 수 있다. 가능하다면 특허가 요구하는 특정 요소 자체가 필요 없는 새로운 원리를 찾는 것이 좋다.
물론 "작동원리를 바꾸면 언제나 비침해"라는 공식은 없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청구항 문언과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만 R&D에 전달할 설계질문은 "비슷한 부품을 무엇으로 교체할 것인가"보다 "이 구성 자체가 필요 없는 해결책을 만들 수 없는가"에 가까워야 한다.
제품을 먼저 만들고 특허팀이 나중에 비침해 논리를 만드는 방식은 가장 비싼 회피설계다
많은 기업에서 특허검토는 아직도 개발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위치한다.
제품을 설계하고, 시제품을 만들고, 금형을 제작하고, 부품을 발주하고, 생산계획까지 수립한 다음 출시 직전에 특허팀에 검토를 요청한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특허팀이 검토를 시작할 때 이미 제품을 바꾸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위험한 특허가 발견되면 문제는 더 이상 순수한 법률문제나 기술문제가 아니다. 금형비, 인증비, 부품 선발주, 개발일정, 판매계획 등 상당한 매몰비용이 이미 발생해 있다. R&D와 사업부서는 "지금 와서 어떻게 다시 설계하느냐"고 반발하고, 특허팀은 제품을 실제로 변경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비침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때 회피설계는 쉽게 사후 정당화(post-hoc rationalization)로 변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업무방식이 향후 분쟁에서 회사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특허의 존재와 상당한 침해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실질적인 검토를 뒤로 미루거나, 설계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분석만을 진행하고, 문제를 인식한 뒤에도 별다른 대응 없이 제품을 계속 판매하였다면, 향후 고의침해(willful infringement; 미국 특허법 기준) 또는 고의·중과실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한국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손해액의 5배 범위)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합리적이고 선의의 위험관리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관계가 축적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도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특허를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고의침해가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전에 특정 형식의 의견서를 받아야만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특허위험을 인식했을 때 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조사하고, 누구와 논의하고, 어떤 대안을 검토하고, 그 결과 제품을 어떻게 변경하거나 위험을 관리했는가이다.
따라서 올바른 순서는 반대여야 한다.
특허팀은 완성된 제품에 법률논리를 붙이는 마지막 검수부서가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설계조건을 제공하는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회피설계의 첫 회의를 기술개발이 완료된 뒤가 아니라 개발 초기의 법적 경계 설정 단계로 배치해야 하는 이유다.
회피설계는 네 번의 다른 회의로 운영해야 한다
실무적으로 회피설계 프로젝트를 하나의 회의에서 끝내려고 하면 역할이 섞인다. 특허팀, R&D, 생산, 마케팅과 경영진은 같은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회의의 목적을 네 단계로 분리하면 무엇을 준비하고 누가 결정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특히 적대적 검증(adversarial stress test)의 위치가 중요하다. 이 단계는 R&D와의 협업 이전, 즉 법적 경계조건이 엔지니어에게 전달되기 전에 배치되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법적 경계조건을 설계질문으로 내려보내면, 이후 엔지니어가 만든 설계 전체가 잘못된 전제 위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Meeting 1. 특허팀이 먼저 법적 경계선을 설정한다
첫 회의는 아이디어 회의가 아니다. 특허팀 내부에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를 정리하는 법률적 준비단계다.
가장 먼저 모든 관련 독립항을 확인해야 한다. 하나의 독립항을 피했다고 특허 전체를 회피한 것이 아니며, 특정 종속항(dependent claim)의 요소를 제거했다고 상위 독립항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독립항이 여러 개라면 서로 다른 보호축이 존재할 가능성을 전제로 각각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다음은 청구항을 한정요소별로 분해한다. 단순히 부품명만 표에 옮겨서는 부족하다. 어느 구성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과 연결되는지, 어떤 힘이나 신호를 전달하는지, 특정 기능이 어떤 관계를 통해 구현되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심사경과(prosecution history)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초 청구항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선행기술 때문에 거절되었는지, 출원인이 무엇을 주장했는지, 어떤 표현을 추가하거나 좁혔는지, 최종 청구항이 무엇을 통해 선행기술과 구별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단순한 청구항 요약표보다 "왜 그 문언이 청구항에 들어왔는가"가 회피설계에서는 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선행기술은 무효자료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회피설계와 무효분석은 서로 다른 작업이지만, 선행기술은 특허권자가 어떤 영역에서 벗어나야 등록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특허가 선행기술과 구별되면서 현재의 범위를 얻었다면 경쟁자는 경우에 따라 그 선행기술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설계를 검토할 수 있다.
Meeting 1의 최종 산출물은 "침해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보고가 아니다. R&D가 실제 설계에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경계조건과 변경 우선순위여야 한다.
Meeting 2. 법적 경계분석을 적대적 관점에서 먼저 검증한다
Meeting 1에서 특허팀이 법적 경계조건을 정리했다고 해서 그 분석이 충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특허팀 내부에서 오래 검토할수록 자신의 청구항 해석에 확신이 생기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청구항 해석만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심사경과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읽으며, 선행기술이 현재 분석을 지지한다고 과도하게 확신하기 쉽다.
이 편향을 R&D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깨는 것이 두 번째 회의의 목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법적 경계조건이 설계질문으로 내려가면, 이후 엔지니어가 만드는 설계 전체가 잘못된 전제 위에 서게 된다. 그때 가서야 취약점이 드러나면 이미 R&D 자원이 낭비된 뒤다.
두 번째 회의는 의도적으로 역할을 뒤집는 적대적 검증(adversarial stress test)이어야 한다. 특허팀 내부에서, 또는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여 Meeting 1에서 도출한 법적 경계분석 자체를 상대방 특허권자의 관점에서 가장 강하게 공격해 본다.
"우리가 missing element로 분류한 요소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구성이다."
"우리가 different element로 표시한 구성은 위치만 약간 이동한 것으로, 동일한 기술적 관계가 유지된다."
"function·way·result 기준(미국 균등론 테스트) 또는 과제해결원리 동일성 기준(한국 대법원 기준)으로 볼 때 균등론이 적용될 수 있다."
"심사과정에서 포기한 범위는 우리가 의존하는 방향만큼 넓지 않다."
"우리가 회피 근거로 인용하는 선행기술은 현재 분석 대상 구조와 실질적으로 다르다."
이와 같은 공격을 가장 강하게 구성한 뒤에도 법적 경계분석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때 비로소 R&D에 전달할 설계조건으로서의 신뢰성이 확보된다. Meeting 2의 최종 산출물은 취약점이 보완되거나 명시적으로 표시된 검증된 법적 경계조건이다. 이 조건만 Meeting 3으로 넘어간다.
Meeting 3. 검증된 법적 경계를 엔지니어링 질문으로 번역한다
세 번째 회의부터 R&D와 필요한 경우 생산·마케팅 담당자가 참여한다. 이 단계에서 특허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청구항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청구항 분석을 설계 가능한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만들어 달라"고만 하면 엔지니어는 어디를 바꾸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대신 다음과 같은 형태의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
- "본체 내부의 지지관계를 없앨 수 있는가?"
- "직접결합을 다른 힘의 전달경로로 변경할 수 있는가?"
- "회전운동 대신 선형운동으로 같은 기능을 만들 수 있는가?"
- "특정 고정요소 자체가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법률가는 권리범위와 위험요소를 설명하지만 실제 구현 가능성, 성능, 안전성, 제조성까지 독점해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R&D가 법적 경계 밖의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특허팀이 이를 다시 청구항별로 검증하는 반복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복수의 설계안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회피안만 가지고 있으면 법률검토 결과가 좋지 않거나 제조원가가 높게 나오거나 고객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선택지가 사라진다.
회피설계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작업보다 선택 가능한 설계공간(design space)을 넓히는 작업에 가깝다.
Meeting 4. 특허문제를 경영의 선택문제로 바꾼다
네 번째 회의에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복수의 설계안을 법률·기술·사업 관점에서 함께 비교해야 한다. Meeting 2에서 이미 법적 경계분석 자체가 적대적으로 검증되었으므로, 이 단계에서는 각 설계안의 상대적 방어력과 사업적 실행 가능성을 비교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먼저 모든 관련 독립항에 대해 문언침해를 피하는지 본다. 하나의 한정요소만 달라졌다면 그 한 요소에 대한 청구항 해석이 불리해지는 순간 전체 방어가 무너질 수 있다. 가능하다면 복수의 missing 또는 different element를 만드는 것이 좋다.
그 다음에는 균등론 위험을 검토해야 한다. 명칭만 달라졌는지, 위치만 약간 이동했는지, 아니면 기능을 달성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는지를 공격자의 관점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심사경과와 선행기술이 현재 설계를 얼마나 지지하는지도 본다.
그런 다음 법률가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등장한다. 제조 가능한가. 신규 금형이 필요한가. 부품수가 늘어나는가. 수율은 떨어지지 않는가. 고객이 원하는 핵심 성능은 유지되는가. 출시가 얼마나 지연되는가. 기존 재고와 설비의 매몰비용은 얼마인가.
이 단계부터 "가장 안전한 설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회사에 가장 좋은 설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특허팀은 여기서 결정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특허팀은 어떤 설계가 상대적으로 강한 방어를 갖는지, 어떤 논리가 취약한지, 어느 정도의 잔존위험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R&D는 기술적 feasibility를, 생산부서는 양산성과 원가를, 마케팅은 고객가치의 마지노선을 제시한다. 최종적으로 어느 위험을 감수할지는 경영진이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분담은 회피설계를 법무적 금지절차가 아니라 기업 의사결정 체계로 작동하게 한다.
좋은 회피설계는 하나의 차이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복수의 missing/different element, 독립항별 별도 방어, 심사경과의 지지, 선행기술의 지지, 기술원리의 실질적 차이가 서로 겹치는 다층적 방어구조가 훨씬 안정적이다.
"절대로 침해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답하는 방법부터 달라져야 한다
회피설계 프로젝트가 상당히 진행되면 CEO나 연구소장이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러면 이 제품은 이제 절대로 침해하지 않는 것인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첫째, 청구항 해석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둘째, 문언침해를 피하더라도 균등론이라는 별도의 문제가 남을 수 있다. 셋째, 분석대상으로 삼지 않은 다른 특허가 존재할 수 있다. 특정 특허를 회피했다는 것과 제품 전체에 대한 FTO(Freedom to Operate)가 확보되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이 있다.
실제 판매제품이 지금 특허팀이 검토한 제품과 같다는 보장이 없으며, 결국 침해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제3자이다. 특허팀과 기술진이 아무리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비침해라고 판단하더라도, 실제 분쟁에서 판단권을 가진 판사가 우리와 같은 청구항 해석과 법적 평가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특허팀의 보고는 "이 제품은 침해하지 않습니다"라는 단정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보다 정확한 보고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현재 검토된 특허와 확정 설계도면을 전제로 할 때 이 설계가 가장 다층적인 비침해 방어를 제공한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현재 확보된 자료와 당사의 법률적·기술적 분석을 기초로 한 것이며, 실제 분쟁에서 법원이 동일한 청구항 해석과 침해 판단을 채택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실제 양산·판매제품의 사양이 변경되는 경우에는 다시 검토해야 한다."
회피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확신의 숫자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그 판단이 어떤 사실과 전제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피설계는 Design Freeze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회피설계를 하더라도 특허팀이 검토한 제품과 실제 판매제품이 달라지면 분석의 전제가 무너진다.
출시 후 원가절감을 위해 구매팀이 대체부품을 채택할 수 있다. 생산팀이 조립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를 조금 변경할 수도 있다. 협력업체가 부품수급 문제 때문에 다른 사양을 사용할 수도 있고, 엔지니어가 성능개선을 위해 예전 구조 일부를 되돌릴 수도 있다.
그 작은 변경이 공교롭게도 회피설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제거한 청구항 요소를 다시 제품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Design Freeze는 단순히 개발일정을 관리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특허위험 관리에서도 중요한 통제점이다. 법률검토의 전제가 된 CAD, BOM, 시제품과 실제 양산사양이 일치해야 하고, 이후 중요한 설계변경은 특허팀의 재검토 없이 바로 양산에 반영되지 않도록 변경관리(change control) 절차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제품 출시 이후 사양이 변경되는 경우 다시 관련 독립항 전체와 비교해야 한다.
회피설계는 의견서를 완성하는 날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실제 판매제품이 회피된 구조를 유지하는 동안 계속되는 lifecycle 관리 활동이다.
특허팀의 역할은 '위험 발견'에서 '설계공간 창출'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에서 특허팀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위험하니 하지 마십시오"이다. 그러나 사업부가 특허팀에 기대하는 것은 위험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보다 높은 수준의 특허팀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구조는 이 독립항에 의해 위험하다. 하지만 이 결합관계를 제거하거나 작동원리를 바꾸면 상대적으로 강한 비침해 방어가 가능하다. 첫 번째 방법은 원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고, 두 번째 방법은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R&D와 생산에서 복수의 대안을 만들어 달라."
이때 특허팀은 설계자가 아니다. 엔지니어 역시 청구항 해석자가 아니다.
특허팀은 법적 경계와 위험요인을 제시하고, R&D는 그 경계 밖에 존재하는 기술적 해결책을 만든다. 생산부서는 양산성과 원가를 확인하고, 마케팅은 고객가치와 사양의 마지노선을 제시한다. 경영진은 남아 있는 위험과 사업적 이익을 비교하여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특허팀의 역할은 결국 risk detection을 넘어 risk translation, risk structuring, design-space creation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회피설계에서 선행기술은 '특허를 죽이는 자료'만이 아니다
회피설계에서 선행기술(prior art)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통상 특허실무에서 선행기술을 검색하는 가장 직접적인 목적은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회피설계에서는 선행기술이 "어디로 제품을 움직일 것인가"를 알려주는 설계지도 역할도 한다.
특허권자가 기존기술 A와 차별화하기 위하여 B라는 관계를 청구항에 추가하고 "우리 발명은 A와 다르다"고 주장하여 등록받았다고 하자. 경쟁기업에게 B를 조금 변형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오히려 B를 제거하고 A의 기술공간 또는 그 주변으로 돌아가는 설계가 더 안정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청구항 문언을 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허권자가 균등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리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당사 설계까지 포섭하려 할 경우, 그 확대된 범위가 선행기술과 충돌하는지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선행기술 항변(ensnarement defense)이라 하며, 미국에서는 Wilson Sporting Goods Co. v. David Geoffrey & Assocs. (Fed. Cir. 1990) 이후 확립된 법리다. 한국에서도 대법원은 균등론 적용 시 확장된 권리범위가 선행기술의 영역을 포함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적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법리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회피설계에서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특허는 기존 기술의 무엇과 구별되어 현재의 권리범위를 얻었는가?"
그리고 이어서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 경계의 반대편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등록청구항의 단어만 읽어서는 특허권의 실질적인 경계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단어가 선행기술과의 논쟁 속에서 왜 들어왔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좋은 회피설계는 바로 그 역사를 기술적 설계공간으로 변환한다.
기업의 특허전문가는 미래의 사실관계를 바꾸는 사람이다
법학 교육에서는 보통 이미 일어난 사실관계를 가지고 법을 적용한다. 제품은 이미 존재하고, 특허청구항도 확정되어 있으며, 학생은 둘을 비교해서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의 회피설계는 다르다.
아직 제품을 바꿀 수 있다.
즉 미래의 분쟁에서 법원이 보게 될 사실관계를 회사가 지금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IP 책임자는 단순히 "법원이 이 제품을 침해라고 판단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사람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일은 법원이 훗날 판단하게 될 제품의 구조 자체를 지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개발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청구항을 분해하고, 심사경과를 통해 권리의 경계를 파악하고, 선행기술에서 대체공간을 찾고, 이를 기술적 설계조건으로 바꾸어 엔지니어에게 전달한다. 엔지니어가 새로운 구조를 제안하면 다시 청구항과 비교하고, 공격자의 관점에서 검증하고, 경영진에게 남은 위험과 비용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특허법의 언어는 엔지니어링의 언어로 바뀌고, 엔지니어링의 선택지는 다시 경영의 언어로 바뀐다.
이것이 기업에서 회피설계를 제대로 운영한다는 의미다.
결국 좋은 회피설계의 목표는 "경쟁제품과 전혀 다르게 보이는 제품"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발명"도 아니다.
경쟁특허가 법적으로 보호하는 기술적 관계를 정확히 찾아내고, 그 관계 밖에서 시장성이 있는 다른 기술적 해결책을 만들며, 그 선택에 남아 있는 위험까지 회사가 알고 관리하는 것.
그것이 회피설계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