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은 이미 발생한 침해에 관하여 사후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특허판결은 아직 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기업의 연구개발 방향, 경쟁사의 회피설계 범위, 투자자의 기업가치 평가, 라이선스 협상의 가격, 기술금융의 담보평가, 나아가 특정 산업의 기술표준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특허판례가 제시하는 법리는 단지 눈앞의 개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를 넘어, 시장 참여자가 미래의 행위를 설계하고 위험을 계산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특허소송은 "재판부 룰렛(panel roulette)"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허소송의 결과는 분쟁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처음 해당 발명을 적용하거나 이를 회피설계하려는 시점에 상당한 수준의 예측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계산 가능한 위험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게임에 기업의 자본과 연구개발 역량을 걸 수는 없다. 그것은 혁신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결과에 운명을 맡기는 투기에 가깝다.

여기서 "재판부 룰렛"은 특정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비난이 아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청구항과 선행기술을 놓고도 어느 재판부가 사건을 담당하는지에 따라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 균등침해(doctrine of equivalents), 진보성(inventive step) 또는 손해액 판단의 출발점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가리킨다. 그러한 위험이 커지면 특허법은 기업의 행위를 미리 안내하는 규범이 아니라, 분쟁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를 확정하는 사후적 장치로 축소된다. 법이 분쟁을 해결하기는 하지만 분쟁을 예방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1. 특허권의 경계와 '명백히 불합리한 문언해석'

특허권은 토지처럼 물리적 경계가 보이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가 일정 기간 부여하는 무형의 배타권이고, 그 경계는 원칙적으로 청구범위(claims)라는 언어를 통해 인식된다. 우리 특허법 제97조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진다"고 규정한다. 이는 단순한 문언해석 규칙이 아니라 특허권자가 어디까지 배타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를 제3자에게 알리는 공시원칙(notice function)이며, 같은 법 제42조는 청구범위 기재방식을 규율함으로써 이 공시기능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대법원도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힌 사항에 따라 확정되고,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을 참작하더라도 청구범위를 임의로 제한하거나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반복하여 선언하고 있다.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은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은 그 문언의 일반적인 의미를 기초로 하면서도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여 그 문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술적 의의를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의 기재에 따라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정식 법리를 정립한 선도 판례로, 이후 판결들이 반복 인용하는 기준판례다.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21다217011 판결 역시 같은 원칙을 확인하면서, 특히 무효심판 절차에서 이미 확정된 청구항 해석은 침해소송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다만 이러한 문언 중심의 해석에도 예외가 있다.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3후11357 판결은 청구범위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명세서의 다른 기재 등에 비추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는 그 권리범위를 제한하여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중요한 것은 제한해석이 가능하다는 추상적 선언만이 아니다. 이 판결은 무엇이 어떠한 경우에 "명백히 불합리한 문언해석"이 되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사건에서 청구항의 '세정수단'이라는 문언만 놓고 보면, 그 안에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저장탱크를 세정하는 수단도 포함될 수 있었다. '세정수단'은 문언상 특정한 세정물질이나 생성방식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않았다.

첫째, 명세서의 발명에 관한 설명에는 여과된 물에 세정물질 또는 살균물질을 희석하여 저장탱크를 세정하는 방식만 기재되어 있었다. 반면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는 구성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개시하거나 시사하는 내용도 없었다. 따라서 전기분해 방식까지 권리범위에 포함하는 해석은 명세서의 뒷받침과 괴리되어 있었다.

둘째, 특허권자는 원출원 발명의 심사과정에서 거절이유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정수단'에는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세정하는 수단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 후 원출원을 기초로 여러 단계의 분할출원을 거쳐 이 사건 특허발명이 출원되었다. 대법원은 원출원과 후속 분할출원의 출원인이 동일하고, 후속 분할출원이 원출원의 최초 명세서 또는 도면에 기재된 사항의 범위 안에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원출원의 출원경과를 후속 분할출원의 청구범위 해석에도 참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 그 결과 대법원은 특허권자가 '전기분해 방식으로 살균물질을 생성하여 세정하는 수단'을 이 사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서도 의식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균등론의 출원경과금반언(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을 직접 적용한 판결이라기보다는, 원출원의 심사과정에서 이루어진 의견진술을 후속 분할출원의 청구범위 해석에 반영한 사례다. 그러나 출원인이 거절이유를 극복하기 위해 배제한 기술을 후속 분할출원의 넓은 문언을 이용해 다시 권리범위로 회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출원금반언 또는 의식적 제외(conscious exclusion)의 법리가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단과정을 거쳤다.

  1. '세정수단'이라는 문언만 보면 전기분해 방식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2. 그러나 명세서에는 희석방식만 기재되어 있고 전기분해 방식은 개시되거나 시사되지 않았다.
  3. 출원인은 원출원 심사과정에서 전기분해 방식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4. 원출원과 후속 분할출원 사이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고려하면 그 출원경과는 후속 분할출원에도 참작할 수 있다.
  5. 따라서 전기분해 방식까지 포함하는 문언해석은 명세서의 뒷받침 및 출원인의 객관적으로 표시된 의사와 충돌한다.
  6. 그러므로 '세정수단'을 문언 그대로 넓게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불합리하고, 명세서에 기재된 희석방식으로 제한하여 해석해야 한다.

이 판결은 "예외가 원칙을 삼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법원이 단순히 "제반 사정상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문언의 가능한 의미, 명세서의 뒷받침, 원출원의 출원경과, 의식적 제외, 분할출원의 연속성 및 제3자의 법적 안정성을 순차적으로 검토하였다. 제3자는 이 판단과정을 따라가면서 어떤 경우에 문언 중심의 원칙이 유지되고, 어떤 경우에 제한해석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예상할 수 있다.

종속항과의 관계에 관한 판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정수단'을 위와 같이 제한하면 독립항의 권리범위가 세정수단을 구체적으로 한정한 종속항의 권리범위와 실질적으로 동일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종속항과 권리범위가 겹친다는 형식적 이유보다 명세서의 기재, 출원인의 객관적 의사 및 제3자의 신뢰보호를 우선하였다. 즉 종속항이 존재한다는 사정이 언제나 독립항의 넓은 해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하였다.

다만 이 판결을 모든 분할출원에 일반화하여 원출원의 의견진술이 무조건 후속 분할출원을 구속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원출원의 의견이 어떤 청구항과 거절이유를 대상으로 하였는지, 후속 분할출원과 기술적·절차적으로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는지, 그 의견이 특정 기술을 명확히 배제한 것인지가 개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요건과 한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예외가 원칙을 삼키지 않는다.

2. 구체적 법리는 결론이 아니라 판단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legal certainty)은 판례를 영원히 변경하지 말라는 요구가 아니다. 기술과 산업구조가 변하면 판례도 수정될 수 있다. 다만 그 변화는 이유가 설명되고, 적용 범위가 특정되며, 기존 법리를 신뢰하여 행동한 당사자의 예측을 불필요하게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관계가 다르면 판결의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의 차이 때문에 결론이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판단자가 추상적인 법률개념에 서로 다른 내용을 투입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아래 사항들은 판결 이유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 판단의 출발점이 된 법률문언과 원칙은 무엇인가.
  • 어떤 사실이 법적 결론을 좌우하는 핵심 사실인가.
  • 각 사실을 인정한 증거와 기술적 근거는 무엇인가.
  • 고려요소 사이의 우선순위와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 어느 요소가 필요조건이고 어느 요소가 보강요소인가.
  • 원칙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인정한 구체적 이유는 무엇인가.
  • 반대 방향의 사정이 존재함에도 결론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선행판례와 결론이 다르다면 구별되는 사실은 무엇인가.
  • 같은 판단방법을 다음 사건에 적용할 때 결론이 달라지는 임계점은 어디인가.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는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합판단이 필요한 사건일수록 어떠한 요소를 먼저 검토해야 하는지, 어떤 요소가 결론을 지배하는지, 어떤 반대사정이 있으면 잠정적 결론이 번복되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고려요소는 많지만 요소 사이의 관계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판단기준의 구체화가 아니라 재량의 목록화에 그친다.

결국 구체적 법리란 이러한 추상화 수준을 통제하는 공개된 판단방법이다. 즉 누구나 따라가면서 판단해 나가면 예측 가능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여기서 '알고리즘'은 법관의 판단을 수학적 공식이나 기계적 계산으로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적 판단에는 사실인정, 증거평가, 기술적 가치판단이 불가피하다. 이 표현의 핵심은 입력해야 할 사실, 검토 순서, 요소 사이의 관계 및 잠정적 결론이 번복되는 조건이 외부에 공개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같은 사실과 증거를 입력했을 때 재판부에 따라 판단구조 자체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다.

3. 예측가능성은 위험을 계산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법적 예측가능성(legal predictability)은 소송의 승패를 100% 확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고, 새로운 기술은 기존 법률개념의 경계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전문가 의견과 증거의 신빙성도 사건마다 다르다. 따라서 완전한 확실성은 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판례는 적어도 결과의 합리적인 범위와 방향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특허문헌과 선행판례를 검토한 후 "이 설계는 문언침해 가능성이 높다", "이 변경은 균등침해 위험이 있으나 출원경과상 제외되었다고 볼 근거가 강하다", "이 선행기술 결합에는 구체적인 결합동기가 부족하다"는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가능성이란 확실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위험을 식별하고 그 위험에 확률과 가격을 부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판례가 제공하는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예측가능성이 모호하여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기업은 위험의 확률과 규모를 산정할 수 없다. 침해 가능성과 예상손실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어야 기업은 라이선스, 회피설계(design-around), 무효도전, 소송, 시장철수 중 어느 방안이 경제적으로 타당한지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유사한 사실관계에서도 담당 재판부에 따라 침해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인식되면 기대손실의 계산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기술을 선택하기보다 불확실한 특허위험을 피하기 위해 시장 진입을 포기하거나, 실제 위험을 초과하는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회피설계를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가비용은 특허법의 불확실성이 시장에 부과하는 일종의 '혁신세(innovation tax)'다.

4. 특허 거래와 수익화에서도 예측가능성은 핵심 자산이다

예측가능성은 실시기업이나 피고에게만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특허권자에게도 동일하게, 때로는 더욱 절실하다. 특허권의 권리범위, 유효성 및 침해 인정 가능성이 불투명하면 특허가 장래 창출할 현금흐름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없다. 그 결과 특허의 담보가치, 라이선스 요율, 양도대금, 기술이전 가격 및 기업가치 평가가 모두 불안정해진다.

특허의 경제적 가치는 등록증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특허가 어느 제품과 기술을 포섭하는지, 경쟁자가 얼마나 쉽게 회피설계할 수 있는지, 무효도전에 견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침해가 발생했을 때 금지명령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결합하여 결정된다. 결국 특허의 가치는 미래의 법적 집행 가능성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결과다. 이때 판례의 예측가능성이 낮으면 투자자와 거래상대방은 추가적인 불확실성 할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기술적 기여를 가진 특허라도 권리범위 해석과 균등침해 기준이 안정된 분야의 특허는 예상 로열티 수입과 집행 가능성을 비교적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재판부에 따라 청구항 해석이나 진보성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분야의 특허는 잠재적 수익이 아무리 커도 그 실현 가능성을 평가하기 어렵다. 거래상대방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하여 라이선스 요율이나 양수대금을 낮추거나, 상당액을 조건부 지급으로 돌리거나, 거래 자체를 포기한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대학, 연구기관 및 개인 발명가에게 이러한 할인은 치명적이다. 대기업은 다수의 특허를 포트폴리오로 묶어 개별 특허의 불확실성을 분산할 수 있지만, 핵심특허 한두 건에 기업가치가 집중된 스타트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핵심특허의 권리범위가 예측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기술의 우수성보다 소송 결과의 불확실성을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 그 결과 강한 특허도 약한 가격에 거래되고, 특허권자는 정당한 가치보다 낮은 조건으로 기술이전이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압박받을 수 있다.

특허담보 금융에서도 사정은 같다. 금융기관이 특허권을 담보로 대출하려면 채무불이행 시 해당 특허를 매각하거나 라이선스하여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특허의 유효성과 권리범위가 법원의 사후판단 전에는 사실상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담보가치 산정이 어려워진다. 금융기관은 담보인정비율을 크게 낮추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한다. 판례의 불확실성은 기술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이선스 협상에서도 예측가능성은 협상력의 기초다. 법적 기준이 명확하면 당사자는 예상 승소 가능성, 예상 손해액, 소송비용 및 사업중단 위험을 토대로 합리적인 협상범위를 도출할 수 있다. 반대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 전에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다면, 라이선스 가격은 기술의 객관적 기여보다 당사자의 자금력, 소송 지속능력 및 위험감수 성향에 좌우된다. 그렇게 되면 특허거래는 기술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이 아니라 소송 수행능력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예측가능성은 특허권을 약화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유효하고 침해된 특허가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기반이다. 명확한 법리는 약한 특허가 과대평가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강한 특허가 단순한 불확실성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것도 방지한다. 예측가능성은 특허권자와 실시자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을 선택하는 원리가 아니라, 특허자산을 거래 가능하고 금융 가능한 자산으로 만드는 시장 인프라다.

결론

특허판례의 품질은 판결이 선고된 시점의 논리적 완결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판결이 선고되기 수년 전, 연구개발자와 기업이 특허문헌을 읽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판결이 과거의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하면서 미래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특허법은 혁신의 기반시설이 된다. 반대로 판결문을 읽고도 다음 사건의 위험을 평가할 수 없다면 특허법은 기업 활동에 부과되는 불확실성의 원천이 된다.

2023후11357 판결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대법원은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는 제한해석할 수 있다'는 추상적 명제에 머물지 않고, 명세서의 뒷받침 부족, 원출원의 의견진술, 분할출원의 연속성, 특정 기술의 의식적 제외 및 제3자의 법적 안정성을 순서대로 검토하였다. 따라서 이 판결은 제한해석이라는 예외가 자의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그 판단경로를 보여준 하나의 샘플로 평가할 수 있다.

특허제도가 약속해야 하는 최소한은 특허권자의 무조건적인 승리도, 실시자의 완전한 안전도 아니다. 공개된 청구항과 축적된 판례를 성실하게 검토한 사람이 자신의 선택이 초래할 법률효과를 상당한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어야 기업은 발명을 공개하고, 경쟁자는 합법적으로 회피설계하며, 투자자는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금융기관은 특허를 담보로 인정하며, 시장은 혁신에 자본을 배분한다.

"특허소송은 재판부 룰렛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단순히 판결의 통일성을 요구하는 구호가 아니다. 이는 특허권의 공시기능, 법적 안정성, 회피설계의 자유, 특허 거래와 금융, 혁신투자의 지속 가능성을 하나로 연결하는 특허법의 핵심 원리다. 법원이 기업보다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이 스스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재현 가능한 판단의 좌표를 제공하는 것이 법의 책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