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라이선스를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을 빌려주고 빌리는지만 알고 있으니
표준계약서에 필요한 사항을 채워 넣고
몇 가지 특약만 정하면 된다는 식이다.
계약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특허 라이선스 계약은 비교적 빠르고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특허 라이선스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위험할 수 있다.
특허 라이선스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로열티율(royalty rate)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에 앞서,
도대체 무엇이 라이선스되는 권리(licensed rights)인가를
정확하게 특정하는 문제
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임대차에서는 계약 목적물이 대체로 물리적으로 명확하다.
예컨대
“서울시 ○○구 ○○동 ○○번지 건물 3층”이라고 특정하면
어느 공간을 임대하는지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계약 목적물을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서울시 ○○구 ○○동 ○○번지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목적물의 범위가 고정된 위치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베이커리 운영에 필수적인가’라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일종의 동적인 정의(dynamic definition)라고 할 수 있다.
특허 라이선스에서는 이러한 동적 정의를 흔히 접한다.
예를 들어 라이선스 대상을
“AA 제품을 제조, 위탁제조, 사용, 수입,
판매의 청약 또는 판매하는 과정에서
침해를 피할 수 없는 특허”라고 정하는 방식이다.
라이선서와 라이선시 모두
불필요하게 넓은 특허군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으면서
실제 사업에 필요한 권리만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할 만한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라이선스 대상을 동적으로 정의하면
제품의 설계나 기술규격이 변경될 때마다
라이선스 범위도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데 있다.
결국 다음의 연결관계를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기술규격
→
제품 기능 및 구현
→
특허청구항
→
라이선스 범위
어느 한 단계에서 해석이 달라지면
계약의 적용범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특허 라이선스 협상과 계약서 작성에는
계약법에 관한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허청구항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관련 특허기술과 실제 제품의 구조·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나아가 해당 기술과 제품이 회사의 사업계획과 시장전략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층위의 판단을
하나의 계약 문언으로 정합적으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특허 라이선스는 Intel과 같이
특허와 라이선싱 경험이 풍부한 기업에게조차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2003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Intel v. VIA 사건을 살펴보는 것은
특허 라이선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이 사건은
특허청구항 자체가 명확하더라도
그 특허가 라이선스 범위에 포함되는지는
별개의 문제
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라이선스 문언과 기술규격,
그리고 실제 제품 구현의 관계에 따라
상당한 해석상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표준기술에 관한 특허전략에서는
이 문제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표준의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일정한 표준필수특허에는
무상 또는 개방적인 라이선스 전략을 취하여
기술의 시장 확산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면서도,
표준의 선택 기능이나 주변 구현기술에 관한 특허에는
별도의 유상 라이선스 전략을 유지하여
사업상 수익과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Intel v. VIA는
이러한 복합적인 라이선스 전략을
실제 계약 문언으로 구현할 때
무엇을 어디까지 라이선스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어떻게 명확하게 표현해야 하는지
를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1. 특허의 명확성과 라이선스 범위의 상충
컴퓨터 칩셋 통신 표준인
AGP(Accelerated Graphics Port, 가속 그래픽 포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Intel Corp. v. VIA Techs., Inc. (Fed. Cir. 2003) 판결은
특허 라이선스 실무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인텔(Intel)은 비아(VIA)가
자사의 패스트 라이트(Fast Write) 기술이 담긴
‘291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비아가 인텔과의
무상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정당한 실시권을 확보했다고 판단해
비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 판단의 핵심은
특허 청구항의 유효성과
라이선스 계약 해석을 명확히 분리한 데 있다.
법원은 ‘291 특허에 구체적인 회로 도면이 없더라도
당업자가 기술을 이해할 수 있어
유효하고 명확하다고 보았다.
반면 해당 특허를 허락한
라이선스 계약의 범위에 대해서는
문언이 모호하다고 판단하여,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contra proferentem)을 적용했다.
특허 청구항 기재가 아무리 명확하더라도,
이를 포섭하는 라이선스 계약 조항은
얼마든지 모호해질 수 있다.
2. AGP 규격의 필수성과 선택성 구조
이 사건의 본질을 짚으려면
인텔이 제시한 AGP 기술 규격의 체계와
계약서에 명시된
‘필수성(Required)’ 요건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1. 기술적 배경과 선택 프로토콜
인텔은 1996년 AGP 1.0 규격을 내놓은 뒤,
1998년 전송 속도를 한층 끌어올린
AGP 2.0 규격을 발표했다.
AGP 2.0에는
‘4배속 전송(4x transfer)’과
‘패스트 라이트(Fast Write)’라는
두 가지 프로토콜이 새로 추가되었다.
주목할 대목은 두 기능 모두 규격서상
반드시 구현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프로토콜(optional protocol)로
분류되었다는 점이다.
제조사가 패스트 라이트를 구현하지 않더라도
AGP 2.0 규격을 충족하는
공식 호환 제품으로 인정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2. ‘Required(필수성)’ 개념의 두 가지 해석
라이선스 계약을 둘러싼 공방은
‘필수적(required)’이라는 문언을
어떤 기준에 비추어 해석할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해석 1. 표준 전체를 기준으로 보는 관점
AGP 2.0 규격을 따르는 모든 제품이
예외 없이 탑재해야 하는 기본 사양만을
‘필수’로 보는 입장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패스트 라이트는 어디까지나 선택 사양에 불과하므로,
라이선스가 허여되는 필수 기능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해석 2. 개별 선택 기능의 구현을 기준으로 보는 관점
패스트 라이트 자체의 탑재 여부는
제조사의 선택일지라도,
일단 이를 구현하기로 결정했다면
규격서에 명시된 특정 제어 신호
(버퍼 상태를 알리는 WBF# 신호 등)와
동작 규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즉 선택 기능을 구현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술 규격 역시
‘필수’ 규격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논리다.
2.3. “disclosed in, and required by” 문구를 둘러싼 대립
인텔의 AGP 라이선스 계약은
무상 라이선스 대상을
“AGP 규격서에 공개되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disclosed in, and required by)
인터페이스 및 프로토콜”로 규정하고 있었다.
바로 이 조항의 해석을 두고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Intel의 주장
‘required by’라는 문언은
AGP 2.0 표준 전체를 충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본 기능만을 뜻한다.
따라서 선택 사양에 불과한
Fast Write 기술과 관련 ‘291 특허는
무상 라이선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VIA의 주장
Fast Write의 채택 자체는 선택일지라도,
일단 제품에 구현하기로 한 이상
규격서에 명시된 제어 신호(WBF#)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 역시 규격서가
‘요구하는’ 기술에 해당하며,
관련 특허 역시 계약상
무상 라이선스 범위에 포함된다.
2.4. 연방법원의 판단: ‘필수 과목 교재’ 비유와 모호성 인정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쟁점 조항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학교가 요구하는 과목의 교재
(books required by a school)’라는
비유를 들었다.
이 문구는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의 교재를 뜻할 수도 있지만,
특정 선택 과목을 수강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하는 교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법원은 인텔의 엄격한 이분법적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인텔이 자체 작성한 AGP 2.0 기술 규격서에서도
선택 프로토콜인 Fast Write의 내부 신호(WBF#)에
‘Required(R)’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For example, books ‘required by’ a school could mean books needed for
(1) ‘required’ (non-optional) classes; or
(2) any class taken, including optional classes.”
번역
“예를 들어, 학교에서 ‘요구되는(required by)’ 책이란
(1) 필수(비선택) 과목에 필요한 책을 의미할 수도 있고,
(2) 선택 과목을 포함하여 수강하는 임의의 과목에서 필요한 책을
의미할 수도 있다.”
법원은 결국 인텔과 비아 양측의 해석이
기술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모두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당 계약 조항에는
양립 가능한 두 해석이 팽팽히 맞서는
진정한 모호성(ambiguity)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3. ‘동적 정의’의 구조와 다단계 연결 작업
인텔의 AGP 라이선스 계약은
특정 특허 번호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4단계에 걸친 연쇄적 정의
(chain of definitions) 방식을 취했다.
라이선스 부여(License Grant):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는 제품에
특허 라이선스를 부여한다.
인터페이스 청구항(Interface Claims):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는
(must be infringed)
특허 청구항을 의미한다.
AGP 인터페이스(AGP Interfaces):
규격서에 공개되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disclosed in, and required by)
전기적 인터페이스 및 버스 제어 프로토콜이다.
AGP 규격서(AGP Specifications):
인텔이 발행한
AGP 1.0 및 2.0 기술 규격 문서다.
이러한 동적 정의(dynamic definition) 방식은
기술이 발전하거나 규격이 개정되더라도
매번 계약서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실제 라이선스의 보호 범위를 확정하려면
‘기술 규격’에서 출발하여
‘제품 기능’과 ‘특허 청구항’을 거쳐
‘라이선스 범위’로 이어지는
다단계 연결 고리를 매번 검증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된다.
기술규격
→
제품기능
→
특허청구항
→
라이선스 범위
3.1. 라이선스 부여 조항(License Grant)
a nonexclusive, royalty-free, nontransferable,
non-sublicenseable, worldwide license under its
Interface Claims to make, have made, use, import,
offer to sell and sell products which comply with
the AGP Interfaces; provided that such license shall
not extend to features of a product which are not
required to comply with the AGP Interfaces or to which
there was a feasible alternative to infringing a given claim.
번역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는 제품을 제조,
위탁 제조, 사용, 수입, 판매 제안 및 판매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청구항(Interface Claims)에 대한
비독점적, 무상, 양도 불가,
재라이선스 불가한 전 세계적 라이선스를 부여한다.
단,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는 데 요구되지 않는
(not required to comply with) 제품의 기능이나,
특허 침해를 피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대안이 존재하는
기능에는 본 라이선스가 미치지 아니한다.”
3.2. 인터페이스 청구항 정의(Interface Claims)
‘Interface Claims’ means claims of a patent or patent application,
which are owned or controlled by a party,
that must be infringed in order to comply with the AGP Interfaces.
‘Interface Claims’ does not include claims relating to
manufacturing technology, claims not required to be infringed
in complying with the AGP Interfaces
(even if in the same patent as Interface Claims),
or claims which, if licensed, would require a payment of royalties
to unaffiliated third parties.
번역
“‘인터페이스 청구항’이란 당사자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특허 또는 특허 출원의 청구항으로서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기 위해
반드시 침해되어야 하는 청구항을 의미한다.
‘인터페이스 청구항’에는 제조 기술에 관한 청구항,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함에 있어
침해될 것이 요구되지 않는 청구항
(동일 특허 내에 있더라도 제외),
또는 라이선스 부여 시 계열사가 아닌 제3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청구항은 포함되지 않는다.”
3.3. AGP 규격서 정의
‘Accelerated Graphics Port Interface Specifications’
are the specifications described in the documents entitled
Accelerated Graphics Port Interface Specification,
Revisions 1.0 and 2.0, published by Intel.
번역
“‘가속 그래픽 포트 인터페이스 규격’이란
인텔이 출판한
‘가속 그래픽 포트 인터페이스 규격서
Revision 1.0 및 2.0’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기술된 규격을 의미한다.”
3.4. 단서 조항(Provided Clause)
...provided that such license shall not extend to
features of a product which are not required to comply
with the AGP Interfaces or to which there was a feasible
alternative to infringing a given claim.
번역
“...단, AGP 인터페이스를 준수하는 데
요구되지 않는 제품의 기능이나,
특정 청구항(특허)을 침해하지 않고도 구현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대안(feasible alternative)이 존재하는 기능에는
본 라이선스가 미치지 아니한다.”
3.5. 실무에서 확인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특히 제품 설계가 바뀌거나
새로운 선택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실무진은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을 검토해야 한다.
해당 기술이
표준 준수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인가?
그 기술을 구현할 때
특허권자의 어떤 청구항이 침해되는가?
그 청구항은 표준을 준수하기 위해
반드시(must) 침해될 수밖에 없는 성격인가?
특허를 우회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비침해 대안(feasible alternative)이
존재하는가?
표준 전체에서는 선택 사양(optional feature)인 기능을 탑재했을 때도
해당 청구항이
라이선스 범위에 포섭되는가?
표준 규격서에 기술이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라이선스가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행 가능한 비침해 대안이 존재하는지,
표준 준수를 위해 불가피한 필수 기술인지
(essentiality)를 따지는
다층적 필터를 통과해야 비로소
라이선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4. 특허 청구항의 명확성 vs. 라이선스 조항의 모호성
Intel v. VIA 사건은
특허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과
라이선스 계약 해석(contract construction)이
서로 완전히 다른 법적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4.1. 특허 자체는 명확했다
소송 과정에서 비아는
‘291 특허 명세서에
구체적인 전자 회로도가 누락되었음을 지적했다.
기술의 범위가 불분명하므로
미국 특허법상 명확성 요건
(35 U.S.C. § 112 ¶ 2)을 결여하여
무효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허 명세서에 도면 3개와 신호 차트 35개,
버퍼 상태 신호(WBF#) 프로토콜 및
코어 로직 수정 방식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어,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 기술자
(person skilled in the art)라면
회로도가 없더라도 기술을 구현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허 청구항 자체의 유효성과 명확성은 인정되었다.
4.2. 그러나 라이선스 계약은 모호했다
반면 라이선스 계약 해석의 영역에서는
판도가 뒤바뀌었다.
해당 계약이 인텔이 일방적으로 작성하여
상대방에게 수락 여부만을 양자택일하도록 요구한
표준 서식
(take-it-or-leave-it)이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법원은 양측의 해석이 모두 합리적이어서
계약상 모호성이 발생한 이상,
준거법인 델라웨어주 법에 따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contra proferentem)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허를 명확하게 작성했다고 해서
그 특허의 라이선스 범위까지
자동으로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허의 권리범위와
계약상 허여범위는
별도로 설계하고 검토해야 한다.
5. 기술 이해에 기반한 특허 라이선스 실무의 교훈
Intel v. VIA 판결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일반적인 표준 계약 조항(boilerplate) 수준으로
안이하게 다루었을 때
어떠한 법적 위험이 뒤따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허 라이선싱 협상과 계약서 작성은
단순한 법률 문언 정리를 넘어,
해당 기술의 실제 동작 메커니즘과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특허 라이선싱 협상과 계약 체결은
반드시 특허 발명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업 실무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전략을
계약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
첫째. 기술표준의 계층 구조를 계약 문언에 구체적으로 투영한다.
계약서에 단순히
“표준 준수에 필요한 특허”와 같은
포괄적인 표현을 쓰면,
표준 전체를 아우르는 필수 사양과
특정 선택 기능에 종속된 필수 규격이 충돌하면서
예상치 못한 법적 모호성을 낳게 된다.
둘째. 특허 단위가 아닌 청구항 단위(claim-level)의 정밀한 라이선싱 검토가 필요하다.
제품의 특정 기능이나 세부 구현 방식에
실제로 어떤 청구항이 결합하는지를
사전에 철저히 분석하고,
그 범위를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한정해야
분쟁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다.
셋째. 명시적 제외 조항(express exclusions)을 적극 활용한다.
특허권자 입장에서
선택적 프로토콜이나 특정 부가 기술에 대한
무상 실시를 허용할 의도가 없다면,
다단계 정의의 간접적 해석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선택적 프로토콜 구현을 위한 청구항은
라이선스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한다”는 식의
직접적인 배제 문언을 명시해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 적용되어
특허권 행사가 가로막히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서 가장 위험한 문언은
반드시 어려운 법률용어나 복잡한 조항만은 아니다.
required, necessary,
must be infringed,
comply with처럼
겉보기에는 평범한 단어도
기술표준의 계층 구조와 결합되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결국 특허 라이선스의 범위를 제대로 설계하려면
계약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기술을 이해하고,
제품의 구현방식을 파악하고,
청구항을 해석한 다음,
그 결과를 계약 문언과 다시 연결해야 한다.
대륙법과 보통법의 역사적·철학적 유산,
법경제학·행동법학적 실증 연구,
그리고 증거개시제도와 연계된 50%+α 개혁 모델
이 글은 한 차례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민사소송의 ‘증명도(Standard of Proof)’에 관한 문제를
추가 연구를 통해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본 후속 연구다.
이번에는 단순히 한국과 미국의 증명 기준을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륙법과 보통법의 역사적·철학적 배경,
법경제학과 행동법학의 실증 연구,
그리고 증거개시제도와의 구조적 관계까지 함께 살펴보았다.
궁극적인 질문은 단순하다.
한국 민사소송의 ‘고도의 개연성’ 기준을
미국식 50%+α 기준으로 낮추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법인가.
아래에서는 이 문제를 증명도라는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사법제도 전체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검토한다.
I. 서론: 민사 증명도의 법적 개념과 비교법적 문제의식
민사소송법상 증명도(Standard of Proof, 입증의 정도)란
사실인정자(법관 또는 배심원)가 당사자의 증거를 토대로
요증사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주관적·객관적 확신의 임계값(Threshold)이다.1
증명도는 단순한 기술적 소송 규칙에 머물지 않는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절차적 효율성,
나아가 사실 확정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사법적 오류비용(Error Costs)을
당사자 사이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사법제도의 핵심 지표다.2
대륙법계(Civil Law)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 민사소송은
법관에게 ‘통상인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확신’,
곧 ‘고도의 개연성(Highly Likelihood)’을 요구하는
주관적 내적 확신 모델을 유지해 왔다.3
반면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미국은
일반 민사소송에서
‘증거의 우세함(Preponderance of the Evidence)’을
표준으로 삼는다.
이는 주장하는 사실이 존재할 가능성이 50%를 넘으면
(P > 0.5, more likely than not)
원고 승소를 인정하는 비교적 완화된 객관적 기준이다.4
한국의 ‘고도의 개연성’과 미국의 ‘50%+α’는
단순히 숫자만 다른 두 기준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소송제도의 산물인가?
최근 국내 학계와 실무 일각에서는
‘고도의 개연성’ 기준에 따른 구조적 폐단,
즉 원고의 과도한 입증 곤란,
광범위한 진위불명 영역의 발생,
피해 구제 실패에 따른 ‘민사 사건의 형사 고소화’를 해소하고자
미국식 ‘50%+α’ 기준,
즉 우월적 증거설로 전면 전환하자는
입법론이 꾸준히 제기된다.5
그러나 증명도는 단순히 수치를 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각 사법 체계의 사전 증거 수집 제도(Discovery),
법관의 사실인정 심리 구조,
개별 입증 경감 법리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등)와
유기적으로 맞물린 종합 사법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한미 양국의 민사 증명도 법리와 역사적 배경,
법경제학·행동법학적 실증 연구,
사전 증거 수집 제도와의 연계성을 입체적으로 고찰하여
현실적인 사법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한미 민사소송 증명도의 기본 개념 및 체계적 구조
1. 미국 보통법계: 3단계 차등 증명 구조
미국 민사증거법은 보호법익의 성격과
오류 위험의 비대칭성에 따라
증명도를 3단계로 명확히 구분하여 운용한다.6
증거의 우세함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일반 계약 분쟁, 교통사고, 불법행위 등
통상적인 민사사건에 적용되는 기본 기준이다.
양 당사자의 증거를 저울에 달아
주장사실이 존재할 가능성이
50%를 조금이라도 넘으면(50%+α)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본다.7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
친권 박탈, 성년후견, 사기, 특허 무효처럼
중대한 신분권·사익·헌법적 가치가 걸린 민사 영역에서
예외적으로 상향 적용하는 중간 기준이다.
이때는 약 70~80% 수준의 높은 개연성을 요구한다.8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 (Beyond a Reasonable Doubt)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엄격한 기준
(약 90% 이상)으로,
민사 기준과는 엄격히 이원화되어 운용된다.9
2. 한국 대륙법계: 자유심증주의와 고도의 개연성
한국 민사소송법 제202조는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할 뿐
증명도에 관한 명문 조항을 두지 않고 있어,
구체적인 기준은 판례와 통설을 거쳐 정립되어 왔다.10
대법원은
“경험칙에 비추어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을
일관되게 요구한다
(대법원 1960. 3. 31. 선고 4292민상247 판결;
대법원 1990. 6. 26. 선고 89다카7730 판결 등).11
학설 역시 이를
‘십중팔구’ 내지
‘80~90%의 확률적 확실성’으로
수치화하여 이해한다.12
3. 한미 민사소송 증명도 체계 비교
비교 항목
한국 민사소송 (대륙법계)
미국 민사소송 (보통법계)
법적·실무적 의의
일반 증명도
고도의 개연성
(Highly Likelihood,
80~90%)
증거의 우세함
(Preponderance,
50%+α)
한국은 높은 입증 문턱,
미국은 대칭적 위험 배분
예외적 증명도
명문 규정 없음
(판례상 간접추정 등으로 경감)
Clear & Convincing Evidence
(약 70~80% 개연성)
미국은 사기·특허무효 등에
차등 적용
진위불명 구간
광범위한 구간 발생
(20% < P < 80% 패소)
50% 지점으로 축소
(Low Non-liable region)
고도 개연성하 원고의
패소 위험 대폭 증가
III. 대륙법과 보통법의 역사적·철학적 배경
1. 대륙법계: 법정증거주의 타파와 내적 확신(Intime Conviction)
대륙법계의 자유심증주의는
18세기 프랑스 혁명기,
중세 이래 지속된 가혹한 법정증거주의
(la preuve légale)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태동했다.13
중세 로마-캐논법상의 법정증거주의는
증인의 수와 증거의 종류에 따른 증명력을
법률로 획일화하여 규정했다.
예를 들어 목격자 2명이 있으면
‘완전한 증거’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법관이 확실한 심증을 갖더라도
법정 요건이 미비하면,
법률상 유일하게 ‘완전한 증거’로 인정받는
피고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국가 고문(Torture)까지 정당화되는
비인간적 폐단이 일상화되었다.14
프랑스 혁명 세력과 계몽주의 사상가들
(볼테르, 베카리아 등)은 이러한 구습을 혁파하여,
법관과 배심원이 상식과 경험칙에 따라 판단하는
자유심증주의와
‘내적 확신(intime conviction)’ 제도를 확립했다.15
이후 독일 민사소송법(ZPO §286)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계수된 자유심증주의는
직업법관이 자의를 배제한 채 경험칙과 논리칙에 따라
‘객관적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확신에 도달하는 것을
재판 정당성의 근거로 삼게 되었다.16
2. 보통법계: 존 로크의 확률론과 오류 위험 배분 철학
미국 보통법계의 증명도는
존 로크(John Locke)의 계몽주의 확률론(Probable Belief),
그리고 영미 배심제(Civil Jury)와
당사자주의(Adversarial System)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17
영미법은 인간 인식의 한계상
법정에서 절대적 진실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며,
재판상의 진실 역시 경험에 바탕을 둔
‘확률적 개연성’에 불과하다고 본다.
18세기 후반 법원의 배심 평결 재심 허가 기준에서 출발한
‘우월성(Preponderance)’ 개념은
점차 배심원 지시문(Jury Instructions)의
표준 형태로 안착했다.18
법경제학 및 영미 법학,
특히 연방대법원
In re Winship 사건의
Harlan 대법관 동의의견에 따르면,
민사소송은 사적 당사자 간의 대등한 분쟁이므로
‘원고의 부당 패소(제1형 오류)’와
‘피고의 부당 승소(제2형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 비용은 서로 동등하다
(CI = CII).19
따라서 오류 위험을 50:50으로 대칭 분담하는
50%+α 기준은 전체 사회적 오류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철학적 정당성을 갖는다.
IV. 법경제학 및 행동법학적 실증 연구
1. 법경제학적 분석: Kaplow의 억제 및 위축 효과 모형
루이스 캘플로(Louis Kaplow)는
증명도가 불법행위자의 사전적 억제 효과
(Ex-ante Deterrence)와
적법한 행위자의 위축 효과
(Chilling Effect)에 미치는 영향을
수식화했다.20
캘플로의 모형에 따르면,
적법 행위가 위축될 우려는 적은 반면
위법 행위의 사회적 폐해가 현저한 영역에서는
증명도를 낮추는 편이
사회적 총효용을 극대화한다.
나아가 그는 획일적인 증명도를 고수하기보다
사건의 성격에 맞춘 가변적 증명도를 적용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한층 효율적임을 규명했다.
2. 행동법학 및 실증 연구: Law in Books vs. Law in Action
실제 재판 현장에서 사실인정자가 적용하는 증명도는
법규범상의 기준과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한국 법관 실증 조사 — 설민수(2008)
한국 법관 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민사재판 시 실제로 요구하는 심증 수준의 평균값은
약 70%로 집계되었다.21
이는 규범적인 80~90% 기준을 밑돌며,
오히려 미국의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
(Clear & Convincing Evidence)’ 기준에
근접한 수치다.
유럽 법관 실증 조사 — Schweizer(2016)
대륙법계의 내적 확신 기준을 따르는
스위스·독일 법관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실효 심증 임계값은 평균 62.9%로 나타났다.22
이는 대륙법계의 실무상 심증 기준이
보통법계의 실제 운용 수준과
실질적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손실회피 및 부작위 편향 — Zamir & Ritov(2012)
사실인정자는 피고 패소 판결을
기존 상태를 변경하는
‘적극적 개입(Action)’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과
손실회피 기제가 작동하면서,
내면적인 판단 임계치(Cutoff Point)가
60~75%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상향 조정된다.23
3. 미국 배심원 지시문 문언 차이의 인지적 효과
미국 연방 및 각 주 법원에서 전달되는
배심원 지시문의 문언 차이는
사실인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24
CACI No. 200 — “More likely to be true than not true”
캘리포니아주 등의 직관적 평이 언어(Plain English) 지시문은
배심원이 50%+α의 균형 잡힌 임계값을
가장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25
고전적 법률용어 —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McCauliff(1982) 등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일반 시민은 ‘Preponderance’라는 전통적 법률용어를 접했을 때
평균 70~75% 수준의 높은 확신도가
요구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26
진실 탐색 부가 문구의 위험성 — Cicchini & White
《Columbia Law Review》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지시문에
“진실을 탐색하라(search for the truth)”는
문구를 추가할 경우
배심원의 28%가 입증 기준이 완화된 것으로 오인했다.
그 결과 승소 및 유죄 평결 비율이
21%에서 54%로
약 2.5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27
V. 현행 ‘고도의 개연성’ 기준의 개혁론(50%+α 전환)에 대한 분석
1. 개혁론(찬성론)의 논거
김차동 교수 등 개혁론자들은
현행 고도의 개연성(80~90%) 기준을
미국식 ‘증거의 우세함(50%+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한다.28
광범위한 진위불명 구간의 해소
고도의 개연성 기준 하에서는
20% < P < 80%에 이르는 넓은 진위불명 영역에서
원고가 객관적 증명책임의 분배 원칙에 따라
부당하게 패소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반면 증명도를 50%+α로 낮추면
이러한 진위불명 영역이
50% 분기점으로 대폭 축소된다.29
민사적 권리 구제 회복 및 ‘민사사건의 형사화’ 방지
과도하게 높은 입증 장벽으로 인해
민사상 권리 구제가 무력화되면,
피해자가 국가 수사권에 의존하여
민사 분쟁을 형사 고소로 해결하려는
왜곡된 관행과 행정만능주의가 초래된다.30
복잡한 입증책임 완화·전환 법리의 정비
일반 증명도 자체가 합리적 수준으로 완화되면,
개별 소송 유형마다 무리하게
입증책임 전환이나 경감 특칙을 모색해야 하는
법적 혼란과 해석상 부담을 덜 수 있다.31
2. 보수적·신중론의 논거
그러나 사전 증거 수집 제도의 미비를 간과한 채
증명도를 일괄 하향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 역시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32
사전 증거개시제도(Discovery)의 미비
미국에서 50%+α 기준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배경에는,
소송 초기에 상대방의 증거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는
연방민사소송규칙(FRCP)상의
디스커버리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구조적 증거 편재가 심각한 한국 실정에서
디스커버리 도입 없이 증명도만 낮춘다면,
원고의 불분명한 주장만으로도
피고가 부당하게 패소하는
제1형 오류(Type I Error)가 급증할 위험이 크다.33
남소(Frivolous Lawsuits) 및 소송 방어 비용의 급증
입증 장벽이 대폭 완화되면
객관적 근거가 희박한 사실에 편승하여
합의금을 노리는 기획소송이 남발될 수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피고의 소송 방어 비용 또한
크게 늘어날 수 있다.34
다만 미국 연방소송법 Rule 11의
사실 및 법률 검증 의무를 부여하면
상당부분 남소의 위험은 제거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법적 안정성 및 기판력에 대한 신뢰 저하
50%+α라는 비교적 낮은 심증 수준에 기초한 판결에
현행과 같은 강력한 기판력(Res Judicata)을
그대로 부여하는 것은
사법 판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35
3. 현행 입증 경감 법리와의 정합성 검토
한국 민사법은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손해배상 액수 산정의 재량),
제조물책임법상 결함 추정,
의료·환경소송에서의 간접사실 추정 및
‘상당한 개연성’ 법리 등
개별 소송 유형에 맞춘
다양한 입증 경감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36
그러나 일반 증명도를 50%+α로 일괄 하향할 경우,
실무와 판례가 축적해 온
‘상당한 개연성’ 법리가 일반 증명도와 사실상 구별되지 않아
잉여적 개념으로 무력화되는 등
기존 규범 체계와 심각한 법리적 충돌을 빚게 된다.
VI. 입법·제도적 개선 로드맵
증명도 개혁은 단순한 수치 조정을 넘어,
사전 증거 수집 제도 및 개별 특칙 법리와 연계된
단계적 로드맵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37
1단계. 한국형 증거개시제도(K-Discovery)의 전면 확대
2026년 시행을 앞둔 「상생협력법」상의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즉 전문가 사실조사(Inspection),
법정 외 당사자 신문(Deposition),
자료보전명령을
민사소송법 전반으로 확대하여
소송 당사자 간의 구조적 증거 불균형을
선제적으로 해소한다.38
2단계. 소송 유형별 차등적 증명도의 입법화
획일적인 기준 하향을 지양하고
소송 유형별로 기준을 차등화한다.
즉 통상적인 재산상 계약·상사 소송에는
‘우월적 증명(50%+α)’을 적용하되,
가사·지식재산·사기·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등에는
‘명백한 증명(고도의 개연성, 70~80%)’을 요구하는 방식의
입법적 차등화를 추진한다.39
3단계. 기존 입증 경감 법리의 체계적 재구조화
실무와 판례가 축적해 온
‘상당한 개연성’ 및 ‘인과관계 추정’ 법리를
피고의
‘증거 제출 및 설명 의무(Burden of Production)’로
재구성함으로써,
본래적 증명책임과 증거제출의무를
체계적으로 준별(峻別)하여 운용한다.40
4단계. 대규모 실증 조사 실시 및 실무 가이드라인 확립
법관, 변호사,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실증 조사를 바탕으로
『민사재판실무제요』상의 증명도 판단 기준을 표준화하여
구체적인 실무 가이드라인을 확립한다.
VII. 결론: 사법 정의와 실질적 권리구제의 조화
한미 민사소송에서 나타나는 증명도의 차이는
단순한 확률 수치의 격차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보통법과 대륙법이 각기 축적해 온 역사적 유산과
소송 절차 구조,
그리고 사법부의 역할관에 관한
철학적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향후 한국 민사증명법의 발전 방향은
‘고도의 개연성’이라는 판례 문언을
기계적으로 폐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도(K-Discovery)의 실질적 확충,
소송 유형에 따른 차등적 증명도의 입법화,
나아가 기존 입증 경감 특칙의 체계적 정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원고의 실질적 권리 구제와
피고의 절차적 방어권 보장이라는
사법의 양대 가치를 균형 있게 실현할 수 있다.
각주 및 참고문헌
1) 이시윤, 『신민사소송법』 (제12판, 박영사, 2018), 534-535면;
Louis Kaplow, Burden of Proof,
121 Yale L.J. 738, 742 (2012).
2) C.M.A. McCauliff,
Burden of Proof: Degrees of Belief, Quanta of Evidence, or Constitutional Guarantees?,
35 Vand. L. Rev. 1293, 1301 (1982).
3)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11다1828 판결;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
4) CACI No. 200
(California Civil Jury Instructions);
4 Leonard B. Sand et al.,
Modern Federal Jury Instructions: Civil
¶ 73-2 (2015).
17) John Leubsdorf,
The Surprising History of the Preponderance Standard of Civil Proof,
67 Fla. L. Rev. 1569, 1578-1586 (2015).
18) Geoffrey P. Miller,
Law, Economics, and the Burden(s) of Proof,
Columbia Law School Faculty Scholarship (2020).
19) In re Winship,
397 U.S. 358, 371-372 (1970)
(Harlan, J., concurring).
20) Louis Kaplow,
Information and the Aim of Adjudication,
127 Harv. L. Rev. 1303, 1315-1322 (2014).
21) 설민수,
「민사·형사 재판에서의 입증의 정도에 대한 비교법적·실증적 접근」,
『인권과정의』 제388호 (2008), 80-104면.
22) Mark Schweizer,
The Civil Standard of Proof—What Is It, Actually?,
20 Int'l J. Evidence & Proof 217, 220-226 (2016).
23) Eyal Zamir & Ilana Ritov,
Loss Aversion, Omission Bias, and the Burden of Proof in Civil Litigation,
21 J. Empirical Legal Stud. 177, 180-185 (2012).
24) Dorothy K. Kagehiro,
Defining the Standard of Proof in Jury Instructions,
1 Psychol. Sci. 194, 195-197 (1990).
25) Judicial Council of California Civil Jury Instructions
(CACI) No. 200 (Matthew Bender, 2026).
26) C.M.A. McCauliff,
Burden of Proof: Degrees of Belief, Quanta of Evidence, or Constitutional Guarantees?,
35 Vand. L. Rev. 1293, 1325 (1982).
27) Michael D. Cicchini & Lawrence T. White,
Testing the Impact of Criminal Jury Instructions on Verdicts: A Conceptual Replication,
117 Colum. L. Rev. Online 22, 28-34 (2017).
28) 김차동, 앞의 논문(2019), 88-96면.
29) Kevin M. Clermont,
Procedure's Magical Number Three: Psychological Bases for Standards of Decision,
72 Cornell L. Rev. 1115, 1141-1148 (1987).
30) 설민수, 앞의 논문(2008), 97-100면.
31) 김차동, 앞의 논문(2019), 98-102면.
32) 박혜진,
「비교법적,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본 민사소송의 증명도」,
『인권과정의』 제494호 (2020), 148-170면.
33) 법무법인(유) 광장,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최초 도입:
기술 침해 관련 소송, 새로운 전환점을 맞다」
(2026. 1. 30.).
34) 법률신문,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과
디지털포렌식 역량 기반 대응 전략」
(2026. 2. 19.).
35) Michele Taruffo,
Rethinking the Standards of Proof,
51 Am. J. Comp. L. 659, 667-668 (2003).
36)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손해배상 액수의 산정, 2023. 7. 11. 개정);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6603 판결.
37) IPDaily,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 상생법으로 첫 시행…
재판부 집행 의지와 조사 전문인력 확충 필요」
(2026. 2. 4.).
38)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2026. 1. 29. 국회 본회의 통과);
지식재산처,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특허법 도입 필요성」
(2025).
39) David L. Schwartz & Christopher B. Seaman,
Standards of Proof in Civil Litigation:
An Experiment from Patent Law,
26 Harv. J.L. & Tech. 429, 435-442 (2013).
40) Dan Simon,
A Third View of the Black Box:
Cognitive Coherence in Legal Decision Making,
71 U. Chi. L. Rev. 511, 516-528 (2004).
DCF·게임이론·AI까지 고민한 기업 IP 가치평가,
그리고 오랜 실무 끝에 다시 생각하게 된 것들
기업의 지식재산(IP) 부서는 오랫동안 예산을 쓰는 부서,
이른바 Cost Center로 인식되어 왔다.
많은 IP 책임자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해 왔다.
특허의 출원·유지 여부를 결정할 때
현금흐름할인법(Discounted Cash Flow, DCF)에 기초한
재무평가 모델을 적용해 보기도 하고,
게임이론이나 설명 가능한 AI를 이용해
특허의 기술적·경제적 기여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해 왔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공부하고 생각했던 것을 정리한 것으로,
그런 노력의 한 흔적이다.
다만 오랜 기간 기업의 IP 실무를 경험하고 나니,
이런 방법들이 생각만큼 현실적인 해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정교한 평가기법을 조직에 도입하면 평가항목과 기준이 생기고,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를 모으고 점수를 매기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작 집중해야 할 핵심 업무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실질적인 효용은 크지 않은 행정과 관리 업무만
늘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 어려운 문제는 미래가 우리가 만든 평가모델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시의 재무평가 기준으로는 경제성이 낮아 보여 포기했던 권리가
몇 년이 지난 뒤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후보로
다시 떠오르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과거의 합리적인 결정이
오히려 더 큰 후회로 돌아온다.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 여러 평가모델과 관리기법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록 조직 안에서 당장 눈에 띄는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좋은 특허를 확보해 제품의 경쟁력과 매출에 기여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그리고 제품 매출만으로 그 가치를 회수하기 어려운 시장에서는
특허 자체를 수익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평생 지식재산 업무에 몸담아 왔지만,
대리인으로 일하던 때를 제외하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기업의 IP 업무란 본래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돕는 일은 즐겁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 제품과 사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런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소개하는 여러 재무모델과 분석기법을
기업 IP 관리의 완성된 해법이나 현실적인 정답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Cost Center라는 오래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IP 실무자가 얼마나 많은 방법을 고민하고 시험해 보았는지,
그 과정의 한 기록으로 읽어 주었으면 한다.
1. 특허를 투자자산으로 바라보는 시도
기업에서 특허를 관리하다 보면 결국 매우 현실적인 질문과 만난다.
“특허를 출원하고 유지하는 데 쓰는 예산은
과연 그만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
특허를 단순한 법적 권리가 아니라 하나의 투자자산으로 본다면,
출원 여부도 결국 투자 의사결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얼마를 투입하고, 그 권리가 어느 정도의 독점적 이익을 만들며,
얼마 동안 유지되고, 그 과정에서 얼마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흥미로운 모델 가운데 하나가
미국 특허변호사 Nick Beaulieu가 제안한
특허 경제성 분석 방법이다.
2. Nick Beaulieu의 특허 경제성 분석 모델
2.1. 특허의 강도와 시장점유율
Beaulieu 모델의 흥미로운 점은
특허가 확보할 수 있는 독점적 시장점유율을
비교적 단순한 두 변수로 설명하려 한다는 데 있다.
특허의 강도(Strength of Patent):
청구항이 구현 가능한 기술적 실시형태 가운데
얼마나 넓은 범위를 배타적으로 포괄하는지를 본다.
대체 제품 비율(Alternative Products Percentage):
시장에 존재하는 여러 경쟁 설계 가운데
해당 특허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평가한다.
독점 시장점유율
= 특허의 강도 × 대체 제품 비율
예컨대 특허의 강도가 50%이고
대체 제품 비율이 33.3%라면,
계산상 독점 시장점유율은 약 16.5%가 된다.
청구범위가 좁고 경쟁사가 쉽게 회피할 수 있다면
그만큼 특허가 방어하는 시장의 범위도 줄어든다는 발상이다.
2.2. 특허 수명주기와 현금흐름
그다음에는 출원비용, 심사 대응비용,
등록료와 유지료를 특허의 수명주기에 따라 배열하고,
그 특허로 얻을 수 있는 미래 현금흐름과 비교한다.
시장수요가 일정한 경우,
기술이 빠르게 진부화하는 경우,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경우 등을 달리 가정하면
특허의 경제성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델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점도 있다.
특허는 등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존속기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기술이 진부화하고 사업적 가치가 사라져
특허가 만들어 내는 가치보다 유지비용이 더 커진다면,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자본 배분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실제 특허 포트폴리오가
이 정도로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3. 기업 실무에서 드러나는 다섯 가지 한계
3.1. 권리를 행사하는 비용
특허의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는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라이선스 협상에서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때 나타난다.
그러나 바로 그 단계에서 발생하는
소송과 무효절차의 비용은
출원·등록·유지 비용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따라서 특허의 미래 현금흐름을 계산하면서
침해소송이나 무효심판의 발생 가능성과
그에 따른 비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면
가치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다.
3.2. 특허는 확률적 자산이다
출원했다고 모두 등록되는 것은 아니다.
등록되었다고 언제까지나 그 권리범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심사 단계에서는 거절될 수 있고,
등록 뒤에는 무효심판이나 소송에서
권리 전체 또는 일부가 사라질 수 있다.
특허는 본질적으로 상당한 불확실성을 지닌
확률적 자산(Probabilistic Asset)이다.
따라서 특허의 가치를 재무적으로 평가한다면
등록 성공 가능성과 사후 무효 위험 역시
어떤 형태로든 반영할 필요가 있다.
3.3. 복합제품에서 특허 한 건의 몫은 얼마인가
스마트폰, 반도체, 자동차처럼
수많은 기술이 결합된 제품에서는
하나의 특허가 제품 전체의 매출을 만들어 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완제품 매출 전체를 개별 특허의 가치로 귀속시키는 대신,
그 특허가 제품의 기능이나 경쟁력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이른바 기여분 안분(Apportionment)의 문제다.
3.4. 특허비용만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수익률)의 착시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특허출원 비용만이 아니다.
R&D, 금형과 생산설비,
인증과 규제 대응, 마케팅과 판매관리 등
훨씬 큰 비용이 이미 투입되어 있다.
ROInaive
=
특허 독점 제품 매출
÷
특허 출원·유지비용
분모에는 특허비용만 넣고
분자에는 완제품 매출을 넣는다면
ROI가 수천 퍼센트 또는 수만 퍼센트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숫자가 기업 전체의 자본수익성을
그대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5.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전략적 가치
반대 방향의 문제도 있다.
특허의 가치를 직접적인 제품 매출로만 평가하면
기업에서 특허가 수행하는 여러 중요한 역할이 빠진다.
크로스 라이선싱을 통한 로열티 지출 방어
경쟁사의 권리 행사에 대응할 협상력
투자·M&A 과정에서 기술 진입장벽을 설명하는 기능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을 보존하는 기능
특허는 직접 돈을 벌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이 나가는 것을 막고
미래의 선택지를 남겨 둔다.
4. 더 정교한 IP 가치평가를 위한 시도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려면
단순한 DCF(현금흐름할인법, Discounted Cash Flow)보다
훨씬 복잡한 모델이 필요해진다.
나 역시 이런 방향을 오래 고민해 보았다.
다음은 그 과정에서 검토했던 몇 가지 방법이다.
등록과 무효의 위험을 확률로 반영하고,
여러 특허의 기여도를 나누어 보고,
실제 사업화에 들어간 전체 자본을 고려하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까지 가치로 평가해 보려는 시도들이다.
4.1. 위험조정 순현재가치(rNPV)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특허의 등록 가능성, 무효 위험과 분쟁비용을
현금흐름에 함께 반영하는 방법이다.
개념적으로는 특허가 실제로 등록되고,
유효하게 살아남으며,
독점적 현금흐름을 창출할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수식이 복잡해 보이지만, 그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이 특허가 실제로 등록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를 고려한다.
등록되더라도 다시 “무효되지 않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를 반영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특허가 만들어 낼 것으로 예상되는 독점적 현금흐름에서
“특허분쟁이 발생할 가능성 × 그때 예상되는 분쟁비용”을 차감한다.
마지막으로 먼 미래에 발생할 현금흐름일수록
현재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위해 할인율을 적용한다.
이 식이 표현하려는 사고과정
특허의 기대가치
= 등록될 가능성
× 유효하게 살아남을 가능성
× 특허가 만들어 낼 경제적 이익
− 예상되는 분쟁비용
− 특허권 확보비용
여기에 각 연도의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절차가 추가된다.
예를 들어 어떤 특허가 등록될 가능성이 80%이고,
등록 후 유효하게 살아남을 가능성이 75%이며,
어느 해에 특허로 인해 10억 원의 독점적 현금흐름을
얻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자.
분쟁비용을 일단 제외하면
위험을 반영한 기대 현금흐름은 단순하게는
10억 원 × 0.8 × 0.75 = 6억 원이 된다.
여기에 예상 분쟁비용을 차감하고,
다시 할인율을 적용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한다.
일반적인 DCF(현금흐름할인법)가 주로 “앞으로 얼마를 벌 것인가”를 계산한다면,
rNPV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돈을 실제로 벌 수 있는 법적·사업적 상태에 도달하고,
그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까지 생각하려는 시도다.
다만 수식이 정교하다고 해서
계산 결과까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허 가치평가에서는
각 변수에 어떤 데이터를 넣느냐가 더 어려운 문제다.
4.2. 게임이론과 설명 가능한 AI
등록과 무효의 위험을 반영했다고 해도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복합제품에서는 하나의 특허만으로
제품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여러 기술과 특허가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제품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제품이 만들어 낸 가치 가운데
각각의 특허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보아야 할까?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협력적 게임이론(Cooperative Game Theory)의
샤플리 값(Shapley Value)이다.
협력적 게임이론은 여러 참여자가 함께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냈을 때,
그 성과를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어떻게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다룬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함께 사업을 해서 1억 원의 이익을 냈다고 하더라도,
항상 세 사람에게 3분의 1씩 나누는 것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A가 없으면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B는 매출을 크게 높여 주며,
C는 다른 사람으로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면
세 사람의 실질적인 기여도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허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제품에 10개의 특허가 적용되었다고 해서
제품이 만들어 낸 특허가치를
각 특허에 10분의 1씩 똑같이 나누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특허는 제품의 핵심기능을 가능하게 하지만,
어떤 특허는 성능이나 편의성을
조금 개선하는 데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샤플리 값(Shapley Value)은 이러한 경우
각 특허가 전체 가치에
얼마만큼의 추가적인 가치(marginal contribution)를 보탰는가를
따져 그 기여도를 나누는 방법이다.
“이 특허가 추가되기 전과 추가된 후를 비교하면
제품의 가치가 얼마나 증가하는가?”
쉽게 말하면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특허가 어떤 순서로 결합되는가에 따라
각 특허의 추가 기여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샤플리 값은 가능한 여러 결합 순서를 고려하여
각 특허의 추가 기여도를 평균한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세 개의 특허가
하나의 제품에 적용되어 있다고 하자.
A는 제품의 핵심기능을 가능하게 하고,
B는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며,
C는 사용편의성을 조금 개선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세 특허가 함께 만들어 낸 특허 관련 가치가 100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무조건 A 33, B 33, C 33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A가 빠졌을 때 제품의 핵심기능 자체가 구현되지 않고,
B가 빠졌을 때 제품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며,
C가 빠져도 제품의 기본적인 작동에는 큰 영향이 없다면
A와 B에 더 큰 기여도가 배분될 수 있다.
샤플리 값의 핵심
“특허가 몇 개 있는가”가 아니라
“각 특허가 전체 가치의 형성에 실제로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져 보자는 데 있다.
이러한 샤플리 값의 사고방식은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XAI)에도 활용된다.
AI가 어떤 결과를 제시했을 때
단순히 결과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입력정보가 그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가 어떤 제품의 시장 성공 가능성을
80%라고 판단했다면,
기술성능, 가격경쟁력, 브랜드 등 각각의 요소가
그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특허 분석에도 비슷한 접근을 적용할 수 있다.
개별 특허의 청구범위, 제품기능과의 관련성, 인용관계,
기술적 중요성, 다른 특허와의 연결성 등을 분석하여
각 특허가 전체 포트폴리오나 제품의 기술적 가치 형성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를 실제 특허 포트폴리오 분석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체 특허가치의 상한을 정한다.
완제품의 매출이나 이익 전체를 특허가치라고 보지 않고,
그중 특허기술에 귀속시킬 수 있는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정한다.
제품을 주요 모듈이나 기술군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착즙기라면 투입부, 절삭·압착부, 스크루,
필터, 구동부, 세척구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특허가 어느 기능이나 기술에 기여하는지 살펴본다.
해당 특허가 없을 경우 제품의 기능이나 경쟁력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평가한다.
특허 사이의 상대적 기여도를 분석한다.
여러 특허가 함께 적용되었을 때 각각이 추가하는 가치를 비교하고,
샤플리 값과 같은 방법으로 전체 특허가치를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때 특허 인용관계, 청구범위, 기술적 연결성 등의 데이터를
보조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제품 전체가 만들어 낸 가치를 특정 특허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없다면,
여러 특허가 함께 만들어 낸 가치 중 이 특허의 몫은 얼마인가?”
협력적 게임이론과 샤플리 값은
이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도구다.
다만 여기에도 중요한 한계가 있다.
샤플리 값을 계산하려면
각 특허가 만들어 내는 추가적인 가치를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특허를 제외했을 때 제품가치가 정확히 얼마 감소하는가”를
객관적인 숫자로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특허 인용횟수나 AI 분석점수가 높다고 해서
그 자체가 곧바로 경제적 기여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샤플리 값이나 XAI를 이용한 결과는
개별 특허의 객관적인 시장가치 그 자체라기보다,
여러 특허 사이의 상대적 기여도를 구조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보조적인 분석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계산이 정교해진다고 해서
특허의 객관적인 진실가치가 자동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넣고 어떤 관계에 가중치를 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특히 서로 다른 특허권자가 각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현실에서는
하나의 제품을 하나의 협력게임처럼 놓고
기여도를 정확하게 나누는 것 자체가
상당히 강한 가정을 필요로 한다.
4.3. 총투입자본을 반영한 ROIC(Corrected Return on Invested Capital, 수정 투하자본수익률)
특허별 기여도를 어느 정도 나누었다고 하더라도,
수익률을 계산할 때 무엇을 ‘투자’로 볼 것인지라는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특허 자체의 출원비용이 아니라
실제 상용화에 투입된 전체 자본을 고려하면
평가의 모습은 또 달라진다.
기술과 사업이 이미 사라진 특허를
무조건 존속기간 끝까지 유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재의 매출이나 정량평가만으로
미래 가치까지 단정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Gate 6.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
침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소송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상 배상액, 무효 위험, 소송비용,
사업관계, 라이선싱 가능성과
상대방의 반격수단을 함께 검토한다.
이러한 Gate를 두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Gate를 운영하기 위해 만든 평가표와 점수체계가
어느 순간 판단을 돕는 도구에서
판단 자체를 대신하는 규칙으로 변할 때다.
6. 그리고 다시 현실로
여기까지 오면 특허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체계는
상당히 정교해 보인다.
단순 현금흐름할인법(DCF)에서 출발해
등록과 무효 가능성을 반영한 rNPV로 가고,
복합제품에서는 기여분 안분과 Shapley Value를 검토하며,
총투입자본을 반영한 ROIC와
미래 가능성을 평가하는 Real Options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AI와 데이터 분석을 결합하면
조금 더 정교한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나도 오랫동안 이런 방법을 고민했다.
Cost Center라는 말을 듣는 IP 부서의 일을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경영진에게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실무 경험 끝에 돌아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평가모델이 정교해질수록
그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일이 늘어났다.
평가항목을 정하고,
자료를 모으고,
점수를 부여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했다.
그 과정에서 정작 특허팀이 바라봐야 할
제품과 기술, 경쟁사와 시장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미래가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의 평가표에서는 가치가 낮아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권리가
몇 년 뒤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가장 중요한 무기 후보로 다시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의사결정이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와 기준에 따르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를 알고 난 뒤 돌아보면
후회는 남는다.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
이 말이 점점 더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고 현금흐름할인법(DCF)도 필요 없고,
재무모델도 필요 없으며,
AI 분석도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도구들은
우리가 현재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가정하고 있으며,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를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문제는 모델이 판단을 돕는 도구라는 사실을 잊고
그 숫자를 미래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생긴다.
결국 나는 다시 아주 단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록 조직 안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제품 경쟁력과 매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권리를 확보하는 일.
경쟁사가 쉽게 피해 갈 수 없는 특허를 만드는 일.
제품 사업을 통해 그 가치를 회수할 수 없는 시장에서는
특허를 라이선싱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수익화하는 일.
그리고 필요할 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조용히 준비해 두는 일이다.
특허를 몇 건 출원했는지,
평가점수가 얼마인지,
ROI가 얼마로 계산되는지보다
결국 더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 특허가 실제 제품과 사업에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아마 이 질문에는 완벽한 공식이 없을 것이다.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사업을 알아야 하고,
경쟁사를 보아야 하며,
법률과 시장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평생 지식재산 업무에 몸을 담아 왔지만,
대리인이었던 시절을 제외하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도
그리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
제품과 사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런 일을 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글에서 살펴본 DCF, rNPV, Shapley Value,
설명 가능한 AI, ROIC, Real Options와 Stage-Gate는
나름의 논리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것들을
기업 IP 관리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은 오히려 IP 부서가 Cost Center라는
오래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한 실무자가 얼마나 많은 방법을 고민하고,
공부하고,
시험해 보았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현실적인 해답이라기보다 고민과 노력의 증거로
읽어 주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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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stein Responses to Kyl Questions:
Legal Standards for Patent Damages & Mandatory Apporti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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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do we come from, where do we stand, and where are w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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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O opposition statistics: a five-year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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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O Publishes Annual Compendium of Statistics for 2024.
[7]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
FRAND Economics:
Valuation Methods in Licensing Standard Essential Patents —
The Top-Down Framework.
그러나 의뢰인이 법적 책임을 이해하고 적법하게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상담하는 것이라면 Attorney-Client Privilege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사실을 숨김없이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Privilege의 중요한 기능이다.
두 번째 상황은 다르다.
“이 거래를 들키지 않게 구조화해 주십시오.”
“증거가 남지 않도록 어떤 자료를 없애야 합니까?”
“허위자료를 제출하되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형식을 알려주십시오.”
여기에서는 legal advice가 과거 행위의 평가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crime 또는 fraud를 추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Crime-Fraud Exception은 후자의 상황을 겨냥한다.
불법행위에 관한 상담≠Privilege 없음
3법리 ― 변호사가 범죄를 알지 못해도 Exception이 문제될 수 있다
Crime-Fraud Exception에서 또 하나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다.
“변호사도 범죄에 가담해야 Privilege가 깨지는 것 아닌가?”
Attorney-Client Privilege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볼 수 없다.
핵심은 client가 legal advice 또는 attorney-client communication을 crime이나 fraud를 추진하는 데 이용하려 했는가이다.
변호사가 client의 숨은 목적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Tech 직원이 변호사에게 묻는다.
“이 문서는 법적으로 반드시 보관해야 합니까?”
변호사는 정상적인 법률질문이라고 생각하고 답한다.
하지만 직원의 실제 목적이 변호사의 답변을 이용하여 litigation에 불리한 자료만 골라 없애는 것이었다고 하자.
Crime-Fraud 분석에서는 client의 목적이 중요할 수 있다.
변호사가 선의였다는 이유만으로 Attorney-Client Privilege가 반드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저 communication이 수상합니다.”
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Privilege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Privilege는 중요한 법적 보호이므로 이를 관통하려면 해당 관할이 요구하는 evidentiary showing이 필요하다.
다만 구체적인 최종 기준의 표현은 circuit에 따라 다를 수 있다.
4주요 판례 ― Zolin과 Spalding이 보여주는 두 개의 경계
United States v. Zolin ― 판사가 먼저 몰래 읽어보면 되는가?
Crime-Fraud Exception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상대방은 말한다.
“Privileged communication 안에 crime이나 fraud를 추진하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Privilege를 주장하는 쪽은 말한다.
“그 communication 자체가 Privileged이므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내용을 보지 않고 어떻게 판단할까?
이 문제를 다룬 연방대법원의 대표적인 판례가 United States v. Zolin, 491 U.S. 554 (1989)이다.
연방대법원은 적절한 경우 법원이 allegedly privileged communication을 in camera, 즉 공개하지 않은 채 법관만 검토하여 Crime-Fraud Exception의 적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요구한다고 언제나 판사가 privileged documents를 열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방대법원은 groundless fishing expedition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in camera review를 요청하는 측은 먼저 그 검토를 통해 Crime-Fraud Exception의 적용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될 수 있다고 합리적인 사람이 선의로 믿을 수 있을 정도의 factual basis를 제시해야 한다.
이 threshold는 Privilege를 최종적으로 관통하기 위해 필요한 입증과 동일하지 않다.
Court는 in camera review가 공개 disclosure보다 intrusion이 작으므로 그 문턱도 최종적인 piercing의 문턱보다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Threshold가 충족되더라도 review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료의 양, 문제된 정보의 중요성, review를 통해 exception의 적용을 입증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district court가 재량으로 결정한다.
Zolin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정한 factual basis→법원의 재량에 따른 in camera review→Crime-Fraud Exception 적용 여부 판단
In re Spalding Sports Worldwide ― Inequitable Conduct 주장만으로 충분한가?
특허실무에서는 Federal Circuit의 In re Spalding Sports Worldwide, Inc., 203 F.3d 800 (Fed. Cir. 2000)도 중요하다.
제4편에서 살펴본 바로 그 invention record 사건이다.
Spalding의 invention record에는 발명내용과 prior art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법률서비스를 받기 위해 corporate legal department에 제출되었다.
Federal Circuit은 이를 Attorney-Client Privilege로 보호되는 communication으로 보았다.
상대방은 다시 주장했다.
Invention record에 prior art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prior art가 patent application에서는 빠졌고 USPTO에 숨겨졌다면, 그 invention record는 PTO에 대한 fraud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므로 Crime-Fraud Exception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Federal Circuit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Crime-Fraud Exception을 적용하려면 문제된 communication이 crime 또는 fraud를 in furtherance of 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prima facie showing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Federal Circuit은 특허법상의 inequitable conduct와 common-law fraud 또는 Walker Process fraud를 동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USPTO에 prior art가 제출되지 않았다.”
또는
“Inequitable conduct가 의심된다.”
는 주장만으로 Attorney-Client Privilege가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할 수 없다.
이 구별은 특허실무에서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patent prosecution에서 inequitable conduct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invention disclosure, patentability analysis와 counsel communication을 광범위하게 열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5특허실무 적용 ― 무엇이 Crime-Fraud이고 무엇이 정상적인 Legal Advice인가
A. Design-Around 상담
K-Tech가 counsel에게 묻는다.
“Alpha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제품구조를 변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는 정상적인 legal advice다.
경쟁사의 특허를 분석하고 claim scope 밖으로 제품을 설계하는 design-around는 그 자체로 crime이나 fraud가 아니다.
따라서
“특허를 피하려고 변호사와 상담했다.”
는 사실만으로 Crime-Fraud Exception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B. 과거 침해 가능성을 발견한 뒤 대응방법을 묻는 경우
K-Tech가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판매한 제품이 Alpha 특허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판매중단, redesign, license negotiation 가운데 어떤 대응이 적절합니까?”
이 역시 과거 또는 현재의 법률위험을 평가하고 적법한 대응책을 찾는 legal consultation이다.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Privilege를 없애지는 않는다.
C. Prior Art를 발견하고 Disclosure 의무를 상담하는 경우
Patent prosecution 과정에서 K-Tech의 발명자가 중요한 prior art를 발견했다.
Patent counsel에게 묻는다.
“이 문헌을 USPTO에 제출해야 합니까? Materiality를 어떻게 판단해야 합니까?”
전형적인 legal advice다.
반면 client가 counsel을 이용하여 material information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허위진술을 추진하려 한다면 전혀 다른 분석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Spalding이 보여주듯 prior art omission 또는 inequitable-conduct allegation 자체를 곧바로 Crime-Fraud Exception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D. Litigation Hold 이후 문서삭제를 상담하는 경우
Counsel이 litigation hold를 지시한 뒤 직원이 묻는다.
“개인 mailbox 용량이 부족합니다. 어떤 문서를 삭제해도 됩니까?”
정상적인 document-preservation advice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원이
“Alpha 특허를 알고 있었다는 이메일만 골라 삭제하면 Discovery에서 나오지 않겠죠?”
라고 묻는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Communication의 목적 자체가 potential evidence destruction을 추진하는 데 있었는지 검토해야 한다.
E. 변호사가 속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K-Tech 직원이 중요한 사실을 숨긴 채 counsel에게 조언을 받아 그 조언을 fraud를 추진하는 데 이용했다고 하자.
Counsel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Attorney-Client Privilege에 대한 Crime-Fraud Exception에서는 변호사의 선의만으로 판단이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변호사가 client의 wrongdoing을 알았다는 주장도 증거 없이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Work Product에서는 변호사 자신의 mental impressions와 legal theories가 별도로 강하게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6흔한 오해와 반례
“범죄나 위법행위에 관한 상담은 Privileged가 아니다.”
아니다. 과거의 wrongdoing에 관한 법적 책임과 적법한 대응방법을 상담하는 communication은 보호될 수 있다.
“Client가 과거에 잘못했으면 Crime-Fraud Exception이 적용된다.”
아니다. 핵심은 communication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crime 또는 fraud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는지이다.
“변호사가 범죄를 몰랐다면 Privilege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Attorney-Client Privilege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Client가 counsel의 services 또는 communication을 wrongdoing을 추진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적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Crime-Fraud라고 주장하면 판사가 Privileged document부터 읽어볼 수 있다.”
아니다. Zolin은 in camera review 전에 일정한 threshold factual showing을 요구한다. 그 threshold가 충족된 뒤에도 실제 review 여부는 법원의 재량이다.
“In camera review를 하면 Privilege가 waiver된다.”
아니다. Zolin은 법원이 Privilege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in camera로 자료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Privilege를 종료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Inequitable conduct를 주장하면 Patent Counsel의 파일을 열어볼 수 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Spalding은 inequitable conduct와 common-law fraud 등을 구별했고, communication이 crime 또는 fraud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필요한 showing 없이 Crime-Fraud Exception을 인정하지 않았다.
“Prior art가 application에서 빠졌으면 Crime-Fraud다.”
아니다. Prior art omission이라는 사실만으로 communication의 fraudulent purpose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Crime-Fraud Exception이 적용되면 모든 Attorney file이 공개된다.”
아니다. Exception은 문제된 wrongdoing과 충분한 관계가 있는 communication을 중심으로 분석해야 한다. 특히 Work Product, 그중에서도 opinion work product는 별도의 문제다.
7기업 IP팀 체크리스트 ― Privilege를 ‘은폐수단’으로 만들지 않는 10가지 원칙
1
과거의 문제를 counsel에게 숨기지 않는다.
Privilege의 목적은 counsel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사실을 알려 적법한 legal advice를 받는 데 있다.
2
‘어떻게 숨길까’와 ‘어떻게 바로잡을까’를 구별한다.
Compliance, remediation, disclosure, design-around에 관한 advice와 evidence concealment를 위한 advice는 전혀 다른 문제다.
3
Litigation이 예상되면 document preservation을 즉시 관리한다.
불리한 문서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삭제하지 않는다.
4
Patent prosecution에서 불리한 prior art도 counsel에게 정확히 전달한다.
Privilege를 유지하기 위해 counsel에게 material information을 숨기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만들 수 있다.
5
Counsel에게 제공한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허위 또는 선별된 사실을 주고 favorable opinion을 받은 뒤 이를 방패로 사용하는 전략은 매우 위험하다.
6
‘PRIVILEGED’ label을 은폐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Business record나 문제되는 지시사항을 counsel에게 CC하고 Privileged라고 표시한다고 보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7
내부조사와 remedial action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과거 문제를 파악하고 바로잡기 위한 legal investigation인지, 증거를 정리·은폐하기 위한 활동인지 구별되어야 한다.
8
Crime-Fraud allegation이 나오면 바로 모든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Applicable circuit의 substantive standard와 Zolin의 in camera review threshold를 구별하여 검토한다.
9
Inequitable Conduct와 Crime-Fraud Exception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특허사건에서는 특히 Spalding의 구별을 기억한다.
10
Attorney-Client Privilege와 Work Product를 다시 분리하여 검토한다.
Crime-Fraud Exception이 주장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두 보호가 언제나 같은 범위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8연재를 마치며 ― Privilege는 ‘비밀표시’가 아니라 하나의 관리체계다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미국 Discovery에서 왜 Privilege가 중요한가?
10편을 지나오면서 답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Attorney-Client Privilege는 단순히 문서에 PRIVILEGED & CONFIDENTIAL이라고 적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누가 communication했는가.
누가 client인가.
변호사 또는 일정한 범위의 patent practitioner가 어떤 역할로 관여했는가.
Communication의 목적이 legal advice였는가.
Confidentiality가 유지되었는가.
기업 내부에서 누구에게 전달되었는가.
다른 회사와 공유했다면 어떤 common legal interest가 있었는가.
소송을 예상하여 별도로 만든 자료라면 Work-Product Protection이 적용되는가.
그 보호를 스스로 waiver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communication 자체가 crime이나 fraud를 추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가.
Privilege는 문서 한 장의 속성이 아니다.
Legal advice가 생성되고 전달·공유·보관된 뒤 Discovery에서 제출되기까지, 전체 information flow를 관리하는 법적 체계에 가깝다.
한국 기술기업에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미국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하나의 legal issue가 여러 사람과 여러 국가를 거친다.
한국의 연구원이 기술적 사실을 설명한다.
한국 IP팀이 이를 정리한다.
한국 변리사가 국내 특허와 priority application을 검토한다.
미국 patent counsel이 infringement와 validity를 분석한다.
미국 litigation counsel이 Discovery와 trial strategy를 수립한다.
Supplier와 공동 대응할 수도 있다.
Technical expert가 분석에 참여할 수도 있다.
미국 자회사와 본사 경영진에게 legal advice가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한 번의 잘못된 forwarding, 불필요한 recipient 추가, business advice와 legal advice의 혼재, opinion의 전략적 disclosure 또는 careless ESI production만으로도 Privilege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기업 IP팀이 가져야 할 질문은
“이 문서에 Privileged라고 써야 합니까?”
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물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법률적 목적을 위해,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 정보는 앞으로 누구와 공유될 것인가?
이 질문을 communication이 생성되는 순간부터 관리해야 한다.
10편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면
제1편은 Attorney-Client Privilege와 Work Product의 전체 지도를 그렸다.
제2편은 변호사가 communication에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Privilege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counsel이 acting as a lawyer로서 legal advice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제3편은 한국 변리사, U.S. patent agent와 foreign patent practitioner의 communication이 미국 Discovery에서 어떻게 분석될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
제5편은 Upjohn을 통해 corporate client에서 lower-level employee와 counsel 사이의 communication도 보호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6편은 supplier, licensee, 공동대응 회사와 legal advice를 공유할 때 Common-Interest Doctrine이 새로운 Privilege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Privilege의 waiver를 막는 법리라는 점을 확인했다.
제7편은 Hickman v. Taylor와 Rule 26(b)(3)을 통해 Attorney-Client Privilege와 별개의 Work-Product Protection으로 넘어갔다.
제8편은 advice of counsel에 의존하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Attorney-Client Privilege의 waiver와 그 범위를 살펴보았다.
제9편은 Work-Product Waiver가 Attorney-Client Waiver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과 FRE 502, inadvertent disclosure 및 Rule 502(d) order를 다루었다.
그리고 제10편에서는 당사자가 Privilege를 스스로 waiver하지 않았더라도 communication이 future 또는 ongoing crime이나 fraud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보호가 관통될 수 있는 Crime-Fraud Exception을 살펴보았다.
불법행위를 변호사에게 상담하면 Privilege가 생기는가?― Crime-Fraud Exception과 Piercing of Privilege
마지막 편에서 기억할 핵심
Legal advice concerning past wrongdoing can still be privileged.
The crime-fraud exception focuses on communications used to further contemplated or ongoing crime or fraud, not merely communications that mention wrongdoing.
For attorney-client privilege, the attorney need not necessarily know that the client is pursuing an improper purpose.
A mere allegation of crime or fraud does not automatically pierce the privilege.
Under Zolin, in camera review requires a threshold factual showing and remains within the district court’s discretion.
An inequitable-conduct allegation does not by itself establish the crime-fraud exception.
Attorney-client privilege and opinion work product require separate analysis even when crime-fraud is alleged.
United States v. Zolin, 491 U.S. 554 (1989)은 Crime-Fraud Exception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in camera review의 절차적 기준을 제시한 연방대법원의 대표 판결이다. 법원은 allegedly privileged materials를 in camera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상대방의 근거 없는 요구만으로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In camera review를 요청하는 당사자는 먼저 reasonable person이 그 review를 통해 Crime-Fraud Exception의 적용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될 수 있다고 선의로 믿을 수 있을 정도의 factual basis를 제시해야 한다. 그 문턱을 넘더라도 실제 review 여부는 district court의 재량이다.
In re Spalding Sports Worldwide, Inc., 203 F.3d 800 (Fed. Cir. 2000)은 특허실무에서 특히 중요하다. Federal Circuit은 invention record의 Privilege를 인정하는 한편, prior art가 invention record에는 있었지만 patent application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 Crime-Fraud Exception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았다. Communication이 crime 또는 fraud를 in furtherance of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필요한 showing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