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4, 2026

좋은 법조인이라는 말 앞에서 — 다섯 가지 덕목과 남은 시간에 대한 성찰

좋은 법조인이라는 말 앞에서 — 다섯 가지 덕목과 남은 시간에 대한 성찰

좋은 법조인이라는 말 앞에서

양중진 변호사님의 칼럼을 읽고 한참을 멈추었다. 좋은 법조인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에 관한 글이었다. 특별히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겸손, 공감, 경청,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좋은 인격.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고, 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글은 늘 마음을 찌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다시 눈앞에 놓일 때, 그 말들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세월을 따라 배우고 또 배웠음에도, 여전히 몸에 배지 않은 습관들이 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끝과 말투와 표정에까지 내려오지 못한 태도들이 있다. 그래서 좋은 법조인의 덕목을 읽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 된다.


첫 번째 덕목: 겸손 — 지적 태도로서의 겸손

첫 번째 덕목은 겸손이었다. 인간적인 겸손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히 실력에 관한 겸손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다. 법률가나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확신의 언어에 익숙해진다. "이건 이렇습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물론 전문가는 판단해야 하고, 때로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단호함이 곧 독선이어서는 안 된다.

좋은 전문가는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협업이 어려워지는 순간은 대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지가 부족해서다. 다른 의견이 들어올 공간이 없을 때, 토론은 설득이 아니라 방어전이 된다. 반대로 자신의 견해를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관점이 들어온다. 법률문제든, 특허문제든, 사업상 판단이든, 세상일은 대개 단선적이지 않다. 한쪽에서 보면 맞는 말이 다른 쪽에서 보면 위험한 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더 정확한 판단에 이르기 위한 지적 태도다.

두 번째 덕목: 공감 —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눈

두 번째는 공감 능력이다. 이 부분은 특히 법과 분쟁을 다루는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쟁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법률적 답을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이미 마음이 다친 상태로 온다. 억울함, 불안, 분노, 수치심,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에서 전문가를 찾는다. 그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조문과 판례와 승소 가능성만을 말하는 것은 때로 너무 차가운 처방이 될 수 있다.

상담의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먼저 마음의 호흡을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법적 결론보다 먼저 사람을 붙잡아 줄 때가 있다. 사건은 결국 문서와 증거와 법리로 처리되지만, 사건을 가져오는 사람은 감정과 기억과 상처를 가진 인간이다.

좋은 법조인은 사건을 보되 사람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째 덕목: 경청 — 말 뒤에 있는 것을 듣는 기술

세 번째는 경청이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말을 잘한다. 말로 설득하고, 글로 주장하며, 논리로 상대를 압박하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잘 듣는 일이다. 듣는 척하는 것은 쉽지만, 제대로 듣는 것은 어렵다. 사람의 말에는 표면적인 문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두려움과 기대와 망설임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들을 청(聽)' 자가 왕의 귀, 열 개의 눈, 하나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귀만 열어두는 일이 아니다. 눈으로 상대의 표정을 보고, 마음으로 말의 결을 살피며,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일이다. 전문가가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순간, 의뢰인의 말은 잘려 나간다. 그런데 때로는 사건의 핵심이 바로 그 잘려 나간 말 속에 있다. 좋은 경청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사실관계와 쟁점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네 번째 덕목: 스트레스 관리 — 직업윤리의 일부로서의 자기 돌봄

네 번째는 좋은 취미를 통한 스트레스 관리다. 법조인은 타인의 스트레스를 대신 받아주는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 의뢰인의 분노, 상대방의 공격, 법원의 일정, 마감의 압박, 패소의 위험, 책임의 무게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사건 하나하나는 문서철 속에 들어 있지만, 그 문서철마다 누군가의 인생과 돈과 명예와 관계가 걸려 있다. 그 무게를 매일 다루다 보면 마음도 몸도 쉽게 소진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는 사치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지친 사람이 좋은 판단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소진된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오래 견디며 들어주기도 어렵다.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취미도 필요하고, 독서나 음악처럼 마음을 다른 곳에 잠시 머물게 하는 정적인 취미도 필요하다. 결국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이 타인도 오래 도울 수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쉬는 일, 흐려지지 않기 위해 비우는 일도 전문가의 실력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덕목: 인격 —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

다섯 번째는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어렵다. 실력은 공부하면 어느 정도 늘 수 있다. 경력은 시간이 지나면 쌓인다. 그러나 인격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기 쉽고, 작은 성공이 쌓일수록 더 위험해질 때도 있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결국 사람은 사람을 기억한다.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도 기억하지만,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가이다. 말 한마디의 온도, 어려운 순간의 태도, 이익 앞에서의 절제, 불리한 상황에서의 정직함이 한 사람의 이름에 천천히 쌓인다.


좋은 법조인과 좋은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

결국 양중진 변호사님의 글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좋은 법조인과 좋은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인의 전문성은 법률지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겸손하게 판단하고, 아픈 마음을 헤아리며, 온전히 듣고, 자신을 잘 관리하고, 인격적으로 신뢰받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전문성은 사람을 향해 제대로 쓰일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얼마나 겸손했는가. 나는 상대의 말을 정말 들었는가. 나는 사건 뒤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보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짧으면 10년, 길면 20년을 더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남아 있고, 책임져야 할 자리도 있으며, 부딪혀야 할 현실도 적지 않다.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편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래서 더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

앞으로의 시간은 단순히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매일 증명해 가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는 실력과 성취가 먼저 보였다. 더 정확히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된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태도이고, 실력만이 아니라 사람됨이며, 승패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얼굴과 말과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는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가르침을 남은 삶의 습관으로 삼고 싶다. 겸손하려고 애쓰고, 아픈 마음을 먼저 살피고, 말하기 전에 더 듣고, 나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돌보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를 다듬고 싶다. 한 번의 다짐으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반복되는 다짐은 언젠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된다고 믿는다.

오늘 다시 마음에 새긴다. 법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든, 그 곁에서 지식과 책임을 다루는 사람이든, 결국 좋은 전문가가 되는 일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훈련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10년, 혹은 20년의 시간 동안 이 가르침이 머릿속 문장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금은 더 낮고,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세상 속을 살아가고 싶다.

※ 이 글은 양중진 변호사의 칼럼 「좋은 법조인의 다섯 가지 덕목」(법률신문) 을 읽고 쓴 성찰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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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on Being a Good Lawyer: Five Virtues and the Time That Remains

What It Means to Be a Good Lawyer — Five Virtues and the Years That Remain

What It Means to Be a Good Lawyer

I came across a column by Attorney Yang Jung-jin on the five virtues of a good lawyer, and I found myself stopping to sit with it for a long while. None of it was unfamiliar — humility, empathy, listening, managing stress, and being a good person. These are the kinds of things everyone has heard before, the kind of advice that draws easy nods of agreement.

And yet, writing like this has a way of catching you off guard. When words you thought you already knew come back around and land in front of you again, you realize they were never just information — they were always about how you live. No matter how much I've learned over the years, there are still habits that haven't taken root. There are still ways of being that I understand in my head but haven't yet worked their way into my hands, my voice, my expressions. Reading about what makes a good lawyer, then, ends up being an act of reading myself.


Humility: An Intellectual Stance, Not Just a Social Grace

The first virtue was humility — and what stayed with me wasn't the general idea of being modest, but the specific point about humility regarding one's own expertise. When you've spent years working under the label of "lawyer" or "expert," you can slip, almost without noticing, into a habit of certainty. "This is how it is." "That won't work." "My judgment is this." Of course, experts are supposed to make calls. Sometimes you need to be decisive. But decisiveness is not the same thing as being closed off.

A good expert is someone who states their view clearly while still leaving the door open to the possibility of being wrong.

When I think about why collaboration breaks down, it's rarely because someone lacked knowledge. It's usually because there was no room — no space for another perspective to get in. When there's no room for disagreement, discussion stops being persuasion and becomes a defensive standoff. On the other hand, the person who can momentarily set aside their own view tends to be the one who discovers something new. Legal questions, patent disputes, business decisions — the world rarely runs in a straight line. What looks right from one angle can look dangerous from another. That's why humility isn't merely a virtue. It's an intellectual discipline that leads to sharper judgment.

Empathy: Seeing the Person Behind the Case

The second virtue was empathy, and I think it matters especially for those of us who work in law and conflict. People don't come to a lawyer just looking for a legal answer. They come, almost always, already hurt. They arrive with a tangle of emotions — resentment, anxiety, anger, shame, fear — and they're looking for someone to help them sort it out. For someone in that state, leading with statutes, case precedents, and win probability can feel like a cold prescription when what they actually need is a human response first.

What's often most needed in those early moments is something simpler: getting in sync with where someone is emotionally. "That must have been incredibly hard." "It makes sense that you'd feel that way." These things can steady a person in ways that legal conclusions can't. Cases are ultimately resolved through documents, evidence, and legal arguments — but the people who bring those cases are human beings carrying emotion, memory, and wounds.

A good lawyer sees the case clearly — and never loses sight of the person.

Listening: The Craft of Hearing What Isn't Said

The third virtue was listening. Lawyers, generally speaking, are good talkers. We're trained to persuade through speech, argue through writing, and press our case through logic. But being a good talker and being a good listener are very different skills, and the latter is much harder. There's a difference between appearing to listen and actually listening. What people say carries more than the words on the surface — underneath those words are fears, expectations, and hesitations that often matter just as much, or more.

The Chinese character for "listen" — 聽 — is said to be composed of the elements for a king's ear, ten eyes, and one heart. I've heard that explained many times, and it still hits differently each time. Real listening isn't just keeping your ears open. It means watching someone's face, reading the texture of what they're saying, and resisting the urge to jump ahead to your conclusion. The moment an expert decides they already know where things are going, they start cutting people off. And sometimes the heart of a case is hiding in exactly the part of the story that got cut. Good listening isn't just a kindness. It's the most fundamental skill for accurately grasping the facts and the real issues at stake.

Self-Care: Part of Professional Ethics, Not a Perk

The fourth virtue was stress management through meaningful hobbies and personal care. There's a saying that lawyers absorb the stress of other people for a living — and that's not far off. The anger of clients, the attacks from opposing counsel, court deadlines, the pressure of filing windows, the risk of losing, the weight of responsibility — it keeps coming. Every case file is just a folder on your desk, but inside each one is someone's life, their money, their reputation, their relationships. Carrying that, day after day, grinds you down.

That's why I've come to think that managing stress isn't an indulgence — it's part of what it means to practice ethically. A person running on empty doesn't make good decisions for long. A burned-out person can't sustain the kind of attention and presence that clients in pain actually need. You need the kind of hobbies that get you moving — something physical, something that makes you sweat. And you need the quieter ones too — reading, music, whatever lets your mind go somewhere else for a while. Ultimately, the people who take care of themselves are the ones who can keep showing up for others. Resting so you don't collapse, emptying out so you don't cloud over — these are part of what professional competence actually looks like.

Character: What's Still Standing When Everything Else Has Faded

The fifth virtue was simply being a good person. It's the most ordinary thing to say, and probably the hardest to actually do. Skills can be built with study. Experience accumulates with time. But character doesn't grow on its own. If anything, it tends to calcify as the years go by — and a string of small successes can make things more dangerous, not less.

Being a good person doesn't guarantee financial success. The world isn't that tidy. Sometimes the sharpest elbows seem to get the furthest, at least for a while. But over the long run, people remember people. They remember how good you were at your job — but what tends to stick is how you treated them. The warmth or chill in a single sentence. The way you carried yourself in a difficult moment. The restraint you showed when the money was on the table. The honesty you held onto when it cost you something. All of that accumulates slowly into who you are.


A Good Lawyer and a Good Person Are the Same Thing

The essential point of Attorney Yang's column is straightforward: you can't separate being a good lawyer from being a good person. Legal expertise doesn't reach its full potential through knowledge alone. It only becomes what it's supposed to be — something genuinely useful to people — when it's paired with humility, compassion, real listening, the discipline of self-care, and a character that others can trust.

Reading this, I found myself turning the questions back on myself. Have I been humble enough? Did I really listen? Did I see the person behind the case, or did I stop at the case? Am I taking care of myself? And most of all — am I actually becoming a better person?

What to Do with the Years That Are Left

There are probably ten to twenty years of hard, meaningful work still ahead of me. There are things left to accomplish, responsibilities I still hold, and realities I'll have to push through. When I consider that the years behind me may now outnumber the ones still to come, there's a pull toward urgency that I know too well. But alongside that urgency, something else comes into focus.

The years ahead aren't just about doing more. They're about proving, every day, what kind of person I'm choosing to be.

When I was younger, I measured myself by results — by how precisely I understood something, how quickly I could reach a conclusion, how good the outcome was. Those things still matter. But time teaches you something else: what endures isn't only the outcomes. It's the disposition behind them. It's not just the skill, but the character of the person who holds it. It's not just the wins and losses, but what kind of face, words, and spirit you brought to the people across from you.

So I want to take these five lessons and make them habits — not just principles I cite. To work at being humble. To check in on the person in front of me before I check on the case. To listen more before I speak. To take care of myself so I don't fall apart. And above everything else, to keep chipping away at becoming someone worth being. People don't change on the strength of a single resolution — but repeated resolutions become habits, and habits eventually become a life. I believe that.

This is what I'm holding onto today. Whether you practice law, or work alongside law, or simply work in a field where knowledge and responsibility come with the territory — becoming a genuinely good professional and becoming a genuinely good person are the same project. And that project isn't finished yet.

For whatever years remain, I hope these lessons stop living in my head and start living in my hands. I want to move through the world a little lower, a little warmer, and a little more solid than I was before.

* This essay was written in response to Attorney Yang Jung-jin's column, "Five Virtues of a Good Lawyer" (Law Time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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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18, 2026

「발명의 본질」 한정해석론: Federal Circuit 법리와 한국 특허법에의 시사점

「발명의 본질」 한정해석론: Federal Circuit 법리와 한국 특허법에의 시사점

「발명의 본질(Essence of the Invention)」 한정해석론:
미국 Federal Circuit·대법원의 법리 전개와 한국 특허법에의 시사점

Ⅰ. 서론 및 문제 제기

특허청구범위 해석(claim construction)의 핵심 긴장은 명세서(specification)를 '해석 보조자료'로 사용하는 행위와 명세서로부터 '한정요소를 도입'하는 행위 사이의 경계선이다. 이 경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가 바로, 명세서에 기재된 기술적 구성이 "발명의 본질(essence of the invention)" 또는 "발명의 핵심"을 이룬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재를 청구항 용어의 정의 내지 한정요소로 끌어올 수 있는가이다.

미국 Federal Circuit은 Phillips v. AWH Corp., 415 F.3d 1303 (Fed. Cir. 2005)(en banc)에서 청구항은 "명세서에 비추어 해석되어야(must be read in view of the specification)" 하지만, 법원은 "명세서로부터 청구항에 한정을 도입하는(reading a limitation from the specification into the claim)" 것을 명시적 정의(lexicography) 또는 권리포기(disavowal)가 없는 한 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하였다.

이 글은 그 원칙의 형성 과정을 핵심 선례와 함께 재구성하고, 이것이 한국 특허법원 실무에 주는 비교법적 시사점을 체계적으로 논한다.


Ⅱ. 미국 법리의 역사적 전개

1. Markman 체계의 확립 (1996)

미국 대법원은 Markman v. Westview Instruments, Inc., 517 U.S. 370 (1996)에서 청구범위 해석을 배심이 아닌 법관의 전속 판단사항(question of law)으로 선언하였다. 이로써 청구범위 해석의 권위 있는 심사기관으로서 법원의 지위가 확립되었다. 동시에, 법관이 청구범위를 자신의 관점에서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위험성도 내재하게 되었다.

2. Phillips 이전 체계: 사전 중심 접근과 "발명의 본질" 관용

Phillips 이전에 Federal Circuit은 Texas Digital Systems, Inc. v. Telegenix, Inc., 308 F.3d 1193 (Fed. Cir. 2002) 노선에서 청구항 용어에 일반 사전의 정의를 우선 부여하고 그 후 명세서로 범위를 좁히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일부 판례는 명세서에서 파악되는 "발명의 본질"을 직접 청구항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접근들이 상호 충돌하면서 청구범위 해석의 일관성 문제가 심각해졌다.

3. Phillips v. AWH Corp. (2005): 전원합의체의 재정립

Phillips v. AWH Corp., 415 F.3d 1303 (Fed. Cir. 2005)(en banc)은 청구범위 해석에 사용할 수 있는 증거의 위계(hierarchy of evidentiary sources)를 명확히 한 전원합의체 결정이다. 법원은 청구항의 문언을 해당 기술분야의 통상의 기술자(PHOSITA) 관점에서 통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시하면서, 출원인은 스스로 용어를 정의하는 자신의 사전 편찬자(lexicographer)가 될 수 있고, 다른 청구항 및 명세서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Phillips의 핵심 기여는 명세서의 우선적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lexicography(명시적 정의)와 clear disavowal(명확한 권리포기)을 청구항 제한해석이 허용되는 대표적·전형적 기준으로 정립한 것이다. 다만 실무에서는 specification의 전체 맥락, embodiment의 일관성, prosecution history를 종합하여 명시적 정의나 권리포기 없이도 제한적 해석을 도출하는 사례가 존재하므로, lexicography/disavowal이 유일한 경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Bryson 판사가 집필한 다수의견은 "명세서에 비추어 청구항을 해석하는 것"과 "명세서의 한정요소를 청구항에 부당하게 도입하는 것" 사이의 구별이 특허법에서 가장 지속적인 해석 난제임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 구별을 내재적 증거(intrinsic evidence)의 종합적 검토를 통해 객관화하려 하였다.


Ⅲ. 핵심 선례 분석

1. SciMed Life Systems, Inc. v. Advanced Cardiovascular Systems, Inc., 242 F.3d 1337 (Fed. Cir. 2001) — 적법한 한정의 전형

SciMed는 관상동맥 혈관성형술에 사용되는 풍선확장 카테터에 관한 세 건의 특허를 보유하였다. 해당 특허들은 guide-wire lumen이 annular 형태의 inflation lumen 내부에서 구동하는 coaxial 구성의 카테터를 개시하였고, 명세서에서는 이 구성이 사전의 dual lumen 구성보다 우수함을 반복적으로 진술하면서 모든 실시예의 기본 구조임을 명시하였다.

"명세서가 특정 특징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경우, 청구항의 문언이 그 특징을 포괄할 만큼 충분히 광범하게 읽힐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특징은 특허 청구범위의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본다."

SciMed 법리가 정당한 한정해석의 사례가 되는 구조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요소 SciMed 사안의 상황
명시적 배제 (Explicit Disclaimer) 명세서가 dual lumen 구조를 명시적으로 열등한 종래기술로 취급
모든 실시예의 통일성 발명의 모든 실시예에 coaxial 구조가 공통 기재
통지 기능 (Notice Function) 경쟁자들이 dual lumen이 특허 범위 밖임을 합리적으로 인식 가능

이 사건은 "발명의 본질이기 때문에 한정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출원인 스스로 대안적 구성을 배제하는 진술을 하였다는 객관적 사실에 의거한 것이다.

2. Retractable Technologies, Inc. v. Becton, Dickinson & Co., 653 F.3d 1296 (Fed. Cir. 2011) — 법원 내부의 지속적 긴장

Retractable Technologies는 주사 후 바늘이 주사기 body 안으로 수축하는 retractable 주사기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였다. 청구항에는 body가 단일 부품이어야 한다는 기재가 없었으나, 명세서에는 외부 구조물이 단일 부품임을 진술하고 선행기술과의 구별 근거로 제시하였다.

Lourie 판사가 집필한 다수의견은 "body"를 one-piece 구조로 제한해석하였다. 그러나 Moore 판사는 Rader 수석판사와 함께 반대의견을 제출하며, 청구범위 해석에서 명세서의 역할에 관한 법원의 규칙 적용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을 표명하였다.

이 사건은 Phillips 이후에도 Federal Circuit 내부에서 두 접근이 충돌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 다수의견 입장: "명세서 전체를 통해 발명의 실질을 파악해야 한다" → one-piece body로 제한
  • 반대의견 입장: "청구항 문언을 넘어 발명의 본질을 이유로 한정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 Phillips 위반

3. In re Jasinski — 전제부(Preamble)와 발명의 본질

In re Jasinski에서 Federal Circuit은 해당 전제부(preamble) 문언이 청구항 전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발명의 요체(essence)를 구성한다고 보아, 이를 한정요소(limiting element)로 취급하였다. 이는 출원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해당 preamble이 청구항 body 및 명세서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발명을 정의한다는 종합적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사건에서도 "발명의 본질"이라는 표현은 독립적 법리가 아니라, 청구항·명세서·심사경과에 대한 총체적 해석의 귀결로서 기능한 것이다. 이는 아래 3단계 판단 프레임에서 설명하는 객관적 표지 요건의 맥락에서만 정당화된다.

4. Teva Pharmaceuticals USA, Inc. v. Sandoz, Inc., 574 U.S. 318 (2015) — 대법원의 제도적 통제

Teva에서 미국 대법원은 청구범위 해석에 대한 항소심 심사 기준을 명확히 하였다.

  • 내재적 증거(특허 청구항·명세서·심사경과)에만 기반한 해석 결론 → 법률문제로서 항소심에서 전면재심사(de novo review)
  • 외부증거(extrinsic evidence)를 참조한 보조적 사실 인정 → 명백한 오류 기준(clear error standard)으로 심사

Teva 판결은 청구범위 해석에 대한 항소심 심사 기준을 정립한 사건으로, "발명의 본질" 개념 자체를 직접 논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재적 증거에 기반한 청구범위 해석을 de novo 심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청구범위 해석이 추상적·주관적 판단이 아닌 내재적 증거에 기초한 객관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따라서 "발명의 본질"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 독립 법리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결론은 Teva로부터 직접 도출되기보다는, Phillips 이후 Federal Circuit의 전체 판례 체계로부터 도출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Ⅳ. 법리의 현재적 구조: 3단계 판단 프레임

위 선례들을 종합하면, 미국 Federal Circuit의 현재 발명의 본질 한정 법리는 다음의 3단계 심사 구조로 정리된다.

3-Step Framework: Limitation via Essence of the Invention
Step 1 — 청구항 문언의 통상적 의미 확정
  • 통상의 기술자(PHOSITA) 관점에서 문언의 통상적 의미 파악
  • 사전, 다른 청구항, 명세서 내 기술 맥락 참조
Step 2 — 명세서에 한정 근거가 존재하는가? (대표 유형)
(A) 명시적 정의(Lexicography): 출원인이 명세서에서 특정 용어를 명시적으로 정의한 경우

(B) 권리포기/명시적 배제(Disavowal/Disclaimer):
  • 특정 구성을 "본 발명"의 필수 요소로 반복·일관 진술
  • 대안적 구성을 명시적으로 열등하거나 배제된 것으로 취급
  • 모든 실시예가 그 구성을 기본 구조로 공통 포함
  • 심사과정에서 그 구성으로 선행기술과 구별하여 권리 취득

※ (A)(B)는 대표적·전형적 유형이며, 실무에서는 specification 전체 맥락·embodiment 일관성·prosecution history를 종합한 결과로 한정이 도출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Step 3 — "발명의 핵심처럼 보인다"는 판단만으로는 불충분
추상적 "본질" 판단 ≠ 한정 근거
명세서가 "발명의 핵심"처럼 기재된 것과 Step 2의 (A)(B) 요건 충족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 프레임의 요체는, 법원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이것이 발명의 본질"이라고 결론 내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세서에서 출원인 스스로 특정 구성에 대한 범위를 제한하거나 포기하겠다는 객관적 표지가 있는 경우에만 그 진술이 청구항 해석의 근거가 된다.


Ⅴ. 한국 법원의 태도와 비교법적 분석

1. 한국 법원의 현행 법리

한국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다.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은 그 문언의 일반적인 의미를 기초로 하면서도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여 그 문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술적 의의를 고찰한 다음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러나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 등 다른 기재에 따라 청구범위를 제한하거나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후3230 판결; 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다222782, 222799 판결 등)

이 공식 법리는 형식적으로 보면 미국 Phillips 법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3단계 구조를 취한다: ① 청구항 문언을 출발점으로 하고, ② 명세서·도면을 참작하여 "기술적 의의"를 고찰하며, ③ 그럼에도 명세서 기재만을 근거로 청구범위를 직접 제한·확장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self-restraint를 판례상 반복 선언한다.

2. 한국 법원의 실제 적용과 미국 법리와의 괴리

실무 차원에서 보면, 한국 법원이 "발명의 설명과 도면 등을 참작하여 기술적 의의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명세서의 발명의 과제·해결수단·작용효과·선행기술과의 차별점 등을 폭넓게 고려하고, 그 결과 청구항 용어의 가능한 의미 중 상대적으로 좁은 쪽을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미국 Federal Circuit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명세서상 "발명의 핵심"으로 읽히는 기재가 청구항 용어 의미 확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만 구체적 판례를 열거하지 않은 개괄적 서술인 만큼, 이는 실무상 체감되는 경향에 대한 비교법적 평가로 이해하여야 하며, 모든 사안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리적 명제로 읽혀서는 안 된다.

비교 항목 미국 Federal Circuit 한국 대법원·특허법원
출발점 청구항 문언의 통상적 의미 청구항 문언의 일반적 의미
명세서 활용 용어 해석의 컨텍스트 기술적 의의 고찰의 자료
한정의 요건 lexicography 또는 disavowal 중심으로 높은 threshold 설정; prosecution history·embodiments도 참작 기술적 의의 고찰 과정에서 과제·효과 폭넓게 참작; 직접 제한·확장은 불허(self-restraint 반복 선언)
"발명의 본질" 개념 독립적 한정 기준 아님; 객관적 표지에 종속 묵시적으로 청구항 해석에 반영될 수 있음
항소심 심사 내재적 증거 해석은 de novo (Teva 2015) 상고이유 법리오해 심사

3. 비교법적 평가 (2차 검증·보완 반영)

한국과 미국의 실질적 차이는 두 가지 축에서 비롯된다. 다만 각 축은 단순한 양분론으로 설명하기보다 아래와 같이 정교화하여 이해하는 것이 법제·판례 구조에 더 부합한다.

첫째, 명세서 기재의 구조적 차이. 한국은 구 특허법·시행규칙과 실무 관행에 의해 발명의 과제·효과를 명세서에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기술분야 → 배경기술 → 발명의 과제 → 해결수단 → 효과 → 실시예"라는 서술 패턴이 거의 정형화되어 있으며, 이는 청구범위 해석에서 기술적 의의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과제·효과 기재가 참작될 여지를 구조적으로 확대한다. 다만 이를 단순히 법정 기재요건만의 문제로 보는 것은 부정확하고, 기술적 과제 중심의 전통적 교육·실무 관행이 제도와 결합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반면 미국은 35 U.S.C. §112(a)에 따라 written description·enablement·best mode 등 엄격한 법정 기재요건이 존재한다. 다만 "발명의 목적·효과"를 별도 항목으로 기재하도록 강제하지는 않아, 실무에서 Field of the invention, Background, Summary, Detailed Description 등 다양한 heading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 결과 명세서의 서술 패턴이 다양하고, 과제·효과 서술이 청구범위 해석에 개입하는 경로가 한국만큼 구조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에는 법정 기재요건이 없다"는 표현은 "목적·효과를 형식적 필수 항목으로 강제하는 요건이 없다"는 의미로 한정해야 하며, §112 자체가 부재한다는 의미로 읽혀서는 안 된다.

둘째, "참작"의 범위 판단. 미국 Federal Circuit은 명세서가 청구범위 용어의 의미를 변경·한정할 수 있는 경우를 lexicography(명시적 정의)clear disavowal(명확한 권리포기) 중심으로 구조화하여, 명세서 참작의 한계를 비교적 명시적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prosecution history, embodiments, 명세서의 기술적 맥락(context of the specification) 등을 종합하여 "합리적" 의미를 도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으며, 특히 기능식 청구항이나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written description·enablement와 결부된 간접적 한정이 빈번하다. 따라서 이원적 틀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실무효과까지 완전히 형식화되어 있다고 보기보다는, 한국보다 specification을 통한 한정에 훨씬 높은 threshold를 설정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 법원은 "용어의 기술적 의의"를 파악하기 위해 발명의 설명, 도면, 과제·효과, 종래기술과의 대비 등을 폭넓게 참작하는 입장을 취하며, 그 과정에서 과제·효과 서술이 청구범위 문언의 가능한 의미범위 중 하나를 선택·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한정 해석에 가까운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 역시 "청구범위를 넘어 명세서로 직접 제한·확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self-restraint를 판례상 반복적으로 선언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결국 과제·효과의 서술이 한정 해석으로 자동 연결된다기보다, "참작의 소재"를 풍부하게 제공함으로써 한정에 근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공간이 미국보다 넓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교한 이해이며, 이는 권리범위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Ⅵ. 한국 법원에 대한 실천적 시사점

위 비교법적 분석으로부터 다음의 다섯 가지 시사점을 도출한다.

① 청구항 문언 중심성의 회복. 미국 Phillips 법리의 핵심 메시지는 "명세서가 청구항의 주인이 아니라 청구항이 권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발명의 과제나 효과는 청구항 문언의 의미를 확정하는 보조 자료로만 기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② "참작"과 "한정도입" 구별 기준의 정교화. 명세서에서의 한정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미국 SciMed 법리의 기준을 참고하여, 출원인이 ① 특정 구성을 발명의 필수요소로 명시적으로 진술하였거나, ② 대안적 구성을 배제하는 명시적 표현을 하였거나, ③ 모든 실시예에 걸쳐 해당 구성이 공통 기재된 경우여야 한다.

③ "발명의 핵심처럼 보인다"는 인상만으로의 한정해석 억제. Retractable Technologies 사건의 Moore 판사 반대의견은 한국 법원에도 유효한 경고를 제공한다. 판사가 명세서를 읽고 "이것이 발명의 핵심"이라는 인상을 받더라도, 그 인상 자체가 청구항을 좁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 인상이 명세서의 어느 구체적 진술로부터 도출되는지, 그 진술이 lexicography 또는 disavowal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분리하여 검토해야 한다.

④ 출원 실무에 대한 경고. 출원인은 "본 발명은 반드시 …", "모든 실시예는 …", "본 발명의 핵심은 …"과 같은 단정적 표현이 장래 권리범위를 좁힐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는 미국 SciMed disavowal 법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⑤ 심사기준의 예측가능성 제고 필요성. Retractable Technologies 사건에서의 Moore 판사 en banc 반대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청구범위 해석에서 명세서를 이용하는 규칙이 예측 불가능하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특허법원도 명세서 참작의 경계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일관되게 정립하여 특허권자와 제3자 모두의 권리범위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Ⅶ. 결론

미국 Federal Circuit은 Phillips 이후 lexicography와 clear disavowal을 청구항 제한해석의 대표적·전형적 기준으로 정립하면서, 추상적 "발명의 본질" 개념만을 근거로 청구항을 제한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출원인이 명세서에서 특정 구성에 관해 스스로 한 명시적 진술(lexicography 또는 disavowal)이 있거나 심사과정에서 그 구성으로 선행기술과 구별하여 권리를 취득한 경우에 한하여 명세서 기재가 청구항의 한정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입장이 이 체계의 핵심이다. Teva 대법원 판결은 "발명의 본질" 법리를 직접 다룬 사건은 아니지만, 내재적 증거에 기반한 청구범위 해석을 de novo 심사 대상으로 함으로써 청구범위 해석의 객관적 통제 구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공식 법리는 미국 법리와 외형상 유사하며, 판례상 self-restraint도 반복적으로 선언되고 있다. 그러나 구 특허법·시행규칙과 실무 관행에서 비롯된 명세서의 정형화된 구조로 인해, "용어의 기술적 의의 고찰"이라는 명분 아래 발명의 과제·효과가 폭넓게 참작되어 한정해석에 가까운 결과가 도출되는 여지가 미국보다 구조적으로 넓다고 평가된다. 이 점이 권리범위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논쟁의 여지를 남기므로, 미국 SciMed 유형의 명시적 한정 요건(lexicography/disavowal)을 참고 기준으로 삼아 "참작"과 "한정도입" 사이의 경계를 판례를 통해 단계적으로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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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14, 2026

발명자권은 자연권 vs. 특허권은 설권적 권리 — 모순처럼 보이는 두 명제에 대하여

발명자권은 자연권이고 특허권은 설권적 권리이다 — 모순처럼 보이는 두 명제에 대하여

발명자권은 자연권이고 특허권은 설권적 권리이다 — 모순처럼 보이는 두 명제에 대하여

"발명에 대한 권리는 법 제정 이전부터 존재하는 자연권(natural right)이다." 특허법을 다루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명제다. 그런데 곧이어 이런 의문이 따라붙는다. 특허권(patent right)은 출원·심사·등록이라는 국가의 행정처분을 거쳐야 비로소 성립하는 설권적(設權的) 권리, 즉 독일법상 표현으로 Verleihungsakt에 의한 권리다. 법 이전부터 존재하는 권리가 어떻게, 법에 의해 비로소 만들어지는 권리와 같은 것일 수 있는가.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형식상 삼단논법의 옷을 입고 있다. 발명에 대한 권리는 자연권이다(대전제) — 특허권은 설권적 권리다(소전제) — 따라서 특허권은 "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므로 자연권일 수 없고, 결국 자연권이라 불리던 "발명에 대한 권리"의 정체와 그것이 특허권과 맺는 관계는 불분명해진다(결론).

하지만 이 역설은 출발부터 잘못 짜여 있다. "발명에 대한 권리"라는 하나의 표현 속에, 사실은 서로 다른 층위·시점·정당화 근거를 가진 복수의 권리가 뒤섞여 있는데도, 이를 마치 동일한 대상에 대한 두 개의 모순된 술어인 것처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순을 부정하거나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객체·층위·발생 시점·정당화 근거와 제도적 실현형식을 구별하는 것이 된다.

세 개의 층위로 나누어 보면

발명으로부터 특허권에 이르는 과정을 가장 정교하게 명문화한 입법례는 독일 특허법(Patentgesetz)이다. 독일 PatG는 제6조에서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발명자 또는 그 승계인에게 속한다"고 규정하고, 제7조에서 그 권리를 가진 자가 특허부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두 조문을 따라가면, 발명에서 특허권까지의 과정은 개념상 세 개의 층위로 나뉜다.

층위권리 명칭발생 시점성격
1층 발명자권 /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
(Recht auf das Patent, 독일 PatG 제6조 유형)
발명 완성 시 원시적 발생 자연법·노동이론에 근거한 재산권적·인격권적 권리
2층 특허부여 청구권
(Anspruch auf Erteilung des Patents, 독일 PatG 제7조 유형)
출원 시 국가(특허청)에 대한 공법상 절차적 청구권
3층 특허권 (Patent) 등록 시 등록에 의해 비로소 성립하는 대세적(對世的) 독점배타권 — 설권적

이 표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은, 1층과 3층이 "같은 권리를 시점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객체·효력범위·정당화 근거가 서로 다른, 그러나 연속적인 별개의 권리라는 점이다.

1층의 권리는 "이 발명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나는 이를 처분·실시·이전·공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발명자와 발명물 사이의 관계에 관한 권리다. 제3자에 대한 대세적 독점배타력을 본질적 속성으로 요구하지 않으므로, 국가의 등록행위 없이도 관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반면 3층의 특허권은 "모든 제3자에 대하여 실시를 금지할 수 있는" 대세적 권리다. 그리고 "만인에 대한 효력(erga omnes)"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 정의상 법질서 — 즉 국가의 강제력 독점 — 없이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법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가설적 자연상태에서 "모든 사람에 대해 효력을 갖는 권리"라는 관념은 논리적으로 정초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정당화 근거와 제도적 실현형식의 구별

"자연권"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를 가리킬 수 있다. 하나는 권리의 도덕적·철학적 정당화 근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권리의 구체적인 법적 형식과 효력이다. "발명자에게는 자신의 노동·정신의 산물에 대해 우선적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자연법적 정당화는 입법자에게 "특허법이라는 설권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규범적 이유를 제공하는 상위 원리다. 반면 "특허권"은 그러한 정당화에 따라 입법자가 실제로 창설한 효력범위·존속기간·요건·절차를 갖춘 실정법상의 제도적 산물이다.

이렇게 구별하면, "특허권은 설권적이므로 자연권이 아니다"와 "발명자의 권리에는 자연권적 기초가 있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명제가 되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토지에 대한 점유·경작의 이익은 로크적 자연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명제와 "등기부상의 소유권(物權)은 등기라는 설권적 행위를 통해 성립한다"는 명제가 동시에 참이라고 해서 모순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연적 이익과 등기된 물권은 같은 사물(토지)에 관한 것이지만, 층위가 다른 권리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독일 PatG 제6조가 발명자에게 1층의 권리를 원시적으로 귀속시킨다는 것은 법문상의 사실이지만, "그 권리가 자연법·로크적 노동이론에 근거한다"는 설명 자체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후자는 독일 학설이 발명자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원용하는 법철학적 해석이며, 이를 실정법상의 통설적 사실과 같은 차원에 놓고 단언하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

"설권(設權)"은 창설인가, 효력의 부가인가

두 번째 분석축은 "설권적"이라는 표현이 (가) 권리를 무(無)로부터 창설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 이미 존재하는 이익·지위에 "대세적 법적 효력"이라는 특수한 효력을 부가하는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수설적 이해는 (나)에 가깝다. 등록(특허 부여)이라는 설권행위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권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자에게 이미 인정되던 1층의 권리를 심사를 통해 확인하고, 그 권리의 행사형태에 대세적 독점배타력이라는 특수한 법적 효력을 부가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설권성"은 권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권리의 "효력의 종류·강도·범위"를 변화시키는 개념이 된다. "특허권이 설권적이라고 해서 자연권성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행정법·민법 이론에서도 설권적 행위를 "권리의 발생 자체를 가져오는 행위"로 볼 것인지, "기존의 이익·지위에 공적 효력을 부여하는 행위"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해석의 문제로 남아 있다. 특허법 영역에서도 "발명은 사실행위로 이미 존재하고, 등록은 그것을 법적으로 보호되는 객체로 구성하는 행위"라는 견해와, "특허권은 등록이 있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더 강한 설권설이 병존한다. 이 글이 택하는 입장은 전자, 즉 "이미 발명자에게 귀속된 권리에 대세적 독점효력을 부가하는 행위"라는 온건한 설권 이해다.

1층에서 3층으로의 "이행" — 자연권성은 어디까지 승계되는가

세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1층·2층을 거쳐 3층(등록된 특허권)이 성립한 이후, 그 권리가 1층의 자연권적 성격을 어디까지 "승계"하는가이다. 이는 추상적인 사변이 아니다. 비교법적으로 —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판례에서 — 현재진행형의 실제 법적 쟁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비교법의 창: 독일, 프랑스, 미국

독일은 PatG 제6조와 제7조를 통해 1층(발명자권)과 2층(특허부여 청구권)을 조문상 명시적으로 구분한다. 이 구조의 함의는, 1층의 권리에 (학설상) 자연법·노동이론에 근거한 재산권적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자연권적 정당화(1층)와 설권적 실현형식(3층) 사이의 "이행"을 입법적으로 매개한다는 점이다. 즉 독일식 해법은 "1층은 자연권적 기초를 갖고, 3층은 설권적"이라는 층위 구분을 법체계 안에 녹여 넣음으로써,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가져올 수 있는 논리적 긴장을 사전에 흡수한다.

프랑스의 흐름은 이 긴장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보여준다. 1791년 특허법은 제1조에서 "모든 새로운 발견은 그 저자의 재산이다"라고 선언하며, 1층의 권리를 인권선언적 차원의 자연권·소유권으로 정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동법조차 발명자에게 5·10·15년 중 선택 가능한 기간이 제한된 독점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자연권이라면 영속해야 할 것을 기간으로 제한한다"는 긴장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1844년 법에 이르러서는 1층의 자연권적 선언 언어가 후퇴하고, 특허를 "법률에 의해 부여되는 권리"로 다루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는 1층의 정당화 근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3층의 제도설계 차원에서 행정·산업정책적 합리성 — 보상이론·공익설 — 이 전면에 배치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1791년→1844년의 이동에 대한 해석은 특허사 개설서들과 큰 틀에서 부합하는 역사적 개관이기는 하나, 구체적 조문이나 입법자의 의도까지 실증한 수준이라기보다는 법철학적 해석에 가깝다는 점은 전제로 두는 것이 안전하다.

미국의 경우는 "1층의 자연권성이 3층까지 승계되는가"라는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노출된 사례다. 미국 헌법 제1조 제8항 8호는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기 위하여" 발명자에게 "제한된 기간 동안의 배타적 권리"를 의회가 보장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 문언의 표면적 형식 — "공익 목적 → 그 수단으로서의 권리부여" — 때문에, "미국 특허제도는 자연권을 전제하지 않는 순수한 공리주의적 설권"이라는 통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조지메이슨대 Adam Mossoff 교수의 수정주의 연구는 이러한 통설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19세기 초 미국 특허법이 자연권 철학의 의미 있는 지도 아래 발전했다는 사실이 통설에 의해 가려져 있다고 본다. 실제로 헌법 IP조항의 실질적 설계자로 평가되는 매디슨은 Federalist 43호에서 저작권·특허를 명백히 "재산권"으로 인정했고, 1792년 논설 "Property"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opinion)에도 재산을 갖는다고 기술했다. 헌법 문언이 "진보의 촉진"이라는 공익적 형식을 택한 것은, 1층의 자연권적 정당화를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권적 재산권의 보호가 곧 공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의 산물로 읽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연방대법원 판례 역시 이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McCormick Harvesting Machine Co. v. Aultman (1898) 판결은, 특허는 토지불하특허(land patent)와 동일한 지위에 있으며, 일단 발급된 특허를 특허청이 스스로 취소하는 것은 적법절차 없이 재산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즉 3층(등록된 특허권)이 성립한 이후에는 1층의 자연권적·재산권적 성격을 그대로 승계하여, 토지소유권에 준하는 헌법적 보호를 받는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2018년 Oil States Energy Services v. Greene's Energy Group 판결의 다수의견(6대 3)은 정반대 방향을 취했다. 특허권은 정부가 부여하는 "공공특허(public franchise)"라는 특수한 형태의 재산권일 뿐이며, 특허청 내 행정심판(IPR)을 통해 등록된 특허를 행정기관이 취소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체계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고서치(Gorsuch) 대법관은 로버츠(Roberts) 대법원장과 함께, McCormick Harvesting 등 19세기 판례를 근거로 "일단 특허가 부여되면 그것은 모든 확정된 권리에 부여되는 헌법적 보호를 받는 사적 재산권이 된다"고 반대했다. 다만 다수의견도 1층의 자연권적 성격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며, "이 결정이 특허는 적법절차나 수용 조항의 목적상 재산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는 한국·독일이 "1층은 자연권적, 3층은 설권적"으로 비교적 분명하게 층위를 나누어 모순을 회피하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 판례는 그 층위 구분의 "경계선" — 1층에서 3층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자연권적 성격이 얼마나 보존되는가 — 에 관한 긴장을 그대로 사법적 쟁송의 형태로 노출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의 판례·문헌 인용은 2차 자료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므로, 실무 서면에 활용할 경우에는 판결문·논문 원문에 대한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짚어 둔다.

결론: 모순이 아니라 층위의 문제

이상을 종합하면, "특허권은 자연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 3층에 한정해서는 — 옳다. 만인에 대한 배타력이라는 효력 자체는 법질서 이전에는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발명에 대한 권리 일체가 자연권이 아니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발명을 완성한 자가 그 발명에 대해 갖는 1층의 권리 — "이 발명은 내가 만든 것이며, 나는 이를 처분·실시·공개·이전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권리 — 는 대세적 배타력을 본질로 요구하지 않으므로, 국가의 등록행위 없이도 발명 완성과 동시에 발명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1층의 권리에 대해서는 자연법·로크적 노동이론에 근거한 자연권적 정당화가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하다.

"모순"은 1층과 3층을 동일한 권리로 혼동한 데서 발생한다. "발명에 대한 권리는 자연권이다"는 명제는 1층에 관한 진술이고, "특허권은 설권적이다"는 명제는 3층에 관한 진술이다. 양자는 객체·효력범위·발생시점이 다른 별개의, 그러나 연속적인 권리에 관한 진술이므로, 이를 동일한 대상에 대한 모순된 진술로 취급할 논리적 근거가 없다.

자연권은 특허권을 "구성"하지 않지만, 특허권을 "정당화"한다. 1층의 자연권적 발명자권은, 입법자가 왜 3층의 특허제도(설권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적 정당화 근거로 기능한다. 반면 3층의 특허권은 그 정당화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적 실현형식이다. 정당화 근거(토대)와 그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적 산물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양자는 인과적·정당화적 관계에 있을 뿐 동일성 관계에 있지 않다.

다만 1층에서 3층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자연권적 성격이 어디까지 보존·승계되는지는 — 등록된 특허권이 토지소유권에 준하는 확정된 사적 재산권으로서 사법절차에 의해서만 박탈될 수 있는지(고서치 반대의견형), 아니면 입법적 창설물로서 그 입법자 또는 위임을 받은 행정기관에 의해 재심사·취소될 수 있는지(Oil States 다수의견형) — 비교법적으로도, 그리고 동일한 법제 내부에서도 시대에 따라 의견이 분열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열린 문제다. 독일·한국과 같이 1층을 명문으로 규정하여 자연권적 정당화와 설권적 실현형식을 입법적으로 매개하는 법제에서는 이러한 긴장이 상대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반면, 미국과 같이 헌법 문언상 공익적 프레이밍을 채택하면서도 판례상 1층의 자연권적 전통이 강하게 흐르는 법제에서는, 이 긴장이 Oil States 판결과 같은 형태로 사법부 내부의 정면 대립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 구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개념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직무발명 보상제도 — 1층의 발명자권을 사용자에게 승계시키는 대가로서의 보상 — , 모인출원·정당권리자 구제 — 1층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3층의 절차에서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 , 그리고 특허무효심판·행정심판의 헌법적 성격 — 3층의 권리에 1층의 재산권성이 어느 정도 승계되어 사법절차에 의해서만 박탈 가능한가 — 와 같은 실무상 핵심 쟁점들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구별은 개념 정리를 넘어선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해설 영상: 유튜브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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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7, 2026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Let me start with a question.

Where does technology actually come from?

The easy answers come quickly. Technology comes from research labs. From brilliant inventors. From massive R&D budgets. All of that is true. But history offers a different angle — one that tends to get overlooked.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and incentives.

What I want to argue today is this: the patent system is not primarily a tool for resolving disputes. At its core, it has always been an institutional mechanism for steering the direction of technological civilization — and it's time we started reading it that way again.

Before Inventor Protection — The Patent as a Talent Attraction Device

When Americans think about the origins of patent law, the natural starting point is the U.S. Constitution. Article I, Section 8 grants Congress the power to promote the progress of science and the useful arts by securing to inventors the exclusive right to their discoveries for limited times. It's an elegant formulation — individual rights, technology disclosure, and public benefit woven into a single constitutional clause.

That's a beautiful piece of institutional design. It's the moment where property rights, creative freedom, knowledge sharing, and industrial development all meet in one sentence.

But go back further, and the picture shifts.

Long before the U.S. Constitution, Europe had its own versions of patent-like privileges. Rulers and city councils across fifteenth-century Europe were already granting skilled craftsmen exclusive trading rights, tax exemptions, and residency protections. The Venetian Patent Statute of 1474 and England's Statute of Monopolies in 1624 are the most-cited examples.

Here's what's often missed, though.

Those early systems had a fundamentally different purpose than the patent law we practice today. Modern patent law aims to balance inventor protection, technology disclosure, and market competition. Early patent privileges were far more direct — and far more strategic.

They were designed to import foreign technology.

Put simply: these early systems were talent acquisition tools before they were inventor protection mechanisms. Their explicit goal was to lure skilled craftsmen away from rival cities and states, and to anchor their knowledge — their craft, their trade secrets, their tacit expertise — within a particular industrial ecosystem.

The thinking among rulers and city councils of the era went roughly like this:

"If we can get that craftsman to relocate here, his craft becomes our industry."

So they offered tax exemptions. Residency rights. Exclusive commercial privileges. Special legal status for anyone willing to bring new technology into town.

In today's language, this was technology immigration policy, industrial policy, and intellectual property policy all at once. And the underlying goal was brutally pragmatic. Win the competition. Maintain competitive advantage.

Venice, 1474 — The Institution That Moved People

Nowhere is this dynamic more vivid than in Venice.

In 1453, the Byzantine Empire fell. This wasn't just a geopolitical event — it was a mass displacement of knowledge workers. Craftsmen, artisans, and skilled technicians who had operated under Byzantine protection suddenly needed a new home. Many found their way to Italian city-states, Venice among them.

Of course, Venetian patent law can't be explained by a single historical event. Venice was already locked in fierce commercial competition and had strong incentives to protect its industries and attract new technical talent. The 1474 statute emerged from that layered context.

But here's the point that demands attention.

The Islamic world of that era possessed sophisticated technological civilization — advanced mathematics, astronomy, medicine, agricultural engineering, and mechanical arts — that had profoundly influenced European development. Yet codified systems of invention privileges — formal mechanisms for attracting foreign inventors and granting them time-limited exclusive rights — developed first and most distinctly in the Italian city-states and Western Europe.

This isn't about civilizational superiority. It's about institutional design.

Technical capability, however advanced, does not automatically translate into technological dominance. What converts capability into dominance is the institutional infrastructure for attracting, anchoring, and commercializing that capability. That's what Venice demonstrated.

The 1474 statute was not simply a shield for inventors. It was a magnet for talent from competing territories. It was a mechanism for embedding new knowledge within the city's productive infrastructure. It was, in the most direct sense, a strategic instrument for converting technology into economic advantage.

And it triggered competition. When Venice attracted craftsmen, rival cities responded. When one city offered a privilege, another sharpened its terms. When one jurisdiction granted a monopoly, another engineered a more sophisticated arrangement.

Craftsmen relocated.
Technology spread.
Cities competed.

Through that competitive process, European societies gradually grasped something fundamental: technological innovation is not merely a random event. It can be designed, induced, and directed through institutional architecture.

That insight flowed forward into England's Statute of Monopolies, French and German systems of invention privileges, and ultimately the American constitutional framework. And in the longer arc of history, the industrial revolution's extraordinary technological transformation was underwritten by precisely this kind of institutional competition — states and cities competing to attract the people who carried technical knowledge.

America's Leap — Where Philosophy Met Strategy

The United States took the next step — but it was a more complicated step than it's often presented.

The constitutional patent clause was genuinely philosophically ambitious. It embedded Lockean natural rights thinking, property rights protection, and liberal institutional design directly into the founding document. It didn't just offer a privilege — it recognized a right, and it conditioned that right on social benefit: the promotion of progress.

That's a real achievement in institutional philosophy. But the American patent system was never purely philosophical.

In its early decades, the United States explicitly declined to extend patent protection to foreign inventors. As a technology-importing nation — a fast follower competing against more advanced European industries — America made a deliberate, pragmatic choice: leave room to learn from, adapt, and build on what others had already developed.

This is where patent law reveals its truest character.

The patent system is philosophy. It is also strategy.
It protects the rights of inventors. It is also an industrial policy instrument that nations calibrate according to their own technological position and economic interests.

This is why patent law reform can't be reduced to importing another country's statutory text. The text matters less than the philosophy behind it. The philosophy matters less than the industrial context that shaped it. And the industrial context only makes sense if you know whether the nation in question was, at that moment, a technology leader or a fast follower, an exporter or an importer.

A patent statute is not a collection of provisions. It is an institutional structure that encodes a society's understanding of technology, property, competition, and the public good — in a specific historical moment, for a specific strategic purpose.

The AI and Semiconductor Era — Technology Doesn't Spread on Its Own

Which brings us to today.

We are living through an era of AI and semiconductor competition that has no real peacetime precedent. In critical enabling sectors — EDA tools, process equipment, metrology, advanced packaging — the technology gaps between leading and trailing nations do not close easily.

Why not?

Because the relevant knowledge doesn't live in patents or academic papers. It lives in accumulated tacit expertise, in the judgment of experienced engineers, in supply chain relationships built over decades, in the organizational memory of firms that have run processes thousands of times, and in the shared problem-solving history between equipment makers and their customers.

  • Capital alone doesn't solve this.
  • Expanding R&D budgets alone doesn't solve this.
  • Filing more patents alone doesn't solve this.

What matters is building a structure through which technology actually moves — relocates, takes root, accumulates, and gets commercialized.

A Modern Patent Incentive Package — The Venetian Logic, Updated

So what does the right institutional imagination look like?

I think the starting point is the early history of patent law itself. Just as Venice offered foreign craftsmen privileges and exclusive rights to incentivize relocation, modern states can design patent incentive systems calibrated to attract strategic technology holders and innovative firms.

Consider this scenario: a foreign expert in a critical technical field co-develops an invention with a domestic firm or research institution. Rather than simply issuing a patent, a well-designed system could bundle accelerated examination, tax incentives, settlement support, R&D grants, preferential public procurement access, and standard-essential patent strategy assistance into a single integrated package.

Singapore's IP Hub strategy has done something like this — combining patent registration incentives with favorable tax treatment to attract technology-intensive companies. Taiwan's ITRI built collaborative programs with overseas talent that helped internalize semiconductor process knowledge at the national level. Neither is a perfect template, but both are recognizably Venetian in their underlying logic.

What we need is not a subsidy program. What we need is a modern patent incentive package — a coherent set of institutional instruments that makes it strategically worthwhile for the world's best technical talent to engage here.

But this has to come with conditions. Unconstrained privileges are not the answer. The patent system exists to promote the progress of useful arts — not to manufacture permanent monopolies for specific individuals or firms.

Modern patent incentives must therefore be tied to public-interest obligations: technology transfer requirements, domestic employment commitments, collaborative research, supply chain internalization, follow-on innovation, and knowledge disclosure. The privilege is not the end — it is the means. The end is moving technology and building industrial capability.

And the risks are real. Technology immigration incentives can generate equity concerns for domestic researchers. Short-term technology acquisition can harden into long-term dependency. Venice's insistence on protecting its glassmaking monopoly eventually caused it to wall itself off from the very knowledge exchange that had made it dominant. England's Statute of Monopolies, at its worst, became a rent-extraction tool for well-connected interests, generating the social backlash that produced the statute in the first place.

Good institutional design doesn't only build the incentive architecture. Good institutional design also builds the safeguards that prevent that architecture from being captured or turned against its own purpose.

Conclusion — What Kind of System Will We Build?

In IP practice, we spend most of our time on the dispute layer of patent law. Infringement or not. Validity or not. Damages quantum. All of that matters.

But underneath the dispute layer, there is a different set of questions entirely.

  • What technology are we trying to attract?
  • What talent are we trying to move?
  • What industries are we trying to build?
  • What kind of future are we trying to design — institutionally?

The early patent system moved craftsmen.
The movement of craftsmen changed the fortunes of cities.
And the competition of cities changed the direction of civilizations.

None of that logic has expired.

Technology does not diffuse on its own.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and incentives.

In an era defined by AI competition and semiconductor supply chain fragmentation, the critical question is not simply "how much should we invest?"

The more fundamental question is this:

Why should the world's best technical talent and most innovative firms choose to come here?

If the European city-states of the fifteenth century answered that question by designing privileges and exclusive rights, what is our contemporary equivalent?

I want to go back to the early history of patent law to find that answer — because I think it's there.

The patent system has always been an institution that moves technology. It can be that again.

The only question is this:

How deeply do we understand it — and how boldly are we willing to redesign it?

What do you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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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사람은 제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Technology Follows People, and People Follow Institutions)

기술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사람은 제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기술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사람은 제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여러분께 먼저 하나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술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술은 연구소에서 나온다. 기술은 천재 발명가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기술은 거대한 연구개발 예산에서 나온다. 물론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술은 사람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제도와 인센티브를 따라 움직입니다.

오늘 저는 특허제도를 권리분쟁의 도구가 아니라, 기술문명의 방향을 바꾸는 제도적 장치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발명자 보호 이전에 — 기술 유인 장치로서의 특허

우리가 현대 특허제도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떠올리는 것은 미국의 특허제도입니다. 미국 헌법은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진보를 촉진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대가로 기술을 공개하게 하며, 사회 전체의 기술 진보를 촉진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제도 설계입니다. 발명자의 자유, 재산권, 기술 공개, 산업 발전이 하나의 헌법적 문장 안에서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허제도의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미국 특허제도 이전에도 이미 유럽에는 다양한 형태의 특혜제도와 발명특권이 존재했습니다. 1400년대 유럽의 군주와 지방권력은 특정 기술자에게 독점적 영업권, 면세, 거주권과 같은 특혜를 부여했습니다. 1474년 베니스 특허법, 1624년 영국 독점법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초기의 특허제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특허제도와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오늘날의 특허제도가 발명자의 권리 보호와 기술 공개, 시장경쟁의 조화를 목표로 한다면, 초기 특허제도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국 기술을 들여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 특허제도는 발명자 보호제도이기 전에 기술 유인 장치였습니다. 경쟁 도시와 경쟁 국가의 기술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이 가진 기술을 자기 도시와 자기 산업 안에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수단이었습니다.

당시 군주와 지방의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기술자가 우리 도시로 오면, 저 기술이 우리 산업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 기술자에게 면세를 제공했습니다. 거주권을 주었습니다. 영업독점권을 부여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지위를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기술이민 정책이었고, 산업정책이었으며, 지식재산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매우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경쟁우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

베니스 1474 — 기술자를 움직인 제도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베니스입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이 멸망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제국이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과 기술, 장인과 기술자의 이동을 가속화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동로마 영내에 있던 일부 기술자와 장인들은 새로운 생존과 활동의 공간을 찾아 베니스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베니스의 특허제도는 동로마제국의 멸망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베니스는 이미 그 이전부터 치열한 무역경쟁 속에 있었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새로운 기술을 유치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1474년 베니스 특허법은 바로 그런 복합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수학, 천문학, 의학, 농업기술, 기계장치 등 여러 영역에서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 고도의 기술문명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문화된 발명특권 체계 — 외국 기술자와 발명자를 제도적으로 유인하고 일정 기간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시스템 — 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와 서유럽에서 더 뚜렷하게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문명 간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제도입니다.

탁월한 기술역량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기술패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을 유인하고, 정착시키고,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베니스가 보여준 것은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베니스는 외국 기술자와 장인을 유치하기 위해 특혜와 발명특권을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1474년에는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적 실시권을 부여하는 성문화된 특허법을 마련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히 발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쟁 도시와 경쟁 국가의 기술자를 끌어들이는 장치였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도시 내부에 정착시키는 장치였습니다. 기술을 경제적 우위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경쟁을 불러왔습니다. 베니스가 기술자를 유치하면, 주변 도시들도 대응했습니다. 한 도시가 특혜를 제공하면, 다른 도시는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한 도시가 독점권을 부여하면, 다른 도시는 더 정교한 제도를 설계했습니다.

기술자는 이동했습니다.
기술은 전파되었습니다.
도시는 경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사회는 점차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기술혁신은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만이 아니라는 것. 기술혁신은 제도를 통해 설계하고 유도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이 흐름은 훗날 영국의 독점법, 프랑스와 독일의 발명특권 제도, 그리고 미국의 헌법적 특허제도로 이어집니다. 더 멀리 보면, 유럽이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기술혁신 사회로 전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자와 기술을 움직이게 만든 제도적 경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도약 — 철학과 전략의 결합

그런데 미국은 여기서 또 한 번 도약합니다.

미국은 건국 당시 특허제도를 단순한 산업정책의 도구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자연권 사상, 재산권 보호, 자유주의적 제도 설계를 헌법 수준에서 특허제도에 반영했습니다. 발명자의 창작적 기여를 일정한 재산권으로 보호하되, 그 권리가 사회 전체의 기술 진보를 촉진해야 한다는 균형을 제도화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특허제도 역시 철학적 순수성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건국 초기 미국은 외국 특허를 국내에서 보호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태도도 병행했습니다. 당시 기술 후발국이던 미국은 유럽의 선진기술을 사실상 자유롭게 모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었습니다.

여기서 특허제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특허제도는 철학입니다. 동시에 전략입니다.
특허제도는 발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동시에 국가가 자신의 기술적 위치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해온 산업정책의 장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특허법을 개정하거나 특허정책을 설계할 때, 단순히 어느 나라의 조문 몇 개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그 조문 뒤에 있는 법철학을 보아야 합니다. 그 제도가 탄생한 산업적 맥락을 보아야 합니다. 그 국가가 당시 선도국이었는지, 추격국이었는지, 기술 수출국이었는지, 기술 수입국이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특허법은 조문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특허법은 한 사회가 기술, 자유, 재산, 경쟁, 공익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주는 제도적 구조물입니다.

AI와 반도체 시대 — 기술은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AI와 반도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IP 설계자동화, 생산장치, 설계장비, 계측장비와 같은 기반 분야에서는 기술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분야의 기술은 단순히 논문이나 특허문헌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암묵지, 숙련된 인력, 공급망 신뢰, 표준화 경험, 고객과의 공동개발 경험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돈만 투입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 연구개발비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 특허출원 건수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핵심은 기술이 실제로 이동하고, 정착하고, 축적되고, 사업화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판 특허 인센티브 패키지 — 베니스의 교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제도적 상상력을 가져야 할까요?

저는 그 출발점을 초기 특허제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베니스가 외국 기술자를 유치하기 위해 특혜와 독점권을 제공했듯이, 오늘날의 국가는 전략기술 보유자와 혁신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현대적 형태의 특허 인센티브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략기술 분야의 해외 핵심인력이 국내 기업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발명을 완성한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들에게 단순히 특허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속심사, 세제혜택, 정착지원, 연구개발 보조금, 공공조달 우대, 표준특허 전략지원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IP 허브 전략을 통해 외국 기술기업의 특허 등록과 조세 특례를 결합하여 기술집약기업을 유치해왔습니다. 대만의 ITRI는 해외 핵심 인력과의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공정 기술을 국내에 내재화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현대판 특허 인센티브 패키지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무분별한 특혜는 안 됩니다. 특허제도의 목적은 특정 개인이나 특정 기업에 영구적 독점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기술진보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판 특허 인센티브는 공익적 조건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기술이전, 국내 고용, 공동연구, 공급망 내재화, 후속 혁신, 기술 공개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특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술을 이동시키고 산업역량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물론 위험도 있습니다. 기술이민 인센티브가 국내 연구인력과의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단기적 기술 확보가 장기적 기술 종속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베니스 역시 유리 제조업의 독점을 지키려다 외부와의 기술 교류를 스스로 차단하는 역설에 빠진 측면이 있습니다. 영국의 독점법도 한때 특정 이익집단의 독점 도구로 전락하며 사회적 반발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제도는 유인만 설계하지 않습니다. 좋은 제도는 부작용을 통제하는 안전장치까지 함께 설계합니다.

결론 — 우리는 어떤 제도를 설계할 것인가

특허제도를 우리는 너무 자주 권리분쟁의 도구로만 바라봅니다. 누가 침해했는가. 누가 무효를 주장할 것인가. 손해배상액은 얼마인가.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특허제도의 더 깊은 층위에는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떤 기술을 끌어올 것인가.
  • 우리는 어떤 인재를 움직일 것인가.
  • 우리는 어떤 산업을 정착시킬 것인가.
  • 우리는 어떤 미래를 제도적으로 설계할 것인가.

초기 특허제도는 기술자를 움직였습니다.
기술자의 이동은 도시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경쟁은 문명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저절로 퍼지지 않습니다. 기술은 사람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제도와 인센티브를 따라 움직입니다.

AI와 반도체 기술전쟁의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세계의 기술과 인재가 왜 우리에게 와야 하는가?

과거 유럽의 도시국가들이 기술자를 유치하기 위해 특혜와 독점권을 설계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적 특허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특허제도의 초기 역사에서 다시 출발해보고자 합니다.

특허제도는 과거에도 기술을 움직이는 제도였습니다. 앞으로도 기술을 움직이는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 제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얼마나 대담하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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