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권리.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권리. Show all posts

Sunday, November 23, 2025

특허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프레임에 대하여

한국의 언론은 특허 분쟁을 다룰 때 흔히 감정적이고 피해자 중심의 프레임을 씌워, 기업들이 공격적인 특허 주장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이런 서사는 종종 헤드라인에서 더욱 과장되며, 정당한 특허권 행사조차 ‘삥뜯기’와 다를 바 없는 행동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반면 해외 주요 언론의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르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기술 매체들은 쟁점이 되는 청구항, 관련 기술, 시장에 미치는 영향, 규제 환경 등 사실에 기반해 사건을 분석한다. 분쟁을 선악의 구도로 단순화하기보다는, 기술적·법적 근거에 따라 중립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보도 방식 이상의 문제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타인의 발명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경제 질서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 시장에서는 특허를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사회적 계약’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타인의 발명과 특허를 존중하는 태도는 기술을 상용화하는 기업이 지녀야 할 기본적 준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특허를 여전히 장벽이거나 기회주의적 도구로 오해하는 시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인식은 건전한 혁신 생태계를 지탱하는 문화적 기반을 약화시킨다.


사실 특허의 철학은 매우 단순하다. 발명은 긴 시간의 시도와 오류, 지속적인 투자로 이루어지는 여정이다. 특허는 이 여정에 참여한 사람이 일정 기간 자신의 노력의 결실을 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일 뿐이다. 이는 법이 임의로 부여한 특혜가 아니라, 노력과 성취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자연권적 질서를 반영한다.


만약 누군가의 노동으로 일군 밭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작물을 가져갈 수 있다면, 누가 앞으로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으려 할 것인가. 특허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창작과 발명의 위험을 시장의 참여자들이 일정하게 분담하고 정당하게 보상하는 제도적 구조다.


따라서 특허권의 집행은 협박이나 착취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공개하게 만들고, 지식이 사회로 확산되도록 촉진하는 균형 잡힌 교환이다.


언론과 기업이 이러한 철학을 이해할 때, 유치한 ‘깡패 특허’ 프레임은 사라지고 기술과 법에 기반한 성숙한 공론장이 자리 잡을 것이다.


특허는 혁신을 억제하는 무기가 아니라, 발명을 가능하게 하고 산업을 성장시키는 도구다. 이 단순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혁신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


On How Korean Society Frames Patents


Korean media often casts patent disputes in a distinctly emotional, victim-oriented frame—portraying companies as if they are being “harassed” by aggressive patent assertions. Headlines frequently amplify this narrative, and it is not uncommon to see rightful enforcement of patent rights depicted as little more than a shakedown.


Major foreign outlets take a very different approach.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financial and technology publications analyze these cases through facts: the claims at issue, the underlying technologies, market impact, and the surrounding regulatory environment. Rather than reducing disputes to a moral drama of good and evil, they focus on the legal and technical merits.


This contrast reveals something deeper: Korean society still struggles to regard “paying for someone else’s invention” as a natural and legitimate part of economic order. In most advanced markets, a patent is understood as a social contract—exclusive rights granted for a limited time in exchange for disclosing an idea. Respecting others’ inventions is considered a basic ethical expectation for any company that seeks to commercialize technology.


In Korea, however, patents are still too often viewed as barriers or opportunistic tools. Such misconceptions weaken the cultural foundation necessary for a healthy innovation ecosystem.


The philosophy behind patents is, in fact, straightforward. Invention is a long journey of trial, error, and sustained investment. A patent merely ensures that those who undertake this journey have the first right to harvest the fruits of their labor for a defined period. This is not an arbitrary privilege created by law; it reflects a natural right—the notion that effort and achievement deserve fair reward.


If anyone could freely take the crops from a field cultivated by another’s labor, who would continue planting seeds? Patents address this very problem. They create a system in which the risks of creativity are shared and fairly compensated by participants in the marketplace.


Patent enforcement, therefore, is not coercion or exploitation. It is a balanced exchange—one that encourages disclosure, disseminates technology, and ultimately returns knowledge to society.


When the media and industry embrace this philosophy, the childish “patent bully” narrative will fade, and public debate will mature into one grounded in technology and law rather than caricature.


Patents are not weapons that suppress innovation; they are the very tools that enable it. Reaffirming this simple truth is essential if we are to strengthen our innovation ecosystem for the future.

Wednesday, March 24, 2021

르느와르 작품을 보면서 던진 AI, 데이터, 그리고 창작에 관한 권리에 대한 질문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Renoir, Auguste" [레느와 어귀스트] 가 1883년에 그린 "레옹 클랩피슨 부인 (Madame Léon Clapisson)" (시카고 미술관. Public Domain 지정).

약 130년이 흘러 색이 바래진 이 그림을 미 노스웨스턴대학 화학과 듀인교수팀이 공동작업으로 정밀 분석하여 원래 색을 찾아 복원했다고 합니다.

출처 : 쿨카이드 프랑스 (블로그) <130년전 그려진 르느와르 걸작의 최초 모습> 읽어보기 


화가 르느와르는 여인과 풍경화를 자주 그렸다는데, 거리에서 만난 젊은 여인을 불러 세워 그림을 그리곤 초상화나, 당시 유행하던 모자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르느와르는 특히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엄격한 묘사보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는 색체와 표현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블로그에서 소개한 듀인 교수팀은 르느와르 화가의 화풍과 미술기법, 선호하는 색채와 구도에 관한 데이터를 어느 정도는 확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르느와르가 그린 모든 그림을 분석하여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데이터로 기계학습된 AI 프로그램으로 페인팅 로봇을 이용하여 캔버스에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그 초상화는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일까요? 그 창작성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르느와르는 1919년 사망하였고 당시 그려진 그림들의 저작권은 사후 50년이 적용되므로 (2013년 7월 1일 이후 작품은 사후 70년) 거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이 소멸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따라서 르느와르의 작품은 Public Domain이 되어 다시 창작의 소재나 도구로 자유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듀인 교수팀이 확보한 데이터는 화소 데이터와 점과 선의 벡터 데이터이었을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창작물이 아니고 창작의 소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현재의 AI 프로그램은 스스로 의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설계된 모델과 알고리즘에 의해 과거의 데이터로부터 경험칙을 뽑아 확률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선택을 하는 (가상) 기계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재를 이용하여 새로운 창작을 한 자는 누구일까요? 그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 (유체물)의 소유권은 누구 것이고 그 초상화에 대한 저작물(무체물)의 저작권은 누구의 것일까요? 저작인격권까지 인정해야 할 까요?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습 및 테스트 데이터 세트를 만든 듀인 교수팀은 어떤 객체에 대해 어떤 근거로 어느 기간동안 어떤 권리를 갖을 수 있을까요?

그림 데이터의 AI 학습 모델을 설계하여 그림의 화소 데이터와 모양과 선의 벡터 방향을 선택하도록 설계된 AI 프로그래머는 어떤 객체에 대해 어떤 근거로 어느 기간동안 어떤 권리를 갖을 수 있을까요?

페이팅로봇의 설계자와 제작자는 어떤 객체에 대해 어떤 근거로 어느 기간동안 어떤 권리를 갖을 수 있을까요? 

또 페인팅로봇의 사용자는 어떤 객체에 대해 어떤 근거로 어느 기간동안 어떤 권리를 갖을 수 있을까요? 초상화는 사용자가 르느와르의 창작성을 이용한 업무저작물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사용자가 르느와르의 창작성을 도구로 이용한 저작물일까요?

어떤 권리가 자연권이고 어떤 권리가 특권일까요?

이 문제는 논란이 있더라도 기존의 전통적인 법학이론에 의해서도 풀어갈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안을 좀더 확장해가면 좀더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인상주의(impression) 화가는 르느와르 뿐아니라 피사로, 세잔, 반 고흐, 고갱, 모네, 마네, 드가 등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과 인물을 묘사하여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듀인 교수팀이 인상주의 화가의 모든 그림을 분석하여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데이터로 기계학습된 AI 프로그램에 의해 로봇이 캔버스에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같은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요?

좀더 확장해서 듀인 교수팀이 모든 사람이 그린 그림을 분석하여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데이터로 기계학습된 AI 프로그램에 의해 로봇이 캔버스에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어떨까요?

그렇다고 정책적으로 모든 권리를 특권으로 허락해야 할까요? 그 특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 문제는 기존의 전통적인 법학이론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 하나씩 단계별로 답을 내어놓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체재산권 전체를 다시 설계하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앞서가는 인접 국가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무체 재산권의 철학적 사상과 원리를 먼저 탐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 출근하는 길, 시카고 미술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전시된 그림들을 보다가... 


특허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프레임에 대하여

한국의 언론은 특허 분쟁을 다룰 때 흔히 감정적이고 피해자 중심의 프레임을 씌워, 기업들이 공격적인 특허 주장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이런 서사는 종종 헤드라인에서 더욱 과장되며, 정당한 특허권 행사조차 ‘삥뜯기’와 다를 바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