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허소송에서 Rule 11과 § 285가 묻는 것
미국 특허소송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충분한 기술적·법적 검토 없이 침해를 단정해 소송을 제기하면 상당한 재정적 부담과 제재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법원은 근거 없는 소송을 억제하기 위해 연방민사소송법 FRCP Rule 11에 따른 제재와 특허법 35 U.S.C. § 285에 따른 변호사비 부담 제도를 두고 있다. 특히 미국은 원칙적으로 각 당사자가 자신의 변호사비를 부담하는 'American Rule'을 따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상대방의 변호사비까지 부담하게 되는 § 285의 적용은 특허권자에게 작지 않은 소송 리스크가 된다.
이 글에서는 Rule 11과 § 285의 차이를 살펴보고, 주요 판례를 바탕으로 특허권자가 제소 전에 갖추어야 할 조사 수준과 실무상 유의사항을 정리한다.
특허권자는 배타권을 가진다. 그렇다고 등록특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경쟁사를 상대로 침해소송을 제기할 근거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국 특허소송에서는 그 사이에 확인해야 할 절차가 있다. 특허권자가 피고 제품이나 방법을 실제로 조사했는지, 청구항의 각 구성요소와 대조했는지,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자료를 검토했는지를 법원이 사후에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등록특허는 35 U.S.C. § 282에 따라 유효성 추정(presumption of validity)을 받지만, 그 추정이 특정 제품에 대한 침해주장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
이 단계에서 작동하는 대표적인 규정이 연방민사소송법 Rule 11과 35 U.S.C. § 285다. § 285는 exceptional case에서 법원이 상대방의 합리적인 변호사비(attorney's fees)를 배상하도록 제재 할 수 있다. 다만 두 제도가 보는 시점은 다르다. Rule 11은 소장이나 서면을 제출할 당시 조사와 주장이 합리적이었는지를 묻고, § 285는 사건의 실체적 강도와 소송수행 방식까지 포함해 소송 전체를 평가한다. 제소 당시에는 근거가 있었더라도, 이후 비침해 자료나 불리한 선행기술이 드러났는데도 별다른 재검토 없이 같은 주장을 밀어붙였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제소 전 조사는 직감을 증거와 법리로 바꾸는 과정이다
S. Bravo Systems, Inc. v. Containment Technologies Corp., 96 F.3d 1372 (Fed. Cir. 1996)은 사전조사가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Bravo 측 변호사들은 발명자인 의뢰인이 피고 제품을 보고 침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그런데 기록에는 변호사들이 피고 제품을 특허 청구항과 실제로 비교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침해 판단에는 청구항 해석과 제품에 대한 적용이 필요하므로, 의뢰인의 비전문적 결론에만 의존해서는 합리적인 조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발명자가 제출한 선언서의 일부 내용은 뒤이은 증언에서 스스로 부정됐다. 법원은 Rule 11 제재 신청을 설명 없이 기각한 지방법원 결정을 취소·환송했고, 근거 없는 항소에 대해서는 별도로 Rule 38 제재까지 부과했다.
이 판결이 요구한 것은 방대한 감정서가 아니다. 소송 전에 특허 청구항을 읽고, 문제 되는 제품의 구조나 작동을 확인한 다음, 양자를 실제로 비교했느냐는 것이다. Claim chart(청구항 대비표)가 유용한 까닭도 표의 형식 자체에 있지 않다. 각 limitation에 어떤 제품 사실이 대응하는지를 하나씩 적다 보면, 근거가 비어 있는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빈칸은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확인해야 할 지점이다.
그렇다고 Rule 11이 디스커버리(discovery) 전에 모든 사실을 확보하라는 뜻은 아니다. Cambridge Products, Ltd. v. Penn Nutrients, Inc., 962 F.2d 1048 (Fed. Cir. 1992)에서는 특허가 제조방법과 관련되어 있어 원고가 피고의 실제 공정을 제소 전에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원고는 피고 제품을 입수해 독립적인 화학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침해 가능성을 판단했다. 피고는 전화 한 통이면 제조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연방순회항소법원은 기록상 원고가 "합리적인" 제소 전 조사를 했다고 볼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Bravo와 Cambridge Products를 함께 보면 기준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법원이 묻는 것은 최종적으로 원고의 판단이 맞았느냐가 아니다. 그 시점에 할 수 있었던 조사를 실제로 했느냐가 문제다.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제품을 확보해 분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부 제조공정이나 서버 측 동작처럼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요소라면 최종 제품 분석, 공개 문서,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결과, 기술적 정황을 조합해 추론의 근거를 남겨야 한다.
Octane Fitness가 바꾼 § 285의 기준
§ 285의 현재 기준은 Octane Fitness, LLC v. ICON Health & Fitness, Inc., 572 U.S. 545 (2014)에서 정립됐다. 대법원은 종전의 경직된 이중요건을 버리고, 사건이 법적·사실적 주장 강도 또는 소송수행 방식에서 통상적인 사건보다 두드러지는지를 전체 사정에 따라 판단하도록 했다. 주관적 악의를 반드시 별도로 입증할 필요는 없고, 입증기준도 증거우위(preponderance of the evidence)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같은 날 선고된 Highmark Inc. v. Allcare Health Management System, Inc., 572 U.S. 559 (2014)은 § 285 판단에 대한 항소심 심사기준을 abuse of discretion으로 정리했다. 사건을 직접 진행한 1심 법원의 판단에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연방순회항소법원도 이후 판례에서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우리는 선의로 침해라고 믿었다"는 설명보다 그 믿음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떤 제품을 확인했고 어떤 청구항 해석을 전제로 했는지, 반대 논거를 검토했는지, 소송 중 전제가 무너졌을 때 판단을 다시 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한다.
Rule 11의 safe harbor는 § 285의 면책조항이 아니다
Rothschild Connected Devices Innovations, LLC v. Guardian Protection Services, Inc., 858 F.3d 1383 (Fed. Cir. 2017)은 Rule 11의 safe harbor와 35 U.S.C. § 285가 어떻게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Rule 11(c)(2)는 제재 motion을 법원에 제출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21일의 철회·정정 기회를 주도록 한다. 이 기간 안에 문제 된 주장이나 서면을 철회하면 해당 Rule 11 제재신청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safe harbor는 특정 Rule 11 제재에 관한 절차적 보호일 뿐, 그동안의 제소 전 조사나 소송수행 전체를 정당화하는 면책조항은 아니다.
Rothschild 사건에서 피고 측은 Rule 11 motion과 함께 특허의 유효성을 공격하는 선행기술을 제시했다. Rothschild는 21일 안에 소송을 자진 취하했다. 지방법원은 이러한 철회가 Rule 11이 장려하는 행동이라는 점을 § 285 판단에서도 Rothschild에게 유리하게 보았지만,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두 제도를 그렇게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Rothschild 측은 피고가 제시한 선행기술을 실제로 분석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특허가 유효하다고 선의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요한 반대자료를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특허가 유효하다고 믿었다"는 주관적 확신만으로는 그 판단의 합리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 285는 Rule 11 위반 여부만을 보는 규정이 아니다. 법원은 청구의 법적·사실적 강도, 제소 전 조사, 상대방이 제시한 반대자료에 대한 검토, 소송을 계속한 방식 등 사건 전체를 살펴 exceptional case인지 판단할 수 있다. Rule 11상 독립적인 제재를 받지 않았더라도, 같은 행태가 § 285상 변호사비 판단의 자료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피고가 선행기술을 제시하면 특허권자가 반드시 즉시 소송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료를 실제로 검토하고, 기존의 침해·유효성 판단을 다시 평가했는지다. 검토 결과 합리적인 반론이 있다면 소송을 계속할 수 있다. 반대로 자료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기존 입장만 반복한다면 사후적으로 그 판단의 합리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Rule 11의 21일 safe harbor는 특정 제재를 피할 기회를 줄 뿐, 그 이전의 소송행태를 지워주는 장치는 아니다. 특허권자에게 중요한 것은 21일 안에 철회했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불리한 자료를 접한 뒤 무엇을 검토했고 왜 소송을 계속하거나 철회했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ThermoLife와 Blackbird: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을 외면한 대가
ThermoLife International LLC v. GNC Corp., 922 F.3d 1347 (Fed. Cir. 2019)은 제소 전 제품조사의 기준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피고 Hi-Tech와 Vital의 제품은 공개 시장에서 판매됐고, 라벨을 확인하거나 간단한 시험을 하면 L-arginine 함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피고들은 문제 된 청구항과 관련해 제품의 함량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원고들은 제품이 공개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나 간단한 성분 시험이 가능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런 시험을 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불충분한 제소 전 침해조사만으로도 exceptional-case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수 소송이나 낮은 합의금 자체만으로 exceptional case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실한 사전조사와 결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사건은 한 가지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 285 판단의 직접적인 기초는 원고의 무효 주장 처리 자체가 아니라, 피고 제품에 대한 침해 조사 부족이었다. 실제로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방법원이 원고의 validity position을 근거로 exceptional case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설명했다. 침해가 본안에서 최종 판단되지 않았더라도, 제소 전 침해주장의 토대가 빈약했다는 사실은 독립적인 fee-shifting(비용전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Blackbird Tech LLC v. Health in Motion LLC, 944 F.3d 910 (Fed. Cir. 2019)에서는 판단 범위가 소송수행 방식까지 넓어졌다. 지방법원은 Blackbird의 청구항 해석과 침해주장이 취약했고, 조금만 더 충실하게 조사했더라면 그 약점을 알 수 있었다고 보았다. 원고는 피고의 비침해 주장을 수개월 전부터 알고도 재판 직전에야 청구를 취하하고 covenant not to sue를 제출했다. 예상 방어비용보다 훨씬 낮은 금액의 반복적인 합의 요구, 문서제출 지연과 누락도 함께 문제 됐다. 이와 같은 양상은 특히 특허를 매입해 소송을 제기하는 NPE(Non-Practicing Entity) 소송에서 종종 나타난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약한 침해이론과 비합리적인 소송수행을 종합해 § 285 변호사비 부과를 유지했다.
Blackbird는 "낮은 금액의 합의 제안은 곧 남용"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세운 판결이 아니다. 문제는 취약한 침해논리, 충분하지 않은 사전조사, 피고의 방어비용을 이용한 반복적 합의전략, 문서제출 문제와 뒤늦은 소송 취하가 한꺼번에 나타났다는 데 있었다. § 285는 각각의 행동을 떼어 보기보다 사건 전체를 본다는 Octane Fitness의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필요한 것은 '승소 확신'이 아니라 판단 과정의 기록이다
기업이 미국 특허소송을 준비하면서 남겨야 할 것은 "침해가 확실하다"는 결재문구가 아니다. 나중에 제3자가 보더라도 왜 그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청구항 해석, 제품 확보와 테스트, claim chart, 공개자료와 역설계 결과, 선행기술 조사, 예상되는 비침해·무효 항변, 제소 후 새로 확보한 자료에 대한 재평가가 하나의 기록으로 이어지는 편이 좋다.
서면 침해의견서(infringement opinion)도 마찬가지다. 의견서 자체는 Rule 11이나 § 285의 법정 safe harbor가 아니다. 의미가 있다면 결론 때문이 아니라, 당시 어떤 사실을 확인했고 어떤 쟁점을 의심했으며 왜 그럼에도 제소할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부분까지 지우고 "100% 침해"라고 쓰는 문서보다, 불리한 사정과 남은 의문을 적어 두고도 제소할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 기록이 사후 심사에 훨씬 유용하다. Rothschild와 ThermoLife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주장 자체보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사와 검토의 흔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특허는 강한 권리다. 그 권리로 특정 경쟁사를 법정에 세우려면 조사와 기록이 따라야 한다. Rule 11은 소송을 시작한 순간의 합리성을 묻고, § 285는 그 합리성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유지됐는지를 본다. 미국 특허소송에서 더 곤란한 질문은 단순히 "우리가 틀렸는가"가 아니다.
"틀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왜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자료가 제소 전에 준비되어 있는지가 실제 소송 리스크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