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그 해답 <지식재산건국> ?
역사는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그 해답 <지식재산건국> ?
최근 사건과 흐름을 보면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지나간 세계사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자세로 준비하고,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 조급하지 말자는 생각에 글을 써봅니다.
세계 제1차대전을 거치며 유럽 열강속에 끼어든 일본은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야욕과 오만을 드러냈고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전하면서 농수산국으로 전락할 운명에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었고 다시 냉전(cold war)시대로 들어섰다. 공산주의 대표주자 소련이 동아시아까지 공산진영을 확장시키려고 하자 자본주의 대표주자 미국은 공산세력이 태평양까지 확장되는 위기감을 가졌다. 이에 미국은 일본을 공산세력을 저지시키는 방파제로 선택하고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우리가 1950년부터 3년간 겪은 6.25전쟁은 미국이 생각한 일본의 역할을 시험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고 일본에게는 산업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반일이 마치 친공산주의로 동일시 되는 흐름이 생긴 것도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패전국의 치욕을 딛고 일어선 일본은 산업 부흥에 집중하였고 그 꿈을 이루어 내기 시작하였다. 곧 일본 산업의 부흥은 미국 경제를 압박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지금의 중국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일본의 섬유, 컬러TV, 철강, 자동차, 메모리 분야에서 미국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미국은 다시 일본과 1960년대 섬유전쟁, 1970년대 컬러TV 전쟁과, 철강전쟁, 1980년대 자동차 전쟁과 반도체전쟁을 치루게 된다. 말이 전쟁이지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통상압박이었다.
일본은 전쟁의 대상이 된 상품마다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스스로 규제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일본산 제품의 미국 공습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환율전쟁이라는 돈 흐름의 시스템 차원에서 압박카드를 꺼냈었고, 무역구조개선과 일본시장과 산업 재편을 목표로 1989년 슈퍼 301조를 발동하였다. 일본 내수시장개혁과 산업재편, 투자개방을 강하게 압박하였다. 어떤 경우이든 일본의 경제가 미국 경제에 종속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약 30년간 지속된 미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으로 일본은 경제부국, 최강국이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고, 1990년부터 약 20년 이상 경제가 침체하게 되는 "잃어버린 10년 또는 20년"이 찾아오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거치며 잠시 미국을 능가했던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주저앉게 되었으며, 미국의 압력으로 미래먹거리 첨단미래산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대신 비생산적인 공공부분에 투자를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막대한 정부부채만 증가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전쟁 덕택에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반사이익을 누렸다. 당시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견제하기 위하여 한국을 선택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한국기업이 현재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평정한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손실만 입은 것은 아니었다. 1960년 섬유전쟁을 치루면서 섬유상품의 대미 수출을 자율규제라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반환 받았고, 미국의 무역구조개선 압력에 항복한 대가로 일본산업은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어 일본 경제가 미국경제의 한 축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일본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면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이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국 투자 기업들이 일본에 유리하게 되도록 미국 정부를 압박한다. 그 결과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치루면서 기술과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1990년부터는 "과학기술 창조입국"이라는 목표아래 과학기술기본법을 신설하고 기초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지원 및 확보 정책에 집중하였다. 당시 기술과 지식재산을 구분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특허는 그저 기술개발의 부산물이었고 그 기술을 보호하는 부수적인 관점에 머물렀다. 그래도 기술입국 정책덕분에 10위권 밖에 있던 1996년 지식재산수입이 전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일본 산업과 경제 부흥이 어렵다는 절박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인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이에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식재산 입국"이라는 목표를 설정한다. 일본 행정부 수반이자 입법부 의원의 1인자인 "내각총리"가 직접 나서 지식재산정책과 제도에 대한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을 진두지휘하였다.
이때부터 특허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이 부수적인 수단이 아니고 혁신의 몸통으로 나오게 된다. 보호에서 활용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된다. 그제서야 지식재산인프라(창조→보호→활용의 선순환 사이클인프라)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급히 중소기업보호에서 연구기관 중심으로 넘어가는 정책전환이 있었다. 이점은 아쉬움이 있다. 민간차원의 창업과 스타트업의 발명 보호를 통한 산업혁신과 경제부흥을 추구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정책과 이념에서 차이를 보였고, 발명자의 발명보호를 통한 기술개발촉진과 산업발전이라는 특허제도의 본질에서 벗어난 점이 있었다. 아무튼 당시 나온 것 들이 "지적재산전략본부" 창설, "지적재산전략대강", "지식재산기본법", "지적재산의 창조,보호,활용에 관한 추진계획" 등 국가전략으로서 「지식재산입국」을 제시하는 일련의 조치들이었다. 2005년 동경최고법원에 지적재산고등재판소를 설립하였고, 대리제도 개편도 이루어졌다. 지금의 "아베"가 처음 내각총리가 된 해도 2006년이었다.
덕분이었을까? 일본은 2002년에 이르러 지식재산 수지 흑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내각총리인 "아베"가 정권을 재집권한 이후 "아베노믹스"라 일컫는 일련의 경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일본은 미일무역전쟁의 후폭풍으로 첨단 미래산업의 기반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2000년도 들어선 일본 민간기업들은 첨단미래기술을 개발하여 사업화하는 네덜란드와 같은 해외 연구기관이나 기술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기술 또는 특허를 확보하는 전략을 시행하였다. 기술의 확보와 특허의 확보를 병행하기도 하지만 특허만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확보된 특허를 기반으로 일본내 산업에 투자를 활성화하여 첨단 미래산업의 씨앗(seed)을 심기도 하였다.
최근 미국은 중국 제품의 미국 내수시장 공습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첨단 미래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루고 있다. 또다시 미국은 중국 세력 확장의 저지선으로 일본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일본은 이러한 동아시아의 주변환경과 미국의 지원을 이용하여 다시금 일본 산업과 경제부흥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게 어떤 국가이고 중국에게 어떤 이웃일까? 또 일본에게는 어떤 이웃일까? 그들은 우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 원하는 걸까? 어떻게 이용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 걸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지식재산 "건국">이라는 목표를 내놓고 싶다.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자원 그리고 최고의 자원, "사람" 그리고 "손재주"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호기심". 이를 이용하여 우리도 세계 최강의 부국으로 성장하는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미국이, 일본이, 중국이 우리와 함께면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우리가 아니면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혁신이나 개혁이 아니라 모든 리더와 인재들이 모여 "건국"에 가깝게 새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앞으로 이렇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하나씩 하나씩을 답을 적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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