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신문 연구논단]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의 필요

지난 2월에 블로그를 통해 올린 한국형디스커버리도입에 대한 글을 이시윤 고문님께 보여드리고 고견을 담아 3월19일 법률신문 연구논단에 공동기고하였습니다.


https://www.lawtimes.co.kr/Legal-Info/Research-Forum-View.aspx?serial=2222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

이시윤 (변호사), 이진수 (변리사) 공동기고


I. 들어가는 말

평소부터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터라 대법원에 의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추진 뉴스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증거가 편재된 현대형 소송에서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믿고 있다. 2014.11.30. 아시아경제 인터넷판 기사에 따르면, 소송 계속 여부 및 증거보전의 필요성 유무와 무관하게 오로지 증거 수집을 목적으로 증인신문·검증·감정 등뿐만 아니라 문서 제출 명령까지 독립된 절차로 도입하는 것이며 문서제출명령을 거부할 시 재판부가 신청자 측의 주장이 진실하다고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현행 민사소송법에서 문서제출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문서의 성질·내용·성립 진정에 관한 주장만 진실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자유심증설에서 한발 앞선 것이며, 미국의 디스커버리의 영향을 받아 보전의 필요성과 무관하게 증거조사할 수 있게 한 독일의 독립적 증거조사 제도에도 접근되어 환영하는 바이다.

II. 미국의 재판(trial)전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

1. 디스커버리제도란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제도)는 사실심리(Trial)가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확보하고 이를 상호 공개하여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제도이다. 미국 민사소송에서 보통 디스커버리 기간이 약 1년이 넘게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투입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변론 준비절차에서 증거조사를 하고 쟁점을 정리할 수는 있으나 그나마 보통 2개월 내외 1~2회 정도 열리는 절차에서 소기 목적의 달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2. 증거공개의무(Mandatory Disclosure)등

가. 미국 민사소송에서는 상대방의 요구나 법원의 명령이 없어도 변론기일(trail)전까지 단계별로 스스로 당사자의 주장과 공격방어방법에 관한 증거와 정보를 공개하고 교환여야 한다. 당연정보공개라고도 한다. 이러한 정보의 교환은 법원에 제출할 필요가 없으며 당사자끼리 교환하면 된다. 나아가 소송이 예견되는 시점부터 양 당사자는 분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보존할 의무를 부담한다.

나. 위와 같은 디스커버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입증방법은 증언조서(Deposition), 질문서(Interrogatories), 문서 등의 제출요구(Production of Documents and Entry), 신체 및 정신감정(Physical and Mental Examination), 자백요구서(Requests for Admission)가 있다. 이는 상대방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 하여 요청개시(Request Discovery)라 한다. 2006년 FRCP Rule 34를 개정하여 e-Discovery 로 발전시켰다.

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절차는 우리와 달리 첫째로, 증명책임이 없는 당사자라도 당사자 스스로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개하는 것, 즉 증거공개가 핵심이다. 둘째로, 당사자의 증거공개의무와 함께 이를 위반 시 강력한 제재수단이 따른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증거공개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디스커버리 요청 당사자는 법원에 증거공개를 이행할 것을 명령하는 신청하고 적정한 제재를 가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답변, 문서제출 등을 강제할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나아가 곧 바로 상대방에 대한 제재신청을 할 수도 있다. 이때 불완전하거나 회피하려는 증거공개, 답변 등은 증거공개의무를 불이행한 것으로 보고 제재를 한다.

 증거공개의무이행명령에 불응하거나 해태하면 법원은 i) 디스커버리 요청 당사자가 구하는 사항이 입증된 것으로 간주하는 명령, ii) 불이행 당사자의 주장이나 방어방법의 유지를 불허하거나 관련 주장의 입증을 불인정하는 명령, iii) 불이행 당사자의 답변 전부/일부를 삭제하는 명령, iv) 명령에 응할 때까지 절차를 중지하는 명령, v) 청구의 전부/일부를 기각하는 명령, vi) 불이행당사자에 대한 무변론 판결(default judgment), vii) 형사상 법정모독죄로 처벌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불이행당사자에게 소송비용의 부담 명령도 내린다. 이러한 의무는 소송 당사자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도 존재하며 면책사유없이 Subpoena(소환장)을 따르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로 처벌되기도 한다.

III.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제언

1. 제출명령대상의 확대

우선 현행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제도는 '문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확대하여 '정보'로 넓히고 정보제출명령 대상을 양 당사자의 주장 및 공격방어방법과 관련하여 '알 수 있거나 소지하고 있거나 제어할 수 있는 정보'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개정된 저작권법 제192조의2에서도 이미 "정보의 제공"으로 확대되어 있다. 또한 정보의 제공의 형식은 제한을 두어서는 아니 되고 제출되는 유형물 등의 훼손여부를 검사할 수 있도록 메타데이터까지 원본 제출주의에 의하여야 할 것이다.

정보제출의 형식의 제한이 없어진다면 그동안 장문단답식의 유도신문 때문에 비판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 교호신문제도의 문제점 역시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후술하는 정보보존의무, 정보목록 및 그에 관한 정보제출명령, 정보제출명령에 대한 이행은 소송 당사자가 그 정보를 점유(Possession), 보관(Custody) 또는 지배(Control)하고 있는 것은 물론 소송 당사자가 요구하면 획득할 수 있는 정보, 대리인이 보유하고 있는 문서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당사자의 자회사, 지점, 대리점 등이 보유하고 있는 문서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기업도 예외를 두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 정보보존의무의 명문화

소송이 예견되는 시점부터 법원의 명령이나 당사자의 신청이 없어도 양 당사자는 분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정 또는 삭제하지 않고 원본 그대로 보관할 의무를 부담할 것을 명문화하여야 하고, 그 불이행을 증명방해로 보아 강한 제재가 필요할 것이다 (듀퐁대 코오롱인터스트리 사건 등).

3. 정보 목록 제출 의무 확대

현행 문서목록제출명령제도와 문서제시명령제도만으로는 실체와 필요한증거의 발견이 어렵다. 이에 제출하여야 하는 ‘정보목록’을 ‘주장 및 공격방어방법과 관련한 모든 정보의 목록과 그 소지자와 보관장소에 대한 정보’로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4. 정보제출 예외 불인정 및 예외 인정 심리 강화

개정된 저작권법 제192조의2는 해당 정보가 유죄판결을 받게 할 우려가 있다거나 영업비밀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현행 문서제출명령제도의 예외는 상대적으로 넓은데 이러한 예외조차 극히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현행제도에서 문서제출대상의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우선 법원에 분쟁과 관련되어 신청된 ‘모든 정보’를 제출하게 하고, 이 정보 중 영업비밀과 같이 상대방 당사자가 취득해서는 아니되는 정보가 있는 경우 이를 특정하여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상대방 당사자, 대리인,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특허법 등에서 처럼 비밀유지명령제도의 신설이 바람직하다. 만일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소송대리인이 당사자인 고객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현행법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법원 역시 현행 민사소송법의 비공개심리절차(In Camera)를 통해 정보제출명령대상의 예외 여부의 적극 활용이 바람직할 것이다.

5. 불이행에 대한 제재 강화

위 당사자가 i) 정보보존의무, ii) 목록제출 및 iii) 정보제출에 관한 법원 명령을 불이행하거나 불성실하게 이행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관련 정보 등이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의심이 되는 상대방의 보관장소에서 직접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법원이 명령하고,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불응하거나 증거수집방해에는 상대방의 요증사실이 진실인 것으로 추정하는 이중제재도 필요할 것이다.

제3자도 국민적 사법정의 구현에 협력할 의무가 있을 진대, 이에 불응하는 경우에는 현행법처럼 일률적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소가액에 비례하여 더 강한 과태료를 정할 것을 추천한다. 이와 같은 이중제재와 별도로 당사자 또는 제3자가 법원의 명령에 불응하는 정도가 지극히 심할 경우에는 미국과 같이 법정모욕죄로 처벌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IV. 글을 맺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디스커버리 제도가 필요적 변론준비절차와 맞물려 도입된다면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무기 평등의 기회, 입증평등의 기회를 주어 좀더 사실심이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형 디스커버리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기 힘들더라도 우선 한국형 문서제출명령 등을 강화하다 보면 피해자의 손해 역시 적극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으며 사전 사실관계의 규명으로 판결이 아닌 당사자간의 자발적인 화해가 유도되어 분쟁 종결 시 당사자간에 불만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제1심판결의 상소율을 줄여 민사재판을 제1심 중심주의로 업그레이드(Up-grade)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허소송 등은 점차 글로벌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대형 소송에서 우리나라만 증거수집이 불충실하여 실체적 진실이 발견할 길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기업들 조차도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를 이용하기 보다 미국과 같이 증거조사가 용이한 국가의 제도를 선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손해배상액이 커서만 미국을 찾아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도 1998년 신법을 제정하면서 장고 끝에 미국의 질문서(Interrogatories)와 같은 당사자조회제도와 문서제출의무의 일반의무화 등을 도입하였으나 불성실한 이행에 대한 뚜렷한 제재가 없어서 실효성이 떨어졌다는 것이 자평으로, 우리 도입과정에서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일본 1992년 10월 29일 판결에서는 증명책임이 없는 당사자라도 어느 사실에 대한 관련자료를 전부 갖고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은 그 당사자에게 주장 및 입증을 요구할 수 있고 그 사실에 대한 증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러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사실상 추정된다는 취지의 ‘사안해명의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였다.

현행 법체계의 근본 변경의 전면적인 증거공개의무까지는 못가도 디스커버리의 독일식 시도인 ‘사안해명의무’의 입법화는 고려할 것이다.

지난 3월 10일경 대법원은 ‘하급심충실화사법제도개선위’를 출범시켰다. 구조적인 부실의 우리 증거조사의 선진화, 과학화, 충실화의 계기가 되는 바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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