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문언침해 회피를 위한 네번째 단계
— 실무 부서와의 협업 및 제품의 실질적 변경
들어가며: 법률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선 글들에서는 회피설계(design around)의 개념과 일반 방법론을 살펴보고, 문언침해(literal infringement)의 성립 법리와 이를 회피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을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첫 번째 단계로 용어의 객관적 의미 확정 및 모호성 공략, 두 번째 단계로 명세서와 출원경과(내재적 증거, intrinsic evidence)를 통한 권리범위 축소, 세 번째 단계로 외부 증거 및 특허 법리(§112 정책, written description, essential element, material aspect 등)를 활용한 한정을 다루었다.
이제 네 번째이자 실전의 핵심에 해당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바로 실무 부서와의 협업, 그리고 제품의 실질적 변경(substantial modification of the product)이다. 이 단계는 순수한 법률 분석을 넘어, 기술·마케팅·경영 판단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미국 특허 실무 교재는 이를 12단계, 13단계, 14단계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회피설계는 법률가/특허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Design around is not a task for lawyers alone)."
이 명제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법적으로 안전한 설계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제품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고, 반대로 시장성이 있어도 침해 위험을 제거하지 못하면 회피설계는 실패한다. 세 개 부서의 시각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다.
제12단계: 기술·마케팅 담당자와 협업하여 변경·제거 가능한 구성요소 식별
Step 12
실무 교재는 청구항 해석과 무효 가능성 검토를 마친 뒤, 고객(client)의 기술 담당자 및 마케팅 담당자와 반드시 직접 만나 제품에서 변경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구성요소를 식별하라고 권고한다. 이 회의의 목적은 단 하나다. 가능한 한 많은 청구항 제한 요소(claim limitations)를 회피할 수 있도록, 제품 내 조정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많이 도출하는 것이다.
왜 법률팀/특허팀 단독으로는 안 되는가
법률가/변리사는 특허청구항의 각 한정사항(limitation)이 고객 제품의 어느 구성요소에 대응되는지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성요소를 실제로 바꿀 수 있는지, 바꾸면 성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제조 공정은 가능한지, 시장에서 수용될 수 있는지는 법률가의 판단 영역 밖이다.
엔지니어는 "기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what can be changed)"을 안다. 마케팅 담당자는 "바꿔도 팔릴 수 있는 것(what will still sell)"을 판단한다. 이 두 판단이 교차하는 영역에서만 실질적인 회피설계 옵션이 탄생한다.
부서별 확인 사항
| 담당 부서 | 주요 확인 내용 |
|---|---|
| 기술팀 | 대체 구조의 존재, 제조 가능성, 성능에 대한 영향, 개발 일정 |
| 마케팅팀 | 고객 선호도, 핵심 판매 포인트,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영향 |
| 특허법무팀(IP) | 변경안이 청구항 한정사항을 실제로 회피하는지 여부,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 위험 |
| 경영진 | 변경에 따른 비용, 출시 일정 리스크, 경쟁사 대응 |
실무 포인트: 회의 전에 특허 청구항의 각 한정사항을 구성요소별로 도표화하여 참석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이 특허가 문제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각 구성요소가 어느 한정사항에 대응하는지를 Claim Chart(청구항 대비표) 형태로 시각화하면 기술팀·마케팅팀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ATD v. Lydall이 주는 실무 교훈
자동차 하부용 단열 패드 사건인 ATD v. Lydall은 이 단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해당 특허의 청구항은 금속 포일(foil) 층 사이의 에어 갭(air gap)을 형성하는 embossments(돌기)를 핵심 구성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ATD의 피고 제품은 foil 자체의 돌기 대신 니트/직조 메시(knitted/woven mesh)로 층을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Federal Circuit은 이 구조적 차이를 인정하며 비침해(non-infringement)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동일한 기능을 완전히 다른 구조로 수행하는 설계 변경은, 기술팀이 대안적 구조를 제안해 주어야만 법률팀이 그 비침해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다. 협업이 없으면 이런 변경 아이디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제13단계: 청구항 한정사항별 비침해 성공 가능성의 순위화
Step 13
12단계에서 변경·제거 가능한 구성요소 목록이 나왔다면, 이제 법률팀의 고유한 작업이 시작된다. 바로 각 쟁점 청구항 한정사항(claim limitation in issue)별로 침해 회피 주장이 성공할 가능성을 순위화하는 것이다.
실무 교재는 이 작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고 명시한다. 판례법(case law)과 기술 양쪽을 모두 깊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제품과 청구항이 다르다"는 진술로는 부족하다. 그 차이가 소송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나아가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에서 승소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논거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순위화의 두 가지 축
각 한정사항에 대한 비침해 주장은 두 가지 축에서 평가된다.
- 비침해 주장의 강도(strength of non-infringement argument): 해당 한정사항이 제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법원에서 얼마나 수용될 가능성이 높은가.
- 균등론 위험(risk of doctrine of equivalents): 문언침해(literal infringement)를 피하더라도, 균등론에 의해 침해가 인정될 위험이 얼마나 되는가.
이 두 축을 함께 평가해야 실질적인 회피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비침해 주장이 강하더라도 균등론 위험이 높으면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순위화 실무 예시
아래 표는 실제 사건들에서 도출된 순위화 사례다.
| 청구항 한정사항 (Claim Limitation) | 제품과의 차이점 | 비침해 주장 강도 | 균등론 위험 |
|---|---|---|---|
| point contact embossments (점접촉 돌기) |
제품은 mesh(메시) 구조 사용 | 강함 | 중간 |
| array stored in memory (메모리에 저장된 배열) |
제품은 특징 벡터(feature vector)만 저장 | 강함 | 낮음~중간 |
| control on console (콘솔 위의 조절장치) |
제품은 armrest(팔걸이)에 위치 | 강함 | 낮음 |
| wireless transmitter (무선 송신기) |
제품은 다른 무선 방식 사용 | 약함~중간 | 높음 |
| substantially parallel (실질적으로 평행) |
제품은 약간 기울어진 구조 | 약함 | 높음 |
위 사례에서 보듯, 비침해 주장이 강하면서 균등론 위험도 낮은 한정사항(예: control on console)이 최선의 회피 포인트가 된다. 반면 주장도 약하고 균등론 위험도 높은 한정사항(예: substantially parallel)에 의존하는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Summary Judgment를 기준으로 삼아라
실무 교재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가능하면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에서 승소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비침해 포인트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 기준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실용적인 판단 잣대다.
Summary judgment 수준의 강도란, 사실 관계에 진정한 다툼(genuine dispute of material fact)이 없어 법적으로 비침해가 명백한 경우를 말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비침해 포인트가 있다면, 장기간의 침해소송으로 이어지지 않고 조기에 분쟁을 종결할 수 있다. 반대로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포인트만 있다면, 소송 리스크(litigation risk)를 분명히 고객에게 고지해야 한다.
판례 연결: Gentry Gallery 사건에서 조절장치 위치(control on console)를 청구항에서 제외한 넓은 청구항이 written description 위반으로 무효가 된 것처럼, 청구항 한정사항이 명세서의 핵심 구조와 강하게 연결된 경우일수록 그 한정사항의 결여를 주장하는 비침해 논거가 강해진다. 반면 그 한정사항이 단순히 선호 실시예(preferred embodiment)에만 언급된 수준이라면, 법원이 이를 한정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제14단계: 침해 회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설계안을 고객에게 권고
Step 14
12단계와 13단계의 분석을 통합하여, 마지막으로 고객이 실제로 채택할 수 있는 최선의 회피설계 방안을 권고한다. 이 권고는 법적 분석과 기술·마케팅·경영 판단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적 조언이어야 한다.
권고의 구성 요소
실무적으로 효과적인 권고는 다음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 최우선 회피 포인트 제시: 13단계에서 순위화한 결과 중 비침해 주장이 가장 강하고 균등론 위험이 가장 낮은 한정사항의 회피를 중심으로 권고한다.
- 복수의 한정사항을 동시에 회피하는 설계안 우선: 하나의 구조 변경으로 여러 claim limitation을 동시에 충족하지 않는 설계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 방안이 더 강력한 보호를 제공한다.
- 균등론 위험에 대한 명시적 경고: 문언침해를 피하는 것과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에 의한 침해를 피하는 것은 별개다. 이 점을 혼동하지 않도록 고객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위험 등급 부여: 최종 권고에는 "높음(High) / 중간(Medium) / 낮음(Low)"의 잔존 리스크 등급이 수반되어야 한다.
- 추가 조치 사항 명기: 라이선스 협상, 추가 선행기술 조사, 설계 변경 이후의 후속 FTO(Freedom to Operate) 검토 필요성 등을 포함한다.
권고 유형의 스펙트럼
회피설계 권고는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분석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스펙트럼 위에 위치한다.
| 상황 | 권고 방향 |
|---|---|
| summary judgment 수준의 강한 비침해 포인트 확보 | 해당 설계 변경안 채택 후 출시 권고 (출시 전 재검토 조건부) |
| 비침해 주장은 가능하나 균등론 위험이 중간 수준 | 설계 변경 채택 + 균등론 방어 논거 별도 준비 권고 |
| 복수의 약한 포인트만 존재 | 설계 변경의 조합(combination design around) 또는 라이선스 협상 권고 |
| 문언침해 회피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경우 | 역균등론(reverse doctrine of equivalents) 최후 수단 검토 후 라이선스 또는 특허 무효화 전략 권고 |
비침해 의견서(Non-Infringement Opinion)와의 연계
14단계의 권고는 최종적으로 비침해 의견서(non-infringement opinion letter)로 구체화된다. 이 의견서는 단순한 "침해 아님" 선언이 아니라, 아래의 구조적 요소를 갖춘 법적 문서여야 한다.
- 대상 특허(특허번호, 청구항, 우선일, 존속기간)
- 고객 제품의 구조, 작동 방식, 도면, 사양
- 쟁점 용어별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
- 청구항 대비표(Claim Chart): 각 한정사항별 대응 여부
- 결여 요소(missing limitation): 제품에 존재하지 않는 한정사항
- 문언침해 부재(no literal infringement) 결론
- 균등론 검토: function-way-result 테스트, insubstantial differences 분석
- 보조 방어: 심사경과 제한, §112 정책, written description, 역균등론
- 위험 평가(높음/중간/낮음)
- 최종 권고: 출시, 설계 변경, 라이선스 협상, 추가 조사
"고객이 법률적 결론이 아닌 경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의견서는 법적 분석과 실무적 권고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12~14단계의 통합: 핵심 원칙의 정리
12단계, 13단계, 14단계는 순차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실무 프로세스다. 이를 관통하는 핵심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법률 분석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기술·마케팅 담당자와 직접 회의하여 변경 가능한 구성요소를 도출해야 한다. 법률가 혼자 할 수 없는 단계다.
- 각 청구항 한정사항에 대한 비침해 주장의 성공 가능성은 동일하지 않다. 강도와 균등론 위험을 기준으로 반드시 순위화해야 한다.
- 비침해 주장의 최소 기준은 summary judgment에서 승소할 수 있는 강도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포인트에만 의존하는 것은 과도한 리스크를 수반한다.
- 문언침해 회피가 균등론 위험을 자동으로 제거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항상 별도로 검토·설명해야 한다.
- 최종 권고는 단일 최적안을 제시하되, 복수의 대안과 각각의 잔존 리스크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고객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핵심 명제 요약:
① 회피설계는 법률 분석뿐 아니라 기술·마케팅 판단을 포함한다.
② 비침해 가능성은 claim limitation별로 순위화해야 한다.
③ Summary judgment 가능성은 좋은 실무 기준이다.
④ 역균등론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판례가 매우 적고 적용이 드물어 최후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⑤ 최종 산출물은 고객이 경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비침해 의견서다.
결론: 회피설계는 법률·기술·경영의 교차점에서 완성된다
문언침해 회피를 위한 네 번째 단계는, 앞선 세 단계(용어 해석·내재적 증거 활용·외부 법리 적용)가 순수한 법률 작업이었던 것과 달리, 조직 내 여러 부서와의 협업과 경영 판단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특허 회피설계는 결코 특허권자의 독점을 단순히 회피하는 편법이 아니다. 이는 특허제도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다. 특허청구항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그 경계 밖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 두는 것이 특허 제도의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경계선을 체계적으로 탐색하고, 의뢰인이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로 이 단계의 역할이다.
다음 글에서는 모든 회피 수단이 실패했을 경우 최후 수단으로 검토하는 역균등론(reverse doctrine of equivalents)과, 분석의 최종 산출물인 비침해 의견서(non-infringement opinion) 작성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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