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ton Davis 판결의 3가지 쟁점 법리
이 글은 미국 특허법의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 DOE) 법리를 판례를 통해 분석하고, 균등침해 회피를 위한 설계 방법론을 체득하는 강좌 시리즈의 여섯 번째 편이다. 앞선 편에서 Graver Tank, Perkin-Elmer·Pennwalt, Slimfold·Laitram 법리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Federal Circuit이 1993년 직권으로 en banc 심리를 명한 Hilton Davis 판결을 분석한다. 이 판결은 균등론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사건으로, 세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한 법원의 입장을 정리했다.
1. Federal Circuit은 왜 직권으로 en banc를 명했는가
Hilton Davis 사건의 긴 과정은 1993년 12월 3일, Federal Circuit이 sua sponte(당사자의 신청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사건을 en banc 판결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en banc란 Federal Circuit 전체 또는 다수 판사가 참여하여 중요한 법리를 정리하는 심리 방식이다.
법원이 스스로 이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Hilton Davis가 단순한 개별 특허침해 사건이 아니라 균등론 전체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사건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Pennwalt의 all-elements 접근, London·Valmont의 제한론, 그리고 International Visual의 형평 trigger 논쟁이 맞부딪히며 패널 판결들이 혼란스러운 흐름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법원 전체가 모여 "앞으로 균등론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했다.
en banc 명령이 설정한 세 가지 검토 쟁점은 이 판결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 된다.
1 균등론상 침해를 인정하려면 function-way-result 테스트 외에 추가 요건이 필요한가?
2 균등론상 침해는 법원이 판단하는 형평문제인가, 배심이 판단하는 사실문제인가?
3 법원은 사건 사정에 따라 균등론 적용 여부를 재량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2. 사건의 사실관계: 식품염료 정제 공정과 pH 5의 문제
Hilton Davis 특허
Hilton Davis 특허는 식품염료 정제(food dye purification) 공정에 관한 것이다. 불순물이 포함된 염료 용액을 특정 압력, 특정 pH, 특정 기공 직경(pore diameter)을 가진 막(membrane)을 통해 통과시켜 정제하는 ultrafiltration 방식이다. 커피 필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필터 구멍 크기, 물의 압력, 용액의 성질에 따라 어떤 성분은 통과하고 어떤 성분은 걸러진다.
문제가 된 독립항(Claim 1)의 핵심 수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막의 nominal pore diameter: 5~15 Angstroms
- hydrostatic pressure(수압): 약 200~400 p.s.i.g.
- pH 범위: 약 6.0~9.0
pH 범위가 왜 6.0~9.0이 되었는가: 출원경과의 배경
pH 6.0~9.0이라는 범위는 출원 당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발명자들은 출원 과정에서 선행기술인 Booth 특허와 구별하기 위해 이 문구를 청구항에 추가했다. Booth 특허는 pH 9 초과, 바람직하게는 pH 11~13 범위에서 작동하는 ultrafiltration 공정을 개시했다. 따라서 상한 9.0은 Booth를 피하기 위한 보정의 결과다.
그렇다면 하한 6.0은? 이쪽은 사정이 다르다. Hilton Davis는 pH 6.0 미만에서 foaming(거품 발생)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하한을 6.0으로 설정했다. Booth를 피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차이가 나중에 prosecution history estoppel 논쟁의 핵심이 된다.
피고 Warner-Jenkinson의 공정
Warner-Jenkinson은 1986년에 문제 된 ultrafiltration 공정을 개발했다. Hilton Davis 공정과 마찬가지로 막을 통한 ultrafiltration을 사용했고, 압력도 약 200에서 거의 500 p.s.i.g. 범위였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 항목 | Hilton Davis 청구항 | Warner-Jenkinson 피고 공정 |
|---|---|---|
| 여과 방식 | membrane ultrafiltration | membrane ultrafiltration |
| 압력 | 약 200~400 p.s.i.g. | 약 200~거의 500 p.s.i.g. |
| pH | 약 6.0~9.0 | pH 5 |
| 문언침해 | 없음 — 양측 모두 인정 | |
피고 공정은 pH 5에서 작동했으므로 청구항의 하한 6.0보다 낮다. 문언침해(literal infringement)가 없다는 점은 Hilton Davis도 인정했다. 사건은 온전히 균등론(DOE)만의 문제가 되었다. pH 5가 pH 6의 균등물인가, 그리고 그 판단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가 쟁점이 된 것이다.
3. 다수의견: 3가지 en banc 쟁점에 대한 답변
Federal Circuit 다수의견은 세 가지 en banc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요약하면 균등론을 특허권자에게 상당히 유리한 방향으로, 그러나 형평적 장치가 아닌 객관적·사실적 판단의 영역으로 정리했다.
쟁점 1: function-way-result 외에 추가 요건이 필요한가?
다수의견은 균등론상 침해를 인정하기 위해 "비본질적 차이(insubstantial differences)"가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보았다. function-way-result 테스트(기능·방식·결과 3중 일치 테스트)는 종종 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만, 유일한 테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function-way-result 테스트를 Graver Tank가 선언한 균등성의 '그' 테스트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다.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혁신 과정이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이 테스트만으로 차이의 실질성을 항상 보여주기 어렵다."
기계 장치에서는 latch와 wedge가 같은 기능·방식·결과를 내는지 비교하기 비교적 쉽다. 그러나 화학 공정에서 pH 5와 pH 6의 "방식(way)"이 같은지 묻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중심 기준을 "비본질적 차이"로 설정하고, function-way-result는 그 판단을 돕는 도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다수의견이 인정한 관련 증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증거 유형 | 균등론에서의 의미 |
|---|---|
| Known interchangeability (알려진 상호대체 가능성) | 당업자가 두 요소를 대체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면 비본질적 차이를 강하게 시사 |
| Copying (복제 정황) | 피고가 특허발명의 실질을 모방했다면 차이가 비본질적임을 시사 |
| Designing around (설계회피 정황) | 피고가 실질적 변경을 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여 균등침해 인정에 불리 |
한편 다수의견은 독립 개발(independent development) 자체는 차이의 실질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특허를 모른 사람은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 것도, "다르게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균등론에는 형평적(equitable) 또는 주관적(subjective) 요소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법리 선언이다. 균등론은 피고의 악의나 선의가 아니라, 청구항과 피고 제품 사이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실질적인지 여부를 묻는다는 뜻이다.
쟁점 2: 법원이 판단하는 형평문제인가, 배심이 판단하는 사실문제인가?
다수의견은 균등론상 침해를 사실문제(issue of fact)로 보았다. 배심재판에서는 배심에게 제출되어야 하고, bench trial에서는 판사가 판단한다. 이는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결론이다. 배심이 피고 제품의 차이를 비본질적이라고 보면, 법관이 "형평상 균등론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쉽게 차단할 수 없게 된다.
쟁점 3: 법관은 균등론 적용 여부를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
다수의견의 답은 명확하다. 법관에게는 그러한 재량이 없다. 기록상 문언침해가 없더라도 균등론이 문제될 때, 1심 법관은 균등론을 적용할지 말지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 이는 London식 접근, 즉 "균등론은 예외이므로 법원이 사건마다 적용 여부를 정한다"는 사고를 배척한 것이다.
4. 다수의견의 사실 적용: pH 5는 pH 6의 균등물
다수의견은 균등론 법리를 정리한 후 사실관계를 검토하여 균등론상 침해를 인정했다. 모든 의견이 압력, pore size, 산성 용액의 차이보다 pH 범위에 집중했다. 피고 공정은 pH 5였고, 청구항은 pH 약 6.0~9.0이었다. 핵심은 이 차이가 비본질적인지였다.
더불어 다수의견은 prosecution history estoppel 문제에 대해 중요한 것은 "무엇을 포기했는가"가 아니라 "왜 포기했는가"라는 입장을 취했다. pH 6.0~9.0으로의 보정은 Booth 특허의 pH 9 초과 공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수의견에 따르면, 보정으로 포기된 것은 pH 9 초과이고, pH 6 미만은 출원경과 금반언(prosecution history estoppel)으로 막히지 않는다는 결론이 된다.
"이 보정은 pH 9 초과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pH 6 미만에서 작동하는 공정에 대해 균등론을 주장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균등론이 사실문제라는 입장에 따라, 항소심은 배심의 사실판단을 쉽게 뒤집기 어렵다. 배심이 pH 5와 pH 6의 차이가 비본질적이라고 보았고,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substantial evidence)가 있다고 판단한 법원은 배심의 균등론상 침해 판단을 유지(affirm)했다.
5. 세 가지 반대의견: 무엇이 쟁점이었나
Plager 판사: 배심에게 통제 불가능한 권한을 준다
Plager 판사는 균등론이 특허법이 부여한 것보다 더 넓은 보호범위를 얻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수의견이 정의한 균등론은 배심이 원하면 침해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거의 통제 불가능하고 심사 불가능한 허가증"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핵심 비판은 명확하다. 특허권자가 "pH 6~9"로 청구항을 받아 놓고 소송에서 "pH 5도 사실상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청구항 작성 실패를 사후적으로 배심에게 보완받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Graver Tank의 Black 반대의견과 매우 유사하다. 특허권의 범위는 청구항으로 정해져야 하며, 재발행 절차 등 법정 경로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다.
Lourie 판사: piracy와 intent를 고려해야 한다
Lourie 판사는 International Visual 보충의견의 연장선에서 반대했다. 차이의 실질성은 Graver Tank상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균등론의 전체 목적은 piracy(특허발명 탈취)를 막고 특허권자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타인의 발명을 유용하려는 intent(의도)를 배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다수의견은 이를 거부했다. 균등론에는 형평적 또는 주관적 요소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Hilton Davis 내부의 가장 큰 철학적 충돌 중 하나다. 특허침해는 일반적으로 intent와 무관한 객관적 책임이라는 특허법의 기본 구조를 생각하면, 다수의견의 입장이 더 일관성을 갖는다.
Nies 판사: PTO에서 포기한 범위는 되찾을 수 없다
Nies 반대의견은 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을 가장 강하게 적용한다. 청구항이 pH 6.0~9.0으로 좁혀져 허가되었다면, pH 5는 그 범위 밖이다. 특허권자가 pH 5도 보호받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청구하거나, 재발행 절차를 사용해야 했다.
"심사관의 거절을 철회시키기 위해 청구항의 pH 범위를 좁혔다면, 이제 균등론을 이용하여 그 범위의 균등물을 포섭할 수 없다."
Nies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적을 한다. 재발행(reissue) 절차에는 intervening rights(중간권리)가 있어 특허권자에게 불리하다. 그래서 특허권자들이 재발행 대신 균등론으로 보정 범위를 우회하는 편을 택한다. 균등론이 Congress가 마련한 재발행 제도를 우회하는 사법적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6. Hilton Davis 판결이 남긴 것
Hilton Davis en banc는 균등론을 완전히 넓힌 것도, 완전히 좁힌 것도 아니다. 다수의견은 여러 판례 원칙을 조합하여 균등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판례 | Hilton Davis 이후 평가 |
|---|---|
| Graver Tank (F/W/R, interchangeability, copying) | ✔ 살아 있음 |
| Pennwalt (all-elements rule) | ✔ 살아 있음 |
| Slimfold (설계회피 장려, 실질적으로 다른 방식) | ✔ 살아 있음 |
| Valmont (insubstantial change 기준) | ✔ 살아 있음 |
| Dolly (all limitations rule) | ✔ 살아 있음 |
| International Visual (별도 형평 trigger 요구) | ✗ 배척됨 |
| London ("exception not the rule") | △ 다수의견과 긴장 관계 |
| Hughes (claim as a whole 중심) | △ 약화 또는 제한 |
설계회피는 더 중요해졌다
Hilton Davis가 균등침해를 인정한 사건이라고 해서 설계회피(designing around)가 약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설계회피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졌다.
다수의견이 적절한 설계회피의 증거를 "실질적 변경의 증거"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 설계회피를 제대로 수행하고 그 증거를 남기면 균등침해를 부정할 수 있는 유력한 논거가 된다.
올바른 설계회피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청구항의 각 한정사항을 구성요소 단위로 분석한다.
- 최소 하나 이상의 한정사항을 실질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 그 변경이 기능·방식·결과 또는 비본질적 차이 기준에서 실질적임을 입증할 자료를 남긴다.
- 단순 모방 후 사소한 변경으로 보이지 않도록 독립적 기술 이유를 확보한다.
- 출원경과, 선행기술, 명세서상 구조를 분석한다.
- 비침해 의견서 및 균등론 리스크 분석 문서를 작성한다.
주의할 점이 있다. "특허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되 숫자만 살짝 바꾸자"는 식의 내부 문건은 오히려 copying의 증거가 되어 균등론상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를 변경했다"는 자료는 실질적 변경을 입증하는 유리한 증거가 된다.
7. 다음 편: Supreme Court의 Warner-Jenkinson
Hilton Davis는 Federal Circuit 차원의 정리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upreme Court는 Warner-Jenkinson Co. v. Hilton Davis Chemical Co.를 통해 Federal Circuit의 판단을 다시 검토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다룬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 Graver Tank의 균등론은 1952년 특허법 이후에도 살아 있는가?
- 균등론은 청구항 전체가 아니라 각 구성요소별로(element-by-element) 적용되어야 하는가?
- pH 6.0 하한 보정의 이유가 불명확할 때 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균등론에서 intent가 필요한가?
- 법원과 배심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어야 하는가?
Hilton Davis가 균등론을 특허권자 방향으로 다소 열어두었다면, Warner-Jenkinson은 법적 통제의 틀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두 판결을 함께 읽어야 현재 미국 균등론 법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 교재: Patrick G. Burns et al., Designing Around Valid U.S. Patents (Patent Resources Group, Inc. 2005). 이 강좌는 해당 교재를 스터디하면서 실무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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