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석합의가 소송의 기준선을 정한다
특허소송에서 청구항 해석은 침해 여부를 가리기 전에 청구항의 법적 의미와 범위를 정하는 절차다. 미국에서는 이를 흔히 Markman 절차라고 부른다. 당사자가 모든 용어를 끝까지 다툴 필요는 없다. 중요하지 않은 용어에 합의하면 법원이 판단할 쟁점이 줄고, 전문가 조사와 재판을 핵심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기술용어의 뜻이 명세서에서 비교적 분명하거나 양쪽 모두 같은 기준이 필요한 경우에는 특히 유용하다.
해석합의는 동의어 하나를 다른 말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법원이 받아들인 해석은 청구항과 피고 제품을 비교하는 기준이 된다. 선행기술과 청구발명을 비교할 때도 같은 기준을 쓴다. 불명확성을 따질 때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해석 단계에서 유리해 보인 문구가 침해나 무효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공격 수단으로 바뀌는 까닭이다.
당사자가 합의했다고 해서 법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구항의 법적 의미와 범위를 정하는 일은 법관의 몫이다. O2 Micro International Ltd. v. Beyond Innovation Technology Co.에 따르면 당사자 사이에 범위를 둘러싼 실질적인 다툼이 있으면 법원이 그 다툼을 풀어야 한다. ‘통상적인 의미에 따른다’고만 하거나 모호한 공통 문구를 받아들여, 배심원 또는 배심원 없는 재판의 법관에게 두 해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서는 안 된다.
법원이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어느 당사자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해석은 이후 침해와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불명확성·침해·유효성의 결론까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합의가 정하는 것은 비교 기준이다. 어떤 증거를 그 기준과 비교할지, 비교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따로 판단한다.
절차용어부터 풀어 보기
이 글에서 ‘주장을 유지한다’는 말은 소송이 끝날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신청서·준비서면·재판 전 명령서에 쟁점을 분명히 적고, 법원에 실제 판단을 요청하며, 재판 단계에서도 그 주장을 철회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패소한 뒤 항소법원에 같은 문제를 심사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주장을 중간에 버리거나 판단을 구하지 않으면 항소법원은 ‘하급심에서 제대로 제기하지 않은 문제’라며 심사를 거절할 수 있다.
‘소송기록에 남긴다’는 표현도 단순히 메모를 남긴다는 뜻이 아니다. 청구항 해석서, 약식판결 신청서, 재판 전 명령서, 증거제출과 이의제기, 최종판결 형성 문서처럼 법원이 공식적으로 접수하거나 재판에서 다룬 자료에 쟁점과 당사자의 입장을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일이다.
bench trial은 배심원 재판이 아니라 배심원 없이 법관이 증거를 듣고 사실까지 판단하는 재판이다. 이 글에서는 ‘배심원 없는 법관재판’이라고 부른다. 법관재판 뒤 항소법원은 법률 판단은 처음부터 다시 살피지만, 증언의 신빙성이나 제품의 속성 같은 사실인정은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확신할 정도가 아니면 그대로 둔다.
2. 합의 뒤에 남는 문제와 뒤늦게 생기는 불이익
청구항 해석에 합의한 뒤 생기는 위험은 두 갈래다. 하나는 해석만 끝났을 뿐 다른 법적 문제가 그대로 남는 경우다. MeadWestvaco에서는 용어의 뜻에 합의할 수 있어도 §112(b)의 불명확성 문제가 따로 남았다. Valeant에서도 안정성의 뜻은 정했지만 §103의 비자명성 판단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합의는 무엇을 판단할지 분명하게 해 줄 뿐 결론을 대신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해석 문제가 끝난 듯 보였지만 합의가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다. Allergan에서는 추상적인 유의어 합의가 실제 수치 경계를 정하지 못한 채 침해 여부를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단계로 넘겼다. 그 사실인정은 항소심에서 쉽게 뒤집을 수 없었다. AstraZeneca에서는 법원이 채택한 해석을 전제로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소법원이 해석을 바꾸자 그 해석을 전제로 한 침해판결도 취소될 수 있었다.
합의의 좋고 나쁨을 승패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Valeant의 항소 결과를 합의가 직접 낳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AstraZeneca에서도 침해판결이 취소되었다고 비침해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합의 뒤 남은 문제의 종류, 판단할 사람, 항소심의 심사 범위, 하급심에서 실제로 다툰 내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
3. 중심 사례 ① Allergan, 뜻은 맞췄지만 범위는 남았다
Allergan v. Sandoz, ‘about’을 ‘approximately’로 바꾼 대가
Allergan은 녹내장 치료제 Lumigan 0.01%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Sandoz, Lupin, Hi-Tech 등은 미국 식품의약국에 복제약 허가신청인 ANDA를 내면서 특허 만료 전에 제품을 판매하려 했다. Allergan은 이 ANDA 제출이 특허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텍사스 동부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청구항 중 일부는 안과용 수용액의 pH를 ‘about 7.3’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영어 about과 approximately는 모두 ‘약’, ‘대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about 7.3’을 ‘approximately 7.3’으로 바꾼 합의는 about에 새로 허용오차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about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의 폭을 전제한다. 문제는 그 폭이 측정오차만큼인지, 제조상 변동까지 포함하는지, 그리고 7.2가 들어가는지를 합의문이 말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Hi-Tech의 ANDA에는 제품의 유효기간 중 pH가 6.8–7.2라고 적혀 있었다. 지방법원은 5일 동안 배심원 없는 법관재판을 열어 침해와 비자명성 등을 심리했다. 양쪽 전문가의 증언을 들은 뒤, Hi-Tech 제품이 ‘approximately 7.3’이라는 한정을 문언 그대로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균등론에 따른 침해도 예비적으로 인정했지만, CAFC는 문언침해 판단을 유지했으므로 균등론까지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Hi-Tech는 항소심에서 ‘approximately 7.3’을 더 좁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CAFC는 Hi-Tech가 지방법원에서 수치 경계를 더 정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했다. 당사자가 제안하고 법원이 채택한 해석이 그대로 사건을 지배하므로, 항소심에서는 7.2가 그 해석에 들어간다고 본 사실인정이 명백히 잘못되었는지만 살폈다. 양쪽 전문가 증언이 있었던 만큼 CAFC는 지방법원의 판단을 뒤집지 않았다.
합의가 불리하게 작용한 지점은 분명하다. Hi-Tech는 해석 단계에서 ‘approximately 7.3’의 숫자상 한계가 무엇인지 다투지 않았고, 법원에 더 구체적인 해석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자 쟁점은 ‘법적으로 어디까지가 약 7.3인가’에서 ‘이 제품의 7.2가 합의된 표현에 들어가는가’로 옮겨 갔다. 전자는 법률문제라서 항소법원이 새로 판단할 수 있지만, 후자는 전문가 증거를 평가한 사실문제여서 명백한 오류가 있어야 뒤집을 수 있다.
Allergan이 모든 about 표현의 허용오차를 정한 것은 아니다. CAFC는 pH 6.8–7.2라는 범위 전체가 언제나 ‘약 7.3’에 포함된다는 일반 규칙도 만들지 않았다. 이 사건의 ANDA 내용과 전문가 증언에 비추어 7.2를 포함한다고 본 판단을 유지했을 뿐이다. 수치 경계가 중요하다면 청구항 해석서와 해석심리에서 양쪽이 주장하는 경계를 제시하고, 법원에 그 차이를 판단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불리한 해석이 채택되었을 때 그 법률 판단을 항소심에서 다시 다툴 수 있다.
4. 보조 사례 Valeant, 합의 뒤에도 비자명성은 남는다
Valeant v. Mylan, 안정성의 뜻을 정한 뒤 시작된 자명성 다툼
Valeant의 특허는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부작용인 변비를 치료하는 주사제 Relistor에 관한 것이었다. 청구항 1은 메틸날트렉손 용액의 pH를 약 3.0–4.0으로 정했고, 청구항 8은 같은 제제가 실온에서 24개월 동안 안정하다는 결과를 덧붙였다. Mylan은 복제약 ANDA를 제출한 뒤 청구항 8의 침해는 인정했지만, 그 청구항이 선행기술에 비추어 자명하므로 무효라고 다투었다.
당사자들은 ‘24개월 동안 안정하다’는 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분해 생성물이 전체 메틸날트렉손의 2.0%를 넘지 않고, 24개월 뒤에도 의약품으로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합의했다. 이 합의는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했다. 다만 항소의 중심은 2.0% 기준 자체가 아니라,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기술을 보고 메틸날트렉손 용액의 pH 3–4를 선택해 장기 안정성을 얻으려 했을 것인지였다.
Mylan은 날록손과 날트렉손 같은 유사한 오피오이드 길항제의 제제를 공개한 특허와 의약품 제제 교과서를 제시했다. 이 자료들은 pH가 안정성에 영향을 주며, 선행기술의 pH 범위가 청구항의 3–4와 겹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Valeant는 선행기술이 다른 화합물에 관한 것이고, 24개월 안정성을 실제로 달성하거나 예측하지 못했다고 맞섰다.
뉴저지 연방지방법원은 정식 재판을 열기 전에 Valeant의 비자명성 약식판결 신청을 받아들였다. 약식판결은 중요한 사실을 둘러싼 진정한 다툼이 없을 때만 가능한 절차다. 지방법원은 다른 화합물의 제제가 메틸날트렉손 제제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보았고, 안정성을 높이려고 먼저 조절할 변수로 pH를 택했을 것이라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Mylan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청구항 8의 자명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방법원의 ‘시도해 볼 만했다’는 주장에 관한 설명이 특히 논란이 되었다. KSR 판결에 따른 obvious-to-try 논리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있고, 통상의 기술자가 시도할 수 있는 확인된 해결책이 유한하며 결과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할 때 적용된다. 지방법원은 서로 다른 두 숫자 사이에는 수학적으로 무한히 많은 부분범위가 존재하므로 pH 선택지가 유한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 전제를 따르면 Mylan은 obvious-to-try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고,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비자명성 결론이 나온다.
CAFC는 이런 ‘무한대’ 계산이 실제 제제 개발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pH 측정기에는 정밀도의 한계가 있고, 실무자가 시험하는 값도 일정한 간격을 갖는다. pH 3–4를 소수점 한 자리 단위로 시험하면 열 개, 두 자리 단위로 시험해도 백 개의 값이지 무한대가 아니다. pH가 반드시 기술자가 가장 먼저 바꿀 변수여야 한다는 법적 요건도 없다. 청구항 8에서 조절 가능한 핵심 변수로 적힌 것은 pH였고, 기록상 pH가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도 있었다.
CAFC는 구조와 기능이 비슷한 화합물의 중첩 pH 범위가 일단 자명성을 추정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지방법원이 약식판결 단계에서 Mylan의 전문가 증거를 법률상 배척한 것도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CAFC가 청구항 8을 곧바로 무효라고 선고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실관계를 더 심리하도록 비자명성 약식판결을 뒤집어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Valeant는 합의가 특허를 무효로 만든 사례가 아니다. 안정성의 합의된 뜻은 비교 대상을 분명히 했지만, 자명성 여부는 선행기술의 내용, 세 화합물의 구조와 기능이 얼마나 비슷한지, pH 3–4를 시험할 동기와 성공을 기대할 근거가 있었는지에 달려 있었다. 합의 전에는 그 정의가 선행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검토해야 하지만, 항소 결과를 합의문 하나의 탓으로 돌리면 판결의 핵심을 놓친다.
5. MeadWestvaco, 용어에 합의해도 불명확할 수 있다
MeadWestvaco v. Rexam, 뜻을 정할 수 있다는 사실과 청구범위가 명확하다는 결론
MeadWestvaco Corp. v. Rexam Beauty & Closures, Inc.에서는 투명한 액체 흡입관에 관한 특허의 ‘XRD crystallinity’와 ‘quenched’가 불명확한지가 문제 되었다. 지방법원은 당사자들이 두 용어의 뜻에 합의해 청구항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정을 들어 불명확성 주장을 배척했다.
CAFC는 각주에서 지방법원의 논리가 정확하지 않다고 짚었다. 어떤 용어를 말로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명확성 심사가 끝나지는 않는다. 정의를 읽고도 통상의 기술자가 청구범위의 경계를 충분히 알아낼 수 없다면 여전히 불명확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Nautilus, Inc. v. Biosig Instruments, Inc.에 따라 명세서와 출원경과를 읽은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지를 묻는다.
MeadWestvaco의 결론은 좁게 읽어야 한다. CAFC는 해당 청구항이 실제로 불명확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합의된 정의만으로 명확성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은 각주에 있다. 정작 항소 결과를 좌우한 이유는 피고가 약식판결 단계에서 제기했던 불명확성 주장을 재판에서 더 이상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CAFC는 피고가 그 주장을 포기했다고 보고 실체를 심사하지 않았다.
따라서 특허권자가 합의된 정의를 얻었다고 해서 §112(b) 다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피고 역시 해석 문구에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명확성 주장을 당연히 잃지 않는다. 다만 합의서에 불명확성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적고, 약식판결 신청이나 재판 전 명령서에서 그 주장을 분명히 제시하며, 재판에서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항소법원은 쟁점을 검토하지 않을 수 있다.
6. 중심 사례 ② AstraZeneca, 조건부 합의로 위험을 줄이다
AstraZeneca v. Mylan, 침해를 인정한 전제가 항소심에서 바뀐 사건
AstraZeneca AB v. Mylan Pharmaceuticals Inc.에서는 흡입용 제제에 든 PVP의 농도 ‘0.001%’가 문제 되었다. 처음에는 두 당사자 모두 별도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Mylan이 균등론에 따른 비침해 약식판결을 신청하면서 그 수치가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를 놓고 다툼이 생겼다. 지방법원은 유효숫자 한 자리의 반올림 관례를 적용해 0.0005–0.0014%로 해석했다. Mylan은 모든 해석 아래에서 침해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지방법원의 넓은 해석을 적용하는 경우 자사 제품이 그 범위에 들어간다고 인정하여 항소할 수 있는 최종판결이 내려지도록 했다.
CAFC 다수의견은 명세서의 실험자료와 출원경과가 PVP 농도의 미세한 차이를 중요하게 취급한다고 보았다. 출원인은 처음의 ‘about 0.0005% to about 0.05%’ 범위를 정확한 ‘0.001%’로 좁히고 ‘about’을 제거했으며, 그 농도의 임계성과 실험결과를 거듭 강조했다. 다수의견은 이 기록에 비추어 0.001%가 사실상 소수 넷째 자리까지 표시된 0.0010%에 가까운 정밀도를 갖는다고 보고, 반올림되는 범위를 0.00095–0.00104%로 한정했다. Taranto 판사는 이 접근이 명시된 0.001을 0.0010으로 다시 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다수의견이 지배하며, 그 결과 종전 해석을 전제로 한 침해판결은 취소·환송되었다.
Mylan의 합의에는 전제가 있었다. 지방법원의 넓은 해석이 적용되는 한 자사 제품이 청구항에 들어간다고 인정했지만, 그 해석이 옳다는 데까지 동의하지는 않았다. Mylan은 해석의 잘못을 항소했고, CAFC가 범위를 좁히자 그 해석에 기대어 내려진 침해판결도 유지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CAFC가 Mylan 제품의 비침해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 지방법원이 새 해석에 따라 침해 여부를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냈고, 비자명성 판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AstraZeneca를 출원경과상 권리포기의 요건을 전반적으로 낮춘 판례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견은 명백한 권리포기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출원인의 설명과 보정 내용을 청구항의 뜻을 밝히는 자료로 쓸 수 있다고 보았다. 출원인이 특정 범위를 명백히 포기했는지를 따지는 법리와, 출원기록 전체를 보고 문언의 뜻을 정하는 작업은 구별된다.
7. O2 Micro 이후 법관과 배심원이 나누어 맡는 일
판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합의가 불리해지는 경로가 보인다. 법관이 해결해야 할 범위 다툼을 추상적인 유의어 합의로 덮으면, 나중에는 채택된 문구를 제품에 적용하는 문제가 남는다. Allergan의 ‘about’을 ‘approximately’로 바꾼 합의가 그랬다. AstraZeneca에서는 Mylan이 지방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침해를 인정하되 그 해석 자체는 계속 다투었다. CAFC가 해석을 바꾸자 전제에 기대고 있던 침해판결도 함께 취소되었다.
역할을 나누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첫째, 청구항의 법적 의미와 범위를 정하는 일은 법관이 맡는다. 둘째, 확정된 범위와 피고 제품·공정을 비교해 실제로 한정을 충족하는지 가리는 일은 원칙적으로 사실판단이다. 배심원 재판이면 배심원이, 배심원 없는 법관재판이면 법관이 사실판단자 역할을 한다. 같은 법관이 판단하더라도 항소심에서는 법률 판단과 사실인정에 서로 다른 심사기준을 적용한다.
유효성을 따질 때 합의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Valeant에서 안정성의 합의된 뜻은 비교 대상을 구체화했다. 그래도 비자명성은 겹치는 pH 범위, 화합물 사이의 유사성, 그 범위를 시험할 동기와 성공을 예상할 근거를 모두 살펴야 했다. MeadWestvaco에서는 용어의 뜻을 정할 수 있어도 불명확성 심사가 끝나지 않았다. 다만 피고가 재판에서 그 주장을 더 다루지 않아 실체 판단을 받지 못했다.
O2 Micro가 모든 기술적 표현을 숫자로 바꾸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다. 두 당사자가 청구범위에 관해 서로 다른 법적 기준을 제시한다면 법원이 그 차이를 풀어야 한다는 판결이다. 반대로 양쪽이 하나의 해석을 내고 더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법원은 그 문구를 채택한 다음 피고 제품이 이를 충족하는지를 사실판단에 맡길 수 있다. Allergan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해석 단계에서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유연한 문구가 제품에 적용될 때 한쪽에 불리하게 구체화될 수 있다. 항소할 때도 차이가 생긴다. 법률문제라면 CAFC가 지방법원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 판단한다. 배심원 없는 법관재판의 사실인정은 명백한 오류가 있어야 뒤집고, 배심원 평결은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심사한다. 수치 경계를 합의하지 않는 선택은 나중에 누가 판단하고 항소법원이 얼마나 깊이 다시 살필지에도 영향을 준다.
8. 합의서에서 쟁점별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문안
다음 문안은 해석·불명확성·침해·항소권을 한 문장에 섞지 않고 따로 밝히는 예시다. 어느 주장을 계속할지, 어느 사실만 조건부로 인정할지, 어떤 결정을 항소할지를 법원 제출문서에 분명히 표시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문안은 사건의 명령서, 현지규칙, 최종판결의 형성 방식과 항소관할 요건에 맞추어 고쳐야 한다.
Agreed Construction Only. Solely for purposes of this Action, the Parties agree that ‘[TERM]’ shall be construed as ‘[AGREED CONSTRUCTION].’ This stipulation resolves only the meaning and scope of that term. Except as expressly stated, neither Party admits any fact or legal conclusion concerning infringement, noninfringement, validity, invalidity, enforceability, damages, or any other issue.
해석에 한정된 합의. 당사자들은 오직 이 소송의 목적상 ‘[용어]’를 ‘[합의된 해석]’으로 해석하는 데 합의한다. 이 합의는 해당 용어의 의미와 범위만을 해결한다. 명시적으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당사자도 침해, 비침해, 유효, 무효, 권리행사 가능성, 손해배상 또는 그 밖의 사실이나 법적 결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No Waiver of Indefiniteness. Defendant’s agreement to the foregoing construction does not waive, and expressly preserves, Defendant’s right to contend that the asserted claims, even as construed, fail to satisfy 35 U.S.C. § 112(b). Plaintiff preserves all responses. No Party may argue that entry into this stipulation constitutes a concession of definiteness.
불명확성 항변의 비포기. 피고가 위 해석에 동의하더라도, 그 해석에 따르더라도 주장 청구항이 미국 특허법 제112조 (b)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를 명시적으로 유보한다. 원고도 이에 대한 모든 반박을 유보한다. 어느 당사자도 이 합의의 체결이 명확성에 대한 양보라고 주장할 수 없다.
Conditional Stipulation as to Infringement. If and only if the Court adopts [CONSTRUCTION], Defendant stipulates that [ACCUSED PRODUCT] satisfies [LIMITATION] solely to facilitate resolution of the remaining issues and, if otherwise permitted, appellate review. Defendant does not concede infringement under any other construction. If the construction is modified, vacated, or reversed, this stipulation shall have no effect unless the Parties otherwise agree in writing.
침해에 관한 조건부 합의. 법원이 [해석]을 채택하는 경우에만 피고는 남은 쟁점의 해결과 법이 허용하는 범위의 항소심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피고 제품]이 [청구항 한정]을 충족한다고 합의한다. 피고는 다른 해석 아래의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당 해석이 변경·취소·파기되면 당사자들이 달리 서면 합의하지 않는 한 이 합의는 효력을 잃는다.
Preservation of Review. Each Party preserves, to the extent permitted by law, the right to seek reconsideration or appellate review of any claim-construction ruling identified in Exhibit A. Nothing in this stipulation creates appellate jurisdiction, waives a jurisdictional requirement, or preserves an issue not otherwise properly raised in the record.
심사를 요구할 권리의 유보. 각 당사자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별지 A에 적힌 청구항 해석 결정의 재검토 또는 항소심사를 요구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합의만으로 항소관할이 생기거나 관할요건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급심에서 적절한 시기에 제기하고 법원에 판단을 구하지 않은 문제까지 나중에 항소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Court Authority and Severability. The Parties acknowledge that claim construction remains a matter for the Court. If the Court rejects or materially modifies any agreed construction, the related stipulations shall be severable and shall not bind either Party unless reaffirmed in writing.
법원의 권한과 가분성. 당사자들은 청구항 해석이 법원의 판단사항으로 남는다는 점을 확인한다. 법원이 합의된 해석을 거부하거나 중대하게 변경하면 관련 합의 조항은 분리 가능하며, 당사자들이 서면으로 다시 확인하지 않는 한 어느 당사자도 구속하지 않는다.
예시 문구만으로 모든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항소할 권리를 유보한다’고 써도 항소관할이나 최종판결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항소할 수 없다. 불명확성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적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MeadWestvaco에서 보듯 실제 절차에서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증거를 내며, 법원에 판단을 구해야 한다. 합의문은 이미 적절하게 제기한 쟁점을 분명히 해 두는 문서이지, 제기하지 않은 권리를 새로 만드는 문서가 아니다.
9.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답해야 할 질문
첫째, 합의문이 실제 범위 다툼을 끝내는가. ‘about’을 ‘approximately’로 바꾸는 데 그친다면 제품에 적용할 때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긴다. 남은 문제를 누가 판단할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둘째, 다음 판단은 누가 맡는가. 합의된 문구의 법적 의미는 법관이 정한다. 그 문구를 제품에 적용해 침해 여부를 가리는 일은 배심원이나 배심원 없는 재판의 법관이 맡을 수 있다. 합의 때문에 법률문제가 사실문제로 바뀌는지 살펴야 한다.
셋째, 유효성 다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합의된 수치·기능·결과를 선행기술과 직접 비교해야 한다. 겹치는 범위가 있는지, 그 범위를 시험할 이유가 있었는지, 결과가 예상 밖이었는지도 합의 전에 검토한다.
넷째, 불명확성 주장을 계속할 것인가. 정의에 동의하는 것과 §112(b)상 합리적 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합의서에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쓰는 데 그치지 말고, 약식판결과 재판에서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해야 한다.
다섯째, 합의의 전제가 된 해석을 항소심에서 다시 다툴 것인가. 조건부 침해합의와 최종판결 형성 방식은 사건별 절차와 관할법원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계속 다툴지 합의문에 분명히 적어야 한다.
10. 설명을 위한 분석틀과 실제 판례법은 다르다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갖는 경우와 한 뜻의 바깥 경계가 흐린 경우를 나누어 보면 합의가 왜 실패했는지 설명하기 쉽다. Allergan에서는 about과 approximately 가운데 어느 말을 쓸지는 정했지만 숫자상 경계는 정하지 못했다. MeadWestvaco도 용어를 정의할 수 있는지와 청구범위의 경계를 충분히 알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분석법이다. CAFC가 두 단계의 별도 심사방법으로 채택한 법리는 아니다. 법원은 청구항 문언과 명세서, 출원경과를 함께 읽어 범위를 정한다. 불명확성을 판단할 때는 Nautilus의 합리적 확실성 기준을 적용한다. ‘가짜 명확성’이나 ‘합의의 덫’도 설명을 위한 표현일 뿐 판례가 인정한 법리 명칭은 아니다.
판례가 판단하지 않은 결론을 덧붙여서도 안 된다. Valeant의 환송은 최종 무효판결이 아니며, AstraZeneca에서 침해판결을 취소한 것도 최종 비침해판결은 아니다. MeadWestvaco는 청구항이 실제로 불명확한지 판단하지 않았다. Finjan LLC v. ESET, LLC 역시 수정된 해석에 따른 최종 명확성이나 유효성을 확정하지 않았다. 환송은 잘못된 전제를 고치거나 더 심리하라는 뜻이다. 남은 쟁점의 승패를 미리 정한 결정이 아니다.
맺음말, 합의가 남긴 위험까지 살펴야 한다
청구항 해석합의는 특허소송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유용한 도구다. 좋은 합의는 양쪽이 같은 문장에 서명한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범위 다툼을 해결하고, 침해·유효성·불명확성에 미칠 영향을 따져야 한다. 계속 다툴 문제와 조건부로 인정할 사실, 나중에 항소할 결정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Allergan에서는 추상적인 유의어 합의가 피고에게 불리한 사실판단으로 이어졌다. Valeant에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유효성 판단의 비교 대상을 밝혔지만 최종 결론까지 정하지는 않았다. MeadWestvaco에서는 합의된 정의가 명확성을 보장하지 않았고, 피고는 재판에서 주장을 이어 가지 않아 항소심의 실체 판단도 받지 못했다. AstraZeneca에서는 잘못된 해석을 전제로 한 조건부 침해합의가 있었지만, 해석을 계속 다툰 덕분에 그 해석이 바뀌자 침해판결도 취소되었다.
합의가 넓은지 좁은지만 보아서는 위험을 알 수 없다. 어떤 법률문제를 끝냈는지, 어떤 사실판단을 남겼는지, 무효와 불명확성을 계속 다툴지, 불리한 해석을 항소할 수 있도록 하급심에서 판단을 구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해석심리에서 얻은 이익이 소송 마지막까지 유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서명하기 전에 침해·무효·불명확성과 항소 절차까지 차례로 대입해 보아야 한다.
주요 판례와 공식 출처
아래 판례는 모두 구속력 있는 선례다. 다만 판결의 결론을 직접 뒷받침한 법리, 결론에 필요하지 않았던 설명, 환송 뒤 지방법원이 다시 판단할 문제를 구분해서 인용해야 한다.
- Markman v. Westview Instruments, Inc., 517 U.S. 370, 388–91 (1996). 청구항 해석이 법관의 역할임을 확립한 연방대법원 판결. 연방대법원 공식 판결집
- O2 Micro International Ltd. v. Beyond Innovation Technology Co., 521 F.3d 1351, 1360–63 (Fed. Cir. 2008). 당사자 사이에 실제 범위 분쟁이 있으면 법원이 이를 해결해야 함을 밝힌 CAFC 선례 판결. CAFC 공식 판결문
- MeadWestvaco Corp. v. Rexam Beauty & Closures, Inc., 731 F.3d 1258, 1270 n.8 (Fed. Cir. 2013). 정의 가능성만으로 불명확성 심사가 끝나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나, 해당 사건의 불명확성 쟁점은 포기로 종결. CAFC 공식 판결문
- Nautilus, Inc. v. Biosig Instruments, Inc., 572 U.S. 898, 910–11 (2014). §112(b) 불명확성에 관한 합리적 확실성 기준을 제시한 연방대법원 판결. 연방대법원 공식 판결집
- Allergan, Inc. v. Sandoz Inc., 796 F.3d 1293, 1311 (Fed. Cir. 2015). 합의된 ‘approximately 7.3’ 해석과 전문가 증거 아래 문언침해 사실인정을 유지한 CAFC 선례 판결. CAFC 공식 판결문
- Valeant Pharmaceuticals International, Inc. v. Mylan Pharmaceuticals Inc., 955 F.3d 25, 31–35 (Fed. Cir. 2020). 중첩 pH 범위와 obvious-to-try 분석을 근거로 비자명성 약식판결을 뒤집고 환송한 CAFC 선례 판결. CAFC 공식 판결문
- AstraZeneca AB v. Mylan Pharmaceuticals Inc., 19 F.4th 1325, 1328–35 (Fed. Cir. 2021). 0.001%를 내재적 기록에 따라 좁게 해석하고 종전 침해판결을 취소·환송한 CAFC 선례 판결. CAFC 공식 판결문
- Finjan LLC v. ESET, LLC, 51 F.4th 1377, 1380–84 (Fed. Cir. 2022). 잘못 추가된 크기 제한에 의존한 불명확성 약식판결을 취소·환송했으나 최종 명확성을 확정하지 않은 CAFC 선례 판결. CAFC 공식 판결문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