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법조인이라는 말 앞에서
양중진 변호사님의 칼럼을 읽고 한참을 멈추었다. 좋은 법조인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에 관한 글이었다. 특별히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겸손, 공감, 경청,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좋은 인격.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고, 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글은 늘 마음을 찌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다시 눈앞에 놓일 때, 그 말들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세월을 따라 배우고 또 배웠음에도, 여전히 몸에 배지 않은 습관들이 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끝과 말투와 표정에까지 내려오지 못한 태도들이 있다. 그래서 좋은 법조인의 덕목을 읽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다시 읽는 일이 된다.
첫 번째 덕목: 겸손 — 지적 태도로서의 겸손
첫 번째 덕목은 겸손이었다. 인간적인 겸손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히 실력에 관한 겸손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다. 법률가나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확신의 언어에 익숙해진다. "이건 이렇습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물론 전문가는 판단해야 하고, 때로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단호함이 곧 독선이어서는 안 된다.
좋은 전문가는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협업이 어려워지는 순간은 대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지가 부족해서다. 다른 의견이 들어올 공간이 없을 때, 토론은 설득이 아니라 방어전이 된다. 반대로 자신의 견해를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관점이 들어온다. 법률문제든, 특허문제든, 사업상 판단이든, 세상일은 대개 단선적이지 않다. 한쪽에서 보면 맞는 말이 다른 쪽에서 보면 위험한 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더 정확한 판단에 이르기 위한 지적 태도다.
두 번째 덕목: 공감 —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눈
두 번째는 공감 능력이다. 이 부분은 특히 법과 분쟁을 다루는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쟁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법률적 답을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이미 마음이 다친 상태로 온다. 억울함, 불안, 분노, 수치심,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에서 전문가를 찾는다. 그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조문과 판례와 승소 가능성만을 말하는 것은 때로 너무 차가운 처방이 될 수 있다.
상담의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먼저 마음의 호흡을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법적 결론보다 먼저 사람을 붙잡아 줄 때가 있다. 사건은 결국 문서와 증거와 법리로 처리되지만, 사건을 가져오는 사람은 감정과 기억과 상처를 가진 인간이다.
좋은 법조인은 사건을 보되 사람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째 덕목: 경청 — 말 뒤에 있는 것을 듣는 기술
세 번째는 경청이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말을 잘한다. 말로 설득하고, 글로 주장하며, 논리로 상대를 압박하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잘 듣는 일이다. 듣는 척하는 것은 쉽지만, 제대로 듣는 것은 어렵다. 사람의 말에는 표면적인 문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두려움과 기대와 망설임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들을 청(聽)' 자가 왕의 귀, 열 개의 눈, 하나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귀만 열어두는 일이 아니다. 눈으로 상대의 표정을 보고, 마음으로 말의 결을 살피며,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일이다. 전문가가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순간, 의뢰인의 말은 잘려 나간다. 그런데 때로는 사건의 핵심이 바로 그 잘려 나간 말 속에 있다. 좋은 경청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사실관계와 쟁점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네 번째 덕목: 스트레스 관리 — 직업윤리의 일부로서의 자기 돌봄
네 번째는 좋은 취미를 통한 스트레스 관리다. 법조인은 타인의 스트레스를 대신 받아주는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 의뢰인의 분노, 상대방의 공격, 법원의 일정, 마감의 압박, 패소의 위험, 책임의 무게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사건 하나하나는 문서철 속에 들어 있지만, 그 문서철마다 누군가의 인생과 돈과 명예와 관계가 걸려 있다. 그 무게를 매일 다루다 보면 마음도 몸도 쉽게 소진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는 사치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지친 사람이 좋은 판단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소진된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오래 견디며 들어주기도 어렵다.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취미도 필요하고, 독서나 음악처럼 마음을 다른 곳에 잠시 머물게 하는 정적인 취미도 필요하다. 결국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이 타인도 오래 도울 수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쉬는 일, 흐려지지 않기 위해 비우는 일도 전문가의 실력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덕목: 인격 —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
다섯 번째는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어렵다. 실력은 공부하면 어느 정도 늘 수 있다. 경력은 시간이 지나면 쌓인다. 그러나 인격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기 쉽고, 작은 성공이 쌓일수록 더 위험해질 때도 있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결국 사람은 사람을 기억한다.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도 기억하지만,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가이다. 말 한마디의 온도, 어려운 순간의 태도, 이익 앞에서의 절제, 불리한 상황에서의 정직함이 한 사람의 이름에 천천히 쌓인다.
좋은 법조인과 좋은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
결국 양중진 변호사님의 글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좋은 법조인과 좋은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인의 전문성은 법률지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겸손하게 판단하고, 아픈 마음을 헤아리며, 온전히 듣고, 자신을 잘 관리하고, 인격적으로 신뢰받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전문성은 사람을 향해 제대로 쓰일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얼마나 겸손했는가. 나는 상대의 말을 정말 들었는가. 나는 사건 뒤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보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짧으면 10년, 길면 20년을 더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남아 있고, 책임져야 할 자리도 있으며, 부딪혀야 할 현실도 적지 않다.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편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래서 더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
앞으로의 시간은 단순히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매일 증명해 가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는 실력과 성취가 먼저 보였다. 더 정확히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된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태도이고, 실력만이 아니라 사람됨이며, 승패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얼굴과 말과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는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가르침을 남은 삶의 습관으로 삼고 싶다. 겸손하려고 애쓰고, 아픈 마음을 먼저 살피고, 말하기 전에 더 듣고, 나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돌보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를 다듬고 싶다. 한 번의 다짐으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반복되는 다짐은 언젠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된다고 믿는다.
오늘 다시 마음에 새긴다. 법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든, 그 곁에서 지식과 책임을 다루는 사람이든, 결국 좋은 전문가가 되는 일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훈련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10년, 혹은 20년의 시간 동안 이 가르침이 머릿속 문장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금은 더 낮고,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세상 속을 살아가고 싶다.
※ 이 글은 양중진 변호사의 칼럼 「좋은 법조인의 다섯 가지 덕목」(법률신문) 을 읽고 쓴 성찰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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